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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물연구

성 베니딕트와 수도회(펌)

작성자신동|작성시간05.12.12|조회수60 목록 댓글 0
베네딕도, 게으른 영혼들을 일깨우다





새 쳔년이 밝았다. 삶에 대한 우리 인식은 100는을 넘어서기 힘들지만 인류 역사는 그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나아간다. 일상에 얽매여 있는 대부분 사람들도 때로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 긴 흐름을 보고 싶어진다. 인간이 창조한 가장 깊은 사색의 산물이 종교다. 종교는 태초부터 인간 속성의 한 부분으로 문명 형성과 발전에 핵심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세계 주요 종교의 각 교파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현장들을 찾아 그 속에서 활동했던 인물의 삶과 사상을 통해 인간과 종교, 문명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편집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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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베네딕도 성인이 수도하던 동굴 위에 세워진 '수비아코 수도원' 그는 이곳에서 3년간 수도생활을 한 뒤 제자들과 함께 수도원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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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동쪽으로 고속도로를 달린지 1시간 남짓, 목적지'수비아코'를 가리키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가톨릭 수도회의 시조' 베네딕도 성인 (480년경∼547년)이 수도생활을 시작한 곳을 찾아가는 길이다. 그는 6세기초 가톨릭에서 처음으로 공동 수도생활을 위한 규칙을 제정하고, 베네딕도 수도회를 창설해 큰 자취를 남겼다.


이탈리아 중부 로마 인근 농촌 누르시아의 부유한 집안에 태어난 베네딕도는 초등교육을 마치고 로마로 유학했다. 어머니는 베네딕도가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한때 문학에 몰두하던 그는 인생의 고뇌에 시달리다 하느님을 따르는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베네딕도는 스무살 무렵 수비아코 산중으로 들어갔다. 그는 동굴에 자리를 잡고 3년간 기도와 명상으로 은둔 수도생활을 한 뒤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시골길을 30분쯤 달려간 오르막에 수비아코 마을이 있었다. 여기서부턴 구불구불 산길이다. '사크로 스페코(거룩한 동굴)'라는 자그만 안내판을 따라 찻길이 끝나는 데까지 왔다.

차에서 내려 좁은 길을 올라가니 벼랑에 붙여 지은 흰 벽돌 건물이 보였다. 문을 들어서서 몇 발자국 걷자 곧 울퉁불퉁한 바위가 나타났다.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오른쪽에 베네딕도 성인이 기도하던 동굴을 만난다. 좁은 동굴 안에는 젊은 베네딕도 성인상이 있었고 돌로 만든 십자가와 빵 바구니가 놓여있다. 베네딕도는 산으로 들어갈 때 우연히 만났던 로맹 수사가 가끔 찾아와 바구니에 담아 밧줄로 전해주는 빵으로 살았다고 한다.

다시 아래로 더 내려갔다. 베네딕도 성인이 제자들을 가르친 곳이다. 베네딕도 성인은 은둔 수도가 최선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서 목동들을 모아 그리스도교 복음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점차 그 이름이 주변에 알려지고 가르침을 청하러 오는 이가 늘자 베네딕도는 이들을 지도하는 수도원을 만들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작은 장미밭이다. 젊은 베네딕도가 욕정을 이기려 옷을 벗고 뒹굴었다는 곳이다. 장미 가시에 찔려 피가 흐르고 고통을 겪기를 되풀이한 끝에 베네딕도는 육체의 욕망을 극복할 수 있었다. 훗날 이곳을 찾은 프란체스코는 베네딕도의 피가 묻은 장미를 자기 고향인 아시시로 옮겨 심었다고 한다.

차를 타고 내려 오면서 스콜라스티카 수도원에 들렀다. 베네딕도의 쌍둥이 누이동생 스콜라스티카는 오빠를 따라 수녀가 돼 열심히 수도생활을 했다. 베네딕도 성인은 수비아코 일대에 12개 수도원을 세웠지만 훗날 사라센 침공으로 이곳 하나만 남게 됐다. 수도원 문 위에 붙어있는 '기도하며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문구가 베네딕도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

수비아코를 떠나 베네딕도 성인이 인생 후반기를 보낸 몬테카시노로 향했다. 베네딕도는 그의 명성을 시샘한 수비아코 관할 신부와 마찰을 빚자 45살에 몬테카시노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이곳에서 그는 새로 수도원을 세웠고, 530년경 유명한 수도회 규칙을 만들면서 베네딕도 수도회를 정식으로 설립했다.

베네딕도가 활동하던 무렵은 그리스도교에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박해를 받으며 신앙을 발전시켜 나갔던 초기 그리스도교는 4세기 들어 로마 제국 공인에 이어 사실상 국교가 됨으로써 안정적 지위를 확보했지만 신앙 정신은 오히려 퇴색해갔다.

