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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멤버 타이탄(Remember The Titans)

작성자신동|작성시간14.05.20|조회수247 목록 댓글 0

리멤버 타이탄(Remember The Titans)
한 몸
요한복음 13:34-35


70년대 미국은 존 F 케네디 이후 대통령이 된 리처드 닉슨이 베트남 참전을 발표하면서 미국은 반전시위가 벌어지던 시기였습니다. 뿐만아니라 ‘분리시키지만 평등한’(Seperate but Equal)이라고 하는 사실상의 인종차별정책과 함께 여전히 미국 내부에는 흑백의 갈등이 뚜렷하던 시점이 이 영화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특히 1971년 미국 연방법원은 멀리 떨어진 흑인학교에 가야하는 자신의 아들이 집 근처 백인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요청하는 소송에서 흑인신학교수인 다리우스 스완이 이기는 소위 ‘스완 판결’이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교육부는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시의 T.C. 윌리엄스 고교를 흑백통합고등학교로 만듭니다. 그리고 이처럼 통합하면서 기존 풋볼팀 대신에 ‘타이탄’이란 이름의 새로운 풋볼팀이 출범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풋볼팀에 백인학교의 감독이었던 빌 요스트(윌 패튼)를 수석코치로 세우고 흑인인 허만 분(댄젤 워싱톤)을 감독으로 세웁니다. 그것만으로 심각하고 화합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그당시 흑백문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벽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같은 대립과 갈등은 서로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알고 보면 이같은 차이로 인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종간의 갈등은 그만두고서라도 우리 사회속에는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에대한 편견, 지역간의 갈등, 부한 자와 가난한 자의 갈등등이 있고 작게는 자기만을 위한 이기주의로 인한 서로간의 갈등과 편견이 여기저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당연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는 질문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 힘들게 여겨지는 것은 우리들 자신도 이같은 갈등을 가지고 있고, 편견을 마음속에 담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같이 분열된 상태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도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한 팀으로 부름받았지만 쓸데없는 일에 싸움을 하면서 전혀 하나되지 못한 분란만 겪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가 되는 것, 한 몸이 되는 것... 그 일이 없이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요원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완전

당연히 첫 번째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적절하게 조절하게 통제하는 훈련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한 준비입니다. 왜냐하면 덜 성숙한 이들이 하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분감독은 선수들의 마음속에 있는 흑백간의 적개심이나 분노를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그가 요청한 것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게임에 최선을 다하고 게임의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 하는 것을 요청합니다. 즉 개인에게 개인이 바르고 온전하게 서는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적개심, 분노 모두 다 좋다. 그러나 풋볼은 분노를 조절할 수 있 어야 한다. 그 분노를 승화시켜서 완벽함을 추구하란 말이다. 타이 탄 유니폼을 입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하고 게임의 모든 면에서 완벽 해야 한다”

감독은 선수들에게 요청합니다. 한번의 패스미스, 수비실수 혹은 볼을 놓치면 각 경우 1마일을 벌로 달릴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완벽함’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벌을 받는다는 것, 그것은 나의 부족한 것에 대해 댓가를 치루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런 태도는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고 쓸모있게 되기 위하여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댓가를 치루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명령이면서 동시에 기대입니다. 흠이 있어서는 쓰임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삭을 주시기전에 먼저 아브라함이 완전할 것을, 정확히 말하면 완전을 추구할 것을 요청하십니다.

“아브람의 구십 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
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
하라”(창17:1)

물론 우리가 우리의 죄악으로 죽게되었지만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보상하심으로 우리는 완전함 혹은 나음을 입었습니다. 우리의 구원문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쓰임받고 사용되는 문제는 다른 차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나 자신을 조절하고 나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페널티를 주는 것, 그것은 나를 하나님의 쓸모있는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크리스천의 또 다른 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기 전에 우리는 이처럼 먼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같은 싸움으로 완전을 이룬 자들을 하나님은 아름답게 쓰실 것입니다. 자신에게 패널티를 주는 것, 매우 중요합니다.

타인에 대한 인정

두 번째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타인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타인을 아는 일입니다. ‘타이탄’ 팀 안에도 깊은 불신과 반목이 늘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까닭은 늘 서로를 모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한 팀을 이루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아는 일입니다. 그래서 분 감독은 선수들에게 요청합니다.

