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들(10)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
요20:11-18
오늘 아침에는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10번째 설교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입니까? 아마 요사이 우리 나라에서 볼 때는 히딩크 감독이나 홍명보나 안정환 같은 축구 선수들이 별과 같이 뜨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의 관점에서 볼 때는 송종국 선수나 브라질 선수들처럼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별과 같이 빛나는 사람들입니다.
아마 예수님을 가장 뜨겁게 사랑하고 예수님을 가장 분명하게 증거한 세 여인을 들라면 성모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와 베다니의 마리아일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야말로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예수님을 분명하게 증거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해롤드 옥켄가 박사는 성경에 나타난 여인들 중 가장 높은 자리는 성모 마리아 다음으로 막달라 마리아가 차지하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브라질 선수들이 셔츠에 이런 글들을 인쇄해서 입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에게 속했다." "나는 100% 예수다."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그 글귀를 사람들에게 보이게 하려고 자기들이 받아 목에 건 우승 금 메달을 등 뒤로 젖히기까지 했습니다. 아마 막달라 마리아의 얼굴 표정과 말과 행동에도 이런 글귀가 나타나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에게 속했다." "나는 100% 예수다."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가장 오래 머물러 있었던 사람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에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도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난 사람도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제일 먼저 전파한 사람도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가 십자가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세상에 전파하라고 제일 먼저 부탁한 사람이 열 한 제자가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신임과 사랑을 가장 깊이 받았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살으심을 가장 먼저 증거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요20:18). 막달라 마리아 때문에 열 한 제자들도 의심의 자리에서 믿음의 자리로 돌아왔고 그 후 수 많은 사람들이 막달라 마리아의 전도를 통해서 옳은 데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이제 막달라 마리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었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자기를 살려 준 사람을 뜨겁게 사랑하며 그 분을 위해서 한 평생을 삽니다. 눅7:2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나간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일곱 귀신이 나간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일곱 귀신 들렸던 사람이었고 일곱 귀신 나간 사람이었습니다. 이 말에 대한 세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첫째 해석은 막달라 마리아가 문자적으로 귀신 들려서 미쳤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몸도 정신도 마음도 영혼도 모두 파괴되어서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었던 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학대를 받아서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고 남편의 학대를 받아서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고 친구나 사회의 학대를 받아서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생각도 말도 제대로 못하고 음식도 잠도 일도 아무 것도 제대로 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슬피 울기도 하고 무덤가를 거닐기도 하고 물에 빠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파괴된 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그런 폐인으로부터 건짐을 받아 온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생각도 제대로 하고 말도 제대로 하고 음식도 제대로 먹고 잠도 제대로 자고 일도 제대로 하는 온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말해서 막달라 마리아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둘째 해석은 막달라 마리아가 부도덕한 길거리의 여자였다는 것입니다. 둘째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막달라 마리아를 눅7장에 나오는 죄인인 한 여자와 동일시 합니다. 죄인인 한 여자에 대한 기사 바로 다음에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가 눅8장 초두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눅7장에 나오는 시몬에게 멸시를 당하던 길거리의 부도덕한 여자였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도 그 여자를 가리켜 "그 동네에 살던 죄인인 한 여자"라고 했습니다. 고레기오라는 화가가 그린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은 욕망의 색갈로 가득한 길거리 여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그런 윤락의 늪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자기의 몸과 영혼을 저주하고 멸시하던 죽음의 자리에서 자기의 몸과 영혼을 귀중하게 여기는 생명의 자리로 옮겨진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말해서 막달라 마리아는 죽었다가 살아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셋째 해석은 막달라 마리아가 일곱 가지 죄악에 사로 잡혔던 전형적인 죄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스코트랜드의 유명한 설교자 매클라렌이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일곱 귀신은 일곱 가지 죄악을 상징하는 것뿐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곱 가지 죄악은 단테가 기술했던 일곱 가지 죄악인데 모든 죄악을 요약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일곱 가지 죄악은 첫째 교만 둘째 시기 셋째 분노 넷째 음란 다섯째 탐욕 여섯째 무절제 일곱째 영적 게으름이라고 했습니다. 즉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가지 죄악에 덫에 걸려있던 전형적인 죄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막달라 마리아는 조만간 죄의 저주를 받아 사망에 들어갈 운명에 처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그런 죄악의 덫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영원한 지옥의 죽음에서 간짐을 받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죽었다가 살아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을 그렇게도 생생하고 그렇게도 진지하게 증거했던 이유는 바로 자기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항상 예수님 곁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죽었다가 살아난 후부터는 항상 예수님 곁에 있으면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이 너무 지극했기 때문에 Jesus Christ Superstar 란 Musical을 지은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님의 애인으로 묘사하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잘못된 묘사입니다. 하여튼 막달라 마리아는 죽었다가 살아난 이후부터는 항상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예수님을 섬기고 봉사하고 받들며 사랑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을 섬겼던 사건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로마 캐톨릭 교회의 해석을 따른다면 그리고 346장 찬송가의 가사를 그대로 따른다면 막달라 마리아는 죄악에서 건짐을 받은 즉시 예수님에게로 달려가서 사람들의 멸시를 개의치 않고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그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보통 사람이 하기 힘든 지극한 사랑의 행동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둘째 눅8:2,3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죄악에서 건짐을 받은 즉시 몇몇 여인들과 함께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섬겼습니다. 그 몇몇 여인들 중 막달라 마리아가 앞장을 섰습니다. 그의 이름이 항상 먼저 나옵니다. 그것도 보통 사람이 하기 힘든 지극한 사랑의 봉사였습니다.
