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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조상 제사에 대한 성경적 견해(박영준 목사)

작성자신동|작성시간06.04.28|조회수388 목록 댓글 0
조상 제사에 대한 성경적인 견해(고전10:20)2005.9.11 추석 앞 주일
우리나라는 유교와 불교, 샤마니즘이란 문화권 속에서 개신교는 성령의 역사로 기적적으로 불과 100년 조금 지났지만 전국 곳곳에 수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주님을 믿는 민족이 되어 가는 복음의 위대한 역사를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명절이 되면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는 것이 우리의 전통적 관습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명절이 돌아오면 특히 이번과 같은 추석이 돌아오면 우리는 우리민족만의 독특한 사회적, 종교적, 문화권 속에서 조상제사의 문제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때로는 주님을 아직도 안 믿는 부모님과 일가친척 그리고 형제들과 시부모님들과의 많은 갈등을 갖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지어 믿는 자들이 조상숭배 문제와 결부되어 가족과 친족에게서 따돌림 받고 고립되어 전도의 길이 막힐 뿐더러 복음전파에 거침돌이요, 극복해야할 과제가 되어 왔습니다. 지금도 전도하다보면 장손이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야 함으로 교회에 나갈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조상제사에는 부모를 기림과 동시에 조상숭배의 사상도 있겠지만 조상제례를 잘하면 자신의 삶에 윤리나 도덕성에 관계없이 무조건 복을 받는다는 기복적 무속신앙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실 때보다 돌아가신 후에 부모님을 위해 더욱 제사상을 잘 차리고 모시는 것이 과연 진정한 부모효도라 생각 할 수 있을 까요? 죽음은 때로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며 더 나아가 숭배의 경외심으로 변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하나님)심판이 있으리라"(히9:27)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과연 죽으면 조상은 후손에 대한 축복권의 큰 힘을 가지고 있을까요? 성경은 오직 복의 근원은 오직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는 조상제사를 인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한분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길 수 없고 오직 주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조상제사는 신에게 제사하듯이 절하고 지방을 쓰고, 제사상을 차려 올리고,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것 등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며, 그 외 어떤 존재라도 예배와 경배의 대상에 올려놓는 것을 우상 숭배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조상제사에 분명한 성경적인 태도를 가지고 이번 추석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조상숭배에 관한 성경적인 견해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첫째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 섬기는 조상제사의 목적이 무엇인가?
둘째는 조상제사 숭배가 언제부터 어떻게 유래 되었는가?
셋째는 우리 성도들이 조상 제사 금지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무엇인가?
넷째는 우리성도는 어떻게 조상 제사를 대처해야 하는가?
우선 첫째로 우리 한국 사람들이 섬기는 조상숭배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먼저 봅시다. 조상제사에 심혈을 기울이는 데는 분명한 목적이 있으며, 이 목적이 또한 조상숭배사상으로까지 발전되고 하나의 민족종교로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1) 효의 연장사상이다. 효의 근본정신을 보답과 보은으로 볼 때, 부모 생존 시만이 아니고 사후에도 엄숙한 제사를 통하여 “죽은 이를 생존인과 같이 섬기듯 하라”유고 사상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중용에서 추양계효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죽은 이를 계속해서 공양함으로써 효를 이어가라는 것입니다. 라는 말입니다. (2) 기복사상이다. 조상을 잘 섬기면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오래 전래된 기복사상에서 조상숭배가 엄숙하게 시행되고 있는 것이며 . 사자(死者)를 잘 섬기면 생자(生者)를 잘 보호하고 번영케 한다는 믿음을 지닌 기복적 사상에서 연유된 것으로 본다. (3) 사자(死者) 공포의식이다. 죽음은 그것으로 단절이 아니고 죽은 혼은 구중천을 헤매고 다닌다고 믿어왔습니다. 그 혼은 죽은 날 옛 집을 찾아와서 제사음식을 먹는다는 것이다. 후손은 그 주린 혼을 달래고 먹이고 섬기는 행위를 제사를 통하여 의식화한다.
