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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물매돌 이야기

작성자신동|작성시간09.04.25|조회수489 목록 댓글 0

물매돌 이야기

 

    고다윗 이스라엘 선교사

    (텔아비브 대학 성서 고고학 박사과정, 이스라엘 BoB 아카데미 강사)

    이스라엘 투데이 2008 10월호 기재

 

             가죽으로 만든 물매와 돌의 모습

 

역사와 신화를 통틀어서 엘라 골짜기에서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양 진영을 대표하여 싸운 다윗과 골리앗의 결투만큼이나 극적이고 흥미진지한 결투가 또 있었을까? 호머의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결투조차 따라올 수 없는 대결의 독보적인 매력이라면 역시 소년이 거인을 잡아낸 영웅적 구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시냇가에 물매돌과 창날의 무게만 7kg에 달하는 장창으로 요약되는  두 사람의 화력 비교는 이 이야기를 약자 대 강자의 대결구도를 비유하는 고전적 상징으로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다윗의 물매돌은 힘없는 어린 소년에 들인 원시적인 무기에 불과했을까? 하나님의 도움심으로 인간 기적적 승리로만 기억되기 쉬운 이 사건에서 물매에 대한 바른 이해는 훨씬 더 흥미롭고 깊이 있는 통찰을 가능케 해준다.

 

물매란?

물매(Stone siling)란 가죽이나 기타 섬유질로 만들어진 끈을 사용하여 돌을 회전시킨 뒤 원심력의 힘으로 던질 수 있도록 고안된 도구이다. 두 개의 끈이 만나는 곳에는 돌 혹은 금속 조각 같은 투척 물질을 얹을 수 있는 천 조각이 달여 있다. 두 개의 끈을 붙잡고 풍차처럼 혹은 헬기의 프로펠라처럼 회전을 주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한쪽 끈을 놓음으로써 이 투척물은 목표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가게 된다. 오늘날에는 유목민들에 의해 애용되고 있으며 가끔은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이스라엘 군인들과 맞서 봉기를 일으킬 때마다 등장하기도 한다. 비록 인종적으로는 아무 상관이 없을 지라도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이 불레셋에서 유래된 것을 생각하면 다소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매돌의 역사

어린아이의 돌팔매질 정도로 여겨지기 쉬운 물매는 사실 오래전부터 전장에서 사용되던 엄연한 살상무기였다. 정확한 유래와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이미 청동기 시대로부터 고대 근동 및 유럽에서 전투무기로 널리 애용되었으며 불과 4세기 전까지만도 전투에서 다른 근대식 무기와 더불어 사용되었던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참조 사진에 나타난 이집트 벽화에는 궁수들의 뒤에 숨어서 물매를 이용하여 성을 공격하는  군사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성 위에서도 동일하게 투석으로 대응하고 있는 군사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가장 생생한 작품이라면 역시 앗수르의 니느웨 궁에서 발견된 양각을 곱을 수 있을 것이다. 주전 701년 유다를 침공한 산헤립의 라기스 공격 장면을 묘사한 양각은 물매를 이용하여 공격하는 앗수르 군사들의 모습을 정밀하고도 생생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 완전무장을 한  채 물매를 휘두르는 이들의 모습은 결코 물매돌이 임시 방편의 열악한 무가가 아니라 정규군에 의해 사용되던 강력한 살상무기였음을 증거해 준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이와 관련된 기록은 충분하게 나타나고 있다. 주전 401년 페르시아에 맞선 그리스는 물매를 사용하는 군대의 부족으로 패배의 위험에 처했던 것을 기록으로 남겼으며 아테네 출신의 군인이자 역사가였던 크세노폰은 로도스 섬 군대의 투석 솜씨가 페르시아 군대를 능가한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이 무렵엔 이미 대칭성이 떨어지는 돌 대신 납을 주조해서 만든 투척물을 사용함으로써 공기의 저항을 줄이고 위력을 높이는 개량형 물매가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특히 로마군들에 의해 애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매돌을 투석하는 이집트 병사의 모습

 

       

       라기스 성을 공격하는 앗수르 군대의 투석병. 궁수의 보호를 받는 특수 요원이었다.

