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등정의 발자취』의 해당 본문을 다시 읽고 빈칸에 알맞은 단어를 넣고, 각 질문에 대해 간단히 답하시오.
1. 브로노우스키는 우리 주변의 모든 동물 가운데 “인간만이 자기 환경에 갇혀 있지 않은 유일한 존재”이며, “상상력, 이성, 정서적 예민성과 강인성으로 인해 인간은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변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했어. 그 결과 여러 시대를 거쳐오면서 일련의 발명을 통해 자기 환경을 개조하며 문화적 진보를 이룬 것을 그는 ‘□□의 □□’(The Ascent of Man)이라고 표현했지(16쪽 상단).
2. “500만년, 1,000만년, 심지어 5,000만 년 동안이나 변하지 않은 동물들(이를테면 곤충들)과는 달리, 인간은 그 시간 동안 전혀 몰라볼 만큼 변했다. 그렇다고 인간이 동물 중에서 가장 위엄 있는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포유류가 출현하기 오래전 공룡들이 그들보다 훨씬 당당했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동물이 갖지 않은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능력이 30억 년이 넘는 생명의 역사 속에서 인간을 유일하게 창조적인 생명체로 만들었다. 모든 동물은 존재의 흔적을 남기지만 오직 인간만이 □□의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브로노우스키는 1장 제목을 ‘□□ 아래 있는 존재’라고 함으로써 인간의 수준을 신적인 존재와 엇비슷한 높이로 높여놓았어(39쪽 하단-40쪽 4째줄). .
3. 브로노우스키가 말하는 뇌의 내적 □□(Internal Delay)'(40쪽 하단 2째줄)은 인간을 동물과 구분 짓는 가장 결정적인 '생물학적 초능력'을 뜻해. "생각의 일시정지 버튼"이라고 보면 되겠지. 쉬운 비유를 들자면, 이는 "반사" vs "선택"의 문제야. 즉 동물의 뇌는 즉각 반응하지. 배가 고프면 바로 먹고, 적을 보면 바로 도망치는 거야. 자극이 오면 바로 행동이 나가는 '직렬 회로' 같아. □□(기다림)이 거의 없어. 그러나 인간의 뇌는 내적 지연을 개입시키는 경향이 있어. 자극이 왔을 때 바로 행동하지 않고, 뇌 안에서 잠시 멈추는 시간이 있다는 말이지. 이 멈춘 시간 동안 뇌는 "이걸 먹을까 말까?", "나중에 먹는 게 이득일까?" 같은 상상과 계산을 해. 왜 □□(기다림)이 중요한지 말하며, 브로노우스키는 이 '잠시 멈춤'의 시간 동안 인간이 두 가지 엄청난 일을 한다고 말해. 그것은 먼저 □□□의 탄생을 가져왔어(53-54쪽 참조). 이것은 눈앞에 없는 것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이지. 눈앞에 없는 것을 머릿속으로 그려봅니다. "지금 이 돌을 깎으면 나중에 멋진 칼이 되겠지?" 하는 미래를 보는 힘이야. 둘째, □□의 제작이야. 즉각 반응하는 동물은 □□를 만들 시간이 없지. 하지만 인간은 '내적 ' 덕분에 당장의 본능을 누르고 정교한 □□를 만들 계획을 세워 .
