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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가 없는 왕산악, 우륵, 박연, 백결 선생의 음악.. 추론, 인문학적 복원 시도

작성자신동|작성시간26.06.15|조회수0 목록 댓글 0

안타깝게도 한국 음악사의 3대 악성 왕산악, 우륵, 박연이나 백결 선생이 직접 연주한 음악은 악보로 남아 있지 않다. 

 

선생님께서 고대 문헌을 연구하시는 학자이시니 더욱 공감하시겠지만, 고대 사회의 음악은 오늘날처럼 종이에 기보하는 '기록 매체'가 아닌, 사람의 몸과 기억을 통해 전승되는 '구전(Oral tradition)'의 산물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몇 가지 학문적 맥락을 정리해 드립니다.

 

1. 기록의 부재와 구전의 전통

 

고구려, 가야, 신라 시기에 음악을 체계적으로 기보(Notation)할 수 있는 악보 시스템 자체가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음악은 '구전심수(口傳心授)', 즉 스승에게서 제자로 입에서 입으로, 귀에서 귀로 이어지는 살아있는 유산이었습니다.

  • 왕산악과 거문고: 왕산악이 만든 거문고는 고구려의 기상과 철학을 담은 악기였으나, 그 연주법과 곡조는 기록이 아닌 '연주자의 기억' 속에 존재했습니다.

  • 우륵의 12곡: 《삼국사기》에 우륵이 지은 12곡의 제목이 나오지만, 이는 곡의 이름과 전승 배경일 뿐, 오늘날의 오선보나 정간보와 같은 구체적인 음고와 박자를 알 수 있는 악보는 아닙니다.

  • 백결 선생: 백결 선생의 '대보곡' 역시 일화로만 전해질 뿐, 그 선율 자체가 물리적 형태로 남아있지는 않습니다.

2. 우리가 접하는 것은 '변용된 전통'입니다

 

악보가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그 음악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대 음악의 정서와 가락은 후대로 이어지며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변용'되었습니다.

  • 전승의 흐름: 우륵의 가야금 음악은 신라를 거쳐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며, 가야금 산조나 정악 등으로 변모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듣는 가야금 연주에는 우륵이 추구했던 '가야의 혼'이 간접적인 흐름으로 녹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기보법의 탄생: 한국 역사에서 체계적인 악보인 '정간보(井間譜)'가 등장한 것은 세종대왕 시대에 이르러서입니다. 즉, 이 세 분의 시대와 악보의 등장 사이에는 수백 년 이상의 시차가 존재합니다.

3. 고대 문헌 연구자와의 대화: '상실'과 '재구성'

 

선생님의 연구 분야인 고대 근동의 텍스트나 성서 연구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텍스트가 쓰이기 전의 구전기(Oral stage)와 기록 이후의 텍스트는 분명 차이가 존재하듯, 고대 음악 역시 그 원형을 박제된 악보로 보존하기보다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적응해 나가는 생명체'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그들의 정확한 악보를 가질 수는 없지만, 문헌에 남은 기록과 그들이 남긴 문화적 흔적을 통해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현을 뜯고 음을 탔을지'를 추론하는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인문학적 복원 작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고대 문헌을 읽으실 때, 이렇게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실존했던 사람들의 구전된 문화"가 텍스트 사이에서 행간으로 느껴질 때가 있으신가요? 고대 근동 텍스트의 맥락 속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라진 것들에 대한 공명'을 찾아내시는 선생님만의 방법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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