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 김봉두
진정한 리더쉽
누가복음 9:18-24
봉투 김봉두
돈이 가득담긴 봉투받길 좋아하는 초등학교 선생 김봉두의 최대의 관심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봉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봉투를 가져오는 아이들은 특별한 관리대상에 들어가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소위 ‘따’를 시키고 불이익을 주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무리 경고해도 찾아오지 않은 아이의 부모에게 확실히 경고하기 위하여 운동장을 뺑뺑이 돌게 하고 힘들게 했는데, 그것이 화근이 됩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학교로 찾아와 강력한 항의를 하면서 사표를 제출해야할 만큼 위급한 경우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선생 김봉두는 쉬는 셈 치고 곧 폐교될 학교에서 한 1년만 있으면 어떻겠는가하는 교장선생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찾아간 학교는 강원도 깡촌, 담배를 구하려면 일주일에 한번 읍내에 나가야하는 등 불편하기에 이를데가 없는 곳이었고, 돈 봉투로 계산되는 학생 수는 불과 다섯밖에 되지 않는 한심한 분교였습니다. 김봉두에게 있어서 그런 환경은 끔찍해보였습니다. 아무런 의욕도 없는 김봉두가 하는 일이라고는 맨날 자습시간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답답한 분교생활
낭만적이지 않은 분교에서 더욱 낭만적이지 못한 이유는 연체된 카드 대금청구서가 날라오면서부터 가중됩니다. 그때 그가 생각해낸 것이 봉투였습니다. 드디어 아이들에게 자신의 주특기인 봉투를 돌립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가져온 것은 자신들의 다짐과 열심을 담은 편지였습니다.
영화가 선생님들을 봉투를 밝히는 사람들로 희화시켰지만 실제 학교현장도 이런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하튼 김봉두는 왜 이런 모습의 선생이 되어 있는 것일까요? 물론 충분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지금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치료비가 많이 필요한 것 때문에 돈이 필요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김봉두가 초등학교 시절의 깊은 수치와 분노때문이었습니다.
원래 김봉두 아버지는 그가 다니던 학교의 소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챙피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 선생은 아이들을 훈계할 목적으로 한 이야기였지만 소사일을 보는 아버지를 빗대어 모독하는 얘기를 하였고, 소년 김봉두는 큰 상처를 받습니다.
“야, 니들 자꾸 저 헛생각하고 공부 안하면 어? 저기 저 땡볕에서
일하는 소사 보이지? 어? 니들도 저렇게 돼!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공부해 알았어!”
선생 김봉두는 그때부터 무너진 것이었습니다. 분노가 그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로 하여금 철저히 자신만 생각하고 돈을 밝히는 사람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잘못된 리더쉽으로 인해 상처였습니다.
잘못된 리더쉽
오늘 이 시대의 위험은 이처럼 분노로 가득한 사람들이 존재하게 하는 사회구조입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사회속에 가득한 분노에서 시작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이 갈수록 범죄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한때 나라 전체를 몸서리치게 한 지존파 사건의 주범들이 재판정에 섰을 때의 일입니다. 다행히도 그들은 감옥에서 예수를 영접합니다. 그런데 그들 중 한 사람이 재판정에서 한 이야기가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한 선생 때문에 가슴에 싹튼 분노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가난했던 아이는 학교 선생이 요청하는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올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째 사오지 못하는 이 아이에 매를 휘두르던 선생이 내뱉은 한마디, “돈없으면 훔쳐서라도 가져와야 될 것 아냐!” 라는 한마디가 분노를 가지고 자신만을 위해 사는 아이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리더슆으로 인한 상처받은 사람들의 출현이 오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그같은 분노를 치료하고 위로해줄 수 있는 곳이 많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미 가정 또한 파괴되어 있고 교회 또한 믿을만한 곳이 되어있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성폭행이 존재하고, 세습논의와 목사의 월급논의가 주된 관심사가 되어버린 교회라면 세상을 어떤 희망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봉투에만 의존하던 김봉두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학교를 폐교시키고 가능한 빨리 서울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빠른 방법이 아이들을 모두 서울로 전학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선생 김봉두의 아이들을 전학시키기 위한 부모님 설득작전이 벌어집니다. 다른 아이보다 연기력이 있어보이는 애순이는 탤런트로, 성만이는 미술공부로, 소식이는 야구선수로... 여하튼 부모들을 설득하고 아이들에게는 서울바람을 심어놓으려고 무던한 애를 씁니다.