셋째 막달라 마리아는 갈리리에서 부터 온 많은 여인들과 함께 울면서 십자가 행렬을 따라 갔습니다.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눅23:27). "예수를 섬기며 갈리리에서 부터 좇아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마27:55,56). 슬피 우는 여인들 가운데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옵니다. 그만큼 예수님에 대한 마리아의 사랑이 지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넷째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 아래 가장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열 제자들이 다 도망을 쳤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십자가를 지키며 십자가 아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요19:25). 성모 마리아와 요한이 집으로 간 후에도 막달라 마리아는 계속해서 십자가 아래 남아 있다가 예수님의 시체를 넣은 무덤에까지 따라갔습니다. 화가 루벤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체를 옮길 때 막달라 마리아가 함께 도운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마27:59-61). 예수님을 향한 마리아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다섯째 안식 후 첫날 즉 주일날 이른 새벽 막달라 마리아는 누구보다 가장 먼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갔습니다. 예수님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었고 예수님의 몸에 향품이라도 붓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지극히 사랑한 하나의 인간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 부활을 믿으면서도 그 시체를 소중하게 다룹니다. 시체를 붙잡고 입을 맞추며 울기도 합니다.
셋째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주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제일 먼저 들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이 세상의 어느 누구 보다도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너무 사모하고 사랑하고 슬퍼하고 보고 싶어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제일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고 제일 먼저 막달라 마리아에게 입을 열어 말씀했다고 생각합니다. 마리아가 울고 있을 때 예수님이 마리아 뒤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위로와 동정의 말씀이었습니다. 마리아는 그가 예수님인줄 알지 못하고 동산지기인줄 알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며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님의 시체라도 자기가 모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주님을 향한 사랑은 죽음을 뛰어넘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마리아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마리아야!" 마리아는 온 몸에 전율을 느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가슴이 뛰다가 멎는듯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순간 마리아의 몸과 마음에는 천지에도 채울 수 없는 충만한 기쁨과 환희가 넘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항상 쓰던 히브리 방언으로 "선생님!"이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는 왈칵 예수님의 몸을 붙잡았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빼앗길 수 없다는 단호한 태도였습니다. 예수님 없이는 이제는 혼자서 살 수 없다는 단호한 의지였습니다. 그 때 주님은 육신의 세계가 아닌 영의 세계를 보여주셨고 땅의 세계가 아닌 하늘의 세계를 보여주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초시간적 초공간적 세계를 보여주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나를 만질 필요가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나는 곧 하늘로 아버지께로 올라가지만 언제나 마리아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가서 이 사실을 전파하면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제자들과 온 세상에 전파하라고 분부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았습니다. 세상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가 구원 받은 성도들의 영광을 위해서 부활 승천하신 주님을 온 세상에 전파하라는 주님의 분부를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뛰어가서 이 사실을 제일 먼저 열 한 제자에게 전했습니다.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요20:18).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마리아는 귀신 들린 사람들에게도 달려갔고 부도덕한 사람들에게도 달려갔고 일곱 가지 죄악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도 달려갔을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어떤 글귀가 인쇄된 셔츠를 입고 다녔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얼굴 표정과 말과 행동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에게 속했다." "나는 100% 예수다."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 "나는 십자가의 주님과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보았고 만졌고 체험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마리아가 어떻게 예수님을 뜨겁게 증거하는 충성된 증인이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너무 사랑해서 항상 예수님 곁에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 우리가 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주님을 뜨겁게 증거하는 증인이 되라고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마리아의 10분의 일만 주님을 사랑하고 마리아의 10분의 일만 주님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되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전하려면 먼저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새벽에 주님을 만났고 새벽에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새벽마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새벽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시고 주님을 뜨겁게 증거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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