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도 삶의 완성이 음악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했어. 그의 거문고 연주도 악보가 없어서, 어떤 곡을 연주했는지 알 수 없겠지?
선생님의 통찰이 참으로 깊습니다. 논어(論語) 태백편에서 공자가 "시에서 시작하여, 예로 서고, 음악에서 완성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고 말한 대목은 인류 지성사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최고의 위상을 보여주는 문장이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공자가 연주했던 곡의 '악보(Sheet Music)'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연주했고,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서는 고대 문헌들이 매우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합니다. 학문적으로 고찰해 볼 만한 몇 가지 지점을 짚어보겠습니다.
1. 악보가 아닌 '정신'의 전승 (The Transmission of Spirit)
공자 시대에 음악은 종이 위의 기호가 아니라, '연주자의 인격 그 자체'였습니다. 공자는 단순히 기술적인 악보를 외운 것이 아니라, 곡에 담긴 '성인(聖人)의 마음'을 체득하는 것을 연주로 보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일화가 '사양자(師襄子)에게 거문고를 배우는 장면'입니다. 공자는 사양자에게 곡을 배울 때, 며칠 동안 한 곡만 계속 반복했습니다. 스승이 "이제 충분하니 다른 곡으로 넘어가자"고 했지만, 공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곡조는 익혔으나, 아직 그 **수(數)**를 체득하지 못했습니다." (곡의 기교는 배웠지만, 이 음악이 담고 있는 철학적 이치는 아직 부족합니다.)
조금 더 지나자 스승이 "이제 마음을 얻었으니 다음 곡으로 넘어가자"고 했지만, 공자는 다시 답합니다.
"아직 그 **지(志)**를 체득하지 못했습니다." (이 곡을 지은 사람이 어떤 뜻을 품고 이 곡을 썼는지, 그 인격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공자가 그 곡을 지은 사람의 성품(주나라 문왕의 모습)을 완전히 파악하고 연주하자, 사양자는 공자 앞에 절을 하며 "이것이야말로 성인의 음악이다"라고 탄복합니다. 여기서 악보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공자에게 음악은 음표의 나열이 아니라, 작곡가의 인격과 나를 일치시키는 수행이었기 때문입니다.
2. 무엇을 연주했는가?
비록 오선보나 정간보는 없지만, 공자가 즐겨 연주하고 노래했던 음악적 실체는 있습니다.
시경(詩經)의 305편: 공자는 시경에 실린 시들을 거문고(금, 琴)에 맞춰 노래했습니다. 시경은 당시의 민중의 노래와 왕실의 제례악이 망라된 문헌입니다. 즉, 공자의 연주는 '당대 인문학적 총체'를 노래와 선율로 재현하는 행위였습니다.
성왕(聖王)들의 곡: 앞서 언급한 주나라 문왕(文王)을 기리는 곡처럼, 고대 성왕들의 치세와 덕을 기리는 고전적 레퍼토리를 주로 연주했습니다. 이는 과거의 지혜를 오늘로 불러오는 '기억의 재현(Remembrance)' 작업이었습니다.
3. '완성(成)'으로서의 음악: 철학적 의미
선생님께서도 연구하시는 고대 문헌의 맥락에서 볼 때, 공자가 말한 '음악으로의 완성'은 매우 형이상학적입니다.
조화(Harmony): 예(禮)가 사회적 관계를 규정하는 '구별'과 '질서'라면, 음악(樂)은 그 구별을 넘어 만물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하는 '조화'와 '통합'입니다.
감정의 정화: 공자는 음악이 인간의 거친 감정을 다스리고, 인(仁)이라는 본성을 밖으로 표출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고 보았습니다.
선생님을 위한 사유의 확장
악보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어쩌면 '음악의 본질이 악보라는 물질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는 고대인들의 지혜일지도 모릅니다.
선생님께서 고대 근동의 문헌을 연구하시고, 또 예술 활동을 하시는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만약 오늘날 우리가 완벽한 악보를 발견한다면, 우리는 그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요?
공자가 곡의 기교(數)를 넘어 그 뜻(志)을 좇았던 것처럼, 고대 문헌 연구 역시 텍스트라는 '악보'를 넘어 그 문헌이 쓰일 당시 저자가 가졌던 '인간적 갈망'과 '시대적 숨결'을 찾아내는 작업이 아닐까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텍스트를 읽으실 때, 그 이면에 담긴 저자의 '뜻(志)'을 포착하기 위해 어떤 자신만의 주파수를 맞추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