그러면 그 혼은 후손을 보호하며 번영을 주며 해를 주지 않는다는 사자 공포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고 후손들에게 보호와 복을 내려 달라고 조상들이 초대된다는 것이 제사인 것이다. (이정익, “전통 조상제사 의례와 복”} 이처럼 조상제사에는 부모를 기림과 동시에 조상숭배의 사상도 있겠지만 조상제사를 잘 지내면 자신의 삶에 윤리나 도덕성에 관계없이 무조건 복을 받는다는 기복적 무속신앙이 그 뿌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산사람은 복을 줄 수 없지만 죽은 귀신은 화복을 줄 수 있다고 믿는 미신 때문입니다. 조상신이 굶주려 방황토록 두는 것은 천륜을 거역하는 죄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아가 조상신은 재앙과 축복을 조절하는 조상이라고 믿었기에,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조상신이 노하여 땅에 있는 자손에게 해를 끼치고, 제사를 지내면 복을 주고 재앙을 쫓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보면 제사를 드리는 것은 효도가 아니라 순전히 이기주의적인 행동이 그 깊숙이 들어있습니다.
양 영화 성도의 남편은 묘를 잘 쓰면 복을 받고 제사를 잘 드리면 복을 받는다고 정말 자기 아내가 예수 믿는 것을 정말 반대합니다.
그러나 죽은 자에게 제사하는 것은 부모를 귀신으로 만들어 효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모를 벌을 내리는 악한 귀신으로 만들어 불효를 하는 결과를 갖게 됩니다. 죽은 자에게 제사하는 것은 곧 우상 숭배입니다.
여러분 장례식장에서 문상 시에 사람들이 상주와 맞절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그것은 단지 위로를 하기 위해서 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의 깊은 이유는 상주가 비록 어릴 지라도 그 가문의 복을 줄 수 있는 조상신(선친신)이 반드시 상주에 깃들여서 임해있다고 생각하기에 상주는 모든 조상을 대표한다고 하여 상주에게 절하는 것이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런고로 조상 숭배는 바로 효를 과장한 기복적인 미신 신앙이 그 뿌리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조상제사의 유래를 한번 알아봅시다.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유교는 13세기 고려 말에야 성리학과 더불어 중국에서 들어왔으며 그 때 사당을 짓고 조상 제사의 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조상제사나 제례도 없었습니다. 그 후 조선이 건국되면서 태조 이성계는 국교를 고려의 불교에서 유교인 성리학으로 바꾸었으며 집집마다 가묘를 만들고 집안에 사당과 신주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장려이유는 종교 적이라기보다 구테타로 집권한 태조 이성계의 교육적 목적과 정치적으로 민심을 잡기위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조상제사를 시작한 공자의 진정한 의도는 현재 남아있는 자녀들에 대한 걱정(특히 건강)을 하지마시고 선친의 평안한 영면을 위함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공자에게 있어서 제사상은 조상이 먹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남아있는 자녀들이 제사상에 올려놓는 5가지 음식(대추,밤,감,배,은행)으로(공자가 직접 해석한 상비약의 의미였음)인하여 지상에 남아있는 자녀들이 부모님께서 돌아 가셨어도 이 지상에서는 5가지 상비약으로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으니 평안히 영면하십시오. 라는 뜻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과 같은 동네마다 약국이 없는 그 시대에 돼지고지 먹고 체하면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것이니 제사상에 놓인 5가지 음식 중 하나인 (배)를 갈아먹으면 체한 것이 갈아 앉고 괜찮으니 부모님 평안히 영면하십시오. 라는 이런 뜻으로 이런 제사 음식을 차리게 한 것입니다. 즉 공자의 의도는 죽은 자들에게 음식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남은 자식들이 이 음식을 먹고 건강하니 걱정하지 말고 평안히 영면하십시오. 라는 뜻이다. 그런데 샤마니즘의 영향이 유교를 어느새 변질시키면서 제사상을 조상이 먹는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제사상에 부모님 드시라고 술(소주) 위스키, 바나나, 조기, 국, 밥, 수저, 심지어 바나나 그리고 앞으로는 아마 피자도 ........... " 공자가 오늘의 제사상을 보면 아마 통탄할 일일 것입니다....... 