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4번째 책이 공개되었습니다.
이번 책은 성어거스틴의 "고백록"입니다.
교회가 낳은 인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지성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어거스틴의 고백록! 지금 만나보시죠!
| |||
|
| |||
|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
"그렇게 오래되셨지만, 그렇게도 새로운 '아름다움'이 되시는 당신을 나는 너무 늦게 사랑했습니다.
(고백록 10권 27장)"
이 문장은 '중세신학'이라는 학부 신학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읽어 주신 문장이다. 이 한 문장이 나로 하여금 고백록을 읽게 만들었다. 모태신앙이면서, 동시에 신학생인 나에게 하나님은 분명 오래되었지만 새로움으로도, 아름다움으로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이 문장은 충격이었다. 나에게는 분명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거스틴이 만난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다. 결국 나는 고백록을 설렘으로 읽었고, 고백록을 통해 낯선 하나님을 만났다. 그 낯선 하나님은 끊임없이 새롭게 나에게 다가왔다. 매순간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내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은 삶에 대한 나의 시각을 '평범'에서 '기적'으로 바꾸셨다.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모든 것이 그저 평범하고 진부한가? 아니면 매 순간이 기적 같은 신선한 삶을 사는가? 만약 신앙의 매너리즘 속에 살고 있다면 고백록을 주목해야 한다. 죄는 기적 같은 삶을 지루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능력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개념화시키고 화석화시킨다. 말씀의 능력이 화석화 될때 성도는 죄에 둔감해진다. 영적 감수성은 마비된다. 이때 가장 강력한 조치는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고백록은 바로 자신의 죄를 폭로하면서 시작된다. 이는 당시 성도들에게 충격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당시는 기독교가 전혀 새로운 상황을 맞을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초대교회 때부터 기독교는 줄곧 유례가 없는 엄청난 핍박을 받아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믿는 자로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문제가 중요했다. 그런데 기독교가 공인되고 국교가 된 상황, 즉 어거스틴이 감독으로 있을 때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이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는 자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해졌다. '죽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 화두가 되면서 성도들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죄의 문제였다. 더 이상 외부에는 적(이교문화, 정치적 핍박 등)이 없었다. 그러나 내부의 적(죄)은 외부의 적보다 훨씬 심각하게 영혼을 잠식해 들어갔다. 이는 마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엄청난 핍박 속에서 죽음으로 신앙을 지켜낸 한국 기독교가 이제는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거대한 조직이 되었지만, 죄의 문제에 허덕이면서 각종 비리와 부끄러운 일들 쏟아내는 오늘의 상황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오늘의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고백록은 더욱 절실한 책인 것이다.
그러면 죄를 고백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거스틴은 죄는 '인간 의지의 왜곡'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면 왜곡된 인간 의지가 바로 잡힌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바로 잡게 되고, 세상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바로 잡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바로 잡게 된다. 즉 우주 삼라만상을 왜곡 없이 하나님이 창조한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것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아름답다','새롭다','놀랍다'는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그래서 고백록에는 수많은 감탄의 고백이 나온다. 그러나 감탄에서 끝나지 않는다. 감탄은 지혜와 통찰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지혜는 시대를 초월한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고백록에는 1500년 전의 사람이 하는 오래된 말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어거스틴은 죄를 고백함을 통해 만물에 대한 지혜를 얻은 것이다.
고백을 통해 초월적 지혜로 나아간 어거스틴은 세상의 허망한 지식들을 버린다. 그 과정에서 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을 예리한 교리의 체계를 세운다. 그 체계들 중에서도 '악'에 대한 통찰과 '시간과 영원'에 대한 통찰은 특히 어거스틴의 날카로운 지혜를 보여준다. 성도라면 누구나 한번쯤 악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의문을 푸어 보았을 것이다. "선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왜 악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하나님은 왜 악을 허용하시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한다면 먼저 고백록을 읽어야 한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이 문제를 '악'에 대한 바른 정의를 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설명한다. 이 설명이 어찌나 예리하고 타당했는지 당시 흥왕했던 마니교의 핵심 교리가 이 설명 때문에 깨어져 버린다. 또한 '시간과 영원'에 대한 어거스틴의 통찰은 시대를 초월하는 서술들이 많아 20세기 이후 현대 물리학자들을 놀라게 만든다. 어거스틴은 이미 고백록에서 시간은 피조물이기에 시작과 끝이 있고 에너지의 분산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시간과 영원이라는 구도를 통해 기독교를 설명함으로써 시·공간과 차원에 대한 인식은 인류가 20세기를 지나서 하기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어거스틴은 성령의 지혜를 통해 모든 것의 본질에 직관적으로 다다랐기에 이러한 놀라운 글들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자신의 인생이 초라하다고 느끼는가? 혼란한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절대 진리를 갈망하는가? 그렇다면 고백록의 지혜를 배우라. 자신의 죄를 토해 내고 왜곡된 의지를 곧게 세우고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한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시대를 초월하는 지혜를 터득하라. 그것이 바로 어거스틴이 고백록을 통해 성도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
"보시옵소서. 당신은 내 안에 계셨건만 나는 나 밖에 나와서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나 자신은 (참 아름다우심이 되신 당신을 떠나) 당신이 만드신 피조물들의 이름 속으로 굴러 빠져 들어가 흉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 계셨건만 나는 당신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 피조물들의 외형적인 아름다움이 나를 당신에게서 멀리 떠나게 했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 피조물의 아름다움도 당신 안에 있지 않으면 있을 수도 없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도 당신은 부르시고 소리 질러 귀머거리가 된 내 귀를 열어 주셨습니다. 또한 당신은 당신의 빛을 나에게 번쩍 비추어 내 눈의 어둠을 쫓아 버렸습니다. 당신이 다인의 향기를 내 주위에 풍기시매 나는 그 향기를 맡고서 이제 당신을 더욱 갈망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한번 만져주시매, 나는 불이 붙어 당신이 주시는 평안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고백록 10권 27장)
"내 불경건은 나를 둘로 나누어 그러한 분열을 내 안에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죄은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 고침을 받을 수 없는 더 큰 죄였습니다. 오! 전능하신 하나님. 내가 당신에 의해 패배를 당하여 구원을 받게 되기보다는 당신을 내 안에서 패배시켜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것을 더 좋아했사오니 이것이 나의 가증한 죄악이었습니다. (고백록 5권 10장)"
"당신은 내 안에서 영혼에게 어떤 공간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 비츨 비추시고, 시간이 나에게서 빼앗아 가지 못하는 소리를 발하시며, 바람이 불어 흩어 버리지 못하는 향기를 풍기시고,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음식을 공급하시며, 충족해도 떨어지지 않는 포옹을 해주십니다. 내가 나의 하나님을 사랑한다 할 때 이것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고백록 10권 6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