옛날 한 법관이 재판을 심사 분류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재판 서류를 보고는
피가 멎는 듯 하였다.
이름이 자기의 아들과 같았다.
주소를 보고는 기절할 뻔했다.
그 죄인은 바로 자신의 아들이었다.
죄명은 살인강도였기에 법대로 하면 사형이다.
아버지는 법대로 공정하게 집행해야 했으며
법관인 아버지는 결국 판례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얼마 후... 아들이 사형당하기 전날 밤
아버지는 법복을 입고,
아들이 있는 감옥을 찾았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얼싸안고
한참을 울고난 후..
아들에게 당부했다.
“이것은 나의 마지막 유언이니 꼭 들어라.
네가 나의 이 법복을 입고 나가라.
너의 죄 값을 내가 다 지고 간다.
너는 이제 죄 없는 자유인이다.
너의 죄를 내가 대신 다 짊어졌다.
그리고 더 이상 너는 죄가 없다."
아버지와 아들은 결
국 서로의 옷을 바꿔입었다.
법복을 입은 아들은 자유롭게 감옥을 나갔고,
죄수복을 입은 아버지는 다음날 사형을 당했다.
-'감동의 새벽편지 ' 중에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루카 6,6-11)
막 태어난 아기를 보면 주먹을 꽉 쥐고 있습니다.
아직 손의 기능이 발달하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본능적으로 내 것을 끌어안으려고 하는 본성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성장해간다는 것은 내 것만을 챙기려는 꽉 쥔 손을 펴서,
누군가를 어루만져주고 내 것을 나누는 능력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하시면서, “일어나 가운데 서라”고 하십니다.
그를 그의 삶의 주인공으로 세워주시는 말씀입니다.
삶의 주인공인 우리 역시 마땅히 해야할 일로서 안식일에 하느님 뜻에 맞는 일을 하는 것,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을 율법의 이름으로 막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욕심으로 가득 찬 오그라든 손을 가지고 있다면 일어나 우리 삶의 한가운데 서서 세상을 향해,
나의 이웃을 향해 손을 뻗어 무언가를 나눌줄 아는 능력을 주시도록 기도해 보면 어떨까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