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구갈리 348-5번지. ‘새로운
움터’라는 뜻을 지닌 ‘새움교회’가 세워진 곳이다. 교회를 상징하는 첨탑이나 십자가가 없어서일까. 언뜻 보기에 새움은 교회처럼 보이지 않는다.
유치원 간판 옆에 나란히 내걸린 교회 간판이 없다면 많은 사람들이 교회 건물임을 모르고 지나칠 것이다. 세워진 지 2년 남짓 된 새움교회는 그
모양새처럼 ‘교회 같지 않은 교회’가 되고자 한다. 경건하고 엄숙한 맛은 좀 덜하지만 누구나 와서 부담 없이 놀고 쉴 수 있는, 즐겁고 행복한
교회가 바로 새움이 소망하는 교회의 모습이다.
통합측 목사와 합동측 목사의 만남
즐겁고 행복한 교회를 지향하는 새움교회는 이상훈 목사와 주성호 목사에 의해 시작됐다. 이들은 올해 쉰 살, 동갑내기 친구다. 친구끼리 한 교회를 담임한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상훈 목사는 통합측이고 주성호 목사는 합동측 소속 목사라는 사실이다. 서로 다른 교단 목사들의 한집 살림이 거의 불가능한 한국교회 현실에서 이들의 동거(同居)는 참으로 신선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난 이들은 ‘신앙’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이 목사는 당시 조용하고 내성적이던 자신과 달리 주 목사가 교내 합창단 단장을 맡아 할 정도로 ‘끼’가 넘쳤다고 기억한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둘의 삶은 달라졌다. 이 목사는 장신대를 졸업한 후 유학의 기회를 얻어 프린스턴과 드루 대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교수의 길로 접어들어 1996년부터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반면 주 목사는 총신대와 합동신학원을 졸업한 뒤 바로 목회 현장에 뛰어들었다. 기나긴 전도사 생활과 부목사 생활을 끝내고 교회를 개척하기에 이르렀다. 크게 ‘성공’하겠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남들만큼은 하겠지’라는 기대감은 있었다. 그러나 기대만큼 교회는 성장하지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교회는 언제나 그 자리였고 주 목사는 점점 탈진돼 갔다. 성장은커녕 있던 교인들마저 떠나갔다. 1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오로지 교회를 위해 헌신했는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상실감은 커져만 갔고, 그 때문에 교인들과의 사이도 악화되었다. 결국 주 목사는 교회에 사표를 제출하고 미국으로 도망을 쳤다.
주 목사가 이 목사를 다시 만난 것은 그때였다. 개척한 교회가 무너져 내리고 회복 불가능한 상실감으로 더 이상 목회를 지속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때, 친구인 이 목사를 다시 만난 것이다. 주 목사는 절망에 빠진 자신을 건지기 위해 하나님이 이 목사를 보내셨다고 고백한다. 사실 고등학교 졸업 후 두 사람의 인연이 아주 끊긴 것은 아니었다. 만나는 것은 힘들었지만 뜸하게 소식을 주고받긴 했다. 이 목사는 오랜만에 보는 친구의 모습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말했다. 합창단을 이끌며 행복해 하던 친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불행하고 지친 얼굴로 자신이 떠나 있는 동안 잠시 교회를 맡아 달라고 말하는 친구의 모습…. 그는 목회 현장이 사람을 저렇게 망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새움을 세우다
미국에서 돌아온 뒤 주 목사는 이 목사와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 목사는 교회의 외형적인 성장에 집착하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것에 분노하고 결국은 절망할 수밖에 없던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목회자이기 때문에 혼자 감당해야 하는 고민과 아픔들을 쏟아놓는 순간이었다. 평소 신학은 교회를 위한 학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이 목사는 주 목사를 통해 목회 현장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주 토론을 벌였다.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곳, 사람들을 살맛 나게 하는 곳, 그것이 열띤 토론 끝에 내려진 두 사람의 결론이었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교회가 아니라 재미있고 신나는 교회, 살맛 나게 하는 교회, 사람들이 오고 싶어하는 교회…. 그렇다면 그런 교회를 우리가 함께 세워 보자! 두 사람의 결론은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자는 데까지 이르렀다. 새움교회는 그렇게 시작됐다.
