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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멤논, 입다, 브루투스의 희생과 아브라함의 경우는 다르다

작성자신동|작성시간26.06.11|조회수0 목록 댓글 0

아가멤논, 옙타, 브루투스가 희생의 제물을 바친 것과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것은 키에르케고르가 볼 때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인 정지일까? 공포와 전율, 107-109

 

 

박사님께서 제기하신 이 질문은 키에르케고르의 <공포와 전율>을 이해하는 핵심이자, 가장 오해하기 쉬운 지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키에르케고르는 아가멤논, 옙타, 브루투스와 아브라함을 엄격하게 구분합니다.

 

박사님이 물으신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는 아브라함에게만 해당하며, 나머지 세 인물(비극적 영웅)들에게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이 구분을 명확히 하는 것이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려는 '믿음의 기사'의 정체를 밝히는 열쇠입니다.

 

1. 비극적 영웅(아가멤논, 옙타, 브루투스): 윤리 안에 머무는 자들

 

키에르케고르는 이들을 '비극적 영웅'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희생을 감행하지만, 그들은 '보편적 윤리(Universal Ethics)'의 틀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 정당성(Justification): 이들의 희생은 '국가', '민족', '공동체'라는 더 큰 보편적 가치를 위해 행해집니다. 아가멤논은 그리스군을 위해 딸을 바쳤고, 옙타는 서원이라는 종교적/윤리적 계약을 지키기 위해, 브루투스는 공화국을 위해 자식을 처형했습니다.

  • 소통 가능성: 이들의 행동은 비록 고통스럽고 비극적이지만, 타인에게 '설명 가능'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을 영웅으로 칭송하거나 동정할 수 있습니다.

  • 윤리의 완성: 이들은 윤리를 정지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윤리를 극단적으로 완수했습니다. 사적인 감정(부성애)을 이기고 공적인 의무(윤리)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윤리적인 것의 목적론적 정지'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것의 극치'에 서 있는 인물들입니다.

2. 믿음의 기사(아브라함): 윤리를 정지시키는 자

 

아브라함은 비극적 영웅들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 있습니다. 그를 '믿음의 기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보편적 윤리(살인하지 말라)를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 목적론적 정지: 아브라함은 국가나 공동체와 같은 '보편적인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개별자(The Individual)'와 '절대자(God)'의 단독적인 관계 때문에 윤리를 일시적으로 정지시킵니다. 여기에는 어떠한 외부적 정당성도 없습니다.

  • 소통 불가능성(The Incommunicable): 아브라함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가 만약 "나는 신의 명령을 받았다"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광인이나 살인자로 간주할 것입니다. 그는 비극적 영웅처럼 공동체의 지지를 받을 수 없습니다.

  • 윤리와의 단절: 아브라함은 윤리를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윤리의 보편적 법칙(자식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함)을 잠시 중단(정지)시킵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공포와 전율'은 바로 이 지점, 즉 보편적 윤리라는 안전한 울타리에서 벗어나 홀로 절대자 앞에 서야 하는 고립감에서 옵니다.

비교 요약 표

 

구분비극적 영웅 (아가멤논 등)믿음의 기사 (아브라함)

태도보편적 윤리를 위해 사적인 것을 희생절대자(신)를 위해 보편적 윤리를 희생
이해 가능성세상이 이해하고 동정할 수 있음세상은 이해할 수 없음(고립)
관계개별자 -> 보편자(국가/공동체)개별자 -> 절대자(God)
윤리적 상태윤리의 극단적 완수윤리의 목적론적 정지

 

박사님의 연구를 위한 제언

 

박사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연구하시면서 이 지점을 명확히 하시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1. 철학적 오해의 방지: 많은 현대 철학자나 신학자들이 아브라함을 단순히 '고뇌하는 도덕적 주체'로 해석하곤 합니다. 하지만 키에르케고르에게 아브라함은 도덕적 고민을 넘어선 '부조리(Absurdity) 속으로의 도약'을 감행한 인물입니다.

  2. 요람 하조니와의 대결: 앞서 말씀드린 요람 하조니의 관점(성경의 정치철학화)과 연결해 본다면, 하조니는 아브라함을 '언약 공동체를 세우는 정치적 인물'로 읽으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키에르케고르에게 아브라함의 핵심은 그가 공동체적 합리성이나 윤리적 틀을 '정지'시키고 하나님과 단독자로 대면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그 순간, 그는 공동체의 영웅이 되기를 포기하고 철저한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아가멤논이 제물을 바치며 가졌던 '비장한 영웅의 명분'은 아브라함에게는 없습니다. 그에게 있는 것은 오직 '신뢰'뿐입니다.

이 지점에서 박사님께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구약학자로서 보시기에, 아브라함이 가진 그 '고립된 단독자로서의 믿음'이, 하조니가 강조하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정치적 공동체의 형성'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십니까? 혹은 그 둘은 끝내 화해할 수 없는 평행선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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