3. 2장 계절의 수확에서 100만 년 동안 떠돌아다니던 인간이 유목민의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촌락 정착자가 되었다고 말했어. 즉 ‘인간 등정에서 있어서 거대한 일보는 □□에서 촌락 □□으로의 전환’이었어(66쪽). 이후 인간은 밀을 개량하여 수확하기 시작했고, 밀과 □이 하나가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 바로 인간의 □□ 활동이 시작되었어. □과 □은 □□을 만들고, 메마르고 비탈진 예리코를 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만들었어(70,71쪽)
4. 기계란 □□의 힘을 이용하는 장치야(81쪽), 농경이 생물학적 혁명의 한 부분이었다면, □□을 길들이고 그 힘을 이용하는 것은 또 다른 부분이야. 사회를 이루고 도시에 정착하면서, 인간은 낫과 쟁기, 바퀴와 도르레와 같은 도구, 또는 물레나 활선반과 같은 기계를 만들었으며, 기원전 □만년전 개를 가축화했을 것이며(81쪽 하단), 그뒤로 염소와 양을 식용가축으로 만들었어. 다시 그 뒤를 이어 야생 당나귀 같은 사역동물이 나타난다. 대략 5,000년 전에 새로운 사역동물인 □이 등장한다. □과 함께 소도 바퀴 달린 짐수레를 끌면서 일을 시작했어(83쪽). 기원전 2000년 경에 사람은 승마법을 발견했어. 당시 말을 탄다는 것은 기계를 발명한 것만큼이나 깜짝 놀랄 일이었음에 틀림없다고 브로노우스키는 생각했어. 서양에서는 유목 부족을 □□□□족(Scythian)이라 불렀는데(83쪽), 말탄 사람은 인간 이상의 것으로 보여, 이들을 본 그리스인들은 그들을 반인반수의 괴물 □□□□□의 전설을 만들어내었어(84쪽). □□□ □□이 1306년에 완성한 『세계정복자의 역사』에 그려진 몽골 기병대 역시(85쪽 사진 31 설명) 1939년 폴란드 전역을 휩쓸며 달려오던 나치의 탱크 부대에나 비길 수 있는 엄청난 두려움을 안겨주었을 거야.
5. 그리스 신전들은 곧은 모서리와 일정한 사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남부 이탈리아 포세이돈 신전은 기둥을 이층으로 하여 구조를 가볍게 했다. 그리스인들이 기하학에 대단히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을 미루어, □□를 구상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반면 로마인들은 □□□ □□를 만들어내었다. 100년경 트라야누스 황제 재위기간에 건설한 스페인 세고비아에 있는 수로(일명 ‘악마의 다리’)가 그 예야(108-110쪽).
□□의 한계를 돌파하는 구조적 혁신은 아마도 유럽 외부로부터 들여왔고, 이는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 양식의 발명이다(111쪽). 뾰족한 고딕식 □□는 랭스 성당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새로운 방식으로 공간을 지탱할 수 있었어. 벽에 하중이 걸리지 않으므로 벽을 뚫어 유리를 키울 수 있어서 멋진 스테인드글라스를 구현할 수 있었지. 이 경우 버팀벽을 활용하여, 건물이 마치 둥지처럼 □□형 지붕에 매달려 있는 듯한 전체적인 효과를 가져와. 하중을 지탱하는 골격이 외부에 있기 때문에 건물 내부는 개방된다(112쪽). 이것이 결국 로마의 팔레체토 델로 스포르트와 같은 건축물(운동경기장)에서 돔 형식으로 발전하는데, 이는 일종의 회전식(회전하는) □□야(120쪽 사진 46).
철학의 상투적인 말로는, 과학은 분석이고, 예술은 종합이라고 한다. 그러나 브로노우스키에 의하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상상은 자연의 □□에서 출발한다. 아치, 버팀벽, 돔의 창조는 모두 자연의 결을 살피고 □□한데서 나왔다(119쪽). 발견은 분석과 종합의 이중적 관계이다. 분석으로는 거기 있는 것을 탐색하지만 그다음은 종합으로서, 자연이 제시하는 한계나 골격을 초월하는 □□적 정신으로 부분들을 결합하여 한 형태를 만든다(121쪽).
6. 인간 등정에 있어 가장 힘찬 추진력은 자신의 □□에 대한 인간의 쾌감이다. 인간은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고 싶어하며, 그 일을 잘한 다음에는 더 잘하려고한다. 우리는 인간의 □□에서 그것을 본다. 인간이 조각하고 건설하는 재능, 사랑을 쏟아붓는 보살핌, 경쾌함, 오만함에서 그것을 보게 된다. 인류의 기념비들은 군왕들과 종교, 영웅들과 신조를 찬양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생각되어왔으나, 궁극적으로 찬미되는 것은 그것을 건설한 □□이다(124쪽). 그러므로 모든 문명의 위대한 신전 건축은 개인이 곧 □□와 하나가 됨을 표현한다. 즉 기념물은 건설한 사람이 죽더라도 인간의 생명은 개인을 초월하여 흐르는 영속성을 갖고 있다는 개념을 확립해준다(125쪽).
