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
'애국가(愛國歌)'의 1절과 후렴에 담겨진 노랫말이다. 나는 '애국가'를 몹시 사랑한다. '애국가'를 사전에서는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우리나라의 국가. 20세기 초엽 민간에 퍼져 있던 가사에 1936년에 안익태가 곡을 붙였으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더불어 국가로 결정되었다'는 것이요, 다음은 '나라를 사랑하는 뜻으로 온 국민이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 또한 '국가(國歌)'를 사전은 '나라를 대표ㆍ상징하는 노래. 그 나라의 이상이나 영예를 나타내며 주로 식전(式典)에서 연주ㆍ제창한다'라고 설명한다.
우리 민족은 자랑스러운 반만년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 민족은 한 때, 아시아의 중원을 호령할 만큼 강한 나라를 세우기도 했다. 그런 우리 민족이 신라와 중국의 당나라가 연합하여 세운 책략(策略)에 의해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한반도에 좁은 땅에 갇힌채 약소민족으로 전락되었고, 급기야 일본제국주의의 간계(奸計)로 나라를 빼앗겨 36년동안이나 식민통치를 받는 치욕(恥辱)을 겪기도 했다.
일제(日帝)는 우리 민족의 마지막 군주국이었던 대한제국의 황후 민비를 시해하여 불사르고, 당시 국내대신이었던 이완용을 비롯한 몇몇 매국노들을 앞장 세워 사기(詐欺)로 우리의 국권(國權)을 찬탈(簒奪)하고,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를 폐위시키는가 하면, 끝내는 독살하는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만행을 저질렀다. 이렇게 하여 우리 민족을 식민통치(植民統治)를 시작한 일제는 '일본과 조선은 하나다'라는 '내선일체(內鮮一體)'의 거짓말로 우리 민족을 억압했다.
일제의 우리 민족 억압은 우리 민족이 먹어야 할 먹을거리와 입어야 할 입을거리까지 갖은 명분을 내세워 악랄(惡辣)한 방법으로 수탈(收奪)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약탈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는지, 우리 민족의 말과 글까지 빼앗아 우리 민족의 정기(精氣)까지 말살(抹殺)하려고 하기까지 했다. 이는 결국 우리 민족을 영원히 자기들의 노예민족으로 삼으려는 음모였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동안 반 만년의 오랜 역사 중에서 가장 부끄럽고 암울한 시절을 보냈다. 바로 그때 언제ㆍ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지 모를 노랫말이 우리 민족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이 노랫말에는 나라 잃은 슬픔을 노래하면서도 민족회복의 희망이 담겨 있었다. 민족의 말살 위기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의연(依然)함이 담겨 있었다. 이름도 '애국가'라고 불리며 일정한 곡이 없어 저마다 동일한 노랫말에 각기 다른 가락으로 널리 애창(愛唱)되었다.
현재의 대한민국 국가인 애국가에 곡을 붙인 사람은 고 안익태 선생이다. 안익태 선생이 유럽에서 유학 중이던 1936년에 작곡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이 곡이 우리나라의 정식 국가가 된 것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였다. 일제에 의해 36년동안 강점되면서 36년동안이나 치욕의 삶을 보내던 우리 민족은, 1945년 8월15일에 일왕(日王)이 U.N연합군에 항복하면서 우리 민족은 해방을 맞이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곧 우리 민족이 광복을 찾은 날이었다.
1945년 8월15일. 우리 민족은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해방되어 광복을 찾았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민족의 주권이 완전하게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3년동안 우리 민족은 남과 북이 각각 미국과 구 쏘련의 후견으로 분단된채 혼란에 혼란이 거듭되는 혼미한 시기를 보내야 했다. 그러다가 1948년 북한과 남한이 각각 김일성을 수상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분단된 나라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에서 나는 '애국가를 몹시 사랑한다'라고 고백했다. 물론 지구촌의 어느 나라 백성이 자기 나라의 국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특히 고국을 떠나 해외에서 머물러 살고 있는 사람에게 자기 나라의 국가는 더욱 사랑스럽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애국가를 사랑하게 된 데는 단순히 내가 대한민국의 국적을 소유한 자로서 해외에 머물러 살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애국가는 단순하게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나라의 국가가 아니다. 애국가는 우리나라 백성들의 마음을 담아낸 그릇과 같고, 하나님을 향한 우리나라 백성들의 신앙고백(信仰告白)이 고스란히 담겨진 노래이기 때문이다. '신앙고백'을 사전에서는 '기독교적 용어로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공적으로 나타내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신앙고백과 같은 애국가에서 나는 우리나라의 '국시(國是)'를 느낀다. '국시'라고 하니 얼핏 정치적인 색채를 띤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찍이 대한민국 제3공화국 시절에는 '반공(反共)'을 국시로 제정하였던 적이 있었다. 따라서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적인 세력에 의해 확립되는 것이 '국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전에서는 '국시'를 '국민의 지지도가 높은 국가 이념이나 국가 정책의 기본 방침'이라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내가 애국가에서 느껴지는 국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애국가에서 느껴지는 국시는 어떤 정치적인 세력에 의해 확립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민중에 의해 자연스럽게 도출(導出)되어진, 그래서 우리나라 백성들이 원하는 국가 이념과 국가 정책의 기본방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다'라는 무언의 느낌이 내게는 마치 국시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 민족은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에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에 대한 간절함을 노래하고 있었다. 우리 민족의 반만년 오랜 역사 중에서 가장 참혹했던 시절에 누가ㆍ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를 애국가의 노랫말에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는 분명히 우리 민족의 희망을 갈구(渴求)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승화(昇華)시킨 것이 애국가의 노랫말이었다.
