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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물연구

도요토미 히데요시(6)- 황금을 가장 사랑했던 권력자

작성자신동|작성시간08.11.25|조회수297 목록 댓글 0

히데요시가 천하를 통일하자 일본 전 지역에는 금과 은이 산과 들에 넘쳐흘렀다. 조선, 오키나와, 베트남, 중국, 인도의 진기한 물건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들어왔다. 예전에는 황금을 구경조차 못했으나 하찮은 시골 사람에 이르기까지 금은을 갖지 않은 자가 없었다. 거리에는 거지와 비천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평화가 오자 상업이 번성했다.

 

일본 전역이 골드러시로 들끓었다. 당시 나가시키를 주무대로 체류했던 스페인 상인 아비라 히론이 쓴 것이다. "이곳은 금과 은의 섬이다. 곡괭이를 한번 휘두를 때마다 10타에스의 금덩이가 나올 정도다. 은광도 풍부하다. 다량의 구리와 철이 있어 아주 간단하게 채굴된다. 또한 수은과 납도 있다." 금은 확실치 않지만 17세기 초엽 당시 전 세계 은 산출량의 3분의 1에서 절반이 일본에서 나왔다. 히데요시로부터 도쿠가와, 3대째 쇼군인 이에미쓰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금은을 산출하는 자원대국이었다. 당신 일본의 구리 산출량은 세계 1위였다.

 

프란시스 자비에르는 인도의 고아에서 본국으로 보낸 편지에 일본이 은의 섬으로 불린다고 썼다. 일본은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 황금의 나라 지팡구로 소개되었다. 그로 인해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이 이어졌다. 당시 유적에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금박 기와가 출토된다. 노부나가가 최초로 사용한 금박 기와는 히데요시가 축성한 오사카 성 천수각을 화려하게 장식했고, 도요토미의 총애를 받는 다이묘들의 저택 지붕까지 장식했다.

 

오사카 성에는 저택 내부도 온통 금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히데요시의 아이디어로 지었다는 황금다실은 세상사람들은 놀라게 했다. 다다미 석장에 마루가 딸닌 크기의 이 다실은 천장, 벽, 기둥, 미닫이문의 판자와 살이 죄다 금으로 되어 있었다. 차에 쓰는 도구 역시 국자와 대나무 젓가락을 빼고는 몽땅 금 제푸이었다. 이 황금 다실은 조립식이어서 어디든 옮겨 세울 수 있었다. 서민들에게도 구경시켯다. 황금다실은 조선침략의 최전선 기지였던 나고야성으로 옮겨져 명나라 사절과 필담을 나누는 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오사카 성의 목욕탕과 변소조차 황금색으로 빛났다. 그의 침대도 쇠붙이 부분은 모두 황금이었다. 히데요시의 우마지루시인 표주박역시 금으로 번쩍 거렸다. 그는 출전할 때 금을 실은 마차를 다섯 마리 말이 끌었다. 비단에 수를 놓은 의상을 입힌 30마리의 말을 비롯하여 150마리의 말 뒤에 씩씩하게 말 위에 오른 히데요시의 의젓한 모습이 있었다. 그는 금화 300개들이 상자 10개, 500개 들이 상자 8개 등 모두 18상자, 7000개의 황금을 높이 쌓아놓고 사절을 맞았다. 자신의 권위를 황금으로 드러내 '또 다시 모반해서는 안 된다'고 위압했던 것이다. 히데요시는 황금을 가장 사랑한 권력자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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