7. 순수 금속은 연하고 여러 가지 □□□을 섞을 때 그 재료는 훨씬 강해진다(135쪽). 구리에 대하여 5-20% 사이의 어떤 비율로든 □□을 가하면 청동을 만들 수 있다. 중국 상 왕조의 가장 우수한 청동기는 □□ 비율 15% 수준으로서, 주물의 예리함은 완벽하다. 그 비율로 합성된 청동은 구리보다 거의 3배나 단단하다(136쪽). 구리가 합금으로 성년기를 맞이하듯, 철은 강철이라는 합금으로 성년기를 맞이한다. 순수한 철은 생각보다 무르고 연하다. 이 철에 1% 이하의 소량의 탄소를 합성하면 강철이 된다. 일본도 도검 장인 게츠가 만드는 장검은 쇠막대기를 15회나 접게 된다. 이렇게 하면 강철이 켜의 수는 2의 15승이 되고, 따라서 그 켜는 3만개가 넘는다. 이 켜 하나하나는 성질이 다른 다음 켜와 묶여야 한다. 이 작업은 고무의 □□□을 유리의 □□□과 결합시키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장검은 본질적으로 이 두 가지 성질이 무한히 겹쳐진 샌드위치다(140-141쪽). 장검의 최종 단계는 담금질이다. 담금질의 절정은 □□시키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칼은 단단해지고 칼 안의 서로 다른 성질은 고정되게 된다(141쪽). 금은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보편적인 상품이다. 금은 희소하기 때문에 귀중하지만, 세계의 연금술사들에게는 금이 □□하지 않기 때문에 중요했다. 연금술사들은 황금을 만들기 위해 탐구했다. 황금은 □□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147쪽).
8. 1493년 취리히에서 태어난 □□□□□□(Paracelsus)는 연금술사이기도 하지만, 쉬지 않고 도전한 학구파였으며, 산업병을 인정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당시 의사는 아주 오래된 책을 읽어주는 유식한 학자이며 의사가 시키는 대로 조수가 불쌍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전통을 버렸다. “내과의가 될 수 없는 외과의는 있을 수 없다. 외과의가 될 수 없는 내과의는 그려놓은 원숭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자신의 저서에 밝혔다(151쪽). 그는 1527년 바젤의 위대한 프로테스탄트이며 인문주의자이고,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인쇄업자요 학자들의 후원자였던 요한 프로베니우스(Johann Frobenius)가 다리에 생긴 심한 괴저로 중태에 빠져 바젤의 모든 의사는 의학책의 처방에 따라 한 목소리로 그의 다리를 절단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는 환자의 방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화학 약물과 새로운 치료법으로 프로베니우스의 다리를 고쳤다.
그 후 그는 바젤 의대의 교수로 초빙이 되었다. 그는 1527년 바젤의 성 요한 축제일, 바젤 성당 앞에서 "□□□ 화형식"을 벌였다(154쪽). 당시 의과대학에서는 1,000년도 더 된 옛날 그리스·로마 시대의 책(갈레노스나 아비센나의 유서 깊은 의학 저서들)을 달달 외우는 것이 공부의 전부였다. 지금도 의대에서는 엄청난 내용을 달달 외우는 것이 공부의 거의 전부다. "책에 다리를 자르라고 써있으면 잘라야 한다!"고 믿던 시대이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파라켈수스는 이 낡은 지식들이 환자를 죽인다고 생각했다. 그는 학생들을 학교 마당으로 불러 모았다. 그는 불을 지피더니, 당시 의사들이 성경처럼 모시던 두꺼운 의학 교과서들을 통째로 불 속에 던져버렸다! 일종의 충격 요법이다. 그는 이 때 한 마디를 했다. "너희가 믿는 이 책들은 먼지만 쌓인 쓰레기다! 진정한 의학은 책 속에 있는 게 아니라, 환자의 침대 곁과 자연 속에 있다!“
그는 여전히 불을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떠난 지 200년 뒤, 1730년에도 화학자들은플로지스톤 이론을 내놓으며 불의 물질 이론을 뒷받침하려 했다. 그러나 플로지스톤이라는 물질은 없다. 생명이 물질이 아니듯이 불도 물질이 아니다. 불은 □▢와 ▢▢의 과정이며, 그를 통해 물질 원소들이 새로운 결합을 이루게 된다. 불이 하나의 과정 또는 작용임이 이해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화학작용의 본질도 이해되었다.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과학은 과거를 되돌아 보아서는 안 된다. 과학에는 결코 ▢▢시대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사후 250년이 다시 걸려서야 새로운 원소인 산소를 발견하게 되었다(155쪽).
