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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물연구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

작성자신동|작성시간14.07.25|조회수985 목록 댓글 0

임상옥은 조선 후기의 무역상으로, 호는 가포(稼圃), 의주 출생이다. 대대로 상업에 종사하였던 가문에서 태어난 임상옥도 아버지를 따라 의주 상인이 된다. 무지하고 가난하여 늘 신세를 한탄했던 아버지와는 달리, 임상옥은 천재적인 상업 능력을 가지고 상도를 깨우침으로 인해 조선 최고의 거부가 된다. 어찌나 많은 돈을 벌었던지, 임상옥은 어머니께 “저의 은괴를 쌓으면 저 마이산만하고, 비단을 쌓으면 저 남루문만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임상옥이 조선 최고의 거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상업에 있어서 확고한 신념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재능이 어떻게 그의 상업에 영향을 끼치고 거부로 만들 수 있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1. 판단력


임상옥은 필요한 때에 적절한 판단을 내림으로써 여러 번의 위기를 벗어난다. 그것의 예로는 청나라에서 있었던 중국인들의 불매동맹 사건이 있다. 거의 2백 년 가까이 고정된 인삼의 가격을 임상옥이 파격적으로 올리자, 중국인들이 불매 동맹을 맺은 것이다. 임상옥은 이에 굴하지 않고 가격을 더 올렸으며, 중국인들이 꿈쩍하지 않자 그 많은 인삼을 가지고 다시 고국에 돌아가야 할 위기에 처한다. 그러자 임상옥은 중국 상인들이 보는 앞에서 인삼의 절반 가까이를 불태워버리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연경의 약재상들에게 있어서 생명과도 같았던 인삼이 타버리는 광경에 다급해진 연경 상인들은, 태워진 인삼의 값까지 쳐서 어마어마한 값을 지불하여 인삼을 구매하게 된다. 이 위기의 극복으로 인해 임상옥은 조선 최대의 무역왕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얻을 수 있었다. 이 기회로 임상옥은 조선의 상계뿐 아니라 연경의 상계까지 제 손바닥 안에 넣고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 만큼 장학하게 된다.

또한 임상옥은 솥 정(鼎)자의 의미를 알아내 목숨을 건지면서 홍경래에게 벗어날 수 있었다. 현명한 판단으로 인해 임상옥은 홍경래의 혁명이 실패한 후에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솥 정(鼎)자의 의미를 알아내어 위기를 벗어났다는 것은 소설적 장치이겠지만, 조선 최고의 거부에게 현명한 판단력과 결단력은 필수로 있어야 하는 능력임이 틀림없다.


2. 분석력

경영자에게 그 무엇보다 필요한 능력은 현장에 대한 분석력이다. 시장에 대한 빠르고 정확한 분석이 있어야 대처할 방법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상옥이 불매동맹을 맺은 중국 상인에게 무릎을 꿇었다면 조선 상인으로서의 자존심이 구겨졌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중국에서의 성공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그대로 인삼을 가지고 돌아간다는 것은 상인으로서의 명이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함으로써 극단적이지만 옳았던, 인삼을 태운다는 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앞으로 조선에서 상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삼 독점권을 얻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 박종경의 신뢰를 받아야 된다는 것도 탁월한 분석력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3. 언어능력과 설득력


임상옥의 시는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그는 자신의 호를 따, 그의 시와 인생을 담은 ‘가포집’을 내기도 하였다. 그의 이런 훌륭한 언어 능력과 언변은, 설득력과 뗄 수 없는 것으로, 상업에서는 빠져서는 안될 능력이다. 김정희와 주고 받는 말들이나, 그가 쓴 시를 보면 그의 언어 능력을 알 수 있다. 임상옥이 뛰어난 언변으로 박종경의 마음을 휘어잡았던 대목을 보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루에 숭례문으로 몇이나 출입하는지 정확한 숫자가 무엇이냐는 박종경의 수수께끼에 임상옥은 이렇게 대답한다.