서울찬가
선생 김봉두는 한걸음 더 나아가 폐교가 됐을 때 학교를 서바이벌 게임장으로 만드려는 업자에게 뇌물을 받고 더욱 열심히 폐교시키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하지만 김봉두의 아이들의 재능을 강조하는 모습은 김봉두의 아이들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오해하여 오히려 부모들을 감동시켰고 폐교계획은 늦춰지기만 하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에서 한 아이가 전학을 오고, 뿐만 아니라 읍내의 교장선생은 새로운 학생들을 더 보내겠다는 이야기까지 합니다. 이제 김봉두가 선택할 길은 사직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사건이 터집니다. 그것은 새로이 서울에서 전학온 아이의 입에서 나온 봉투사건이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봉투를 선생 김봉두에게 전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불거져나온 것이 김봉두의 사직서였습니다.
만일 그가 그렇게 좋아하고 가고 싶어하던 서울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면 김봉두는 분명히 비난받고 속물선생으로 치부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의 아이들과 부모들은 선생 김봉두를 바라보는 방법이 달랐습니다. 선한 이들이 바라보는 것은 늘 선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선생 김봉두를 위해 나름대로의 봉투를 가져옵니다. 급기야 정신분열증의 어머니가 있는 소석이가 선생님을 보내지 않으려고 3만원이 든 봉투를 준비해옵니다. 학교도 나오지 않고 어른들과 함께 산으로 가서 벌어온 돈이었습니다. 이미 사직서를 쓴 상태였지만 자신의 방 문틈에 꽂힌 소석의 돈 봉투가 김봉두를 무너지게 만듭니다. 그 봉투속에 있는 무한한 사랑과 무한한 용서가 그를 무너지게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그를 진정한 선생으로 일으켜 세운 것이었습니다.
문틈에 꽂힌 사랑
무엇이 세상을 바꾸고 무엇이 아름다운 리더슆을 세우는 것일까요? 진정한 리더슆이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란 고백을 들은 후에 하신 말씀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리더슆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
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
한마디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리더슆의 핵심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주님도 하나님의 위치를 버리고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늘 오해하고 있는 것은 좋은 지도자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아름답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리더는 본래적인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선생 김봉두가 진정한 리더슆을 갖게 된 것은 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바로 아이들에게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하는 졸업식장에서 선생 김봉두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매우 중요한 고백을 합니다.
“저는 다섯 아이를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제가 이 아이들을 가르
친게 아니라 오히려 이 아이들이 저를 가르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진정한 리더슆은 리더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직 배워야 하는 순전한 섬김을 가진 제자들, 자신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고백하는 제자들, 자기부인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제자들에게서 나온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영화에서 아이들이 김봉두를 변화시켜 좋은 리더슆을 가진 선생으로 바꾼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세상을 변화시키는 리더로, 선생으로 오셨지만 섬기는 자로, 종으로, 제자로 행동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유월절 저녁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그 아름다운 원리를 몸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
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
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3-15)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신 자기 부인이란 리더지만 리더로 상징되는 권위, 힘, 명령...등으로 대표되는 삶을 포기하고 제자처럼 섬기고 순종하고 권위를 인정하는 제자로서 늘 사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바로 그런 토양에서 좋은 지도자가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하정완의 리더슆은 모두 우리 교회 지체들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참고 기다리고 격려해주고 섬겨준 수많은 지체들 때문입니다. 그 자기부인의 삶이 하정완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한 것입니다. 이 시간을 빌어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는 저를 가르치셨습니다. 저에게 전달해준 정성껏 쓴 편지가 나를 새롭게 하고, 격려하는 문자메세지가, 동일한 마음으로 늘 기도하는 기도소리가, 저의 건강을 염려하면서 보여주신 사랑들, 어디 갔다오면서 그냥 오지 않고 녹차로, 오징어부터 시작하여 어떤 지체는 제 차 윈도우 브러쉬앞에 쥬스 두병을 놓는 것으로... 자신이 힘들면서도 나를 위해 예쁜 편지와 함께 투명한 프라스틱 통안에 넣어두었던 사랑의 표현들이, 그 기막힌 카드들이 저를 만들어갔습니다. 이 시간 대표로 두분께 감사드림으로 그 사랑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한결같은 사랑과 섬김으로 보여주신 이흥열, 김복미 집사님, 형님같이 누님같이 동일한 섬김을 주신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그 오랜 세월동안 친동생처럼 함께 걸어오고 지지해준 박성원선생께도 감사드립니다.