우리나라의 동해물은 태평양물과 맞닿아 있다. 태평양물은 또 다른 대양의 물과 맞닿아 있다. 그러하거늘 어찌 동해물이 마를 수 있으랴. 백두산도 그렇다. 우리 민족의 숨결이 느껴지는 백두산은 해발 2,750m로 대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그 놓은 산이 어찌 닳을 수 있으랴. 결국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란 '영원토록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보우하시니 우리나라 만세'라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랴.
여기에서 '보우(保佑)'란 사전에서 '보호하고 도와줌'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애국가의 노랫말은 '우리나라는 하나님이 영원히 보호하고 도와주는 나라이니 우리나라 만세'라는 믿음의 고백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를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이기도 하다. 동해물이 마르고, 백두산이 닮기까지 하나님이 보호하고 도와주는 나라라는 희망으로 가득한 고백으로 하나님을 향한 신뢰로 가득찬 신앙고백이 아닐 수 없다.
일제강점기가 우리 민족에게는 역사적으로 가장 참혹한 시절이었다. 민족의 정기가 말살되어 뿌리채 뽑힐 위기에 놓인 시절이었다. 소망이란 없고 온통 절망뿐일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민족의 가슴에 희망을 불을 붙여 나라를 빼앗긴 설음과 위기를 극복하게 한 것이 누가 가장 먼저 시작했는지도 모르는 애국가였다. 그래서 백성들의 입과 입을 통해 그렇게 전해진 애국가야 말로 진정한 우리 민족의 국시요,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이었다.
그랬다. 우리 민족은 애국가를 부르면서 빼앗긴 나라의 수치와 악랄한 일제의 수탈을 견딜 수 있었다. 하나님의 보우하심으로 굳게 믿었기에 언젠가는 빼앗긴 나라를 회복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고, 그 희망이 우리 민족을 큰 위기로부터 지켜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애국가의 참된 모습이요, 내가 애국가를 사랑하는 진정한 이유다.
참으로 애국가는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노래다. 그런 우리 민족의 애국가는 엄청난 박해를 받으면서도 무력항쟁(武力抗爭)을 부추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민족의 무기력(無氣力)한 나약(懦弱)함이 묻어나는 것도 아니다. 비폭력 무저항(非暴力無抵抗)의 정신이 깃들어 있으면서, '진정한 해결자는 오직 하나님이다'라는 믿음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신앙고백이 우리나라의 국가인 애국가가 가진 노랫말이다.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로 이루어지는 나라이니 만세다'라는 희망이 바로 애국가에 담겨진 우리 민족의 희망이다.
오늘은 광복(光復) 66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945년 8월15일, 일왕(日王)의 항복선언과 함께 우리 민족을 찾아온 광복의 기쁨은 잠깐 뿐이었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나라는 남북으로 분열되어 각각 독자적인 정부가 세워졌고, 결국 1950년 6월25일에는 북쪽에 세워진 정부의 침략으로 처참한 민족상잔의 전쟁을 경험하는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그로부터 3년 후, 1953년 7월27일 전쟁은 휴전되었으나 60여년이 된 지금까지도 전쟁재발의 위험성이 남아 있는 위험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민족상잔의 전쟁이 휴전되던 당시 우리나라는 지구촌의 모든 나라들 중에 두 번째로 가난한 최빈국이었다. 전쟁으로 거의 폐허가 된 우리나라는 희망이 없어 보일 정도로 처참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현재 지구촌의 200여 나라들 중에서 15위 이내에 들 정도로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다른 나라로부터 구호물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었던 가난한 나라가, 불과 60여년만에 지구촌의 가난한 나라들을 돌볼 수 있는 부강한 나라로 발전하였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1948년에 건국된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현재의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여러 명의 대통령을 나라의 수장으로 모셨다. 저들마다 나름대로 나라와 민족의 발전을 위해 혁혁한 공로들을 세웠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우리민족의 자긍심을 불러 일으킬 만한 대통령으로, 우리 모두 누구나 공감하는 폭넓은 존경과 사랑을 받는 대통령은 아직 없다.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의 정치적인 역량이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증거다.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장족의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의 은혜였다. 동방의 약소국이었던 우리나라가 광복 60여 년만에 지구촌에 우뚝 솟아오른 강국의 면모를 갖출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하나님의 그런 은혜가 왜 우리나라에 임한 것일까? 애국가때문이었다. 애국가의 신앙고백이 우리 민족을 구한 것이요,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지구촌에 우뚝 솟아오른 부강한 나라로 발전하게 한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은 지구촌에서 아직 개발도상국이다'라고 여긴다. 그렇지만 지구촌의 다른 나라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개발도상국으로 여기지 않고 선진국이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선진국에 걸맞는 국격으로 존중받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세계대통령이라고 일컬어지는 U.N 사무총장이 배출되었다. 