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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물연구

아담 스미스보다 200년 앞섰던 조선의 경제학자 이지함

작성자신동|작성시간26.06.06|조회수1 목록 댓글 0

조선은 달라질 수 있었다.. 아담 스미스보다 200년 앞섰던 조선 천재의 정체 | KBS 한국사 전 20070908 방송

 

 

이 영상은 KBS의 역사 다큐멘터리 〈한국사 전(傳)〉으로, 흔히 신년 운세를 점치는 《토정비결》의 저자로만 알려진 토정 이지함(土亭 李之菡, 1517~1578)의 파격적이고 선구적인 경제 사상과 민중을 향한 애타는 마음을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가 추적한 이지함의 진짜 모습과 그가 꿈꾸었던 조선의 개혁안을 핵심 요약해 드립니다.

 

1. '기인(奇人)' 이지함의 파격적인 행보

 

이지함은 명문 사대부인 한산 이씨(목은 이색의 6대손, 훗날 영의정이 되는 이산해의 숙부) 출신이었지만, 양반의 안락한 삶을 거부하고 철저히 민중의 바닥으로 내려갔습니다.

  • 토정(土亭)의 유래: 한강변 마포나루의 쓸모없는 낮은 땅을 흙으로 메워 스스로 흙집을 짓고 살았는데, 이 지명을 따서 그의 호가 '토정'이 되었습니다. [04:13]

  • 기이한 행색과 유랑: 머리에 무쇠 솥을 갓처럼 쓰고 다니며(어디서든 밥을 해 먹기 위해) 전국을 유랑했고, 백성의 고통을 체험하겠다며 관원들의 앞길에 누워 매맞기를 자청하기도 했습니다. [02:22], [12:11]

  • 과거를 포기한 계기: 을사사화(1545) 등으로 절친한 친구 안명세와 장인이 부당한 권력에 의해 무고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 후, 부패한 정치판 대신 제야(在野)에서 세상을 바꿀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30:40]

2. 아담 스미스보다 200년 앞선 '중상주의적 경제 사상'

 

농업만을 중시하고 상공업을 천시하던 16세기 조선에서, 이지함은 국가의 부를 키우고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자원 개발과 해외 통상을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은 박제가의 《북학의》 등 후대 실학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07:39], [12:48]

  • 상업과 유통의 가치 발견: 정통 성리학에서 벗어나 개방적 학풍을 지녔던 화담 서경덕의 문하에서 공부하며 상업의 중요성에 눈을 떴습니다. 스스로 마포나루에서 장사를 하며 뛰어난 상업적 수완을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14:38], [19:07]

  • 포천현감 시절의 상소문 (혁신적 개혁안): 57세의 늦은 나이로 포천현감에 임명된 그는 왕에게 파격적인 상소를 올립니다. [08:20]

    "산과들에 버려진 은, 바다의 물고기, 갯벌의 소금 등 육지와 바다의 자원을 개발하여 백성을 도와야 합니다. 만약 이 창고를 열 수 있다면 백성에게 돌아갈 혜택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 구체적인 경영 방안 제시: 전라도 만경현의 섬이나 황해도 풍천부의 무인도를 포천현에 임시로 빌려주면, 직접 소금을 굽고 고기를 잡아 이를 통상(무역)하여 수년 내에 수천 섬의 곡식을 마련해 빈민을 구제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09:19]

  • 지배층의 반발: 그러나 자원의 이익을 독점하던 당시 권력층과 명분 중심의 조정은 이 혁명적인 발상을 수용하지 않았고, 결국 이지함은 1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10:02], [42:42]

3. 조선 최초의 근대적 재활 기관, '걸인청(乞人廳)'

 

이후 아산현감으로 부임한 이지함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놀라운 생산적 복지 정책을 실천했습니다. [43:09]

  • 자립 중심의 복지: 단순히 굶주린 걸인들에게 밥과 잠자리를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걸인청을 세워 수공업 기술(물건을 만드는 법)과 장사하는 법을 교육했습니다. 각자의 능력에 맞춰 일감을 나누어 주어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44:33]

  • 신분 타파 교육: 천민이나 노비 출신의 제자들을 거두어 학문을 가르쳤으며, 노비의 신분을 해방시켜 과거에 급제(김순종의 사례)하도록 돕는 등 인간 존엄과 평등을 몸소 실천했습니다. [35:53]

4. 《토정비결》에 담긴 민중을 향한 위로

 

다큐멘터리는 《토정비결》의 저자가 명확히 이지함인지에 대해서는 역사적 기록(경도잡지, 동국세시기 등에서 언급이 없는 점)에 따라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이 책이 토정의 이름으로 민간에 깊이 자리 잡은 이유를 설명합니다. [24:10], [25:36]

  • 주역과 달리 생시(生時)를 빼고 3주로만 보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고, 내용의 70% 이상이 희망적인 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단한 삶에 지친 조선의 백성들에게 어떻게든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고자 했던 이지함의 애민(愛民)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책이기 때문에 민중은 이를 '토정의 책'으로 믿고 사랑했던 것입니다. [27:11], [29:14]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 [23:09]

이지함은 아산현감 부임 불과 3개월 만에 돌연 역질(전염병)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족적은 단순한 역술가를 넘어 시대를 앞서간 선구적인 경제 사상가이자 최초의 근대적 복지 실천가였음을 이 영상은 밀도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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