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착각과 환상에 관한 문제
현대의 뇌과학이 밝혀낸 사실, "인간의 자유의지는 환상에 불과"
나 자신이 뇌과학과 인지과학 분야를 공부하면서 가장 충격적으로 접했던 바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실은 환상에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이쪽 길을 갈 것인가 저쪽 길을 갈 것인가 하고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결정에 달려 있기에 자유의지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하지만 정작 뇌과학 연구에서 밝혀진 실험 결과는 그와 전혀 다른 결론을 산출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벤자민 리벳(Benjamin Libet) 교수는 자유의지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수정시킨다. 그의 실험에 의하면, 예를 들어 우리가 여러 숫자들 중에 그 어떤 임의의 숫자를 의식상에서 자유롭게 골라 선택한다고 했을 때 우리가 의식적 선택을 내리는 결정의 순간 이전에 이미 우리 자신의 뇌 운동피질들은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쪽 방향의 선택으로 벌써 나아가고 있었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자유의지에 대한 전통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우리 자신이 뇌에 명령을 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연구 결과에선 그렇지 않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여기서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의 뇌는 한 발 더 나아가서 나의 선택 결정은 이미 뇌에서 미리 배선된 행위를 수행한 것임에도 실제상에선 이를 자유롭게 선택했다는 식으로 역추론하여 그러한 자신을 정당화하려 한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정신을 의식적으로 통제한다는 이 느낌은 언어중추를 담당하는 좌반구 뇌가 만들어낸 착각에 가깝다는 것이다. 말그대로 이미 짜여져 있는 무의식적 수행을 설명하기 위해 자유의지라는 환상을 뇌의식 속에 심어주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당연히 이 실험결과는 학계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자유의지에 대한 견해가 붕괴되어지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뇌신경과학자로도 유명한 마이클 가자니가(Michael Gazzaniga) 교수에 따르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좌반구가 만들어낸 일종의 환상에 가깝다고 얘기된다. 즉, 자유의지는 이미 잠재의식에 의해 수행되고 있는 선택과 결정을 의식상에서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서 작동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자유의지란 일종의 허구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아무렇게나 막장으로 살아야 한다는 얘긴 결코 아니다. 이 사실은 놀랍게도 오히려 인간의 자각력과 책임성이 더욱 확장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에 속한다. 이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악마나 영웅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줬던 심리실험가 필립 짐바르도(Phil Zimbardo)의 주장처럼 인간이 놓여진 상황성에까지 그 악마성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기에 사실상 이 지점에선 그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패턴에 길들여져 있는 종속된 삶
만일 위의 뇌과학적인 연구 결과가 믿어지지 않는다면, 긴급출동 SOS에서 곧잘 방영되었던 “인간 노예”의 사례를 한 번 떠올려보길 바란다. 어릴 때부터 주인집에서 일만 하면서 오랜 시간을 그렇게 길들여져 있는 사람에게 이제 주인집에 계속 남아 있길 원하는지 아니면 주인집을 떠나길 원하는지 스스로 자발적 선택을 하라고 했을 때 애초 거의 대부분은 주인집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이 자신에겐 더 좋으며 이는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과 결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는 사실이다. 자기 자신은 정말로 자발적인 결정에서 나온 것으로서 실제로 그렇게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 인간 노예의 삶의 자취들을 바깥 시선에서 관찰하고 있는 사람들과 일반 시청자들이라면, 그 결정이 그 사람의 진정한 자유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통제시스템이 내면화되어 스스로 그렇게 길들여짐으로 인해 나온 것임을 잘 알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정작 노예로 살아왔던 당사자인 본인은 말하길, 자신이 주인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자발성에 따른 결정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즉,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결정이 자신의 자유의지에서 나왔다고 여긴다.
경우는 다를 수 있겠으나 우리 자신들도 충분히 이 인간 노예처럼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인간 노예가 믿고 있었던 바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지구적 삶의 전체를 충분히 객관화하지 못할 경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 역시 우리를 길들이고 있는 수많은 시스템들이 나의 몸 안에 이미 내면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생각해보라. 왜 우리는 가정을 꾸미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며 성공 지향의 직장을 선망하고 있는 것인가?(물론 일반적인 이런 삶이라도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얘긴 결코 아니니 행여 오해가 없길 바람). 혹시라도 무언가 남들 하는 전체 시스템에 속하지 않으면 무언가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압박감에 짓눌려 있는 것인가? 패턴화된 통제시스템은 이미 나의 몸 안에 무의식화되어 있어 나의 모든 선택과 결정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의식상에서는 이를 나의 자발적 선택과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여긴다.