그는 최근에 임기가 한 번 더 연장되었다. 우리나라는 분명 지구촌에서 위대한 나라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런 우리나라가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 가장 참담한 치욕을 안겨주었던 일본이 지난 과거를 참회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며 시비를 걸고 있다. 또한 지구촌의 초 강대국이라고 하는 G2 미국과 중국이 우리나라를 대하는 태도는 자꾸만 어정쩡하여 석연(釋然)치 않은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결국은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지구촌에서 국격(國格)에 맞는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가장 참담했던 험악한 굴곡의 아픈 역사를 극복한 우리나라의 국격이, 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자꾸만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하나다. 애국가의 신앙고백이 진정성을 상실한 데서 비롯된 일이다. 이 일로 민족의 국론은 크게 분열되었고, 민족의 국론이 분열됨으로 인하여 지구촌의 다른 나라들로부터 신망(信望)을 잃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정치인들은 정치인대로, 기업가는 기업가대로, 더 나아가 종교인들은 종교인대로 자기 집단의 집단이기적인 사고가 팽배(澎湃)해 있다. 따라서 저들은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있다. 작은 이익에 눈이 어두워 상대방을 비난하며 자꾸만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더 이상 저들은 애국가의 노랫말에서 고백하는 '하나님의 보우하심'을 바라지 않고 있다. 오직 자기들의 이기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애국가의 정신과 기상(氣像)을 외면하고 있다.
조국광복 66주년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지구촌에 우뚝 솟은 대한민국의 국격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이 일은 어떤 정치집단의 정치력으로 일으켜 세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기업가의 글로벌화된 경제력으로 일으켜 세워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물며 모든 종교들이 종교간의 담을 허물고 화합한다고 가능할까?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세울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다. 애국가의 근본적인 정신과 기상을 회복하는 것 뿐이다.
대한민국의 국가인 애국가의 근본적인 정신과 기상! 그것은 '하나님의 보우하심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도와주심만이 지구촌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 일을 위해 한국교회가 우리 민족을 선도(先導)해야 한다. 민족적으로 가장 암담하고 처절했던 일제강점기에 한국교회는 극히 소수였다. 그렇지만 한국교회는 우리 민족의 선도자였다. 우리 민족에게 희망과 꿈을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과연 지금도 한국교회가 대한민국에 희망과 꿈을 주고 있다고 여기는가?
한국교회에 대각성(大覺醒)이 일어나야 한다. 세상의 물질문명과 타협하는 비굴한 신앙적인 작태(作態)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목소리만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밝히는 진정한 빛의 본분을 회복하기 위해 분투(奮鬪)해야 한다. 물질만능의 오염으로부터 세상과 더불어 휘말려 함께 부패할 것이 아니라, 세상을 오염과 부패로부터 지키기 위한 소금의 본분을 회복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진심으로 교회와 세상이 어떻게 다르고, 무엇이 다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애국가는 단순한 국가가 아니다. 한국교회는 애국가를 통해 민족의 마음이 담겨진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을 모범적으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 애국가로 하여금 단순하게 국가적인 행사에서 불려지는 노래로 의미없이 외치는 함성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정치인들에 구호로 만든 국시가 아닌, 어려움의 시절을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간절한 국시를 표현했던 애국가의 진정한 정신과 기상이 밝고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다. 그것이 광복 66주년을 맞이한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지구촌의 여러 나라들로부터 현재의 시대에 맞는 국격으로 높아질 수 있는 비결이다. 지금 지구촌에서 독립된 나라들이 200여 국가다. 이들 국가들 중에 대한민국은 지난날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조국광복 66년에, 건국 63년의 짧은 기간동안에 지구촌 최빈국의 약소국가에서 15위권 이내에 드는 부강한 나라를 세운 기적의 나라다. 기적의 나라 백성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참으로 우리는 애국가가 지니고 있는 정신과 기상을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을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지구촌에서 더욱 발전하고, 인류공영에 이바지하여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구현시키게 하는 민족적 역할을 잘 감당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깊이 인식해야 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해야 한다.
2011. 8. 15 (월)
글/ 불꽃 石一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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