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아 연대기
나니아 연대기는 판타지 영화나 소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일소해준 놀라운 영화다.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이 나올 때만 해도 나는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에 대해 문제성을 많이 느꼈다. 당시 기독교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C.S. 루이스가 어린이를 위한 대중적 소설을 쓸 수 있었다는 사실, 또 이것이 영화화되었다는 사실까지 모두 내게 고무적인 일이다. 누가 반지의 제왕을 보고 너무나 기독교적이라는 말을 한 일이 있었는데 쉽게 공감이 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요한계시록 주석을 읽는데 그 책 전체에는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피상적으로 봐서 그런지 나는 반지의 제왕을 보면서 그렇게 성서적이라는 느낌을 깊이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나니아 연대기는 그렇지 않다. 완전히 구속의 드라마를 이렇게 쉽게, 또 흥미진진하게 소설로, 또 영화로 만들 수 있는지 놀랍다. 이런 소설을 만들 수 있는 루이스의 상상력에 부러움을 느꼈다.
장롱이라는 너무나 평범하고 작은 세계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드라마가 숨어 있다. 나니아는 낙원이었지만 하얀 마녀 때문에 100년 동안이나 겨울이 계속 되고 있다. 그러나 나니아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러브레터의 세계요, 구속의 드라마다. 나니아에는 태초부터 있는 사자 아슬란이 있다. 에드먼드는 나니아에 들어와 헤메는 루시를 도와준 반신반인 톰누스를 하얀 마녀에게 밀고하여 죽게 만든다. 그런 애드먼드를 위해 아슬란이 대신 죽는다. 아슬란이 마녀의 소굴에 스스로 들어가 앞 발, 뒷 발을 묶인 채 제단에 끌려올려가는 모습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 수염과 갈기가 칼에 뜯겨 나가는 수치를 당하고 나서 하얀 마녀의 칼에 죽임을 당하는 장면은 가슴은 짠하게 만든다. 결국 아슬란은 부활하여 아슬란이 숨을 내쉬자 하얀 마녀에 의해 화석이 되어 버린 톰누스는 다시 살아나고, 피터와 에드먼드가 하얀 마녀의 무리와 대항하여 힘겹게 싸울 때 아슬란의 등장과 표효로 전세는 역전되고, 결국 하얀 마녀는 아슬란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나니아는 회복된다.
톨킨과 루이스 두 사람이 친구였다는 사실은 내게 큰 감동을 준다. 톨킨의 신앙은 루이스에게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영향을 키쳤다. 무신론자였던 루이스가 하나님을 찾도록 도왔던 것이다. 두 사람의 우정은 1926년부터 1963년 루이스가 죽을 때가 이어졌다. 두 사람처럼 뛰어난 이야기 구사 능력이 있기를 원한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나니아 연대기에 비해 훨씬 더 정교하고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읽은 일이 있다. 그러나 나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나니아 연대기가 훨씬 더 이해하기 쉽다. 나니아 연대기를 책으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반지의 제왕도 마찬가지다. 루이스나 톨킨에게서 상상력이나 이야기 구사 능력을 배우고 싶다. 또 정말 주의 깊게 보면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나니아 연대기에 비해 훨씬 더 정교하고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을 나도 하게 될지 궁금하다. 영화만으로 비교하자면 현재로선 나이아 연대기가 내게 훨씬 더 명쾌하고 쉬우며 맘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