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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

고린도 교회의 역사와 지리

작성자신동|작성시간10.08.27|조회수643 목록 댓글 0

1. 고린도는 발칸 반도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지협의 목에 자리를 잡아서 번영하였다.

 

2. 고린도는 한 때 희랍의 빛이라 할 만큼 찬란한 발전을 거듭하였고 그 유명한 코린트 양식의

    건축 기술이 발전한 곳이다.

3. 고린도는 오랫동안 발전해 오면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로 더불어 경쟁할 정도의 막강한 도시였다.

 

4. 고린도는 반 로마기질을 갖고 있어서 로마의 시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도시였다.

 

5. 주전 146년 로마의 루키우스 뭉미우스 장군의 공격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 이유는 고린도가 반로마연맹의 맹주 노릇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6. 그 후 100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줄리어스 씨이저의 안목으로 재건되었다.

 

7. 고린도는 코스모스폴리탄(만국민의 도시)적인 도시국가였다. 거기는 상당히 많은

    유대인들이 있었고 회당도 있었다.

    거기에는 헬라인 이집트인 페니키아인들과 유대인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8. 바울 일행이 갔을 때만해도 동쪽의 아테네와 경쟁할 수 있는 큰 항구도시로 활기에 넘쳐 있었다.

 

9. 고린도 뒤에는 아크로고린도가 있는데 석회암으로 된 575m의 산 위에 자리하고 있었고

   고린도는 샘이 많아서 사람살기에 좋은 곳이었다.

 

10. 고린도는 활발하게 발전하여 로마의 식민지로서 아카야주의 수도로 삼았던 곳이다.

 

11. 고린도가 발전하게 된 동기는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남단에 발달한 복잡한 해안선과

     수많은 섬들이 있고 그 수면 아래에 보이지 않는 많은 암초 때문에 지중해를 오가는

     선원들이 말레아 곳으로 돌아가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말레아 곳을 돌아가는 항해사는 유서를 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12. 말레아 곳으로 돌아가려면 300Km 이상을 돌아가는데 거의 해난사고를 당할 위험이 있어서

     고린도만으로 들어가 지협을 통과하기 위한 목제 궤도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어떤 무지막지한

     장군은 병사들의 손으로 배를 끌고 지협 8km를 넘어서 겐그리아 만으로 빠져 나가기도 했다.

 

13. 그러다가 1881년에 프랑스 회사가 운하건설에 착공하여 1893년에 완공하니 그 길이는

     약 6km되고 넓이는 22m 그리고 운하의 깊이는 약 8m정도로 개통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중소형 선박들이 운하를 통하여 왕래하고 있다.

 

14. 이곳에 바울이 도착했을 때는 갈리오가 아가야지방 총독으로 부임했을 때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그 시기가 51년 7월부터 52년 6월 사이가 될 것이다.

 

15.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을 당시의 로마 황제는 네로 황제의 아버지 클라우디어스(41년-54년)였다.

     그가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게 되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로마로부터 고린도에 오게 되었고

     바울을 만나서 일평생 같이 하였다.

 

16. 바울은 처음에 고린도에 도착해서 의기소침하여 있었고 일말의 불안에 떨고 있었다.

     고린도의 분위기는 항상 그랬다.

 

17. 그때쯤에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에서 일을 정리하고 고린도로 도착했는데 바울이

     힘을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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