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성과 눌지 마립간, 그리고 박제상
미추 이사금의 조카이자 사위인 내물이 즉위하니 17대 임금 내물 마립간이다. 내물 마립간은 남당이라는 곳에서 나라 일을 보았는데, 신하들은 관등에 따라 말뚝을 세우고 그 뒤에 섰다하여 왕을 마립간이라 불렀다. 내물 마립간은 지방 자치제를 중앙집권제로 바꾸고 나라의 힘을 모았다. 나라 근처의 독립된 작은 나라들을 합병하여 나라의 기틀을 다졌다. 중국 전진에서 발전된 문물도 받아들이고, 김씨의 왕위 세습 체제를 굳히기도 하였다. 왜의 침략이 빈번하자 고구려 광대토대왕의 도움을 청했고 대신 볼모로 고구려에 왕족 이찬 대서지의 아들 실성을 보냈다.
내물 마립간은 눌지․복호․미사흔 등 세 왕자를 남기고 402년 재위 47년 만에 승하했다. 그러나 왕위는 실성에게 돌아갔다. 그런데도 실성 마립간은 자신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 치욕을 겪게 한데 앙심을 품어 즉위 직후 왜국과 수교하려 하자 볼모를 요구하여 미사흔을 보냈다. 또 실성 11년(412) 고구려에는 내물 마립간의 아들 복호를 볼모로 보냈다. 선대왕의 세 아들 중 유일하게 서라벌에 남은 눌지가 백성들의 인심을 얻자 언제 왕위를 뺏길지 몰라 암살하려 했다. 눌지가 두 동생을 볼모로 보낸 자기를 원망할 것이라 생각한 것도 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실성 마립간은 눌지를 불러 동생도 볼 겸 고구려에 다녀오게 했다. 한편 그는 자기 심복을 불러 자기가 고구려에 있을 때 친하게 지냈던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눌지는 천하에 둘도 없는 악당이니, 보거든 무조건 죽이라.> 그러나 그가 눌지를 만나 함께 지내보니 눌지 왕자가 덕이 많고 군자의 풍모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실성의 편지를 보여주자 눌지 왕자는 서라벌로 돌아와 실성 마립간을 죽이고 417년에 즉위하니 19대 임금 눌지 마립간이다.
눌지는 아우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 서라벌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수주촌간 벌보말, 일리촌간 구리내, 이이촌간 파로를 불러 상의했다. 그들은 삽량구간 박제상을 용감하고 지모가 있다고 천거했다. 그를 부르면 눌지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 했다.
그리하여 박제상은 궁궐로 불려와 눌지 마립간의 명을 받들어 당장 고구려로 출발했다. 장수왕을 만난 박제상은 이렇게 말했다. <이웃 나라와 수교할 때는 믿음이 제일의 조건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서로 믿지 못하여 볼모를 잡는 것은, 진실로 말세의 일이옵니다.> <우리가 볼모로 잡고 있는 복호 왕자를 돌려보내 달라는 말 같은데...> <그러하옵니다. 저희 마립간께서는 왕제와 헤어진 뒤 지금까지 늘 그리워하고 계십니다. 만약 대왕께서 저희 왕자님을 돌려보내 주신다면, 그 큰 덕은 사해(사방의 바다, 온 세상)를 덮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오, 그대의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구나.> <데려가거라. 그대와 같은 충신의 청을 어찌 거절할 수 있으리.> 박제상이 눈물로 호소하자 장수왕도 감동되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눌지 2년(418) 박제상은 왕제 복호와 함께 귀국했다. 두 사람의 이산가족 상봉장면은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눌지 마립간은 큰 잔치를 열었다. 그러나 눌지 마립간은 술에 취하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두 아우를 양팔과 같이 생각하는데, 지금 단지 한 팔만 얻었으니 이를 어찌하랴!> 모두 박제상만 바라보자 그가 말하길, 고구려 왕은 덕이 있어 감동시킬 수 있었으나 왜 왕은 무지하여 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으니 말로 설득할 수 없고 오직 꾀로써 속여야만 왕자를 모셔올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박제상은 나라를 배반하고 왜국으로 달아난 것처럼 소문을 내게 했다.
박제상은 이번에도 왕자님을 구할 수는 있겠지만, 자신은 살아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가족을 만나고 떠난다면, 마음이 변할지 몰라 집에 들르지도 않고 곧장 율포로 달려가 왜국으로 출발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박제상의 아내가 포구로 달려왔으나 이미 남편이 탄 배는 떠나고 말았다.