의기투합은 했지만 사실 두 사람에게는 교회를 세울 만한 능력이 없었다. 건축비는커녕 땅조차 없었다. 더욱이 주 목사는 교회 개척이 얼마나 힘든지를 경험한 뒤라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새로운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땅을 찾아 나선 지 4개월쯤 지났을 때 현재의 새움교회 터를 발견했다. 앞에 공원이 펼쳐진 멋진 장소였다. 6억 원에 이르는 땅값 앞에 가슴이 떨렸지만 결국 땅을 할부로 매입했다. 주변에서 땅을 되팔고 적당한 상가 건물을 얻어야 한다는 충고의 말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거액의 땅값을 갚고, 그 위에 교회를 건축한다는 것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 교회 부지에 유치원을 짓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유치원 측에서는 모든 건축비용을 자신들이 부담하겠다고 제안했다. 비록 유치원과 함께 사용해야 하지만 단돈 일원도 들이지 않고 교회를 건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중간에 땅 소유도 유치원 측으로 넘겨 할부금을 갚아야 하는 부담감도 없어졌다. 땅 소유권을 넘기는 대신 교회는 건물의 영구임대를 약속받았다. 땅을 매입한 지 1년 8개월 만에 새움 터에는 멋진 교회 겸 유치원이 세워졌다. 철저히 독립적이지만 함께 있으므로 도움이 되는 기묘한(?) 한집 살이가 시작된 것이다.
가고 싶은 교회, 기다려지는 예배
이 목사와 주 목사는 골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교회에 대해 너무 잘 안다. 사람들이 더 이상 교회에 오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도. 어린 시절부터 교회는 그들에게 학교처럼 빠지면 ‘큰일’ 나는 곳이었지만 마음속에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교인조차 습관처럼 혹은 의무적으로 가는 교회라면 일반 사람들이 교회를 외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이 목사와 주 목사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밀려나는 것이 그 누구의 탓도 아닌, 교회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교회는 여전히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자세로 전통을 내세우며 변화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한국교회는 성취감에 도취된 나머지 이미 변해 버린 사람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을 교회의 틀에 맞추려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사람과 교회 사이에는 단절이 생겨 버렸다. 이 목사와 주 목사, 두 사람은 새움을 통해 이 단절을 극복하고자 한다. 거룩한 교회이지만 세상을 향해 ‘우리를 따라오라’고 명령하지 않고 ‘당신들과 함께 가고 싶다’고 속삭인다.
어느 영화 제목처럼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이 있듯 세상과 함께 가기 위해 교회가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이 있다. 교회를 둘러싼 형식이 그것이다. 이 목사와 주 목사는 교회를 둘러싼 형식이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형식 자체에 목숨 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깝지만 상황에 따라 바꿀 수도 혹은 버릴 수도 있다. 형식에 질린 나머지 본질에는 접근조차 해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새움교회가 세상과 만나기 위해 우선적으로 버린 것은 주일저녁예배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일저녁예배의 형식이다. 어떻게 하면 지역 주민들과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교회 안에서 진지하고 엄숙하게 드리는 주일저녁예배를 포기하고 교회 앞 공원에서 열린 음악회 같은 찬양 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물론 논란도 많았다.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쩌나, 소음공해로 신고당하면 어쩌나, 설교도 없이 찬양으로만 예배를 드려도 되나…. 수많은 걱정과 우려 속에 ‘Mega Worship 348-5’로 이름 붙여진 주일저녁 찬양 콘서트가 시작됐다. 그런데 신고는커녕 주민들이 호기심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문화적 욕구를 해소할 데가 마땅치 않은 지역 특성 때문인지 주민들의 호응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찬양 콘서트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교인으로 등록되는 일은 매우 드물었지만, 그래도 주민들과 정기적인 만남의 장을 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최근에는 수요예배와 금요기도회도 버렸다. 버렸다기보다 방학중(?)이라고 해야 할까. 수요예배와 금요기도회에 참석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당분간 방학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목사와 주 목사는 목회자 한 사람이 이끌어가는 예배가 너무 많다는 것에 공감한다. 주일예배, 주일저녁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새벽기도…. 거의 모든 형태의 예배가 목회자 한 사람에 의해 진행된다. 이런 지루하고 반복적인 예배 형식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새움은 수요예배와 금요기도회의 형식을 바꿔 교인 스스로 말씀을 읽고 묵상할 수 있는 시간,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펼쳐지는 그런 예배를 연구하고 있다. 이 목사와 주 목사는 예배에 특별히 신경을 쓴다. 매일 똑같은 형식의 예배를 반복하는 것으로는 교인들에게 그리고 불신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두 사람은 예배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자기 안에서 갱신과 개혁이 일어나는 놀라운 사건이기 때문에 월드컵 응원보다 더 감동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예배를 ‘만들어’ 갈 계획이다. 물론 예배의 본질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기존의 형식이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지 못하다면 그 형식은 바꿀 수 있고, 또 바뀌어야 한다.