“…두 사람뿐이나이다.”, “하루에 숭례문을 출입하는 사람 숫자가 3천 명이건 7천 명이건, 때로는 하루에 만 명을 넘건,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 대감 어른께 한 사람은 이로운 사람일 것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해로운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이로운 사람도, 해로운 사람도 아닌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이므로 셀 필요도 없는 사람이겠으니, 오직 있는 사람은 이로운 사람인 이(利)가와 해로운 사람인 해(害)가뿐이 아니겠습니까. 대감 어른 댁에 하루에 수백 명이나 손님이 온다 하여도 결국에는 이로운 사람과 해로운 사람 단 두 사람뿐이나이다.”, “소인은 이가도 해가도 아닌 의(義)가이나이다.”

이미 한 차례의 문답으로 임상옥이 변방에서 올라온 하찮은 장사치가 아님을 꿰뚫어 본 박종경이었지만 임상옥의 대답을 들은 순간 박종경은 임상옥이 범인이 아님을 깨닫는다.

또한 임상옥은 자신을 죽이러 몰래 들어온 홍경래를 오히려 설득하여 마음을 바꾸게 함으로써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4. 뛰어난 임기응변


임상옥은 위기가 닥쳤을 때 마다 뛰어난 임기응변으로 대처했다. 그 대처방법도 굉장히 창의적이고 독창적이었는데, 그것을 본 상대는 그의 뛰어난 대처 능력에 감동하거나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임상옥이 인삼독점권을 얻기 위해 박종경에게 백지어음을 준 일이 있다. 이로 인해 임상옥은 천하의 세도가였던 박종경의 신뢰를 얻고 인삼독점권을 얻어내어 최고의 상인으로서 발돋움 할 수 있게 된다. 임상옥이 불매동맹을 맺은 중국 상인들 앞에서 인삼을 태워버린 일도 다른 사람이라면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무모했지만 탁월한 임기응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5. 자립 지향성


임상옥은 독립적인 성격은 어린시절에 아버지와 동생들을 여의고 일찍이 가장이 되었던 임상옥의 환경을 본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뛰어난 자립심 덕분에 그는 자신감 또한 가지고 있었고, 수많은 위기들을 해쳐나가고 어려운 상황으로도 자신있게 돌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6. 대인 활동


임상옥은 판매․영업이나 경영에 필수적인 대인관계 역시 훌륭했다. 그가 박종경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했다면 인삼독점권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고, 장미령과 인연이 없었다면 중국 시장을 노리는 데에 그만한 도움을 얻을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에겐 자신을 언제나 든든하게 뒷받침 해주던 박종일이 있었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었던 훌륭한 친구, 조선 최고의 시인이자 문필가였던 김정희와도 깊은 교류를 하였다.

그가 어찌나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났는지, 임상옥이 곽산군수로 재임하고 있을 무렵에 있었던 일화 하나는 오늘까지 남아 전하고 있다. 임상옥은 돈을 빌리러 온 세 사람에게 각각 한 냥씩을 주어 이문을 남겨오라고 했다. 함경도 상인은 그 한 냥으로 짚을 사 짚신 다섯 켤레를 삼아 하루에 한 푼씩 다섯 푼을 벌었다. 평안도 상인은 한 푼으로 대나무와 창호지를 사다가 종이 연을 만들어, 설날에 금방 다 팔아 본전을 제외하고 한 냥의 이문을 남겼다. 임상옥은 꼼꼼해서 절대로 낭패를 보지는 않지만 한 푼으로 한 푼을 버는, 농사꾼 같은 함경도 상인에게는 백냥을, 시기를 잘 살필 줄 아는 평안도 상인에게는 이백냥을 주었다. 그리고 실컷 놀다가 엉뚱한 방법으로 돈을 얻어온 황해도 사람에게는 천냥을 빌려주었다. 그로부터 1년 뒤, 함경도와 평안도 상인은 임상옥이 빌려준 돈으로 각자의 능력치만큼의 성공을 해서 돌아오나 황해도 상인은 기생에게 빠져서 그 돈을 다 날리고 돌아오는데, 임상옥은 또 이 황해도 상인에게 2천 냥을 빌려준다. 천하의 임상옥이 협잡꾼에게 사기당했다는 소문이 주성 내에 파다하게 퍼져나갔지만 그 사내는 수레에 인삼을 가득 채워서 돌아온다. 소 열 마리의 달구지에 가득 인삼이 실렸으니 10만 냥이 넘는 천문학적 금액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임상옥이 큰 사람을 알아보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임상옥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훌륭하게 평가받아야 할 것은, 그가 재물이나 권력에 의해 사람들을 사귄 것이 아니라, 깊은 신뢰와 사람 그 자체를 보는 심(心)을 바탕으로 사람을 사귀었기 때문이다. 그가 인삼 독점권을 얻기 위해 박종경과 나눈 대화는 그가 어떤 인간관계를 지향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소인이 천 냥을 쓰면 대감어른으로부터 천 냥 만큼의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만 냥을 쓰면 만 냥 만큼의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대감어른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것은 관심도 적심도 아닌 마음(心) 그 자체나이다. 마음은 이 하늘 아래 그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나이다.” 임상옥은 어음 위에 금액을 쓰지 않음으로써 검은 거래의 대가를 받은 것이 아니라 박종경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신뢰를 통한 사교로 인해 임상옥은 든든한 인맥을 쌓을 수 있었고, 그들의 도움으로 임상옥은 넓은 시장과 조건을 가져 상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게 되었다.


