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한국인물연구

대무신왕과 모본왕(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작성자신동|작성시간06.01.21|조회수185 목록 댓글 0
고구려 유리왕의 아들 무휼태자가 대무신왕이 되었다. 대무신왕은 혼인하였으나 아들이 없자, 갈사국 왕의 손녀를 둘째 왕비로 맞아들였다. 그리고 얼마후 둘째 왕비는 아들을 낳았는데 용모가 수려하여 호동(好童)이라 이름하였다. 당시 고구려 동쪽에는 동예와 옥저라는 작은 두 나라가 있었다. 어느날 호동왕자는 옥저로 놀러갔다가 낙랑왕 최리를 만났다. 호동왕자는 최리를 따라 낙랑으로 갔다. 최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딸을 호동왕자에게 소개했다. 눈이 맞은 두 사람은 당장 혼인했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지 못한 호동왕자는 얼마후 고구려로 돌아갔다.

대무신왕은 동부여를 멸망시키고, 한나라를 쫓아냈으니 낙랑을 차지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낙랑에는 적의 침입을 알리는 자명고가 있어서 문제였다. 호동왕자는 곧 편지를 썼다. 자명고를 찢어달라고 낙랑공주에게 부탁한 것이다. 낙랑공주는 자명고를 찢는 것이 아버지와 낙랑을 배신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호동왕자와 결혼한 이상 자신은 고구려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랑에 눈이 먼 공주는 결국 자명고를 찢었고, 대무신왕 15년(32) 호동왕자는 대무신왕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낙랑을 공격했다. 찢겨진 자명고를 발견한 낙랑왕 최리는 딸을 죽였다. 호동왕자는 죽은 공주 때문에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때 첫째 왕비는 뒤늦게 아들을 낳았다. 호동왕자를 없애지 않으면 자기 아들이 왕위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 왕비는 호동왕자가 자기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고 참소했다. 나중에는 호동왕자가 자기 손을 잡으며 희롱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자기 말이 거짓이면 목숨을 끊겠다고 했다. 호동왕자는 그것이 거짓임을 알았지만 자식으로서 어머니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은 큰 불효라 생각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호동왕자가 죽자 대무신왕은 첫째 왕비의 소생인 해우를 태자로 책봉했다.

대무신왕이 죽은 후 태자 해우가 아직 어려 해색주가 즉위해서 민중왕으로 5년을 다스린후 죽자 해우가 즉위했다. 5대 임금 모본왕이다. 그는 포악했다. 일찍 왕이 될 수 있었는데 신하들이 반대했던 것을 불만스럽게 여겼다. 즉위하자 중국 한나라를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큰 소리치더니 이듬해 중국의 한나라 북평·어양·상곡·태원 등지를 공격하여 뺏었다. 만 천하에 자신의 위엄을 과시했다고 생각한 그는 나날이 포악해졌다. <내가 없을 때 흉봤지?> <절대 그런 적 없습니다.> <거짓말 마! 실토할 때까지 넌 내 의자야.> <애구, 무슨 왕이 이러냐?> 신하가 히죽 웃으면 <기분 나쁜 웃음이다. 너 지금 날 비웃었지?> <아닌데요. 감히 어떻게 대왕을 비웃겠습니까?> <넌 나의 베게다. 베게 주제에 꼼짝하기만 해봐. 두들겨 팰테니.> <산 사람이 어떻게 안 움직이죠?> <베게가 감히 왕에게 말대꾸를 하다니!>

모본왕은 또한 나라 일도 돌보지 않았다. 신하가 <폐하, 백성들의 원성이 높습니다. 제발 정사를 돌보소서>하면 잔소리 한다고 그 신하를 도망가게하고 인간 사냥을 했다. 모본왕 6년(53) 두로는 왕이 신하 죽이기를 파리 죽이듯 하는데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울었다. 왕이 백성과 나라의 원수라고 생각한 두로는 11월 어느날 칼을 감추고 왕 앞에 나아가 인사했다. 모본왕은 마침 잘 왔다며 의자대신 푹신한 너를 깔고 앉아야겠다고 말했다. 두로는 포악한 모본왕을 암살했다. 기어이 왕이 되게 하려한 결과가 이것밖에 안 되었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