왜 왕을 만난 박제상은 신라의 왕이 아무 죄도 없는 자기 부친을 죽여 도망쳐 왔으니 받아달라고 했다. 이때 첩자가 돌아와 마립간이 박제상의 처자를 감옥에 가두었다고 전했다. 미시흔은 박제상을 보고 배신자라 꾸짖었으나 사정 얘기를 듣고는 오히려 아버지처럼 모시겠다고 했다. 왜 왕은 박제상과 미사흔을 불러 신라 침공때 앞장 서도록 했다. 박제상과 미사흔은 왜의 길잡이 노릇을 하다가 증산도에 이르러 감시가 소홀해지자 미사흔 혼자 고국에 돌아가게 했다. 함께 간다면 곧 왜군의 추격을 받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사흔을 떠나보내고 박제상은 다음 날 일부러 늦잠을 잤다.
미사흔의 도피행이 발각되자 박제상은 당장 포박당하여 왜 왕 앞으로 끌려갔다. <어째서 왕자를 몰래 도망시켰느냐?> <단지 우리 마립간의 소원을 들어주려 했을 뿐이오.>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미사흔을 도망시킨 박제상의 충성심에 감동한 왜 왕은 그를 자신의 부하로 만들고자 했다. <지금까지는 계림의 신하였으나, 이제부터는 나의 신하가 되거라. 그럼 용서하겠다.> <난 계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될 수 없다. 또한 계림의 형벌을 받을지언정 왜국의 벼슬은 받지 않겠다.> 자존심이 상한 왜 왕은 반드시 박제상을 자기 신하로 만들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왜 왕은 박제상의 발바닥 가죽을 벗겨 갈대 위를 걷게 하고 물었다. <너는 어느 나라의 신하이냐?> <그대도 나는 계림의 신하다.> 쇠를 달구어 그 위를 걷게 했다. <너는 어느 나라의 신하냐?> <당연히 계림의 신하다.> 굴복시킬 수 없다고 결론 내린 왜 왕은 박제상을 불태워 죽였다.
한편 미사흔은 무사히 서라벌에 도착했고, 나중에 박제상의 죽음을 안 눌지 마립간은 그에게 대아찬 벼슬을 추증하며(나라에 공로가 있는 벼슬아치가 죽은 뒤에 벼슬을 높여주는 것), 처자식에게는 상을 내렸다. 또한 미사흔을 박제상의 딸과 혼인시켰다.
미추 이사금의 조카이자 사위인 내물이 즉위하니 17대 임금 내물 마립간이다. 내물 마립간은 남당이라는 곳에서 나라 일을 보았는데, 신하들은 관등에 따라 말뚝을 세우고 그 뒤에 섰다하여 왕을 마립간이라 불렀다. 내물 마립간은 지방 자치제를 중앙집권제로 바꾸고 나라의 힘을 모았다. 나라 근처의 독립된 작은 나라들을 합병하여 나라의 기틀을 다졌다. 중국 전진에서 발전된 문물도 받아들이고, 김씨의 왕위 세습 체제를 굳히기도 하였다. 왜의 침략이 빈번하자 고구려 광대토대왕의 도움을 청했고 대신 볼모로 고구려에 왕족 이찬 대서지의 아들 실성을 보냈다.
내물 마립간은 눌지․복호․미사흔 등 세 왕자를 남기고 402년 재위 47년 만에 승하했다. 그러나 왕위는 실성에게 돌아갔다. 그런데도 실성 마립간은 자신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 치욕을 겪게 한데 앙심을 품어 즉위 직후 왜국과 수교하려 하자 볼모를 요구하여 미사흔을 보냈다. 또 실성 11년(412) 고구려에는 내물 마립간의 아들 복호를 볼모로 보냈다. 선대왕의 세 아들 중 유일하게 서라벌에 남은 눌지가 백성들의 인심을 얻자 언제 왕위를 뺏길지 몰라 암살하려 했다. 눌지가 두 동생을 볼모로 보낸 자기를 원망할 것이라 생각한 것도 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실성 마립간은 눌지를 불러 동생도 볼 겸 고구려에 다녀오게 했다. 한편 그는 자기 심복을 불러 자기가 고구려에 있을 때 친하게 지냈던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눌지는 천하에 둘도 없는 악당이니, 보거든 무조건 죽이라.> 그러나 그가 눌지를 만나 함께 지내보니 눌지 왕자가 덕이 많고 군자의 풍모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실성의 편지를 보여주자 눌지 왕자는 서라벌로 돌아와 실성 마립간을 죽이고 417년에 즉위하니 19대 임금 눌지 마립간이다.
