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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물연구

[스크랩] 헬렌 켈러를 지도한 선생님 설리번(펌)

작성자신동|작성시간09.05.22|조회수255 목록 댓글 0
본명은 앤 설리번 메이시(Anne Sullivan Macy), 결혼 전 이름은 조애너 설리번(Joanna Sullivan)이라고 합니다. 애칭인 애니 설리번으로 알려져 있죠.

어려서 장님이나 다름없던 앤 설리번은 1886년 보스턴에 있는 퍼킨스 맹아학원을 졸업하고, 그 다음해 어릴 때의 병으로 시력과 청력을 잃어버린 6세 된 헬렌 켈러의 가정교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인내와 창의력을 발휘하고 수화용 알파벳을 사용하여 1개월 만에 헬렌 켈러에게 사물에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지요. 그 후 역시 장애아인 로라 듀이 브리지맨(1829~89)을 가르쳐 두 번째로 농아인 아이에게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냈습니다. 헬렌 켈러가 완전한 어휘력을 구사하고, 천재의 기질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헬렌 켈러와 설리번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설리번은 켈러와 함께 래드클리프 대학(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소재)에 다니면서, 1904년 켈러가 졸업할 때까지 그녀를 위해 책을 읽어주고 손에 강의 내용을 써주었습니다.

1905년 문학비평가인 존 앨버트 메이시와 결혼했는데, 그는 헬렌 켈러의 자서전 집필을 도와주었습니다. 1913년에는 남편과 헤어지고, 그 후에는 켈러와 함께 세계여행을 자주 하면서 강연을 했습니다.

그녀에 관한 책으로는 넬라 브래디가 쓴 전기 <앤 설리번 메이시(Anne Sullivan Macy)>(1933), 헬렌 켈러가 쓴 <선생님 : 앤 설리번 메이시(Teacher : Anne Sullivan Macy)>(1955)가 있습니다. 그리고 윌리엄 기브슨의 <기적의 교사(The Miracle Worker)>(1957)는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으로 공연되었고, 나중에 영화로도 상영되었습니다(1962). 1980년에는 조지프 P. 래시의 <헬렌과 그 스승 :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메이시의 이야기(Helen and Teacher : The Story of Helen Keller and Anne Sullivan Macy)>가 출간되었지요.

1880년 미국에서 태어난 헬렌켈러. 그녀는 세상에 태어난 지 9개월 만에 큰 병을 앓아 시력을 잃었고, 귀로는 들을 수 없게 되었으며, 입으로는 말도 할 수 없는 '삼중고'의 가련한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20세기의 기적이란 칭호까지 받는 놀랄 만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어찌보면 나무토막 같은 그녀를, 전세계를 놀라게 한 위대한 사람으로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스승인 앤 설리반입니다.
7세가 될 때까지 제멋대로 행동하던 헬렌 앞에 나타난 설리번 선생은, 사랑과 인내로써 어둠 속을 헤매던 헬렌에게 말과 글은 물론 인생의 참의미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헬렌은 설리번 선생의 도움을 받으며 열심히 노력한 끝에 20세때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설리반 선생님은 헬렌 켈러에게 늘 다음과 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 실패할 때마다 무엇인가 성취할 것이다. 네가 원하는 것은 성취하지 못할지라도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을 얻게 되리라. 시작하는 것과 실패하는 것을 계속하라.”헬렌 켈러는 자신의 불행에 꺾이지 않고 극복하여 많은 사람들을 위해 애쓰다가 1968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설리번 선생님의 죽음과 헬렌 켈러의 말년
1936년 10월20일 헬렌 켈러가 지켜보는 앞에서 설리번 선생님은 사랑하는 제자의 손을 꼭 쥐고 눈을 감았다. 이때 설리번 선생님은 70살이고, 헬렌켈러는 56살이었다.

헬렌 켈러가 7살 때 가정 교사로 자청한 뒤, 49년 동안 헬렌 켈러의 친구이자, 빛이 되고, 안내자이자 스승이 되면서 불행한 헤렌켈러를 세계의 큰 인물로 키워 주시고 눈을 감았다.