이 원래 조상 제사를 드리는 것은 미신적인 기복적인 신앙과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을 우리들이 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생각할 것은 우리 믿는 사람이 조상제사를 금지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사람을 육체와 영혼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이 죽으면 영과 육이 분리되는데 이것이 곧 죽음입니다. 영이 떠나면 육체는 부패되고 썩어져 흙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하지만 영혼은 죽지 않고 가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은 두 길이 있습니다. 한 곳은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가 가는 천국이요 다른 하나는 불신자가 가는 지옥입니다. 이곳에 한번 가면 다시는 변경되지 않습니다. 왜야하면 하나님께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사람이 죽은 후 그 영혼이 구천을 떠도는 것이 아닙니다. 음식을 차려 놓으면 조상귀신이 와서 먹는 것도 아닙니다. 죽은 자의 영은 절대로 이 세상으로 다시 오지 못합니다. 또 죽은 자 하고는 만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만나려는 시도조차도 성경은 일절 금하고 있습니다. 2) 제사하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우선 귀신은 무엇입니까? 귀신은 하나님이 지으신 천사들 중에 타락한 천사들인데, 그 중에는 대장이 루시퍼 천사장이며 영광스런 자리를 받았으나 하나님께 대적하다가 버림을 받고, 타락한 천사들 ⅓을 함께 끌고 추락하여 이 세상을 악으로 유혹하는 마귀와 그 귀신들이 된 것입니다. 고전10:20절에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 고린도 교회도 우리들처럼 제사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제사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 모든 제사는 모두 귀신에게 드리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 위해서 제사를 드린다면 그것이 곧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고 귀신에게 경배하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왜 죽은 자들 위해서 드린 조상제사가 우상이고 귀신에게 드리는 것입니까? 제사라는 용어가 주는 의미 때문입니다. "제사"란 용어는 "예배 한다" "신을 두려워한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만 쓰야 할 것인데 죽은 사람들에게 쓴다는 것이 잘못입니다.
또 조상 제사 때 지방(紙榜)을 쓰는데, 그 지방은 이렇게 씁니다. 여러분, 이 지방의 내용을 아십니까? 한문으로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고 쓰는데, 여기 신위(神位)라는 말은 신이 앉았다는 뜻입니다. 즉 돌아가신 아버지 조상신이 나타나 굽어 살펴 달라는 뜻이다. 위패를 모시고, 향을 피워놓고,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을 차려 놓으면 귀신만 기쁘게 할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를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기에 절하지 말라.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제사이기 때문에 그것은 곧 귀신에게 제사 하는 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은 단순한 종교 행사이거나 풍습이거나 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제사 행위는 자연히 귀신을 부르고 귀신을 기쁘게 함으로 자연히 그들에게 묶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사를 하면 그 제사를 받는 귀신이 제사 드리는 사람의 생활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 무당을 통하여 귀신을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일상의 생활에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귀신과 교통하는 비참한 생활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귀신에게 제사하는 하기 때문에 찾아온 귀신들의 장난입니다.
