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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수님의 헤어스타일과 수염 모양새

작성자신동|작성시간12.03.29|조회수643 목록 댓글 0

예수님의 헤어스타일과 수염 모양새

 

 

이주형
우주촌교회 부목,
이스라엘 생활 13년(JUC 졸업 석사. 히브리대학교 수학)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신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은 소망이 있으리라. 희미하게나마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찬송가 85장)는 찬송이 은혜롭다.

첫 히브리 사람 아브라함처럼, 예수님도 노아의 아들 셈의 후예들로 알려진 셈족이었다. 그래서 예수님도 스스로 유대인의 관습과 모세의 율법을 잘 지키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 5:17)는 말씀을 하기도 하였다. 이스라엘 가계(家系)에서 출생한 나사렛 사람 예수, 그 분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성서 시대의 유대인들의 모습에 대한 정보가 과연 있는가? 특별히 고고학적으로 문학적으로 고대 셈족의 사람들의 헤어스타일과 수염의 모양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을까? 또한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헤어스타일과 수염의 모양이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었던 주후 1세기 무렵의 예수님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졌는지를 알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고대 자료들을 찾아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매사추세츠 주 고든 대학교 성서신학부 윌슨(Marvin R. Wilson) 교수는 이 분야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조사하였다. 이스라엘의 남쪽에 있었던 나라, 이집트의 경우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수염을 깨끗이 깎았다. 셈족이었던 요셉, 그는 바로 앞에 나아갈 때에 수염을 깨끗이 깎고 나아갔다(창 41:14). 이런 관습은 이집트 문화의 일부였다.

주전 5세기경 살았던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이집트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머리와 수염을 깎고 생활하였다. 단지 상을 당하였을 경우에만 머리나 수염을 기르는 것이 허용되었다(헤로도투스 II. 36; III. 12). 이집트의 제사장들은 신전에서 3일마다 몸 전체의 털을 밀어냈다. 이것은 몸에 난털 속에 벌레들이나 기생충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헤로도투스 II. 37). 다른 나라에서 끌려온 노예들도 머리와 수염을 깎아버렸다. 가난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든 남자와 여자들이 가발을 사용하였다. 종교적 제의행사에서는 인공수염을 턱 끝에 달기도 하였다. 이집트에서 발견된 베니하산 무덤 벽화의 프레스코화에 보면 셈족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기원전 19세기 초엽에 그려진 그림이다. 이 그림에 나타난 셈족 사람들은 아마도 시나이 반도 또는 가나안 남방에 살던 사람들로서 이집트 접경까지 와서 상업을 하던 사람들로 보인다. 이 벽화에 그려진 셈족 사람들은 두껍고 짙은 머리와 수염을 갖고 있었지만, 이집트 사람들은 수염이 없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본토(창 12:1)였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았던 셈족의 경우는 정상적인 머릿결, 그리고 수염을 기르고 생활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귀족뿐 아니라 평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각종 문서들이나 고고학적인 유품들, 즉 조각상, 벽화, 인장 같은 것에서 확인된다. 이런 관습의 예외는 노예, 제사장, 특히 의사는 제외되었다. 각각의 그룹은 독특한 체발(剃髮)의 형태로 구분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예술에 반영된 셈족의 왕들이나 전사(戰士)들의 모습이 구 앗시리아 시대(1900 BC)부터 신 앗시리아 시대(612 BC)까지 아름답고 곱슬곱슬한 수염과 어깨까지 내려오는 맵시 있는 머릿결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더욱이 고대근동 문화에서도 신들과 다른 영웅적 존재들의 모습 또한 수려한 머릿결을 보여준다.

다른 셈족들과 마찬가지로, 히브리인들도 잘 자란 머릿결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길고 짙은 머릿결은 생명력과 활기, 힘의 상징이었다. 다윗의 왕좌를 요구했던 압살롬도 아름다운 모발을 갖고 있었으며, 머리가 너무 무거워지면 일년 한 차례 정도 머리를 깎았을 뿐이다(삼하 14:25-26). 반면에, 대머리는 좋지 않게 생각했다. 종종 대머리는 재난의 결과로 이해되었으며(사 3:24), 머리를 헝클어트리거나 빗지 않는 것도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레 10:6). 엘리사 선지자의 대머리는 젊은 아이들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하였다(왕하 2:23). 대머리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문둥병과도 연관되어 있다(레 13장). 문둥병자의 정결예법의 일환으로 머리를 삭발하였는데, 이는 공공에게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을 주의시키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레 14:8-9; 눅 17:12).

히브리 사회에서 헤어스타일은 다양하였다. 여자들의 경우 최소한 어깨까지 늘어트리거나 그 보다 길었다. 이러한 머리 모양은 베니하산의 무덤벽화에도 잘 나타난다. 여자들은 대개 머리를 땋거나 묶었다. 여자가 머리를 미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애곡하는 동안은 예외로 하였다(신21:12-13; 미 1:16). 미쉬나 율법에는 여자가 안식일에 머리를 땋는 것을 금하고 있다(미쉬나. 샤밭. 6:5). 남자들의 머리는 규칙적으로 짧게 깎았다. 시간이 없거나 돈이 없어서 이발을 자주 하지 못하는 일꾼들은 종종 긴 머리를 유지했다.