헬렌 켈러가 80살이 되는 해에 비서인 톰슨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톰슨도 45년이란 긴 세월 동안 헬렌 켈러의 눈과 손, 발이 되어주고 먼저 떠난 것이다.

그 해 미국 맹인 협회에서는 헬렌 켈러 80회 기념 사업을 벌려, '헬렌 켈러 기념 재단'을 만들고 120만 달러의 기금을 마련했다.

이 돈은 세계 여러 나라의 맹인들을 돕고 전세게에서 맹인과 벙어리들을 위해 몸 바쳐 일한 개인이나 단체를 표창하는 데 쓰기로 했다.

"자! 이제 나도 늙었다 2보다!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

80살이 넘은 헬렌 켈러는 코네티컷 주 웨스트 포트에 있는 숲속 마을에 숲 속의 집을 짓고 그 곳으로 옮겨 조용하게 지냈다.

헬렌켈러는 남부 어느 마을에서 이런 강연을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겼다.

"피부 빛깔이 검다고 마음도 까만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가치는 영혼과 정신에 따라 정해 집니다. 흑인도 하느님의 자손이고, 백인도 하느님의 자손이지요.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나는 눈 멀고 귀 먹고 벙어리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려고 이렇게 돌아 다닙니다. 누가 더 하느님의 사랑을 많이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불구의 몸으로 20세기 기적을 이룬 인간 의지의 승리자 헬렌 켈러는 1969년 6월 1일 87세 생일을 26일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헬렌 켈러의 큰 빛은 전세게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빛나고 잇다.

헬렌켈러의 생애와업적
1880 - 6월 27일, 미국 앨라배마 주 터스컴비아에서 출생.
1882(2) - 2월, 열병을 앓고 난 뒤에 눈,귀,말을 잃었다.
1886(6) - 볼티모어의 유명한 의사 크시홀름 선생님에게 눈을 보였으나, 나을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부모가 낙심하였지만 벨 박사를 소개받아 희망을 품다.
1887(7) - 3월 3일, 애니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의 가정교사로오다.
1888(8) - 5월 26일, 퍼킨스 맹아 학교에 가다.
1890(10) - 3월 26일, 보스턴에서 플러 선생님을 만나 발성법을 배우고 말을함.
1891(11) - 귀머거리 소년 토미를 위해 모금을 하다.
1893(13) - 3월, 설리번 선생님과 여행을 하여 나이아가라 폭포를 견학하고 여행에서 돌아와 모금운동을 벌여 터스컴비아에 도서관을세우다.
1894(14) - 뉴욕의 라이트 해머슨 농아 학교에입학.
1896(16) - 7월 8일, 세인트클레어에서 열린 농아 교육 협회 대회에서, 처음으로 강연을 하다. 10월, 아버지사망. 9월, 케임브리지 여학교에입학.
1899(19) - 6월 29일, 래드클리프 여자 대학에 입학.
1904(24) - 래드클리프대학졸업. 영문학에서 우등상을 받다.
1905(25) - 랜 섬에 농장을 사고 설리번 선생님과함께살다.
1918(38) - 자기가 쓴 책이 영화화되어 자신이 주연배우가됨. 어머니사망
1920(40) - 오흄 극단에 들어가 강연을 하여 그 돈을 불우한사람들에게기부
1931(51) - 2월, 템플 대학으로부터 인도박사호를받고, 9월 제 1회 세계 맹인 대회가 뉴욕에서 열려 각 대표로부터 환영인사를 하다.
1932(52) - 글래스고 대학에서 법학박사호를받다.
1936(56) - 10월 20일, 스코틀랜드에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설리번선생님사망
1964(84) - 9월 14일, 미국의 최고 훈장인 자유의 매달을 받다.
1968(88) - 6월 1일, 코네티컷 주의 웨스트포트의 집에서 세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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