사실 이렇게 하는 데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존 교회에 익숙한 일부 교인들은 새로운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또 교회에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다 보니 도대체 어디까지 형식의 틀을 깨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기독교적인 색채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기독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에 오고 싶고, 누군가를 데려오고 싶고, 예배가 기다려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야 새움의 본래 목적인 즐겁고 행복한 교회가 될 테니까.
뭉쳐야 산다
개척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주 목사는 목회자들이 또 교회끼리 뭉쳐야 산다고 주장한다. 혼자만의 고군분투가 얼마나 목회자를 고갈시키는지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주 목사는 각기 다른 은사를 가진 목회자들이 모여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가며 목회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이 목사와의 한집 살림을 통해 깨닫게 됐다고 한다. 이 목사 역시 목회자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감당하는 목회자 1인 시스템보다는 팀을 이루어 사역하는 팀 목회가 장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팀 목회는 교인들에게 ‘종합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다. 목회자는 수퍼맨 혹은 수퍼우먼이 아니다. 한 목회자가 설교도 잘하고 음악적 재능도 탁월하며 행정에도 밝고 상담도 잘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교인들은 그런 목회자를 원한다. 교인들의 그러한 ‘터무니없는’ 욕심을 채워 주기 위해서는 목회자 쪽에서 1인 중심 체제의 욕심을 버리고 각기 다른 은사를 가진 목회자들과 함께 사역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공동으로 목회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 목사와 주 목사에게도 쉽지만은 않았다. 학창시절을 함께한 추억이 있고, 그 추억이 뿌리 내려 자란 신뢰가 단단하긴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성향을 가졌다. 이 목사가 물이라면 주 목사는 불이고, 이 목사가 수평적이라면 주 목사는 수직적이다. 이 목사가 온건한 개혁을 추진한다면 주 목사는 혁명적 개혁을 꿈꾼다. 주 목사는 이 목사가 항상 ‘튀는’ 자신을 ‘잡아’준다고 귀띔했다. 이렇게 다르다 보니 의견이 충돌할 때도 종종 있다. 그렇지만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 살아볼 참이다. 혼자보다는 자신이나 교회를 위해 ‘뭉치는’ 것이 더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므로.
이 목사는 요즘 행복하다. 가르치는 것만큼 현장 목회의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 목사 역시 행복하단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목회하는 것이 그렇게 고되고 힘들고 무거웠는데 지금은 목회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다. 두 사람 모두는 요즘 참 행복하다. 새움이 처음 그들이 꿈꾸던 ‘즐겁고 행복한 교회’와 점점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셀 수 없이 닥치겠지만 재미있고 신나는 교회, 살맛 나게 하는 교회, 가고 싶은 교회를 만들어 보자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들의 동거는 계속될 것이다.
통합측 목사와 합동측 목사의 만남
즐겁고 행복한 교회를 지향하는 새움교회는 이상훈 목사와 주성호 목사에 의해 시작됐다. 이들은 올해 쉰 살, 동갑내기 친구다. 친구끼리 한 교회를 담임한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상훈 목사는 통합측이고 주성호 목사는 합동측 소속 목사라는 사실이다. 서로 다른 교단 목사들의 한집 살림이 거의 불가능한 한국교회 현실에서 이들의 동거(同居)는 참으로 신선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난 이들은 ‘신앙’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이 목사는 당시 조용하고 내성적이던 자신과 달리 주 목사가 교내 합창단 단장을 맡아 할 정도로 ‘끼’가 넘쳤다고 기억한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둘의 삶은 달라졌다. 이 목사는 장신대를 졸업한 후 유학의 기회를 얻어 프린스턴과 드루 대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교수의 길로 접어들어 1996년부터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반면 주 목사는 총신대와 합동신학원을 졸업한 뒤 바로 목회 현장에 뛰어들었다. 기나긴 전도사 생활과 부목사 생활을 끝내고 교회를 개척하기에 이르렀다. 크게 ‘성공’하겠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남들만큼은 하겠지’라는 기대감은 있었다. 그러나 기대만큼 교회는 성장하지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교회는 언제나 그 자리였고 주 목사는 점점 탈진돼 갔다. 성장은커녕 있던 교인들마저 떠나갔다. 1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오로지 교회를 위해 헌신했는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상실감은 커져만 갔고, 그 때문에 교인들과의 사이도 악화되었다. 결국 주 목사는 교회에 사표를 제출하고 미국으로 도망을 쳤다.