답사
이 시대의 비극은 좋은 지도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자도를 가진 지도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늘 제자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섬기고 교만하지 않고 사랑하고 정죄하지 않고 격려하고 축복하는 아름다운 리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꿈을 꿉니다. 아름다운 리더들을 만드는 아름다운 제자들이 있는 교회를 꿈꿉니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드는 거대한 집이 되길 원합니다. 답사를 하던 졸업생이 울면서 얘기하던 그 고백이 우리 지체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정말로 세상을 위로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날 새롭게 쓴 답사가 우리의 송별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죽으면 꼭 교회에서 장례식을 하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울고 기도하고 부둥키며 주님을 만났던 우리의 예배당에서 하겠습니다. 그때 제가 대신 읽겠습니다. 여러분도 저 대신 읽어주십시오.
“싸우고 다투고 상처를 받기도 하였지만
나를 잘 따라주었던 지체들
나를 사랑으로 아껴주었던 목사님과 리더들
하나도 빼먹을 수 없고
한 순간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가득했던 이곳이
이제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옵니다.
꿈이있는교회가 나의 마음을 아름답게 지켜주었던 것처럼
이제 나의 마음으로 영원히 교회를 지키겠습니다.
정든 교회여 지체들이여 안녕,
주님의 품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송별사
진정한 리더쉽
누가복음 9:18-24
봉투 김봉두
돈이 가득담긴 봉투받길 좋아하는 초등학교 선생 김봉두의 최대의 관심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봉투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봉투를 가져오는 아이들은 특별한 관리대상에 들어가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소위 ‘따’를 시키고 불이익을 주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무리 경고해도 찾아오지 않은 아이의 부모에게 확실히 경고하기 위하여 운동장을 뺑뺑이 돌게 하고 힘들게 했는데, 그것이 화근이 됩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학교로 찾아와 강력한 항의를 하면서 사표를 제출해야할 만큼 위급한 경우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선생 김봉두는 쉬는 셈 치고 곧 폐교될 학교에서 한 1년만 있으면 어떻겠는가하는 교장선생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찾아간 학교는 강원도 깡촌, 담배를 구하려면 일주일에 한번 읍내에 나가야하는 등 불편하기에 이를데가 없는 곳이었고, 돈 봉투로 계산되는 학생 수는 불과 다섯밖에 되지 않는 한심한 분교였습니다. 김봉두에게 있어서 그런 환경은 끔찍해보였습니다. 아무런 의욕도 없는 김봉두가 하는 일이라고는 맨날 자습시간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답답한 분교생활
낭만적이지 않은 분교에서 더욱 낭만적이지 못한 이유는 연체된 카드 대금청구서가 날라오면서부터 가중됩니다. 그때 그가 생각해낸 것이 봉투였습니다. 드디어 아이들에게 자신의 주특기인 봉투를 돌립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가져온 것은 자신들의 다짐과 열심을 담은 편지였습니다.
영화가 선생님들을 봉투를 밝히는 사람들로 희화시켰지만 실제 학교현장도 이런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하튼 김봉두는 왜 이런 모습의 선생이 되어 있는 것일까요? 물론 충분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지금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치료비가 많이 필요한 것 때문에 돈이 필요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김봉두가 초등학교 시절의 깊은 수치와 분노때문이었습니다.
