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가 서문에서 언급한 이 흥미진진한 사실은 200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연구진들의 정밀한 고인류학 및 법의학적 분석을 통해 세상에 밝혀졌습니다.
1924년 처음 발견된 이래 약 80년 동안 '타웅 아기(인류학 공식 명칭: Australopithecus africanus)'의 죽음은 미스터리였습니다. 표범 같은 대형 포식자에게 물려 죽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했으나,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었는데요. 이를 완벽하게 규명해낸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결정적 단서: 현대 독수리들의 '식사 습성' 연구
남아프리카공화국 비트바테르스란트 대학교(Wits University)의 인류학자 리 버거(Lee Berger) 교수 연구진은 현대의 거대 맹금류인 '관수리(Crowned Eagle)'가 원숭이를 사냥하는 방식과 그로 인해 원숭이 뼈에 남는 흔적을 오랫동안 추적·조사했습니다.
맹금류들은 원숭이 같은 사냥감을 잡으면 눈을 멀게 하거나 뇌를 파먹기 위해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로 두개골의 '안와(눈구멍)' 안쪽과 뒷부분을 쪼고 긁어내는 독특한 버릇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뼈에 아주 특이한 긁힘과 구멍 흔적이 남게 됩니다.
2. 타웅 아기 두개골에서의 '스모킹 건' 발견
연구진은 현대 독수리가 남긴 흔적과 200만 년 전 타웅 아기의 두개골 화석을 정밀 비교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도 타웅 아기의 눈구멍(안와) 바닥과 두개골 측면에서 현대 원숭이들이 독수리에게 당했을 때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미세한 구멍과 긁힌 자국(punctures and incisions)을 발견했습니다.
이 흔적은 사자가 표범 같은 기게묘묘한 대형 고양잇과 동물들이 이빨로 물었을 때는 절대로 생길 수 없는, 오직 맹금류의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형태였습니다.
3. 사건의 재구성
이 증거들을 바탕으로 학계는 200만 년 전의 비극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했습니다.
당시 약 3~4세 정도였던 타웅 아기는 몸무게가 10~12kg 정도로 작았습니다.
당시 아프리카 하늘을 지배하던, 현대의 독수리보다 훨씬 거대했던 선사시대의 초대형 맹금류(하르파고르니스 계열이나 거대 관수리류)가 하늘에서 급강하하여 아기를 채갔습니다.
독수리는 아기를 둥지나 바위 위로 끌고 가 부리로 눈과 뇌를 공격했고, 이 과정에서 두개골 안쪽에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남긴 것입니다.
💡 도킨스가 이 이야기를 서문에 넣은 이유
제이콥 브로노우스키가 1970년대 초 《인간등정의 발자취》를 촬영할 당시에는 그가 타웅 아기의 두개골을 직접 손에 쥐고 수학적 통계 분석을 하면서도 정확한 사인(死因)까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도킨스는 과학이 고인류학, 생물학, 법의학의 융합을 통해 "과거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을 끊임없이 밝혀내는 진보적인 학문"임을 보여주기 위해, 브로노우스키 이후 새롭게 밝혀진 이 독수리 사냥 이야기를 서문에 아주 극적으로 엮어 넣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