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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훅과의 악연

작성자신동|작성시간26.06.19|조회수1 목록 댓글 0

뉴턴은 당시 영국의 언론, 신문 등에 의해 조롱을 당했다. 그 실상을 알려줘

 

뉴턴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당시 언론(당시의 소책자와 학술지)의 반응에 대해 궁금해하시는군요.

 

뉴턴이 당대의 미디어나 대중으로부터 조롱당했다는 이야기는, 현대적인 의미의 '언론'과 '뉴스'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조금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뉴턴은 당시 영국 사회에서 조롱받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영국 과학계와 정치계의 정점에 있던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실상과 그가 겪었던 '공격'들의 본질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언론'과 '대중'의 성격

 

18세기 초반에는 현대적인 대중 매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소책자(Pamphlet)'와 '학술지(예: 왕립학회 회보)'가 여론을 형성하는 주된 수단이었습니다. 뉴턴을 공격했던 것들은 '대중적 조롱'이라기보다 당대 지식인과 과학자들 사이의 치열하고 때로는 악의적인 논쟁이었습니다.

 

2. 뉴턴이 겪었던 '공격'의 실체

 

뉴턴이 비판을 받았던 상황들은 대개 그가 겪었던 유명한 학문적 경쟁 관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로버트 훅(Robert Hooke)과의 악연: 뉴턴의 가장 대표적인 라이벌이었습니다. 훅은 뉴턴의 광학 이론과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박하며 "내가 먼저 아이디어를 냈다"고 주장했습니다. 훅은 당시 왕립학회의 핵심 인물이었기에, 그의 공격은 뉴턴에게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이는 대중의 조롱이라기보다 과학적 우선권(Priority)을 둘러싼 권력 투쟁에 가까웠습니다.

  • 라이프니츠(Leibniz)와의 미적분 논쟁: 아마 뉴턴이 가장 고통받았던 사건일 것입니다. 누가 먼저 미적분을 발명했느냐를 두고 유럽 전역의 수학자들과 벌인 이 논쟁은, 단순한 학문적 토론을 넘어 영국과 유럽 대륙의 자존심 싸움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뉴턴은 왕립학회를 통해 라이프니츠를 '표절자'로 몰아세우는 등 언론과 학술지를 동원한 여론전을 직접 주도했습니다.

3. 왜 그가 '조롱당했다'는 이미지가 있을까?

 

뉴턴이 조롱당했다기보다, 뉴턴 자체가 매우 독선적이고 편집증적인 성향을 보였기 때문에 그가 적을 많이 만들었다는 것이 정확한 평가에 가깝습니다.

  • 성격적 결함: 그는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왕립학회 회장으로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반대파를 완전히 매장하려 했으며, 이 과정에서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당연히 컸습니다.

  • 화폐개혁 당시의 활동: 뉴턴은 말년에 조폐국장(Master of the Mint)으로 일하며 위조지폐범을 잡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냉혹하고 집요한 모습은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에게는 '철두철미한 인물'이었겠지만, 반대파에게는 '잔인한 권력자'로 비쳐졌고, 이에 대한 풍자나 비판은 분명 존재했습니다.

요약하자면

 

뉴턴은 당대에 조롱당하는 희생양이 아니라, 과학계의 권력을 쥐고 경쟁자들을 압도했던 거인이었습니다. 그가 겪은 비판들은 대중의 조롱이 아니라, 그가 구축한 거대한 영향력에 도전했던 동료 과학자들과의 격렬한 전쟁이었습니다.

어쩌면 뉴턴은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이론과 권위를 지키기 위해 당대의 출판 매체(소책자 등)를 활용하여 논쟁을 주도했던 '여론전의 강자'였다고 보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가깝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뉴턴을 둘러싼 논쟁들은 브로노우스키가 강조했던 '과학은 고립된 진리가 아니라 인간의 치열한 소통과 투쟁의 산물'이라는 관점을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부하시면서 이런 라이벌 관계들이 뉴턴의 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시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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