9. 불을 연구하지 않고 최초로 공기를 연구한 인물은 ▢▢▢▢▢(Joseph Priestly)이다. 그는 산소를 처음 발견했지만, 그것이 산소인지 몰랐다. 이를 플리지스톤이 빠진 공기라고 표현했다. 그는 대학에 초빙되어 라틴어나 그리스어가 아닌 독일어나 불어와 같은 실용적 현대어를 최초로 가르쳤다. 그는 전기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다. 그는 녹색식물이 햇빛 속에서 산소를 품어내어 동물들이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처음 발견했어. 버밍엄에 있는 그의 집과 실험실은 바스티유 습격 2주년 기념일에 왕의 편에 선 시민들에 의해 파괴되고 불태워졌지. 그가 ▢▢혁명이나 ▢▢▢혁명을 지지했기 때문이야. 그는 미국에 갔지만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그의 실험실 유품의 대부분은 미국 워싱턴시의 스미소니언 연구소에 있어(155-156쪽).
10. 위의 두 사람은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 등정은 매력적인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무한한 ▢▢▢과 약간의 ▢▢▢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닌 사람에 의해서 가능해진다(156쪽).
11. 그러나 ▢▢▢▢▢가 발견한 원소가 산소라는 사실을 알려준 인물은 ▢▢▢▢▢(A.L. Lavoisier)야. 두 사람은 반복하여 붉은 수은 산화물에 돋보기(당시는 볼록렌즈가 대유행하던 시기임)로 햇빛을 모아 열을 가했을 때 나오는 기체를 모았어. 그리고 이 기체 속에 쥐를 넣었더니 평소보다 훨씬 활발하게 움직이고 오래 산다는 것을 발견했어. 산소의 발견에 의미를 부여한 이 사람은 프랑스혁명 중에 죽었어(158쪽).
12. 두 사람의 실험은 수은과 산소가 결합했다가 분해함으로써 한 물질의 본체를 드러내게 했어. 불을 연구할 때 인간은 처음에 구리 공장(工匠)의 원시적 공정과 연금술사들의 마술적인 추리에서 시작하여, 현대과학의 가장 강력한 개념, 즉 원자론으로 전진하게 되었지. 이것은 터무니 없는 희망처럼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길, "인간이 ▢ 속을 걸어가는 길은 직선이다"라고 브로노우스키는 말했어. 이 말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아름답고도 날카로운 문장 중 하나야. 이 말은 "앞만 보고 달려가는 화살" 혹은 "한 번 가면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길"이라고 설명할 수 있어(159쪽).
자연의 시간(동물이나 계절)은 '원(Circle)'을 그리며 반복돼.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겨울이 오면 잠을 자고, 다음 해에 다시 똑같은 봄이 오지. 동물들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방식으로 집을 짓고 산다. 하지만 인간은 달라. 인간이 '불(지식과 기술)'을 발견하고 사용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인류의 역사는 '직선(Straight Line)'이 되었어. 한 방향으로, 즉 앞으로만 ㄴ아간다. 도구를 만들 줄 알게 된 인간은 다시 원숭이처럼 맨손으로 사냥하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어. 또 이는 쌓여가는 거야. 아버지가 배운 기술 위에 아들의 지식이 더해져 계단처럼 위로, 앞으로만 나아간다. 그런데 왜 "▢ 속"을 걸어간다고 했을까? '▢'은 인류에게 따뜻함과 음식을 주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 있는 위험한 힘이기도 해. 지식을 얻는다는 것은 그만큼 큰 책임이 따른다는 뜻이야. 예를 들면 원자력을 발견했지만 결국 원자폭탄의 위험도 생겼지.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인간의 멈출 수 없는 운명이야. 뜨겁고 힘들더라도 인간은 지식을 향한 행진을 멈출 수 없어. 그게 바로 인간의 운명이기 때문이야.
