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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시네토크] (1) 4주기, 이은주에 대한 추억을 나누다

작성자푸르매|작성시간09.02.24|조회수323 목록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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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4 09:44

 

[이동진닷컴] (글=이동진) 2월22일은 배우인 고(故) 이은주씨가 세상을 떠난 지 4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기일 하루 전날인 2월21일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함께 하는 다시 보기’의 2월 행사는 조금 특별했습니다. 이은주씨의 대표작인 ‘번지점프를 하다’를 다시 상영한 후 김대승 감독, 고은님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그녀에 대한 추억을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었으니까요.

 

물론 이날 행사가 이은주씨를 기리기 위한 자리였던 것만은 아닙니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개봉 후 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분들이 특별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작품이기에 그 자체로 ‘다시 보기’ 행사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영화니까요.

 

‘관객의 영화’란 바로 ‘번지점프를 하다’ 같은 작품을 일컫는 말일 것입니다. 개봉 직후부터 관객들의 자발적인 모임인 ‘번사모’(‘번지점프를 하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결성되어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증거가 되겠지요. 사실 1,2년만 지나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영화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무려 8년이나 지난 영화를 다시 상영하는 프로그램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시는 것 자체가 ‘번지점프를 하다’의 힘을 말해주는 것이겠지요.


이동진=오늘 행사는 여러 가지로 뜻 깊은 것 같습니다. ‘번지점프를 하다’가 개봉된 게 2001년 2월이었으니까 그 사이 정확히 8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2월22일은 이 영화의 주연 배우인 고(故) 이은주씨의 기일입니다. 어느덧 4년의 세월이 흐른 거지요.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전에 이 영화의 개봉 당시 반응이 궁금해서 영화잡지의 별점들을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평가가 높지 않더군요. 지금 이 영화가 사람들 마음 속에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감안하면 좀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기에 ‘번지점프를 하다’는 더더욱 관객의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가 지닌 특별한 어떤 것들이 관객들을 사로잡아서 세월이 흘러도 많은 분들이 애틋한 기억으로 간직하게 된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김대승 감독님에겐 이 영화가 데뷔작이셨죠? ‘번지점프를 하다’가 감독님께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번지점프를 하다'를 연출한 김대승 감독. 사진제공=한국영상자료원

김대승=제게는 데뷔작이었으니까 너무나 중요한 인생의 한 막 같은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영화 내부를 들여다 보면, 굉장히 부끄러운 부분도 많아요. 지금도 이 영화를 다시 보면 얼굴이 붉어지는 대목이 있습니다. 뭐랄까요. 많이 아프고, 또 많이 행복했던 인생의 장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동진=고은님 작가님께도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성함에 ‘님’자가 들어가셔서 ‘고은님 작가님’이라고 말하려니까 자꾸 더듬게 되네요.(웃음) 제 기억으로는 ‘번지점프를 하다’의 고은님 작가님처럼 데뷔작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개봉 당시에 그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번지점프를 하다’가 작가님께는 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듣고 싶네요.

 

고은님=저 역시 김대승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비슷해요. 데뷔작이기 때문에 부끄러운 부분도 많은데, 하고 나서 좋은 공부와 경험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은주씨 일도 있고 해서 여러 모로 마음에 화인처럼 남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첫 작품으로 상을 많이 받아서 그런 것 같은데, ‘번지점프를 하다’로 박수를 받은 후 내놓은 두번째 작품 ‘아 유 레디’에서는 욕을 엄청 먹었어요. 저는 그냥 두 편 모두 저 좋을 대로 썼는데 어떤 것은 좋은 평을 받고, 또 어떤 것은 영화계에 악영향을 미친 주범으로 지목될 정도로 욕을 먹게 됐죠. 그런 면에서도 좋은 경험과 공부가 됐어요.

 

이동진=지금은 ‘00사모’, 이런 모임이 많잖습니까. 그런데 제 기억으로는 ‘박사모’를 빼고는 이 영화의 애호 모임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 ‘박사모’는 ‘박하사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고요.(웃음) 아무튼 박사모 다음의 자발적 관객 모임이 ‘번지점프를 하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번사모’였는데, 스타의 팬클럽도 아닌 특정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의 모임이란 게 참 신선했습니다. 이 모임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지요? 혹시 지금까지도 열리고 있나요.