 

물매돌의 위력

물매돌의 위력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과연 화살을 날려보내는 궁수들과 맞서 싸울만한 화력을 지니고 있었을까? 물매에 관련한 연구로 유명한 코프만 박사의 분석에 따르면 투척된 돌의 위력은 물매끈의 길이와 투척물의 무게 및 밀도 등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끈이 길수록 사거리가 길어지며 투척물의 밀도가 높고 대칭성이 뛰어날수록 위력 또한 증가한다. 기네스 북에 기재된 내용에 따르면 길이 130cm 물매를 사용하여 52g의 중량의 돌을 무려 437m나 날려보낸 사람도 있다고 하니 상상을 초월하는 그 위력에 입이 벌어질 뿐이다. 고대 전사들이 모두 이러했다고 보기는 무리겠지만 로도스 군사들의 투척 거리가 당시 세계 최고로 여겨지던 페르시아 궁수들의 화살 거리보다 길었다고 기록한 크세노폰의 기록도 있고 보면 물매돌의 비거리가 예상 외로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로마군의 유효 사거리는 180m였던 것으로 나타나있다.

속도 또한 뛰어났는데 코프만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개 달걀 크기의 돌을 던졌을 경우 시속 100km정도에 충분히 이를 수 있다고 한다. 이보다 다소 빠른 속도의 야구공에 맞아 골절이나 심지어 안면부 함몰 같은 끔찍한 부상을 입는 야구 선수들을 참고해 보면 물매돌의  살상력을 실감할 수 있으리라. 실제로 그리스 의사 쎌시우스는 물매돌에 적중 당한 군사의 몸에 박혀있는 돌이나 납덩이 등의 효과적 제거를 위해 상세한 의학적 처방을 남기기도 했다. 더욱이 화살과는 달리 갑옷을 뚫지 않고도 치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물매는 더욱 효과적인 무기로 그 위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보인다.

 

얼마나 정확했나?

사무엘서에 따르면 다윗은 단 한번에 골리앗의 얼굴을 그것도 달리는 상태에서 명중시켰다. 심지어 사사기에는 베냐민 지파의 왼손잡이 용사들이 물매돌로 한호리 곧 머리카락만큼의 오차도 없이 목표물을 명중시킬 줄 알았다고 기록하고 있다.(20:16) 메이저리그의 투수들도 울고 갈 이러한 컨트롤이 과연 가능했을까? 로마의 역사가 리비의 기록에 따르면 충분히 그러하다. 그는 에게해 주민들을  최고의 물매돌 전문가들로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은 단지 적군의 얼굴을 명중시켰을뿐만 아니라 얼굴의 특정부위를 정밀 타격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기술은 장기간 훈련과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만 습득될 수 있었다. 한 예로 에게해 발레아레스 제도의 주민들은  어려서부터 엄마가 막대기 위에 올려 놓은 빵 조각을 물매돌로 맞추어 떨어뜨려야만 식사를 허락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훈련했다고 한다. 이같은 처절한 노력을 통해 백발백중의 투석가들이 길러졌으며 이러한 숙련된 물매수들은 수천년의 고대 전장에서 궁수를 능가하는 최정예 부대로서 활약했던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

혹자는 이런한 연구에 기초해서 다윗이 사실상 골리앗과의 화력싸움에서 우위에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리가 없지는 않으나 다소 과장된 면이 많다. 청동 방패와 갑옷으로 무장한 상대와 단거리 전투, 즉 실패는 곧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물매돌만 가지고 상대하는 것은 어지간한 용기와 담력으론 할 수 없는 신앙적 도전이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다윗의 도전은 순간적 혈기로 그저 주변에 널려있는 돌맹이를 주어든 임시방편적인 것이나 기적만을 바라고 뛰어든 무모한 시도가 아니었다. 그는 평소의 피나는 훈련을 통해 당시 강대국들의 특수부대에서 운용되던 고도의 기술을  익혔던 준비된 용사였다. 달리는 상태에서 적어도 다섯 발에 한발은 적의 얼굴이 명중시킬 자신감을 가질만한 실력자였고 사자나 곰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설 만한 충분한 실전 경험이 있었다.(삼상17:35,35) 엘라 골짜기의 승리는 결국 믿음과 실력, 도전과 준비의 조화가 있었던 다윗의 지도자적 자질을 드러내 주는 사건이라 하겠다.

 

          

             앗수르 군대의 공격 양각(로마 바티칸 박불관)

 

                                 사자의 입에서 양을 거내는 다윗. 아마도 물매돌로 사자를 먼저 실신시켰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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