13. 현대적 ▢▢론을 내놓은 사람은 영국 컴벌랜드라는 도시에서 수동식 직기를 다루던 직공의 아들 존 ▢▢(John Dalton)이야. 돌턴 이전에도 ▢▢라는 개념은 있었지만, 돌턴은 그것을 과학적으로 정리했어. 모든 물질은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라는 알갱이로 되어 있고, 같은 종류의 ▢▢는 크기와 무게가 모두 똑같다는 점을 밝혀낸 것이 핵심이지. 또 배수비례의 법칙을 발견했어. 화합물은 정해진 비율이 있다는 거지. 예를 들어 물은 수소 2개와 산소 1개가 필요해. 물질이 결합할 때는 항상 일정한 정수 비율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거지. 연금술처럼 대충 섞는 게 아니라, 자연에는 정확한 수학적 규칙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지. 그는 최초의 ▢▢ 기호와 원자량 표를 작성했어. 그는 각 원소마다 고유의 기호를 만들고, 그것들의 상대적인 무게를 표로 정리했어. 이것이 발전해 오늘날 과학실에 붙어 있는 '▢▢ 주기율표'의 조상이 되었어.
그는 색맹이었는데, 아주 규칙적인 사람이었어. 그는 매주 목요일 오후에는 도보로 맨체스터 교외로 나가 공놀이를 했어. 57년 동안 날마다 걸어서 맨체스터를 빠져나가 강수량, 기온을 측정하는 단조로운 일을 반복하기도 했어. 방대한 자료에서 신통한 것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지만, 한 가지 탐구 작업에 매달려, 원자의 무게에 대한 거의 어린애 같은 의문으로부터 현대의 원자 이론이 도출되었어. 그것이 ▢▢의 본질이지. 즉 관계없는 의문(질문)을 제기하고도 적절한 해답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163쪽).
14. 사모스는 소아시아의 해안에서 불과 1.6km 지점에 있는 섬이다. 기원전 580년경 여기서 수학의 최고 천재요 창시자인 ▢▢▢▢▢가 태어났다. 그는 자연에 조화가 있고, 자연의 다양성에는 통일성이 있으며, 자연은 언어를 지니고 있고, ▢▢는 자연의 언어라고 그는 말했다(166쪽). 그는 음악의 화음과 수학 간의 기본적인 관계를 발견했다. 그는 화음은 정수로 현을 정확히 등분한 소리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천체의 궤도도 수학적이며 음악적이라고 보았다. 자신의 이름으로 전해진 위대한 정리를 증명하고 나서 영감을 준 뮤즈신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100마리의 ▢▢를 바쳤다. 그것은 긍지인 동시에 겸손의 몸짓이었다. 그는 철학자였고 추종자들에게 종교지도자이기도 했다(173쪽).
15. ▢▢▢▢의 기하학 원론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경 다음으로 많이 번역되고 팔린 책이다. ▢▢▢▢▢ 정리가 서양에 소개된 것은 ▢▢▢▢를 통해서였다. 그의 학문이 정연한 체계를 갖추게 된 것은 나일 강변의 도시 ▢▢▢▢▢에서였다(174쪽). 천체의 비밀은 기원후 150년경 역시 이 도시에서 활약하던 그리스인 클라우디우스 ▢▢▢▢▢가 읽어냈다. 그리스인들은 운동의 완전한 형태는 원이라 믿었고, 이에 따라 그는 행성들이 원운동을 하게 만들고, 원들이 다시 다른 원들 위에서 운동하게 만들어놓았다(177쪽). 별보다는 인체가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할 가능성을 끌 수 있는 후보였다. 그러나 의학을 앞질러 천문학이 발달한 이유는 별이 운동을 ▢▢적으로 계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생물학의 진보도 ▢▢적 모형으로 그 법칙을 형식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178쪽).
