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도의 첫 수요집단상담모임 안내드립니다.
새해에 반가이 발제 글을 읽고 시간을 내서 만났으면 합니다.
이번부터는 <마음 건강을 위한 심리학여행> 의 2부를 읽습니다.
모임시간에 책으로 읽으니 이 점 기억해주세요.
심리학을 왜 하나?
문은희_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 소장, 심리학박사, 계간 「니」 편집장
사람은 모두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달리 생각하기를 아예 접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이만치 오래 살면서 삶의 먼 길을 걸어오다 보니 사람이라고 모두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시시때때로 깨닫게 된다. ‘초록은 동색’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결을 가진 초록을 자연 속에서 보게 되는 것과 같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모두들 아마도 이제까지 자신과 아주 영 다른 사람들을 많이 겪어보았을 것이다. 삶의 출발점에서 처음 만난 어머니조차 자신과 얼마나 다른 분인가? 아버지와 어머니는 “왜 결혼하셨을까?” 어려서부터 늘 궁금해했었을 정도로 서로 다르시지 않은가? 같은 부모 품에 태어난 형제자매들 사이의 다른 점들은 또 어쩌고?
사랑해서 결혼한 배우자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놀랍지 않았던가! 내 배 아파서 낳은 아이들은 또 얼마나 서로 다른가! 옆집 아이는 내 아이보다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 하고, 재주도 더 있어 보여서 은근히 배아파하지 않았던가! 내 마음 같은 줄 알고 믿었던 친구에게 보증 섰다가 혼난 적은 없었던가! 시댁 식구들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렇듯 서로 각기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연구한다. 행동이란 눈으로 볼 수 있는 행동도 있지만 겉으로 보이지 않는 느낌·생각도 모두 행동으로서 심리학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나 늘 행동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겉보기에는 가만히 쉬고 있는 것 같아도, 잠을 자고 있는 순간에도 우리는 행동하고 있다. 이렇듯 삶의 모든 순간이 심리학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에 노모를 하나님 품으로 보내드린 한 선배는 자꾸 어머님이 꿈에 나타나신다고 한다. 선배는 “어머니가 내 걱정을 많이 하시나 보다”고 하지만, 실은 자기가 어머님을 그리워하고 생전에 잘 해드리지 못한 마음이 있어서 어머니 꿈을 꾸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행동할 뿐 아니라 또 자기의 행동의 원인에 대해서 궁금해한다. 보기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 간밤에 꾼 꿈이 기억날 때면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알고 싶어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적극으로 해몽해줄 사람을 찾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 나름으로 풀이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기도 한다. 이렇듯 각기 다른 꿈을 꾼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꿈에 대한 태도도 각기 다를 수 있다. 꿈에다 의미를 크게 두고 특히 자신의 운수와 꿈을 관련짓는 사람들은 그 해석을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 각별할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내 짝이 유난히 좋은 꿈과 나쁜 꿈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좋은 꿈 이야기는 잽싸게 말하면 안 되고 오후가 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다가 말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나쁜 꿈은 빨리 이야기해야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홀로 되어 어렵게 자녀들을 기르셨던 자기어머니로부터 들은 말이라 했다. 얼마나 운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행운을 소중하게 지키려 하고 악운을 털어버리고 싶었으면 어린 딸에게 그런 지침을 주셨을까 혼자 생각했었다. 나는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라 그런 미신을 전혀 믿지 않았으니까 꿈은 내게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같은 시대에 같은 학교를 다니는 비슷한 환경에서 우리는 어쩌면 비슷한 꿈을 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을 두고 우리는 다른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심리학을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우리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영역을 무시하고 외면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언제인가부터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져지는 물질중심의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조차 물질의 복과 세상에서 성취하는 것 위주로 믿음의 세계를 한정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몸만의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분명 보이지 않는 마음과 영혼을 지닌 존재이다.
나는 상담소가 있는 안국역에서 집에 이르는 일산 주엽역까지 46분간 전철을 탄다. 얼마 전 전철에 올랐을 때 이미 남자 세 명이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내릴 때까지 그 사람들은 줄곧 큰 소리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다 들을 수 있었다. 한 순간도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계속 한 가지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온통 ‘땅’과 ‘돈’ 이야기뿐이었다. 우리 부부가 일산 호숫가를 산책하면서 들려오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회 이야기, 아이들 성적 이야기 그리고 아파트 시세(돈) 이야기 외에 다른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없다.
상담실에서 만난 여성들도 자녀의 속마음에는 관심이 없고, 아이들 공부와 취직과, 결혼해서 경제적으로 살림을 잘 꾸려가며 살아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아이들 마음을 엄마가 제일 모르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이런 엄마들 가운데 아이들 양육과 교육을 위해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책을 읽지 않는 어머니보다 아이들에게 관심있으니 훨씬 훌륭하기는 하다. 그러나 정작 살아있는 아이를 대면하고도 그 아이의 속을 알아주고 함께 느끼고 그 마음을 서로 전달하고 전달받지 못한다면 책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책을 쓴 사람은 그 엄마들의 아이를 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말이다. 또 많은 경우에 글은 서양학자들의 이론을 안경 삼아 쓴 것이라 우리네 아이들을 얼마나 잘 알아줄 수 있을까 의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심리학을 한다는 것은 ‘심리학으로 생각하기’를 하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느낌과 생각을 포함한) 행동을 왜 하고 있을까 알고 살자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다르고 왜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이해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어떤 행동도 이유 없이 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 해도 그렇게 된 데에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견디기 어려운 몸과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게 된 데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건강하게 하나님의 딸과 아들로 살기 위해서도 우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뿐 아니라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할 우리의 이웃들’이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원인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심결에 이웃을 병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누구보다 가장 사랑한다는 부모가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 경우들을 많이 보고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몰라서 그랬다”고 말하지만 이미 자녀의 병이 깊어지고 난 뒤라 안타까울 뿐이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실족케 하면 연자맷돌을 목에 매고 물에 빠지라(막 9: 42)”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몸을 살찌우는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믿는 예수 사람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로 이 한 해, 나와 너, 우리 모두 서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제대로 알아보는 눈을 길러보기로 하자. 이제까지 세상에서 필요한 돈 벌기를 우선했던가 반성하자. 빨래하고 밥 해먹고 청소하는 일이 먼저가 아니었던가 우리를 돌아보자. 이웃의 신음소리를 듣지 않으려 귀를 막고, 이웃의 슬픈 표정을 보지 않으려 눈을 감지 않았던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밝히고, 마음의 소리를 듣는 마음의 귀를 열기로 하자. 심리학으로 생각하는 버릇을 들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