원래 김봉두 아버지는 그가 다니던 학교의 소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챙피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 선생은 아이들을 훈계할 목적으로 한 이야기였지만 소사일을 보는 아버지를 빗대어 모독하는 얘기를 하였고, 소년 김봉두는 큰 상처를 받습니다.
“야, 니들 자꾸 저 헛생각하고 공부 안하면 어? 저기 저 땡볕에서
일하는 소사 보이지? 어? 니들도 저렇게 돼!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공부해 알았어!”
선생 김봉두는 그때부터 무너진 것이었습니다. 분노가 그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로 하여금 철저히 자신만 생각하고 돈을 밝히는 사람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잘못된 리더쉽으로 인해 상처였습니다.
잘못된 리더쉽
오늘 이 시대의 위험은 이처럼 분노로 가득한 사람들이 존재하게 하는 사회구조입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사회속에 가득한 분노에서 시작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이 갈수록 범죄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한때 나라 전체를 몸서리치게 한 지존파 사건의 주범들이 재판정에 섰을 때의 일입니다. 다행히도 그들은 감옥에서 예수를 영접합니다. 그런데 그들 중 한 사람이 재판정에서 한 이야기가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한 선생 때문에 가슴에 싹튼 분노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가난했던 아이는 학교 선생이 요청하는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올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째 사오지 못하는 이 아이에 매를 휘두르던 선생이 내뱉은 한마디, “돈없으면 훔쳐서라도 가져와야 될 것 아냐!” 라는 한마디가 분노를 가지고 자신만을 위해 사는 아이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리더슆으로 인한 상처받은 사람들의 출현이 오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그같은 분노를 치료하고 위로해줄 수 있는 곳이 많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미 가정 또한 파괴되어 있고 교회 또한 믿을만한 곳이 되어있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성폭행이 존재하고, 세습논의와 목사의 월급논의가 주된 관심사가 되어버린 교회라면 세상을 어떤 희망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봉투에만 의존하던 김봉두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학교를 폐교시키고 가능한 빨리 서울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빠른 방법이 아이들을 모두 서울로 전학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선생 김봉두의 아이들을 전학시키기 위한 부모님 설득작전이 벌어집니다. 다른 아이보다 연기력이 있어보이는 애순이는 탤런트로, 성만이는 미술공부로, 소식이는 야구선수로... 여하튼 부모들을 설득하고 아이들에게는 서울바람을 심어놓으려고 무던한 애를 씁니다.
서울찬가
선생 김봉두는 한걸음 더 나아가 폐교가 됐을 때 학교를 서바이벌 게임장으로 만드려는 업자에게 뇌물을 받고 더욱 열심히 폐교시키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하지만 김봉두의 아이들의 재능을 강조하는 모습은 김봉두의 아이들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오해하여 오히려 부모들을 감동시켰고 폐교계획은 늦춰지기만 하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에서 한 아이가 전학을 오고, 뿐만 아니라 읍내의 교장선생은 새로운 학생들을 더 보내겠다는 이야기까지 합니다. 이제 김봉두가 선택할 길은 사직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사건이 터집니다. 그것은 새로이 서울에서 전학온 아이의 입에서 나온 봉투사건이었습니다. 자신의 어머니가 봉투를 선생 김봉두에게 전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불거져나온 것이 김봉두의 사직서였습니다.
만일 그가 그렇게 좋아하고 가고 싶어하던 서울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면 김봉두는 분명히 비난받고 속물선생으로 치부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의 아이들과 부모들은 선생 김봉두를 바라보는 방법이 달랐습니다. 선한 이들이 바라보는 것은 늘 선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선생 김봉두를 위해 나름대로의 봉투를 가져옵니다. 급기야 정신분열증의 어머니가 있는 소석이가 선생님을 보내지 않으려고 3만원이 든 봉투를 준비해옵니다. 학교도 나오지 않고 어른들과 함께 산으로 가서 벌어온 돈이었습니다. 이미 사직서를 쓴 상태였지만 자신의 방 문틈에 꽂힌 소석의 돈 봉투가 김봉두를 무너지게 만듭니다. 그 봉투속에 있는 무한한 사랑과 무한한 용서가 그를 무너지게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그를 진정한 선생으로 일으켜 세운 것이었습니다.