16. 오랫동안 회중시계와 천문관측의 역할을 한 ▢▢▢▢▢는 그리스인이 원리를 생각해서 처음 만들었고, 무슬림이 이를 배우고 이어받아 더 멋지게 개량했어. 아스트롤라베는 위도, 해돋이, 해넘이, 기도 시간과 메카 순례자들의 방향 지시를 가능케 하는 정교한 계산 방식을 제공해주었어(179-180쪽). 우리가 수학에서 사용하는 숫자는 아라비아에서 무슬림이 만들었어. 십진법이지. 0도 무슬림이 만들어낸 숫자지. 영어로 영을 뜻하는 제로(zero)나 사이퍼(cipher)도 아랍어야. 대수학(Algebra), 달력(Almanae), 천장(Zenith)과 그 밖의 10여개 수학과 천문학 용어 역시 아랍어야. 스페인 남부에 있는 ▢▢▢▢는 무슬림 궁전인데 브로노우스키는 제5장에서 이 궁전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돌로 만든 ▢▢ 책'이라고 극찬한다.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궁전이 완전히 다르게 보일 거다. 이 궁전은 아랍 문명이 유럽에 남긴 마지막이요 가장 절묘한 기념이요 건축물이다. 알람브라 궁전 벽면의 복잡한 타일 문양들을 자세히 보면, 빈틈없이 똑같은 모양이 반복된다. 이것은 수학의 꽃, ▢▢▢▢▢이다. 무슬림 예술가들은 '사이퍼(0)'를 다루던 그 수학 실력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칭의 법칙을 이 벽에 새겨 넣었다. 이 궁전은 지상 위의 천국이었다. 무슬림들에게 물은 생명이자 지혜였다. 그래서 궁전 곳곳에 물길을 내고 정원을 꾸몄다. ▢▢▢▢▢로 별을 읽고, 사이퍼로 숫자를 다루던 그들의 지혜가 이 붉은 성벽 안에 모두 녹아 있다. 아랍문명권에서 ▢▢▢와 ▢▢▢는 하나였다(182-184쪽). 이차원 공간의 대칭가능성을 철저히 검증했다는 사실이 아랍 수학의 위대한 업적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어떠한 변화도 추구하지 않았다. 생각에 새로운 것이 없었으므로, 수학에도 새로운 것이 없었으며, 인간 등정은 다른 원동력으로 전진하게 되었다(189쪽).
17. 기독교가 스페인을 탈환하려고 돌아왔을 때, 그 전선에는 투쟁의 흥분이 들끓고 있었다. 여기서 무어인들과 기독교도, 그리고 유대인들마저 뒤섞여 서로 다른 믿음들이 어우러진 비범한 문화를 창조하였다. 1085년에 이 혼합문화의 중심은 얼마 동안 ▢▢▢ 시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곳은 아랍인들이 그리스, 중동, 그리고 아시아로부터 모아온 온갖 고전을 기독교 지배하의 유럽으로 끌어들인 지성의 수입항이었다. 우리는 이탈리아를 르네상스의 발상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르네상스는 12세기 스페인에서 잉태되었고, ▢▢▢의 유명한 번역 학교를 통해 표현될 수 있다. 그곳에서 고대 문헌들이 그리스어(유럽인들이 이미 잊어버렸던)에서아랍어와 히브리어로, 다시 라틴어로 번역되었다(189-190쪽).
18. 오늘날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을 처음으로 정립한 이슬람의 천재 과학자는 ▢▢▢(Alhazen, 이븐 알 하이탐, c. 965-1040)이다. 그는 "눈에서 빛이 나가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서 반사된 빛이 눈으로 들어오는 것"임을 최초로 증명했다. 그의 '광선 원뿔(Cone of Rays)' 개념을 살펴보자. 그는 물체의 모든 점에서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고 생각했다. 그중에서 우리 눈동자라는 작은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줄기들을 모아보니, 마치 아이스크림 콘(원뿔) 같은 모양이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즉, 원뿔의 꼭짓점은 우리 눈의 중심이며, 원뿔의 밑면은 우리가 보고 있는 물체의 표면이다.