그래서 종갓집은 일 년 내내 제사 지내는데 그런 가문을 보면, 영적으로 매우 혼란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그 뿐 아니라 신자들도 조상제사를 하게 되면 귀신에게 제사 지내므로 영적 피해를 입게 됩니다. 제가 잠실에 있을 때 초신 자인 성도가 은혜를 받아서 예수를 잘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이 교회에 나오지 않고 이유도 없이 신앙생활을 중지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심방을 해 보니 제사 때 내려갔다가 절을 하라고 하기에 기도하고 절을 했답니다. 그런데 절을 하고 난 후에 머리가 아프고 꿈이 뒤숭숭하고 교회에 나가기 싫어지더라는 것입니다. 바로 귀신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여러분. 엉터리 효도하지 말고 부모님이 살아 계실 적에 잘 섬기는 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절을 하는 것은 귀신에게 절을 하는 것입니다. 혹시 상 앞에 절은 했어도 그래도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말뿐이지 이미 그 영혼은 귀신에게 굴복하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절대로 제사상 앞에서나 묘 앞에서 절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다스림을 받고 싶으십니까? 우리는 멸망시키는 귀신의 다스림을 받고 살고 싶다면 절을 해도 되겠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기를 원하는 거룩한 성도들이기 때문에 절대로 절을 하면 반드시 영적으로 손해를 봅니다. 여러분, 역사를 잘 보십시오. 제사를 지내는 가문과 민족은 풍요롭게 사는 역사가 없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조상귀신을 잘 모셔 액땜을 하고 그 후손이 복을 받기 위한 것인데 그런데도 놀랍게도 제사를 드리는 민족들은 그 후손들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항상 가난한 것임을 역사 속에 우리는 분명히 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분명하게 우상 앞에 절하는 자들에게 삼사 대까지 저주가 있겠다고 십계명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자손들까지도 문제가 생깁니다. 귀신한테 제사를 드리고서는 절대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거기에는 하나님의 저주만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 뿐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상숭배자가 받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계21:8에 보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 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지옥)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니라.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고 크게 진노하는 무서운 죄입니다. 민25:1-9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인 모압의 신을 섬기다가 염병에 걸려 하루아침에 24,000명이 죽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섬기고 살아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변에 다른 우상을 만들고 섬기다가 그들이 앗수르나 바벨론에게서 망하게 된 것을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고로 우상 숭배는 귀신에게 숭배하는 것이므로 신앙에 손해를 보고 또 하나님이 싫어 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절대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저주가 임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넷째로 그러면 우리 성도들은 조상 제사를 어떻게 대하여야 할까요? 바로 이날을 조상 제사 대신에 추도예배를 드리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믿는 자가 적으므로 추도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환경일 때는 신자들은 제사하는 장소를 피하지 말고 참석하되 엎드려 절하는 대신 그 자리에서 경건하게 주님께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형제들 간에 덕을 끼치고 화목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예수 믿으니 아예 제사지내기 싫다하여 가지 않거나 참석하지 않고 협조하지 아니하면 가족끼리 불화가 되어 덕을 끼칠 수 없으며 가족전도가 어려워집니다. 내 의무는 잘 감당하면서 그러니까 필요한 경비를 다른 이들보다 넉넉히 지원하거나 일을 정성껏 도우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조상 제사가 헛된 행위임을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불신 가족과 친척들에게 복음전도를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 먼저 살아계신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극진히 봉사하는 것이다.우리 신자들이 조상제사를 지내지도 않고 살아계신 부모님께도 효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세상 사람들은 무엇이라 하겠는가? 우리를 비방하여 불효 종교를 우리가 믿고 있다고 말하고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비방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불신자들보다도 훨씬 더 살아계신 부모님과 집안 어른들을 잘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님께 대한 효성과 가족 간의 화목은 자신의 가정은 물론 이웃에게 큰 감화력을 줍니다. 자녀인 경우 부모님께 대한 극심한 효성으로 그 전도의 결실을 기대해야 할 것이고 부모의 경우 그 자녀에 대한 애정과 덕행으로 감화시킴으로써 그들을 주께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가정의 모범적인 생활의 모습을 우리가 보여 주어서 그들을 감화시켜서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 너희가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우애를, 형제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벧후 1:5-7) 라고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즉 형제 우애는 바로 성도의 생활을 모범 있게 할 것을 권면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생존해 있는 우리 자신이 신앙생활을 보다 더 철저하게 적극적으로 해나갈 때, 신앙으로 말미암은 생활이 곧 복음 전파의 계기가 될 뿐만이 아니라, 기독교 윤리로 다져진 덕 있는 기독교인들이 된다면, 전통적으로 유교문화에 있는 한국인들을 향한 전도는 훨씬 더 효과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조상의 묘지에 대한 정성어린 관심과 생존해 계시는 부모 및 친척 이웃들에게 예의와 기독교의 훌륭한 덕의 모습을 갖추어 생활할 때, 복음전파의 효과는 더 클 것이다.그래서 할 수 만 있다면 그들을 전도하여 복음화 시켜서 조상 제사 대신에 추도 예배를 드리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강원도 어느 산골에 부모님께 끔직히 효도 잘하는 예수 잘 믿는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명절 때마다 혹은 기일이 될 때마다 예수 믿는 불효자들 때문에 가정이 망했다는 둥 죽어서 제사 밥도 못 얻어먹게 되었다는 둥 하며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며느리는 어떻게 하면 조상제사 대신에 추도 예배들 드리게 할꼬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하루는 며느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얻어 시아버지가 대청마루에서 주무시는 앞에다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상복을 입고 한참 울다가 "아버님 제사상을 드세요" 했습니다.