문틈에 꽂힌 사랑
무엇이 세상을 바꾸고 무엇이 아름다운 리더슆을 세우는 것일까요? 진정한 리더슆이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란 고백을 들은 후에 하신 말씀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리더슆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
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
한마디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리더슆의 핵심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주님도 하나님의 위치를 버리고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늘 오해하고 있는 것은 좋은 지도자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아름답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리더는 본래적인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선생 김봉두가 진정한 리더슆을 갖게 된 것은 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바로 아이들에게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하는 졸업식장에서 선생 김봉두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매우 중요한 고백을 합니다.
“저는 다섯 아이를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제가 이 아이들을 가르
친게 아니라 오히려 이 아이들이 저를 가르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진정한 리더슆은 리더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직 배워야 하는 순전한 섬김을 가진 제자들, 자신들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고백하는 제자들, 자기부인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제자들에게서 나온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영화에서 아이들이 김봉두를 변화시켜 좋은 리더슆을 가진 선생으로 바꾼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세상을 변화시키는 리더로, 선생으로 오셨지만 섬기는 자로, 종으로, 제자로 행동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유월절 저녁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그 아름다운 원리를 몸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
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
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3-15)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신 자기 부인이란 리더지만 리더로 상징되는 권위, 힘, 명령...등으로 대표되는 삶을 포기하고 제자처럼 섬기고 순종하고 권위를 인정하는 제자로서 늘 사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바로 그런 토양에서 좋은 지도자가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하정완의 리더슆은 모두 우리 교회 지체들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참고 기다리고 격려해주고 섬겨준 수많은 지체들 때문입니다. 그 자기부인의 삶이 하정완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한 것입니다. 이 시간을 빌어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모두는 저를 가르치셨습니다. 저에게 전달해준 정성껏 쓴 편지가 나를 새롭게 하고, 격려하는 문자메세지가, 동일한 마음으로 늘 기도하는 기도소리가, 저의 건강을 염려하면서 보여주신 사랑들, 어디 갔다오면서 그냥 오지 않고 녹차로, 오징어부터 시작하여 어떤 지체는 제 차 윈도우 브러쉬앞에 쥬스 두병을 놓는 것으로... 자신이 힘들면서도 나를 위해 예쁜 편지와 함께 투명한 프라스틱 통안에 넣어두었던 사랑의 표현들이, 그 기막힌 카드들이 저를 만들어갔습니다. 이 시간 대표로 두분께 감사드림으로 그 사랑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한결같은 사랑과 섬김으로 보여주신 이흥열, 김복미 집사님, 형님같이 누님같이 동일한 섬김을 주신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그 오랜 세월동안 친동생처럼 함께 걸어오고 지지해준 박성원선생께도 감사드립니다.
답사
이 시대의 비극은 좋은 지도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자도를 가진 지도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늘 제자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섬기고 교만하지 않고 사랑하고 정죄하지 않고 격려하고 축복하는 아름다운 리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꿈을 꿉니다. 아름다운 리더들을 만드는 아름다운 제자들이 있는 교회를 꿈꿉니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드는 거대한 집이 되길 원합니다. 답사를 하던 졸업생이 울면서 얘기하던 그 고백이 우리 지체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정말로 세상을 위로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날 새롭게 쓴 답사가 우리의 송별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죽으면 꼭 교회에서 장례식을 하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울고 기도하고 부둥키며 주님을 만났던 우리의 예배당에서 하겠습니다. 그때 제가 대신 읽겠습니다. 여러분도 저 대신 읽어주십시오.
“싸우고 다투고 상처를 받기도 하였지만
나를 잘 따라주었던 지체들
나를 사랑으로 아껴주었던 목사님과 리더들
하나도 빼먹을 수 없고
한 순간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가득했던 이곳이
이제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니 눈시울이 붉어옵니다.
꿈이있는교회가 나의 마음을 아름답게 지켜주었던 것처럼
이제 나의 마음으로 영원히 교회를 지키겠습니다.
정든 교회여 지체들이여 안녕,
주님의 품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송별사
[출처] 선생 김봉두- 강진구 교수님|작성자 바람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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