 

김대승=지금 이 자리에도 번사모 분들이 와 계세요.(웃음)

 

이동진=아, 역시 그렇군요.(웃음) 감독님은 ‘번사모’ 모임에도 많이 가셨을 텐데, 제 생각엔 감독으로서 제일 행복한 자리가 그런 모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대승=참으로 기쁘고 반갑고 고마운 분들인데, 한편으로는 “이분들께 ‘번지점프를 하다’보다 더 좋은 영화를 보여드려야 할 텐데” 싶은 마음이 있어요. 당시에 ‘번사모’ 회원들이 5천명이었으니, 제가 부양할 식구가 5천명쯤 되는 것 같다는 부담이 있었던 거죠. 영화를 계속 하다 보면 좀 들쭉날쭉한  부분이 있게 되는데, 계속 지지해주시는 것을 보면 그저 고맙다는 말씀 밖에 드릴 게 없죠.

 

이동진=그 이후에도 좋은 작품을 만들어 주셨지만, 아무래도 ‘번지점프를 하다’를 특별하게 기억하시는 분들이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감독 입장에서 데뷔작이 제일 좋다는 말을 듣게 되면 속으로는 약간 섭섭하실 수도 있잖습니까.

 

김대승=네, 서운하죠.(웃음) 그런데 그동안 제가 만들었던 영화의 색깔들이 다 달랐으니까요. 예를 들어 ‘번지점프를 하다’와 ‘혈의 누’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영화잖습니까. 취향이 달라서 하신 말씀도 있고 하니까 괜찮습니다.

 

이동진=’번지점프를 하다’는 멜로 영화로서 그 소재나 착상이 매우 독특한 영화입니다. 고은님 작가님은 이 영화를 어떤 아이디어에서 처음 시작하시게 되셨나요. 이 영화의 반전에 해당하는 부분을 먼저 생각하고 거기서부터 전체 내용을 끌어내신 건가요, 아니면 전반부 이야기를 먼저 쓰고 나서 나중에 반전을 넣으신 건가요.

 

'번지점프를 하다'의 각본을 쓴 고은님 작가. 사진제공=한국영상자료원

 

고은님=영화화 되기 전의 일이었어요. 좀더 정확히 말하면 영화화할 생각도 하기 전이었죠. 그때 저는 구성작가 생활을 하고 있을 때인데, 어느 날 남자 친구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어휴, 여기서 밝히자니 정말 쑥스러운데(웃음), “다시 태어나도 널 꼭 찾아내서 사랑하겠다”라고요. 그때 제가 “내가 남자로 태어나면 어떻게 할 건데?”라고 되물었거든요. 그러자 남자 친구가 “그래도 그렇게 할 거야”라고 답했어요. 그 대화를 나누고 나니 그런 모티브를 영화화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 거죠.

 

이동진=혹시 그 분을 지금도 만나고 계신지 여쭤봐도 될까요.(웃음)

 

고은님=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헤어졌어요.(웃음)

 

이동진=역시나 그렇군요. 아름다운 멜로 영화 뒤에는 늘 그렇게 가슴 아픈 사연들이 있더라고요.(웃음) ‘번지점프를 하다’는 그 구조가 좀 특이하지 않습니까. 17년의 세월을 두고 전반부와 후반부로 이야기가 나뉘어지게 되는데, 감독님은 영화의 앞부분은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신 후, 뒷부분은 플래시백을 통해서 계속 예전 일을 상기시키는 방법으로 구성하셨죠. 이 영화의 구조적인 측면이라고 할까요,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방법에 대해 당시에 어떻게 고민하셨는지요.

 

김대승=일단, 고은님 작가님께서 워낙 구성을 탄탄하게 해 놓으셨어요. 그런 상황에서 멜로라는 장르가 가진 기본적인 한계를 의식하면서 고민을 했죠. 멜로는 한 발 더 나아가면 신파가 되고, 한 발 덜 나아가면 건조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장르니까요. 그렇다면 이 장르를 가지고 관객들을 어떻게 만나야 되는지를 계속 생각했어요. 자칫 지루해지거나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위험을 줄여가면서 관객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구조가 무엇일까 궁리했던 거죠. 그러다 역시 그것은 뭔가를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어요. 그런 게 스릴러 영화에서 일반적으로 차용하는 방식이잖아요. 이미 각본이 1-2-3-4-5, 이런 식으로 가는 내용을 1-3-5-7-9로 가면서 몇몇 모티브들을 숨겨놓았다가 감정이 고조될 때 활용하는 구조를 갖고 있었어요. 그랬기에 관객들에 대해 배려를 하고 상업영화로서의 장점을 극대화한다는 측면에서 그 지점을 적극 활용했던 겁니다.

 

이동진=이 영화는 제목부터 무척 특이하잖습니까. ‘번지점프를 하다’라는 제명은 한국영화의 일반적인 작명 방식과 상당히 다른데, 이 제목은 어떻게 짓게 되셨는지요.