주무시던 시아버지가 일어나 보니 제상을 차려 놓고 며느리가 상복을 입고 우는데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를 부르면서 이게 웬일이야 너 예수 믿고 교회 나가더니 미쳤구나 하면서 야단을 쳤습니다. 이때 지혜로운 며느리는 "아버님께 밥상을 차려놓고 한 시간을 드시라고 해도 주무시기만 하시는데 하물며 돌아가시면 제사 밥을 어떻게 드시겠습니까?" 시아버지는 기가 막혔습니다. 그러더니만 이상스럽게 시아버지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애, 죽은 자가 뭘 먹는다는 거냐 다 부질없는 짓이다”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쭉 기도를 드린 것이 때가 되어 응답의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이어서 시아버지는 “그러지 않아도 제사가 다 헛일 같았는데 에이 마침 잘됐다.” 하시고 다 훌훌 떨쳐버리고 며느리 따라 교회를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추도 예배들 대신했다는 간증이 있습니다.
그리고 추도예배를 드릴 때는 음식을 차리고 사진을 놓고 절을 하는 제사와는 달리 가족, 친척,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고인이 생전에 하신 일을 돌아보고, 이 땅에 계실 때에 부탁하신 일을 자손들이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가족들이 예배 후에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준비하는 하되, 제사상처럼 차리지는 않습니다. 부모님 돌아가신 후 처음 맞이하는 추도 예배 때는 교역자를 모시고 예배를 드릴 수 있으나, 그 다음부터는 가족들 중심으로 하는 것이 원만합니다. 주로 희망적인 말씀을 전하면 좋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소망은 돌아가신 분과 훗날 다시 만난다는 희망입니다. 즉 부활입니다. 세상 제사는 부활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추도예배를 드리면서 다시 만날 감격을 고대하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효도관은 부모님 살아생전에 주안에서 순종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드리면 약속 있는 5번째 계명에 의해 후손들이 땅에서도 복 받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에 예수님을 영접하여 믿으시도록 전도해야 합니다. 부모님 전도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가장 큰 효도인 것이다. 산 부모와 죽은 부모와는 동일시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가 중요시 하는 것은 인격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은 인격신으로 믿습니다. 그런데 죽은 부모는 인격이 아닙니다. 살아 계실 때는 인격으로 존중하고 공경을 표하지만 죽은 다음에는 기억에 불과합니다. 절하는 것도 인격으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죽은 부모에게 절한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죽은 부모에게 절하지 않는 것은 효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제사는 우상 숭배이므로 신앙이 있는 성도도 절하면 세속 마귀의 문화에 끌려가는 것이 되고 맙니다. 오늘 성경은 본문에서 조상제사를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고전10:20)
그리고 다음 주일은 공교롭게도 예배드리는 주일이 추석입니다. 추석이 더 중요합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물론 형제들이 모이므로 제사를 드리므로 힘들지만 내가 신자인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십시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오겠다고 지혜롭게 알려 주고 나오십시오. 만약에 제사를 드린다면 새벽에 하던지 아니면 예배드리고 하던지 지혜롭게 처신하세요. 우리가 유일하게 믿고 있는 하나님, 우리가 섬기고 있는 분은 바로 우리가 믿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번 주일에 나와서 여러분의 참된 믿음을 그들에게 확인시키시고 우리가 유일하게 섬기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을 그들에게 알려 주시는 기회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예배보다 더 바쁜 것은 없습니다. 예배보다 더 우선권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참된 믿음을 증거 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놀라운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제가 다음 주일에는 복에 근원이신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기고 나온 성도는 놀라운 복을 누릴 것입니다.
참된 믿음의 사람들은 핍박과 어려움을 신앙의 성장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우리는 이런 어려운 순간을 잘 극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수아가 우상의 유혹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다하고 근면하던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마지막으로 던지겠습니다. 여호수아24:15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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