▢▢▢은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가까운 것은 크게' 그리는 기술이다. 그의 원뿔 개념을 도입하면 이것이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설명된다. 가까운 물체는 눈과 가깝기 때문에 원뿔이 급격하게 퍼지며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우리 눈에 맺히는 상이 커진다. 먼 물체는 눈과 멀기 때문에 원뿔이 아주 뾰족하고 가늘게 들어온다. 그래서 우리 눈에는 작게 보인다. 그의 광선 원뿔 개념은 '▢▢▢'의 기초가 된다. ▢▢▢은 이제 수학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새로운 관점이다(191-192쪽).
▢▢▢은 15세기에 북부 이탈리아, 피렌체와 베네치아이 미술로 옮겨갔다. ▢▢▢의 『광학대전』 번역 원고에는 로렌초 기베르티의 주석이 달려 있는데, 그는 피렌체의 세례장 문에 원근법을 조각에 최초로 적용한 유명한 청동 조각상을 제작했다. 당시는 ▢▢▢학파가 형성될 만큼 많은 사람이 이에 관심을 가졌다. 비토레 ▢▢▢▢(Vittore Carpaccio)가 그린 『성녀 우르술라의 꿈』(The Dream of St. Ursula)은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이 아주 정교하게 적용된 대표적인 회화다. 원근법을 통해 우리는 그 작품과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움직임, 화가의 눈의 움직임을 느낀다. 그러나 그 100년전 1350년에 그려진 피렌체의 프레스코 벽화에는 원근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화가는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기록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관점, 영원한 ▢▢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고 본 것이다(192-193쪽). ▢▢▢은 화살 같이 지나가는 한 순간, 공간적이기보다는 시간적인 한 관점이다. 이 모두가 치밀하고 수학적인 수단으로 이루어졌다. 알브레히트 ▢▢는 ▢▢▢의 비법을 배우고자 1506년 이탈리아로 갔다. ▢▢▢은 하나의 관점이 아니다. 화가에게 있어 그것은 활동적이고 계속적인 작업이다(194쪽). 뒤러의 작품 <동방박사의 경배>(195쪽) 한복판에 있는 성배는 ▢▢▢ 교육의 시험 자료였다. 우첼로(Paulo Uccello)의 성배에 관한 분석을 보라. 화가의 눈은 회전대처럼 작용하면서 성배의 변화하는 형태와 둥근 모양이 늘어나 타원으로 변하는 것을 따라가며 탐색했고, 시간의 한순간을 공간의 한 흔적으로 잡아내었다(196쪽).
19. 물체의 변화하는 운동을 분석하는 작업은 그리스와 이슬람의 정신세계에서는 몹시 이질적이었다. 그들은 항상 변화하지 않는 정태적인 대상, 완전한 질서 위에 선 무시간적인 세계를 추구했다. 그들에게 가장 완전한 형태는 ▢이었다. 운동은 당연히 원형으로 매끈하고도 등속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천체의 조화였다(196쪽). 그러나 요하네스 케플러는 1600년 이후 행성의 운동은 원형이 아니며 등속도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일종의 타원이고, 그를 따라 행성은 다양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니 정태적 패턴의 낡은 수학이나 등속도 운동의 수학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운동을 규정하고 다루려면 새로운 수학이 필요하다. ▢▢운동의 수학은 17세기 말을 장식한 최고의 두 지성, 아이작 ▢▢과 고트프리히 빌헬름 ▢▢▢▢▢에 의해 고안되었다(197쪽). 이제 수학은 ▢▢▢인 사유양식으로 전환되고, 인간 등정에 있어 중대한 정신적인 한 걸음이 되었다. 자연법칙은 운동의 법칙이 되었고, 자연 자체가 일련이 정태적인 테두리가 아니라 변화하고 움직이는 과정으로 전환되어 이해되기 시작한 것이다(1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