 

고은님=말씀드린 대로 ’번지점프를 하다’는 제게 첫 작품이었어요. 제가 이전에 시나리오 작법을 공부하면서 습작을 써봤던 것도 아니고 구성 방식을 미리 생각해두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이 이야기는 첫 신부터 마지막 신까지 머리 속에 떠오르는 그대로 써나갔던 결과였습니다. 그렇게 처음 작품은 자기 검열을 전혀 하지 않고 썼기에 제 의지 하나로 완성하게 되었죠. 그런데 그 이후로는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한다, 상업적인 요소를 어떤 방식으로 가미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클라이맥스가 되어야 한다, 그런 규범들이 자기 검열을 많이 하게 만들면서 오히려 작품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해요. 제목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지금 같으면, 두 글자가 먹히네, 다섯 글자가 괜찮네, 그러면서 지을 것도 같은데, 그때는 아무 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냥 떠오르는 대로 썼던 거죠. 그 당시에도 제목을 바꿔야 된다는 말이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작명에 대해서도 잘 모르니까 그저 “왜요?”라는 말 밖에 안 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더 좋은 제목을 못 찾아서 처음 그대로 가게 된 겁니다. ‘제목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라는 말을 아무도 해준 적이 없었죠.”

 

이동진=시나리오 작가들은 머리 속으로 장면을 상상하면서 글을 쓰시잖아요? 실제로 김대승 감독님이 완성한 영화를 보셨을 때, 각본을 쓸 때 상상하신 것 이상으로 아름답거나 좋았던 장면이 있었습니까.

 

고은님=태희(이은주)와 인우(이병헌)가 숲에서 왈츠를 추는 장면이 그랬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시나리오를 쓸 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장면이었어요.

 

이동진=말씀하신 그 장면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으실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무척 좋아하는 장면이 또 하나 있어요. 저는 이 영화에서의 이병헌씨 연기를 참 좋아하는데, 인우가 태희의 신발끈을 묶어준 후 걸어가다가 돌아서서 “그거 알아요?”라면서, 마법을 걸었기에 앞으로 뭔가를 잡을 때 새끼 손가락을 올리게 될 거라고 수줍게 말하는 장면 직후가 특히 인상적이죠. 그 이야기를 다 마치고 인우가 건물 쪽으로 뛰어가는데, 그 달려가는 동작이 너무나 어색하고 우스우면서도 그 상황에 잘 어울리잖아요. 중간에 행인 한 사람과 부딪칠 뻔 하자 살짝 돌아서 가는 부분도 그렇고요. 그 장면 찍으실 때 동선 같은 것에 대해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김대승=이병헌씨가 준비를 굉장히 많이 해오는 배우에요. ‘번지점프를 하다’를 완성하고 나서 어디 가서 인터뷰를 할 때마다 제가 ‘이 작품은 이병헌씨의 영화입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장면마다 항상 두 세 가지씩 아이디어를 준비해와서 제시하곤 했죠. “이렇게 하면 이런 장점이 있고, 저렇게 하면 또 저런 장점이 있어요”라면서 직접 보여주는 분이세요. 그 날도 촬영하기 전에 “이거 한 번 보실래요?” 하면서 그렇게 뛰어가는 거예요.  그걸 보고서 제가 “너무 재미있다. 거기에 사람 하나를 지나가게 만들어서 부딪힐 뻔 하게 하면 더 재미있겠다”고 했는데, 병헌씨도 좋아하더군요. 그렇게 함께 이야기하면서 완성해 가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그런 때가 바로 영화를 만드는 기쁨의 순간일 거에요.

 

이동진=오늘 자리가 자리다 보니까, 이은주씨에 대해서 질문을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저는 그 일이 있은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지는데 정확히 4년 전이었더군요. 이 영화를 이제 다시 보니 이은주씨가 나오는 장면들마다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고요. 감독님은 이 영화에 이은주씨를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셨습니까.

 

김대승=그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배우는 한석규-심은하씨였어요. 그래서 다들 그 두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어했고 저 역시 그랬는데, 상황이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배우들에 대해 논의를 하게 됐는데, 고은님 작가님과 이 영화의 제작자인 최낙권 대표님이 이은주씨를 떠올리셨죠. 저 역시 ‘오! 수정’에서 그 배우가 훌륭하다고 보았기에 만나게 됐습니다. 며칠 후 사무실로 이은주씨가 와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다른 배우들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가 되더군요. 그래서 바로 결정했습니다.