성경에는 이발사 직업에 대해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에스겔 5:1에 이발사를 의미하는 갈라브(galav)가 한 차례 나올 뿐이다. 그렇지만 마을마다 이발사가 최소한 한 명씩은 있었을 것이다. 초기 랍비문서인 미쉬나에 보면 천한 직종에 대한 정보가 있는데, 이발사는 도둑에 비유되고 있다(미쉬나. 키두쉼. 4:14). 어쨌거나 탈무드의 랍비들은“얼굴의 영광은 수염에 있다”고 하였다(바빌론 탈무드. 샤밭.152a).

유대 제사장들은 머리를 미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나실인처럼 머리를 길렀다(레 21:5; 겔 44:20; 민 6:5). 모세의율법에 의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못하도록 하였고(레 19:27; 신 14:1), 이러한 행위는 이방종교 관습이라 하여 금지하였다. 그래서 머리 가의 일부분(페옷트)을 남겨두는 관습이 생겨났다.

성서 시대의 유대인들은 종종 머리 기름을 사용하였다. 특별히 기쁜 날에 그랬다(마 6:17).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머리의 상태를 보존하고 건조를 방지하며 해충의 서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었다. 손님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행위는 환영을 뜻하는 표시였고(눅 7:46), 연회장에서는 존경의 표시이기도 하였다(시 23:5). 시편 기자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기쁨이 마치“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에 흘러서 내림같다”고 하였다(시 133:1-2).

대부분 셈족들의 머리 색깔은 검정색 또는 염소 털과 비슷한 짙은 색이었다(아 5:11; 아 4:1; 삼상19:13). 요세푸스는 헤롯 대왕이 나이든 것을 감추기 위해서 머리를 검게 염색하였다고 전해준다(고대사. 16:233).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이었다(잠 16:31; 20:29). 늙으면 머리가 희어지고, 흰 머리는 공경의 대상이었다(레 19:32). 또한 백발은 지혜의 상징이요 신적 위엄의 상징이었다(단 7:9; 계 1:14; 마카비하 15:13). 성경에는 히브리인들이 가발을 사용했다는 표현은 없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수염은 둥근 형태로 수북하게 많이 길렀다(레 19:27). 수염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자칸’(zakan)은 장로나 늙은이를 뜻하는 단어‘자켄’(zaken)과 어원이 같다. 앗시리아의 왕 살만 에셀 3세(약 850 BC)의 블랙 오벨리스크(Black Obelisk)에 그려진 이스라엘의 왕 예후의 모습과 13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에서 수염의 형태가 관찰된다. 또한 라기스 벽화(약 700 BC)에 그려진 산헤립 왕 앞에서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수염을 기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수염은 박력과 성년을 표시하는 것이고 그래서 최고의 돌봄과 존경으로 다루었다(시 133:2; 삼하19:24). 오른손으로 수염을 잡고 포옹하는 것은 우정의 표시였으나(삼하 20:9), 수염을 밀어버리는 것은 최고의 모욕이요 부끄러움으로 간주되었다(삼하 10:4; 사 50:6). 하나님의 진노가 유다에게 임할때 앗시리아를 통하여 머리털과 발 털과 수염을 밀어버리는 것으로 멸시를 당하게 될 것을 경고하였다(사 7:20). 머리털과 수염을 쥐어뜯는 행위는 고뇌와 비탄을 나타내는 행위였다(에 9:3).

고대 로마와 그리스에서는 남자들이 머리를 길렀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약 300 BC) 이후로 그리스 로마 사람들의 머리 형태가 짧은 머리 형태로 바뀌었다. 그리스 로마 도시에서는 이발소가 도시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이 되었다. 동전들과 석상들, 흉상들 그리고 고대 작가들의 기록에서 보여 주듯이 아우구스투스 로마 황제(27 BC-AD 14) 때부터 트라얀 황제(AD 98-117) 때까지 많은 신분 있는 사람들이 거의 매일 이발소를 찾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신약시대에는 노예, 군인, 가난한 자들을제외하고 로마 시민권을 소유한 자유인들은 이발을 자주하는 편이었다.

예수님의 헤어스타일과 수염의 모습에 대하여 생각해볼 때, 셈족 사람들의 관습을 한편으로 고려하면서 동시에 신약시대 로마 사람들의 헤어스타일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신약시대의 유대인들의 세계는 로마 문화의 영향을 수용하여 비교적 짧은 헤어스타일이 널리 보급되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이러한 현상은 그리스 로마 문화의 영향이 반영된 유대인의 예술 작품에 나타나 있다.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발견된 3세기 초엽의 유대인 회당, 두라 유로포스 회당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잘 깎은 수염과 짧은 헤어스타일의 아브라함과 에스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탈무드 시대에는 로마 사람들과 자주 접촉하는 유대인들의 경우에 이방사람들처럼 머리를 짧게 하는 것을 허락하였다(바빌론 탈무드. 바바 카마. 83a). 따라서 예수님 시대 당시의 헤어스타일과 수염의 형태는 당시의 문화적 상황과 전통적 스타일 사이에서 이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모습이 예수님과 동시대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보여졌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사실들을 근거해서 볼 때 예수님의 헤어스타일은 짙은 검은 색깔의 단발머리였고, 수염의 모양새는 단정하게 깎은 짧은 수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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