주 목사가 이 목사를 다시 만난 것은 그때였다. 개척한 교회가 무너져 내리고 회복 불가능한 상실감으로 더 이상 목회를 지속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바로 그때, 친구인 이 목사를 다시 만난 것이다. 주 목사는 절망에 빠진 자신을 건지기 위해 하나님이 이 목사를 보내셨다고 고백한다. 사실 고등학교 졸업 후 두 사람의 인연이 아주 끊긴 것은 아니었다. 만나는 것은 힘들었지만 뜸하게 소식을 주고받긴 했다. 이 목사는 오랜만에 보는 친구의 모습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말했다. 합창단을 이끌며 행복해 하던 친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불행하고 지친 얼굴로 자신이 떠나 있는 동안 잠시 교회를 맡아 달라고 말하는 친구의 모습…. 그는 목회 현장이 사람을 저렇게 망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새움을 세우다
미국에서 돌아온 뒤 주 목사는 이 목사와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 목사는 교회의 외형적인 성장에 집착하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것에 분노하고 결국은 절망할 수밖에 없던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목회자이기 때문에 혼자 감당해야 하는 고민과 아픔들을 쏟아놓는 순간이었다. 평소 신학은 교회를 위한 학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이 목사는 주 목사를 통해 목회 현장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자주 토론을 벌였다.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곳, 사람들을 살맛 나게 하는 곳, 그것이 열띤 토론 끝에 내려진 두 사람의 결론이었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교회가 아니라 재미있고 신나는 교회, 살맛 나게 하는 교회, 사람들이 오고 싶어하는 교회…. 그렇다면 그런 교회를 우리가 함께 세워 보자! 두 사람의 결론은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자는 데까지 이르렀다. 새움교회는 그렇게 시작됐다.
의기투합은 했지만 사실 두 사람에게는 교회를 세울 만한 능력이 없었다. 건축비는커녕 땅조차 없었다. 더욱이 주 목사는 교회 개척이 얼마나 힘든지를 경험한 뒤라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새로운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땅을 찾아 나선 지 4개월쯤 지났을 때 현재의 새움교회 터를 발견했다. 앞에 공원이 펼쳐진 멋진 장소였다. 6억 원에 이르는 땅값 앞에 가슴이 떨렸지만 결국 땅을 할부로 매입했다. 주변에서 땅을 되팔고 적당한 상가 건물을 얻어야 한다는 충고의 말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거액의 땅값을 갚고, 그 위에 교회를 건축한다는 것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 교회 부지에 유치원을 짓겠다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유치원 측에서는 모든 건축비용을 자신들이 부담하겠다고 제안했다. 비록 유치원과 함께 사용해야 하지만 단돈 일원도 들이지 않고 교회를 건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중간에 땅 소유도 유치원 측으로 넘겨 할부금을 갚아야 하는 부담감도 없어졌다. 땅 소유권을 넘기는 대신 교회는 건물의 영구임대를 약속받았다. 땅을 매입한 지 1년 8개월 만에 새움 터에는 멋진 교회 겸 유치원이 세워졌다. 철저히 독립적이지만 함께 있으므로 도움이 되는 기묘한(?) 한집 살이가 시작된 것이다.
가고 싶은 교회, 기다려지는 예배
이 목사와 주 목사는 골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교회에 대해 너무 잘 안다. 사람들이 더 이상 교회에 오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까지도. 어린 시절부터 교회는 그들에게 학교처럼 빠지면 ‘큰일’ 나는 곳이었지만 마음속에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교인조차 습관처럼 혹은 의무적으로 가는 교회라면 일반 사람들이 교회를 외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이 목사와 주 목사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밀려나는 것이 그 누구의 탓도 아닌, 교회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 교회는 여전히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자세로 전통을 내세우며 변화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한국교회는 성취감에 도취된 나머지 이미 변해 버린 사람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을 교회의 틀에 맞추려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사람과 교회 사이에는 단절이 생겨 버렸다. 이 목사와 주 목사, 두 사람은 새움을 통해 이 단절을 극복하고자 한다. 거룩한 교회이지만 세상을 향해 ‘우리를 따라오라’고 명령하지 않고 ‘당신들과 함께 가고 싶다’고 속삭인다.