7. 봉사심


임상옥은 재물보다 사람이 먼저임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남긴 “재물은 물과 같고 사람은 저울과 같다”라는 말만 보아도 그의 인품을 알 수 있다.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손(활인도)을 가졌던 임상옥은, 자신의 손을 사람을 살리는 데에만 사용했다. 임상옥은 이런 뛰어난 봉사심으로 가난에 허덕이는 많은 사람들을 구제해주었으며, 늙어서는 자신의 재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 이런 그의 따뜻한 마음으로 인해 결국 그가 상업의 달인으로 일어설 수 있게 되는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장미령’의 구제이다. 임상옥은 인삼을 판 돈으로 아버지로 인해 어린 나이에 사창가로 팔려온 장미령을 구제해 준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공금횡령의 불명예를 안고 의주에서 추방되어 결국 산에서 스님이 되지만, 중국 고관대작의 부인이 된 장미령이 은혜를 갚아 상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 “남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타인으로부터 받은 은덕을 절대로 잊지 않는 일이다. 그런 의민에서 장미령은 의로운 사람. 즉 의인이었던 것이다.”라고 최인호는 전한다. 장미령은 임상옥의 도움 없이는 고관대작의 부인이 될 수 없었으며, 창녀로서 일생을 보냈을 것이다. 임상옥 역시 장미령 없이는 적성에 맞는 상업을 포기하고 불도에만 전념했을 것이다. 따뜻한 마음이 두 사람 모두를 살리는 길이 된 것이다.

또 다른 예는, 죽마고우이자 대역죄인인 이희저의 딸 송이를 첩으로 맞은 일이다. 임상옥은 또 활인도를 사용했지만 덕분에 잠시 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러나 송이를 첩으로 맞은 것은 임상옥에게 있어서 중요한 일이었다.

이처럼 재물보다 사람과 의(義)를 중요시함으로써 임상옥은 상업을 도(道)를 깨우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임상옥이 거부로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으며, 지금도 그의 삶과 사상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가 된다.



임상옥은 그는 천재적인 경영인이자 판매원이었다. 사람을 다스리는 일을 잘 하였으며, 객관적인 판단력과 분석력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자신감이 넘치고 대인관계가 훌륭했던 그는 눈썰미 또한 뛰어나서, 상품이나 사람의 질을 한 번에 알아보았다. 임상옥은 상업이 천성이었던 사람이다. 자신의 천성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권력에는 욕심을 버렸던 것이다. 그는 시대를 잘 만나고, 자신에게 맞는 일을 잘 만나, 무일푼으로 시작한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시대 최고의 거부가 된다. 천하제일상(天下第一商), 하늘 아래 제일의 상인이 된 것이다.


<상도> 책에서는 임상옥의 능력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주지스님의 수수께끼같은 조언을 어떻게 알아내어 위기를 벗어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있어 아쉬움이 든다. 그러나 임상옥이 상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며 적성에 꼭 맞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임상옥을 조선시대 최고의 거부로 만들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자신에게 완벽하게 적성에 맞는 일을 찾고, 성취감을 느끼며 노력한다면 누구나 그 분야의 1인자가 될 수 있고, 1인자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따라서 젊었을 때부터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국에 명성을 떨쳤던 임상옥의 생애와 그의 신념을 보면서 우리도 서둘러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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