눌지는 아우 두 사람을 구하기 위해 서라벌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수주촌간 벌보말, 일리촌간 구리내, 이이촌간 파로를 불러 상의했다. 그들은 삽량구간 박제상을 용감하고 지모가 있다고 천거했다. 그를 부르면 눌지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 했다.
그리하여 박제상은 궁궐로 불려와 눌지 마립간의 명을 받들어 당장 고구려로 출발했다. 장수왕을 만난 박제상은 이렇게 말했다. <이웃 나라와 수교할 때는 믿음이 제일의 조건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서로 믿지 못하여 볼모를 잡는 것은, 진실로 말세의 일이옵니다.> <우리가 볼모로 잡고 있는 복호 왕자를 돌려보내 달라는 말 같은데...> <그러하옵니다. 저희 마립간께서는 왕제와 헤어진 뒤 지금까지 늘 그리워하고 계십니다. 만약 대왕께서 저희 왕자님을 돌려보내 주신다면, 그 큰 덕은 사해(사방의 바다, 온 세상)를 덮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오, 그대의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구나.> <데려가거라. 그대와 같은 충신의 청을 어찌 거절할 수 있으리.> 박제상이 눈물로 호소하자 장수왕도 감동되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눌지 2년(418) 박제상은 왕제 복호와 함께 귀국했다. 두 사람의 이산가족 상봉장면은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눌지 마립간은 큰 잔치를 열었다. 그러나 눌지 마립간은 술에 취하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두 아우를 양팔과 같이 생각하는데, 지금 단지 한 팔만 얻었으니 이를 어찌하랴!> 모두 박제상만 바라보자 그가 말하길, 고구려 왕은 덕이 있어 감동시킬 수 있었으나 왜 왕은 무지하여 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으니 말로 설득할 수 없고 오직 꾀로써 속여야만 왕자를 모셔올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박제상은 나라를 배반하고 왜국으로 달아난 것처럼 소문을 내게 했다.
박제상은 이번에도 왕자님을 구할 수는 있겠지만, 자신은 살아서 돌아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가족을 만나고 떠난다면, 마음이 변할지 몰라 집에 들르지도 않고 곧장 율포로 달려가 왜국으로 출발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박제상의 아내가 포구로 달려왔으나 이미 남편이 탄 배는 떠나고 말았다.
왜 왕을 만난 박제상은 신라의 왕이 아무 죄도 없는 자기 부친을 죽여 도망쳐 왔으니 받아달라고 했다. 이때 첩자가 돌아와 마립간이 박제상의 처자를 감옥에 가두었다고 전했다. 미시흔은 박제상을 보고 배신자라 꾸짖었으나 사정 얘기를 듣고는 오히려 아버지처럼 모시겠다고 했다. 왜 왕은 박제상과 미사흔을 불러 신라 침공때 앞장 서도록 했다. 박제상과 미사흔은 왜의 길잡이 노릇을 하다가 증산도에 이르러 감시가 소홀해지자 미사흔 혼자 고국에 돌아가게 했다. 함께 간다면 곧 왜군의 추격을 받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사흔을 떠나보내고 박제상은 다음 날 일부러 늦잠을 잤다.
미사흔의 도피행이 발각되자 박제상은 당장 포박당하여 왜 왕 앞으로 끌려갔다. <어째서 왕자를 몰래 도망시켰느냐?> <단지 우리 마립간의 소원을 들어주려 했을 뿐이오.>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미사흔을 도망시킨 박제상의 충성심에 감동한 왜 왕은 그를 자신의 부하로 만들고자 했다. <지금까지는 계림의 신하였으나, 이제부터는 나의 신하가 되거라. 그럼 용서하겠다.> <난 계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될 수 없다. 또한 계림의 형벌을 받을지언정 왜국의 벼슬은 받지 않겠다.> 자존심이 상한 왜 왕은 반드시 박제상을 자기 신하로 만들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왜 왕은 박제상의 발바닥 가죽을 벗겨 갈대 위를 걷게 하고 물었다. <너는 어느 나라의 신하이냐?> <그대도 나는 계림의 신하다.> 쇠를 달구어 그 위를 걷게 했다. <너는 어느 나라의 신하냐?> <당연히 계림의 신하다.> 굴복시킬 수 없다고 결론 내린 왜 왕은 박제상을 불태워 죽였다.
한편 미사흔은 무사히 서라벌에 도착했고, 나중에 박제상의 죽음을 안 눌지 마립간은 그에게 대아찬 벼슬을 추증하며(나라에 공로가 있는 벼슬아치가 죽은 뒤에 벼슬을 높여주는 것), 처자식에게는 상을 내렸다. 또한 미사흔을 박제상의 딸과 혼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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