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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물연구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

작성자신동|작성시간06.07.10|조회수959 목록 댓글 0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은 버릇이 없고 방자했던 것 같다. 고려 17대 임금 인종 때 궁중에서 악귀를 쫓은 연례 행사가 끝나고 여흥이 시작되어 정중부가 종이 용 놀이를 끝내고 인종에게 인사를 올리는데 인사를 마친 그가 본래의 자리로 물러날 때 갑자기 돌개 바람이 불어와 켜놓았던 촛불들이 일시에 꺼져 버렸다. 그때 불만스런 눈길로 정중부를 바라보던 김돈중은 촛불을 가지고 가서 정중부의 수염에 불을 붙였다. 정중부가 말했다. "어떤 놈이 내 수염에 불을 질렀느야! 고얀놈!" "내가 그랬다, 이놈아! 무사 주제에 수염은 무슨 수염이냐!" "고얀놈! 젊은 놈이 감히..." "어쭈구리! 무관놈이 감히 임금님을 모시는 문관에게 손찌검을 해!" "이놈아, 가만 있는데 내가 찼느냐?" 싸움이 커지자 사람들이 뜯어 말렸다.

이를 본 사람 중 김돈중의 아버지 김부식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김부식은 시중(재상)이며 장군으로 묘청의 난을 진압한 공로로 명성이 하늘을 찌를 듯했던 그였다. 김돈중은 아버지의 빽으로 대과에 장원급제하여 왕을 모시는 내시원 관원이었다. 김부식이 정중부에게 엄한 벌을 내려달라고 간했으나 인종은 어린 태자와 함께 정중부를 싸고 돌았다.

인종이 죽고 1146년에 의종이 왕이 되었을 때 의종은 마음이 나약하고 풍류를 즐기는 취미가 있었다. 즉위한 지 몇 년이 못되어 놀이에 빠져들었다. 마음이 내키면 아무 때나 문신이나 환관을 데리고 잔치를 베풀었고, 술을 마시며, 시를 지었다. 어느 날 잔치를 베풀려고 가는 길에 김돈중이 탄 말이 요란한 북소리와 징소리에 놀라 어느 기사의 화살통을 들이받았다. 이에 화살이 튀어나와 임금 옆에 떨어졌다. 김돈중은 말썽이 날까봐 임금에게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알리지 않았다. 임금은 화살을 쏜 자를 고발하면 높은 벼슬과 상금을 준다고 선포하고 길에 황금 15근과 은병 200개를 달아놓기까지 했다. 무고한 고자질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죽었다.

나중에 인종이 죽고 즉위한 의종 23년(1168년)에 정중부가 무신난을 일으킨 후 1170년 9월 19대왕으로 명종을 세우고 김돈중에게 현상금을 걸었다. 그때 김돈중은 하인 1명을 데리고 파주 감악산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배고프구나. 먹을 걸 다오." "떨어졌는뎁쇼." "이런 맹추같은 놈! 미리미리 준비해 두어야지. 빨리 가서 먹을 것을 구해와!" "우리쒸, 꼭 때리면서 말하더라." "뭐얏! 김돈중을 잡아오는 자에겐 은 300냥, 있는 데를 알려주면 은 100냥!" 결국 김돈중은 상금에 눈이 어두운 하인의 고발로 잡혀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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