어느 영화 제목처럼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이 있듯 세상과 함께 가기 위해 교회가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이 있다. 교회를 둘러싼 형식이 그것이다. 이 목사와 주 목사는 교회를 둘러싼 형식이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형식 자체에 목숨 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깝지만 상황에 따라 바꿀 수도 혹은 버릴 수도 있다. 형식에 질린 나머지 본질에는 접근조차 해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새움교회가 세상과 만나기 위해 우선적으로 버린 것은 주일저녁예배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일저녁예배의 형식이다. 어떻게 하면 지역 주민들과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한 끝에 교회 안에서 진지하고 엄숙하게 드리는 주일저녁예배를 포기하고 교회 앞 공원에서 열린 음악회 같은 찬양 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물론 논란도 많았다.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쩌나, 소음공해로 신고당하면 어쩌나, 설교도 없이 찬양으로만 예배를 드려도 되나…. 수많은 걱정과 우려 속에 ‘Mega Worship 348-5’로 이름 붙여진 주일저녁 찬양 콘서트가 시작됐다. 그런데 신고는커녕 주민들이 호기심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문화적 욕구를 해소할 데가 마땅치 않은 지역 특성 때문인지 주민들의 호응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찬양 콘서트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교인으로 등록되는 일은 매우 드물었지만, 그래도 주민들과 정기적인 만남의 장을 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최근에는 수요예배와 금요기도회도 버렸다. 버렸다기보다 방학중(?)이라고 해야 할까. 수요예배와 금요기도회에 참석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당분간 방학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목사와 주 목사는 목회자 한 사람이 이끌어가는 예배가 너무 많다는 것에 공감한다. 주일예배, 주일저녁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새벽기도…. 거의 모든 형태의 예배가 목회자 한 사람에 의해 진행된다. 이런 지루하고 반복적인 예배 형식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새움은 수요예배와 금요기도회의 형식을 바꿔 교인 스스로 말씀을 읽고 묵상할 수 있는 시간,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펼쳐지는 그런 예배를 연구하고 있다. 이 목사와 주 목사는 예배에 특별히 신경을 쓴다. 매일 똑같은 형식의 예배를 반복하는 것으로는 교인들에게 그리고 불신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두 사람은 예배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자기 안에서 갱신과 개혁이 일어나는 놀라운 사건이기 때문에 월드컵 응원보다 더 감동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예배를 ‘만들어’ 갈 계획이다. 물론 예배의 본질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기존의 형식이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지 못하다면 그 형식은 바꿀 수 있고, 또 바뀌어야 한다.
사실 이렇게 하는 데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존 교회에 익숙한 일부 교인들은 새로운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또 교회에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다 보니 도대체 어디까지 형식의 틀을 깨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기독교적인 색채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기독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에 오고 싶고, 누군가를 데려오고 싶고, 예배가 기다려지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야 새움의 본래 목적인 즐겁고 행복한 교회가 될 테니까.
뭉쳐야 산다
개척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주 목사는 목회자들이 또 교회끼리 뭉쳐야 산다고 주장한다. 혼자만의 고군분투가 얼마나 목회자를 고갈시키는지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주 목사는 각기 다른 은사를 가진 목회자들이 모여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가며 목회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이 목사와의 한집 살림을 통해 깨닫게 됐다고 한다. 이 목사 역시 목회자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감당하는 목회자 1인 시스템보다는 팀을 이루어 사역하는 팀 목회가 장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팀 목회는 교인들에게 ‘종합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다. 목회자는 수퍼맨 혹은 수퍼우먼이 아니다. 한 목회자가 설교도 잘하고 음악적 재능도 탁월하며 행정에도 밝고 상담도 잘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교인들은 그런 목회자를 원한다. 교인들의 그러한 ‘터무니없는’ 욕심을 채워 주기 위해서는 목회자 쪽에서 1인 중심 체제의 욕심을 버리고 각기 다른 은사를 가진 목회자들과 함께 사역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공동으로 목회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 목사와 주 목사에게도 쉽지만은 않았다. 학창시절을 함께한 추억이 있고, 그 추억이 뿌리 내려 자란 신뢰가 단단하긴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성향을 가졌다. 이 목사가 물이라면 주 목사는 불이고, 이 목사가 수평적이라면 주 목사는 수직적이다. 이 목사가 온건한 개혁을 추진한다면 주 목사는 혁명적 개혁을 꿈꾼다. 주 목사는 이 목사가 항상 ‘튀는’ 자신을 ‘잡아’준다고 귀띔했다. 이렇게 다르다 보니 의견이 충돌할 때도 종종 있다. 그렇지만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 살아볼 참이다. 혼자보다는 자신이나 교회를 위해 ‘뭉치는’ 것이 더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므로.
이 목사는 요즘 행복하다. 가르치는 것만큼 현장 목회의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 목사 역시 행복하단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목회하는 것이 그렇게 고되고 힘들고 무거웠는데 지금은 목회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다. 두 사람 모두는 요즘 참 행복하다. 새움이 처음 그들이 꿈꾸던 ‘즐겁고 행복한 교회’와 점점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셀 수 없이 닥치겠지만 재미있고 신나는 교회, 살맛 나게 하는 교회, 가고 싶은 교회를 만들어 보자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들의 동거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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