인간은 자유를 꿈꾸는 기계(?)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관련성을 보다 매끄럽게 연결시키려 했던 다니엘 데닛에 따르면 자유란 결과를 피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는 말하길 결국은 인간에겐 자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약된 자유 안에서의 자유가 있다는 식으로 이끈다. 물론 이런 얘긴 이미 오래전에 화이트헤드 철학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주장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제약된 자유 안에서의 자유라고 했을 때, 제약이 아닌, 제약을 넘어서는 그 진짜 자유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인가?
모방을 가능케 한다는 거울 뉴런의 발견이나 밈(Meme)이라는 새로운 복제자를 언급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기계라고 보고 있다. 물론 밈 개념을 최초로 제시했던 리처드 도킨스 역시 인간을 유전자 운반기계로 묘사한 적 있지만, 수잔 블랙모어의 경우는 한 술 더 떠서 인간은 유전자보다 더 강력한 <밈 기계(machine)>라고 언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의 자유의가 있는 게 아니라 밈 머신으로서의 인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이라는 종(種)은 결코 자유로운 존재라고 말할 수 없다. 대부분의 뇌신경과학자들 역시 인간을 꿈꾸는 기계(루돌포 이나스) 혹은 의식을 가진 기계(마이클 가자니)라는 표현을 곧잘 많이 쓰고 있긴 하다(본인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많은 부분 동의하나 다만 '기계'라는 표현에 대해선 정확한 표현이라고 보질 않는다. 이에 대해선 언젠가 따로 언급해두고자 한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정말로 없는 것인가? 필자가 추구하는 몸학에 따르면 나는 대부분의 인간을 <패턴의 노예>로 본다. 물론 이 패턴은 선행하는 과거로부터 물려받고 있는 길들여진 패턴이다. 이것이 나의 안에 무의식화되어 있는 기제로서 작동되면서 나의 의식을 점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불교문화권에서 태어난 사람은 불교를 접하는 것이 익숙할 것이며, 이들이 기독교를 믿을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그리고 그 모든 선택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기인한 선택과 결정이었다고 여길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런 점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우리 자신도 예외일 순 없다. 내가 현재로서 예수를 내 신앙의 모델로 선택한 것은 나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미 배선된 동선을 쫓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이 패턴의 노예라는 사실은 직전의 과거를 포함해 자신의 몸을 형성하는 여건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자유하는 인간 존재가 되기 위해선
그렇다면 진정한 자유의 출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이전에 없던 익숙한 것들과의 과거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창조성의 발현에 있다고 본다. 물론 형이상학적으로 따지면, 모든 존재는 기본적으로 <타자원인성>과 <자기원인성>을 함께 지니고 있듯이 <결정성>과 <창발성> 역시 존재가 지니고 있는 두 요소에 해당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논하고 있는 차원은 그러한 형이상학이 적용된 현실적 지평을 다루고 있다. 물론 그것은 정도의 차이에 따른 문제겠지만 그래도 그것은 질적인 차이를 낳는다.
내가 보기엔 현실 세계에서 90퍼센트 이상의 인간들에게선 거의 자유의지가 없이 살아간다고 여겨진다. 그저 패턴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다. 대중문화에 길들여진 사랑을 자신만의 사랑으로 착각하는 것처럼 많은 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한참이나 길들여져 있음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몸학에 따르면 정말로 진정한 의미로서의 자유의지를 지니려면 두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나는 자신의 몸 전체(신체만이 아닌 B/L/W/M/G층 모두)를 파악할 줄 아는 자각된 관찰력과 낡은 패턴의 몸에서 새로운 패턴의 몸으로 끊임없이 이행할 줄 아는 능력이다. 여기에는 잘못 길들여진 버릇이나 오래된 생활습관뿐만 아니라 자신의 편견과 가치관 그리고 낡은 형이상학적 전제에 대한 포월이 요구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역사상 진짜 자유했다고 볼 수 있는 사람으로서 꼽는 사람은 거의 몇 사람 없다고 볼 수 있으며 대표적으로는 붓다와 예수를 언급할 따름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인간이었으나 인간 존재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러한 삶을 닮고자 하는 사람의 경우는 자유하다기보다 그저 소박하게 예수와 붓다라는 밈(Meme)을 끊임없이 쫓는 불나방 같은 존재일 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 과정에서 소박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삶과는 약간의 정도 차이가 있고 약간의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현재의 자기를 제어하고 있는 그 패턴을 자각하고 관찰할 줄 알 것
그리고 그 패턴으로부터 도출되는 그 필연적 결과를
피할 수 있는 능력적 의지를 지속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
내가 보기엔 바로 그러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