베네딕도의 수도회 창설은 교회 타락을 우려하던 사람들에게 크게 환영받았고 이후 거의 모든 가톨릭 수도자들에게 지침이 됐다. 머리말과 73장으로 구성된 베네딕도 수도규칙은 순명, 침묵, 겸손을 중시하며 기도방식, 외출, 음식-음료량처럼 세부적인 부분까지 규정하고 있다.

몬테카시노는 로마에서 나폴리로 가는 도중에 있다. 카시노시가 가까와오자 왼쪽 산정에 중세 성처럼 웅장한 수도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해발 516m에 자리잡은 수도원은 가로 100m, 세로 200m 거대한 건물에 수백개 방을 거느렸다.

몬테카시노 수도원은 원래 아폴로 신전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이 수도원을 지을 때 복판에 큰 바위덩어리가 버티고있어 사람들이 애를 먹었다고 한다. 수사들에다 마을사람까지 나서 치우려 했지만 꼼짝하지 않았다. 결국 베네딕도 성인이 바위에게 축복을 내리자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한다. 베네딕도 성인은 나병 환자와 미친 여인을 고쳐주고 죽은 아이를 살려내는 이적을 숱하게 행했다고 전해진다.

수도원 중앙에 자리잡은 대성당의 청동문을 열고 들어서니 내부가 온통 금으로 장식돼 있다. 그 모습이 너무도 화려해 수도자와 순례자들은 거부감마저 보인다고 한다. 베네딕도와 스콜라스티카는 중앙 제대 뒤쪽 아래에 함께 조용히 잠들어 있다. 박물관에는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쓰던 회칙, 제의, 모자, 십자가, 성서, 대형 찬송가 책, 손가락만한 여행용 사전, 약초 해설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돼 있다.

베네딕도 수사들은 중세 유럽사에 두드러진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탁월한 선교사로 잉글랜드와 독일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세속세계에서 학문이 잊혀가던 시기에 베네딕도 수도원에서는 고전 필사와 교육이 계속됐고 그 덕분에 서양문명은 방대한 고전 문헌을 간직할 수 있었다.

지금 몬테카시노 수도원은 원래 건물은 아니다. 2차 대전 말기인 1944년 2월 독일군이 숨어있다는 잘못된 정보로 미군이 엄청난 폭탄을 퍼붓는 바람에 잿더미가 됐고, 종전 후 옛 모습대로 복원했다. 이 폭격으로 400명가량이 사망했다고 한다. 박물관에 피폭 모습을 담은 사진과 폭탄 모형이 전시돼 당시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수도원 안을 한바퀴 둘러보고 다시 입구로 나오는데 통로 양쪽 벽에 낡은 건물 조각들이 붙어있는 게 눈에 띄었다. 수도원 건물 잔해들이다. 고색창연한 옛 건물이 산산조각난 것을 아쉬워한 수도원 사람들이 새 건물을 지으면서 그 흔적을 최대한 보존해놓은 것이다.

건물밖으로 나와 걷다 무심코 수도원을 돌아봤다. 문위 커다란 글씨가 시야에 들어온다. 'PAX(평화)!' 그 단어가 유난히 오랫동안 가슴에 울리며 여운을 남겼다.

베네딕도회는…



베네딕도회는 뒤에 만들어진 다른 수도회들이 대부분 중앙집권 형태를 택한 것과 달리 진출하는 지역마다 자치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독자적 운영 규칙을 지닌 조직을 연합회(Congregation)라고 부르고, 그 아래 수도원들이 소속돼 있다.

베네딕도회 연합회들은 '베네딕도회 총연합'을 만들어 서로 협력한다. 현재 총연합에는 21개 연합회가 가입해있다. 남자 수도자는 95년 기준 8694명. 트라피스트회, 시토회 등은 총연합에 가입하진 않았지만 베네딕도 수도 규칙을 따른다. 한국의 베네딕도회는 1909년 오딜리아 연합회가 세웠다. 1884년 해외 선교를 목적으로 출발한 오딜리아 연합회는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을 모원으로 삼아, 세계에서 20개 수도원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 베네딕도 수도원 본부는 서울, 함남 덕원, 만주 연길을 거쳐 1952년 경북 왜관에 자리잡았다.



베네딕도 수도회는 `경제적 자립'을 강조하고 자립을 위해 노동을 중시한다. 베네딕도 성인은 '게으름은 영혼의 적'이라고 갈파하며 수도자들에게 늘 바쁘게 일하라고 요구했다. 중세 시대 베네딕도 수사들은 농사일에 열심이었고 고전의 필사도 노동 연장선에서 이뤄졌다. 베네딕도 수도회는 지금도 아침 5시 일어나 오후 10시 잠들 때까지 하루 네차례 기도와 묵상, 미사, 영적 독서같은 종교 활동을 빼면 일과 대부분을 농장일, 목공으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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