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한국교회의 신유사역과 축귀사역
- 허명섭 박사 (서울신대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위원)
신유 및 축귀 이적은 초기 한국교회의 신앙형태와 그 역동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신유 및 축귀는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베어드(Richard H. Baird)선교사: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침투해 들어가 한국의 전통과 예리하게 싸우던 초창기 당시에 축귀는 교회 활동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미국 감리교 선교사 노블(Mattie Wilcox Noble) 부인: “한국의 초기 기독교인들의 이야기는 귀신들린 자들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는 남녀 기독교인들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완성될 수 없다.”
한국의 최북단에 위치한 어떤 마을에 작은 무리의 신자들이 모이는 교회가 있었다. 어느 날 그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살던 한 부인이 갓 결혼했다가 쫓겨난 새댁과 함께 교회를 찾아왔다. 그 새댁은 귀신에 들렸다고 하여 친정으로 돌려보내진 그 부인의 딸이었다.
그 부인은 자신이 교회에 오게 된 이유를 밝히면서 기막힌 사정을 풀어놓았다:
시댁에서 쫓겨난 딸을 보고서 부모의 마음을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부모들은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하는 등 백방으로 이를 해결해 보고자 애썼다. 하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가산만 탕진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마침 한 이웃 사람이 찾아와 언덕 건너편에 사는 사람들이 믿는 “예수는 귀신을 내어 쫓는다”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이에 귀신들린 새댁의 친정어머니인 그 부인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딸을 교회로 데리고 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부인은 신자들에게 자신의 들었던 말이 사실인지를 물었다.
이에 기독교 신자들은 ‘그렇다!’라고 확신 있게 대답하였다. 그리고 즉시 귀신들린 새댁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루에 두 번 혹은 세 번 모여 기도를 했으나 별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이웃 사람들은 “당신들이 믿는 예수라는 신은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조롱하기 시작했다. 이에 기독교인들은 복음의 말씀을 살핀 뒤 “이런 일은 기도와 금식을 하지 않고서는 내쫓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고 뜻을 이룰 때까지 쉬지 않기로 결심하고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음날 자정 즈음에 귀신들린 여자가 갑자기 일어나 예배당 밖으로 나가더니 마을의 귀신을 모시고 있는 사당(祠堂)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교인들을 향해 “너희들이 감히 여기까지 들어와 나를 위해 기도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고함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인들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들어가 무릎을 꿇고 계속하여 기도했다. 그러자 귀신들린 새댁이 갑자기 “아이쿠”하는 비병과 함께 벌러덩하고 엎드러졌다. 잠시 후 새댁이 의식을 차렸을 때는 이미 온전히 회복되어 있었다.
이 치유사건은 그 지역의 복음화에 크게 기여했다.
귀신들렸던 새댁의 온 가족들과 일가친척들뿐 아니라 교회를 조롱하고 비웃던 사람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는 한국교회의 역사 속에 비일비재하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소개한 이야기에도 나타나듯이 성경에 대한 순박한 믿음을 한국교회 신자들이 가졌기 때문이다.
한국인 신자들은 성서를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기록된 문서가 아니라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살아있는 경전으로 읽고 받아들였다.
따라서 그들은 성서의 기적들을 이해하는데 아무런 장애를 느끼지 않았다.
이것은 초기 내한 선교사들과 구별되는 것이었다. 내한 선교사들은 당시 신유의 이적과 같은 것은 성서 시대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정통주의의 신학 등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한국인 신자들은 성경에 대한 어떤 신학적 견해에 제한 받지 않고 성경을 읽고 이해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초기 한국교회의 신유 및 축귀사역은 한국인 신자들에 의해 시작되고 주도되었다.
이는 초기 한국교회의 발전 과정에서 한국인 신자들이 가장 크게 기여한 영역이기도 하며, 서구식 기독교가 한국적 기독교로 토착화된 성공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할 것이다.
그동안 서구의 계몽주의적 세계관의 영향으로 무시되거나 간과되었던 성서적 신유와 축귀신앙이 회복된 것이다. 초기 내한 선교사들은 서구의 자연주의적 세계관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눈에 당시 한국사회에 만연했던 민간신앙은 미개한 미신에 지나지 않았으며, 인간의 질병이 초자연적인 존재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은 아직 개화되지 못한 미개사회의 유산일 뿐이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한국인 신자들에 의해 일어나는 신유 및 축귀에 대해 초기에는 거의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내한 선교사들의 세계관에 변화가 일어났으며, 한국인 신자들에 의한 신유와 축귀를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에 대해 베어드는 내한 “선교사가 축귀를 조장하거나 또는 능동적으로 참여한 사례는 알지 못한다. 귀신축출을 시작하고 널리 퍼뜨린 것은 한국인들이며, 한국인들이 성경을 읽고 거기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것을 시작하고 널리 퍼뜨렸다.”라고 말한다.
한국교회의 소중한 전통 가운데 하나가 성서 중심의 신앙이다. 이는 세계교회가 부러워하는 한국교회의 유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성서의 내용에 대한 단순한 지적 동의 차원을 넘어 성서적 사건들은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재현될 수 있는 순박한 신앙이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