“지금부터 매일 피부색이 다른 동료들을 찾아가서 가족이나 좋아하
고 싫어하는 것등에 대해서 알아와라”

우리의 문제도 동일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알려 하지 않는 편견과 고집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은 자신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 즉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제가 어느날 샛별이하고 식당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옆에 한 사람이 식사를 마치고 담배를 멋들어지게 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생각하고, 더욱이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경우 상당수는 타자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사람에게 샛별이가 폐가 안 좋은 아이라고 설명하자 담뱃불을 끊는 것이었습니다.
타자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야 사랑할 수 있고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을 진정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항상 모든 타자들의 타자인 절대타자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것은 서로를 아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이처럼 사랑하게 될 때 우리 안에 벌어지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고 이해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바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
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
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7-8)

그러므로 매우 의도적으로 우리에겐 다른 사람들을, 지체들을 알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까이 가기 싫지만 가까이 가서 말하고 알고 물어보고 나누는 것 그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고통에로 참여

셋째 하나가 되는 세 번째 방법은 함께 고통을 나눌 때 가능해집니다. 분 감독이 해병대처럼 훈련을 함께 시키는 이유는 고통가운데 깊은 동질감이 생기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다른 교회보다 동질감이 강하고 지체의식이 강한 이유를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나누어 지체들의 몸과 정신속으로 들어가게 함께 나누기 때문이고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샛별이의 고통가운데로 깊이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지체들의 아픔 가운데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샛별이의 고통은 저의 고통으로 이해되고 느껴집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승리의 시작

우리의 승리는 늘 이처럼 하나가 될 때 시작됩니다. 중풍병자가 나은 것은 친구들이 하나가 되어 주님께 나아갈 때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가 되는 것, 같은 뜻을 품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곧 무기이고 승리입니다.
저는 요한 웨슬리가 기도했던 “저에게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 100명을 주십시오. 제가 세상을 변화시키겠습니다”라는 기도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낍니다.
사실 세상에 수많은 교회들은 이처럼 헌신된 100명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깊이 서로를 사랑하고 나누므로 이미 가족이 되어버린 100명의 사람들이 있는 공동체라면 세상을 변화시킬만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120세인츠 비전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깊이 사랑하고 나눔으로 하나가 된 공동체가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 교회가 될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분감독이 시합하기 전 선수들에게 한 이야기가 인상깊게 남습니다.

“승패는 중요치 않다. 캠프에서 화합을 이루어낸 너희는 이미 승리
자이다. 우리를 갈라놓을 것은 이 세상에 없다. 그리스 신화의 타 이탄은 그 어떤 신보다 위대했다. 절대적 힘으로 우주를 지배했다. 오늘 밤 저 운동장은 우리의 우주이다. 타이탄처럼 지배한다”

그런데 저는 이같은 분 감독의 이야기가 하나님의 음성처럼 다시 정리되어 들렸습니다.

“승패는 중요치 않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된 너희는 이미 승리
자이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모든 신위에 뛰어난 분이 시다. 절대적 힘으로 우주를 다스리신다. 저 세상은 우리의 우주이 다.
하나님처럼 우리도 세상을 다스린다” 사실 세상을 다스리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소원이었고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
우리에게 말씀하신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
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 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창
1:27-28)

이처럼 하나가 된 타이탄 팀은 승승장구 결승전까지 승리로 이끕니다. 도중에 주장 게리 버티어가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라는 복병을 만나지만 그들은 결국 승리합니다. 그들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능력있는 개인때문이 아니라 하나가 된 팀 때문이었습니다. 동일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개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늘 복수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힘을 얘기할 때 개인에게 명령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들이 경기에 나가면서 부르는 그들만의 노래소리는 마치 우리들에게 묻는 세상의 노래소리처럼 들렸습니다.

“Everywhere we go, people want to know who we are. So
we tell them we are the titans, mighty mighty the titans"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이 묻겠지 우리가 누구냐고. 우리는
대답하지 그 유명한 타이탄이라고 천하무적 타이탄이라고)

동일하게 이 노래가 우리의 노래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사람들은 묻겠지
우리가 누구냐고
우리는 대답하지
우리는 그 유명한 크리스천이라고
천하무적 크리스천이라고“

오늘 본문 말씀으로 바꿔서 정리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살아갈 때 세상은 우리를 주님의 제자, 진정한 크리스천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천하무적 크리스천이라고 불리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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