 

이동진=’번지점프를 하다’ 때 이은주씨는 불과 21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은주씨의 배우 이미지도 그렇고, 제가 직접 만나보았을 때의 인상도 그렇고, 살갑고 따뜻하다기보다는 약간 차가우면서 이지적인 느낌을 주는 연기자였죠. 그런데 이은주씨와 가까웠던 분들은 전혀 다르게 회상하시더라고요. 감독님 보시기에 자연인으로서 이은주씨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김대승=이은주씨가 밖으로는 좀 차가워 보이고 약간 무뚝뚝해 보이기도 했는데, 알고 보니 작은 일에도 깊게 상처받는 사람이었어요. 촬영하기 전까지는 저 역시 이은주씨가 털털하면서 잔정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촬영을 하다 보니 생각이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이병헌씨가 준비를 무척 많이 해오는 배우라면, 이은주씨는 스스로를 비운 채로 나타나서 맞춰주는 배우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감독의 디렉션이나 상대 배우의 호흡에 따라 연기가 많이 달라질 수 있었던 배우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 되짚어보면, 한없이 맑고 유쾌하게 보였던 친구가 속으로는 뭔가 깊이 앓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동진=이은주씨는 25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모두 열 편의 영화에 출연하셨습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는 배우 이은주씨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오! 수정’과 ‘번지점프를 하다’인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두 영화는 이은주씨가 주연을 맡은 처음 두 작품이었죠. 그 배우의 초창기를 기억하시는 분으로서 이은주씨의 촬영장 모습에 대해 좀더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대승=불행한 일이 있고 나서 꾸며지고 있는 것들도 있겠지만, 돌이켜 보면 정말 투명하고 백지처럼 깨끗한 배우였던 것 같아요. ‘번지점프를 하다’를 찍을 당시에 이은주씨가 항상 어머니와 함께 현장에 오는 것을 보면서 아직 어린 친구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그런 반면 스태프들을 세심하게 배려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한 번은 은주씨의 촬영 분을 다 끝내고 병헌씨가 나오는 부분을 밤샘으로 찍게 됐는데, 은주씨가 집으로 돌아가면서 제 의자에 뭔가 걸어놓고 가는 거에요. 촬영이 급해서 다 끝나고 나서야 열어봤는데, 그 안에 초콜렛 같은 먹을 것들이 한 가득 들어 있더군요. 그런 일들이 자주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어린 이은주씨로부터 의외로 많이 배려받았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이동진=고은님 작가님도 이은주씨를 몇 차례 직접 만나셨죠?

 

고은님=촬영할 당시엔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저는 처음부터 태희 역으로 이은주씨를 추천했어요. 그 당시 남자 배우는 캐스팅 1순위가 한석규씨였지만, 이병헌씨 역시 이 영화에 최적으로 맞는 배우였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고 있고요. 이은주씨의 경우는 드라마 ‘카이스트’에서 해냈던 캐릭터가 너무 좋아서 태희 역에 적역이라고 생각했죠. 다른 배우는 아예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요. 사적인 얘기를 할 기회는 별로 없었는데, 이은주씨가 ‘카이스트’에서처럼 차가운 역을 하는 게 싫다고 말했던 것은 또렷하게 떠올라요. 사랑스럽고 귀엽고 애교가 많은 역을 하고 싶으니, 시나리오를 그렇게 써달라고 제게 부탁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동진=이은주씨가 운명을 달리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감독님은 어떤 상황이셨습니까.

 

김대승=‘혈의 누’를 촬영하고 있었을 때로 기억해요. 논현동 근처에 있는 회사로 차를 몰고 가는데 차승원씨가 전화를 했어요. “감독님 이은주씨 이야기 들으셨어요?” “아뇨. 뭔데요?” 그랬더니 이은주씨에게 그런 불행한 일이 생겼다는 거에요. 그런데 저는 그 전에 이은주씨를 마지막으로 만난 기억이 일본에 프로모션 때문에 갔다가 보았던 밝고 맑은 얼굴이어서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죠. 배창호 감독님과 제가 일 때문에 먼저 돌아올 때 은주씨가 함께 사진도 찍고 유쾌하게 손도 흔들어주었거든요. 그래서 “무슨 그런 농담을 해요? 에이, 승원씨는 자살하지 마세요”라고 하면서 저도 농담 조로 전화를 끊었어요. 그리고 나서 사무실에 들어갔더니 분위기가 이상한 겁니다. 스태프 중 한 명이 제게 인터넷에 뜬 기사를 보여주는데 읽어보니 차승원씨 말이 사실이었더라고요. 첫 날은 실감이 전혀 나지 않아서 빈소에 갈 생각도 못 했어요. 그 다음날이 되어서야 빈소에 갔더니 은주 어머님께서 제 손을 잡으시며 “감독님 아시죠? 우리 은주가 얼마나 착한 아이였는지”라고 하면서 우시는데 정말 가슴이 너무나 아프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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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푸르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2.24 말과 글은 다른 것이라.. 조금씩 다른 표현으로 기록된 곳도 있지만... 그 날 순간순간이 기억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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