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발설의 기쁨 - 알트루사 심리학교실
취재_이인미 편집부장
우리는 흔히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생각한다. 어느어느 학교 졸업, 어느어느 동네 출신, 부모님은 누구누구, 몇 번째 딸 또는 아들, 지금 사는 곳은 어디, 달걀형 또는 사각형이냐로 판별되는 얼굴형, 몸매, 손가락·발가락의 모양, 키 몇 cm, 몸무게 몇 kg, 나이, 결혼여부, 직업여부, 남편(아내) 누구, 자녀 몇 명, 말하는 방식, 표정관리 방식, 특기나 취미활동 등…. 모두 자기자신에 대한 정보(data)들이다.
그런데, 이 정보들을 넘어서서 진짜 자기자신에 대해서 잘 아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15년 전의 일이다. 필자는 〈서울여성의전화〉의 한 모임에 참석해서 자기소개를 할 기회를 얻은 적이 있었다. 준비성 착실한 성품의 필자는 짤막하게 메모를 해가지고 갔다. 첫문장은 “저는요, 셋째딸로 태어났는데요, 제가 말하는 걸 좋아하고 잘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답니다. 아들선호사상이 투철하신 할머니와 수없이 말다툼하면서 자랐기 때문이거든요”였다. 나름 재미있자고 쓴 문장이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 “저는요”라고 시작했을 뿐인데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2∼3초 기다리면 진정되겠지 싶어 마음을 가다듬는데, 도무지 자제가 안 되는 것이었다. 눈물은 계속 흘러내렸고, “저는요”밖에 말하지 못한 필자는 결국 메모쪽지를 단상에 둔 채 자기소개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자리로 되돌아와 앉을 수밖에 없었다. 특별한, 생경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필자로 하여금 심리학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었다. “뭐냐?? ‘나’라는 인간은 도대체????”
한국알트루사 심리학교실은 ‘바로 그런 의미(진짜 나를 찾는…)’의 심리학을 공부하는 모임이다. 프로이트, 파블로프 등 심리학자들의 고매하신 이론들을 특징별로 분류해 시험문제지 답안용으로 적절하게 학습하는 게 목표인 모임이 아니다. 일정 정도 검증된(?!) 심리학이론들을 익히는 게 아니라 자기자신을 아는 데에 ‘활용’하고 ‘적용’하는 모임인 것이다. 이 모임은 2005년에 처음 시작되어 3개월씩 진행되어왔다. 2008년 현재 5기가 진행중인데 한 기수마다 12주로 진행된다.
필자가 취재차 모임에 참석한 날은 2008년 12월 9일 모임이었다. 아침 10시, 모임을 이끄는 문은희 심리학박사(영국 글라스고대학 Ph.D.)를 포함해 15명이 다닥다닥 붙어앉았다. 두세 사람이 커리큘럼에 제시되어있는 읽기자료(이 날의 읽기자료는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였다)를 읽고 나서 자기자신에 대해 생각해서 적어내려간 글을 복사해 나눠주었다. 그 글에는 글쓴이의 내면세계가 담뿍 담겨있었다. “저는요”로 시작했던 필자의 메모쪽지 같은…. 그러기에, 글을 읽으며 아니 읽기도 전에 울음부터 터져나온다. 안심된다. 이해된다. 필자도 그러했었기에…. 그러한 속깊은 울음과 내면세계에 대한 가감없는 자기표현이 심리학에 더 가까이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도 알기에….
심리학교실에 참여하는 김지은 님(34세, 주부)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누구나 자기 얘기를 진실로 할 때는, 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인생을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그런데 솔직히, 아무 모임에 가서 자기얘기를 막 할 수는 없잖아요. 모임의 성격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런데 심리학교실에서는 자기 얘기를 다 해요. 자기에 관련된 얘기는 뭐든 해도 돼요. 옳든 그르든!”
15명 참석자들이 아무 얘기나 한다고? 그러면 모임이 산만해지지 않겠는가고 되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한다. “아뇨. 줄기가 있어요. 문 선생님이 제시하는 커리큘럼이 줄기예요. 그 줄기에 읽기자료가 들어있어요. 모임에 올 때 읽기자료들을 읽고 자기 얘기를 써와요. 근데 줄거리 요약, 교훈, 이런 식으로 독후감을 써오는 게 아니예요.”
읽기자료를 읽고 써오는 글에 대해, 심리학교실 조교(회비관리와 모임연락 등을 맡고 있음) 이주영 님(37세, 주부)은 간단히 요약, 정리해준다. “심리학교실의 진도가 바로 거기에 달려있어요. 심리학 커리큘럼이 있지만 자기 얘기를 얼마나 내놓느냐가 곧 진도(진전)거든요. 그러니까 자기발설을 해야 해요. 자기 얘기를 글로 써와야 해요. 그래야 변화할 수 있고 진도가 나갈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유선희 님(32세, 자영업)은 심리학교실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해준다. “우리 심리학교실은 지식을 배우러 온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있어요. 여기는 자기가 열심히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는 곳이거든요. 자기가 자기를 들여다보기 위해서 열심히 해야 돼요. 남의 얘기 듣거나 선생님 강의 들으려고 한다면 힘들지요. 이 모임에서는 모두 자기 얘기를 솔직하게 한다는 것이 합의되어있는데, 그게 말로만 합의되어있는 게 아니라 매시간 체험할 수 있어요. 사실, 저는 처음에 ‘저 사람은 왜 저러지? 이해 안돼!’라고 생각했었어요. 제 틀에 안 맞으면 좀 싫고 그랬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안 그래요. 인간이해가 높아진 것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니까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모임을 이끄시는 문 선생님은 결코 사람을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으시고 이해해주세요. 그래서 우리들이 자기 얘기를 더 잘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 모임의 우등생은, 많이 암기하는 사람이거나 이론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변화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자기만 변한다고 될까? 남편도 그대로, (시)어머니도 그대로, 아이들도 그대로인데? 유선희 님의 대답을 들어보자. “제 남편은 저로 인해 심리학교실 번외(番外, spin off, 파급효과, 좋은 뜻으로 ‘아류’)를 하게 되었어요(웃음). 사실 그 사람을 상대하는 자기자신이 변하면 그 사람도 변해요. 우리 모임에서 배우는 게 ‘심리학적으로 생각하기’인데요, 매사 심리학적으로 생각하려면 힘들어요. 그렇지만 지금 남편과 저는 둘다 좋다고 느끼는데요. 골치는 아프지만, 그렇게 해야 서로 잘 이해하게 된다는 걸 알거든요.”
매주 화요일 ‘심리학적으로 생각하기’를 실천하는 이 모임은 12월 9일에 종강 겸 방학을 하고 내년에 새로 시작된다. 아직 커리큘럼으로 제시된 것 중에 반 정도밖에 못했기에 약속된 12주 기한이 끝났지만 개학하면 일단 5기가 지속될 예정이다. 5기가 종료되면 6기를 모집하게 될 것이다. 이 모임에 참여하고 싶다면, 이 모임에 참여해 자기발설의 기쁨을 맛보고 싶다면, 그리고 진정으로 자기가 변화하고 싶다면, 지금 미리 신청해두는 것도 좋겠다. 이미 한두 명 벌써 신청자가 있다고 한다. 문의와 신청을 할 수 있는 전화번호는 02-762-3977∼8이다. 아참, 회비가 있다. 수강료의 의미가 아니라 이런 의미의 심리학교실에서 사용되면 좋을 심리학교재 제작기금을 위한 회비다. 그리고, 자기발설의 기쁨을 위한 아주 적은 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