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은 어떻게 죽었는가?
계백 장군은 서기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신라군의 총공격에 맞서 싸우다 전사(戰死)했습니다. 장렬하고도 철저한 파멸이었던 그의 마지막 순간은 크게 세 단계의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4전 4승, 기적적인 초반 선전
5,000명의 결사대를 이끈 계백은 10배에 달하는 김유신의 5만 신라군을 맞이하여 황산벌에 세 개의 진영을 나누어 치고 배수의 진을 쳤습니다. 이미 출정 전 가족을 제 손으로 베어 '돌아갈 곳이 없는' 백제 군사들의 기세는 무시무시했습니다. 계백의 지휘 아래 백제군은 신라군의 공세를 무려 네 번이나 연속으로 격퇴하며 4전 4승의 기적적인 전과를 올렸습니다.
2. 화랑 관창의 죽음과 전세의 역전
신라군이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사기가 바닥을 치자, 김유신은 반굴과 관창 등 어린 화랑들을 적진으로 돌격시키는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계백은 처음에 사로잡힌 어린 화랑 관창을 가엽게 여겨 목숨을 살려 돌려보냈으나, 관창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홀로 백제 진영으로 돌격해 왔습니다. 계백은 탄식하며 결국 관창의 목을 베어 그의 말안장에 묶어 신라 진영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 선택은 뜻밖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어린 화랑의 참혹한 죽음을 본 5만의 신라군은 슬픔과 분노로 눈이 뒤집혔고, 바닥을 치던 신라군의 사기가 극적으로 치솟으며 전세가 완전히 뒤집히게 되었습니다.
3. 5번째 전투, 황산벌에서의 최후
김유신은 이 기세를 몰아 5번째 총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맹렬하게 밀려드는 신라군의 인해전술 앞에, 이미 네 차례의 격전으로 지칠 대로 지친 5,000명의 백제 결사대는 점차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백제군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포위망이 좁혀지는 가운데 수락산 인근까지 밀려나며 계백 장군을 포함한 대다수의 장수와 군사들이 그 자리에서 전멸(장렬히 전사)하였습니다. 이때 살아남아 신라의 포로가 된 백제인은 좌평 충상, 달솔 상영 등 고작 2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계백은 적에게 투항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자신이 공언했던 대로 백제의 종묘사직과 운명을 함께하며 전장에서 칼을 쥔 채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가 죽고 불과 며칠 뒤 백제의 수도 사비성이 함락되면서 백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황산벌 전투에서 결사 항전한 계백 장군과 5차례에 걸친 격전의 순간은 MBC 아카이브 역사 영상을 통해 드라마로 재구성된 생생한 전투 전개 과정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