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씨의 사진관 / 김태일
그날도 마루 씨의 하루는 평소와 다름없이 저물어가고 있었어요. 카메라를 점검하고 사진관 이곳저곳을 꼼꼼하게 청소했지만 그뿐이었죠. 20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요즘 들어 예전처럼 손님이 오지 않는 마루 씨의 사진관이었어요.
마루 씨가 슬슬 집에나 가볼까, 생각하던 참이었어요. 문득 유리창 밖의 고양이가 마루 씨의 눈에 들어왔어요. 고양이는 마치 사진관 앞에서 머뭇대는 것처럼 보였어요. 마루 씨는 그 모습이 귀여워 힐끔힐끔 쳐다보았어요. 고양이가 사진관에 무슨 볼 일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 피식 웃기도 했고요. 그리고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였어요. 고양이가 쭈뼛거리며 사진관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겠어요?
딸랑, 하는 종 소리가 나더니 고양이가 문턱에 앞발을 내려놓았어요.
"저기......"
그때까지도 마루 씨는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어요.
“여기서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을까요?”
마루 씨는 깜짝 놀랐어요. 지금껏 동물 손님은 단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안 될 게 뭐 있겠어요?
“그럼요!”
마루 씨가 반갑게 대답하자 고양이는 조심스럽게 사진관으로 들어왔어요.
“잘 오셨어요. 무슨 사진을 찍어드릴까요?”
“음, 영정사진으로 부탁합니다.”
고양이가 말했어요. 마루 씨는 놀랐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어요. 대신 고양이를 카메라 앞으로 데려왔지요. 렌즈를 통해 바라본 고양이의 얼굴에는 잔주름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있었어요. 그제야 마루 씨는 고양이가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자, 찍습니다. 입 꼬리를 조금만 올려주세요. 하나 둘 셋!”
마루 씨가 사진을 확인하는 사이 고양이 할아버지는 창가로 걸어갔어요. 그리고 기다란 의자에 얌전히 앉았어요. 고양이 할아버지의 발끝이 바닥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대롱거렸어요.
“사진이 잘 찍혔네요.”
마루 씨의 말에 고양이 할아버지는 허리에 찬 빨간 복주머니를 열었어요. 열린 복주머니 사이로 무엇인지 모를 단내가 피어올랐어요.
“사진은 내일 찾으러 오시겠어요? 사진 값은 그때 주시면 돼요.”
복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찾던 고양이 할아버지의 앞발이 잠시 멈췄어요. 마루 씨는 스튜디오를 정리하느라 고양이 할아버지의 행동을 하나도 보지 못했죠. 고양이 할아버지는 의자에서 일어나 복주머니를 여미고 옷매무새를 정리했어요.
“그럼, 내일 이 시간에 오겠습니다.”
마루 씨에게 수줍게 인사를 건네고 고양이 할아버지는 문밖으로 나갔어요. 딸랑, 매캐한 종소리가 사진관을 한 바퀴 흘러 사라졌어요.
“왜 이렇게 늦었어요. 걱정했잖아요.”
집에 도착한 마루 씨를 아내가 반갑게 맞아주었어요. 식탁에서는 막 데운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김을 뿜고 있었어요. 저녁밥 두 그릇을 뚝딱 해치운 마루 씨는 작업실로 들어갔어요. 마루 씨를 위해 가족들이 만들어준 작업실이었어요. 이곳에 들어올 때마다 가족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 마루 씨가 습관처럼 찾는 곳이었죠. 작업실 벽에는 가족들의 사진이 시간 순서대로 걸려있었어요. 사진 속에서 마루 씨의 아이들은 꼬까옷을 입고 재롱잔치를 했고, 초등학생이 되어 만국기가 넘실거리는 운동장을 달렸어요. 훌쩍 커서 어린이용 학사모를 쓰고 웃기도 했고요.
몇 분 만에 아이들의 유년시절을 지나온 마루 씨는 흐뭇하게 웃었어요. 그러다 문득 고양이 할아버지 생각이 났어요. 느릿느릿 움직이던 모습, 카메라 앞에서 단정하게 손을 모으던 모습이 떠올랐죠. 문을 열고 차가운 바람 속으로 나가던 모습도요. 지금쯤 고양이 할아버지는 무얼하고 있을까, 하고 마루 씨는 혼자 생각했어요.
다음 날도 사진관은 평소처럼 적적했어요. 그렇지만 마루 씨는 해가 저물기도 전부터 괜히 마음이 바빴어요.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난로에 불을 지피고 찻물을 끊였지요. 봉투에 담아 둔 사진도 한 번 더 확인했고요. 그리고 정확히 어제 그 시간이 되었어요. 딸랑, 하는 소리가 나더니 고양이 할아버지가 느릿느릿 들어왔어요.
“안녕하세요! 딱 맞춰서 오셨네요.”
반가운 마음에 마루 씨의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어요. 수줍게 인사를 받는 고양이 할아버지에게서 바람 냄새가 물씬 났어요. 마루 씨는 고양이 할아버지를 의자 쪽으로 안내했지요.
“바깥이 많이 춥죠? 앉아서 몸 좀 녹이고 가세요.”
마루 씨가 따듯한 찻잔을 건네며 말했어요. 고양이 할아버지는 향긋한 차 냄새를 맡으며 의자에 앉았지요. 동그랗게 말려 있던 꼬리가 의자 위로 기다랗게 늘어졌어요.“고마워요. 따뜻한 게 참 좋네요.”
고양이 할아버지의 콧수염이 노곤하게 떨리고 있었어요. 마루 씨도 찻잔을 들고 맞은편에 앉았어요.
“처음 뵙는데, 이 동네에 오신 지 얼마 안 되셨나 봐요.”
마루 씨가 말했어요. 고양이 할아버지는 차를 한 입 마셨어요. 그리고 찻물에 젖은 입가를 앞발로 톡톡 두드렸어요.
“원래 살던 데가 여기였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온 지는 꽤 됐어요. 아이들 낳고 얼마 안 돼서 이사를 왔으니까요. 그 동안 사진 찍을 일이 없어서 여기 살면서도 사진관에는 와 본 적이 없던 거지요.”
옛 생각에 잠긴 듯, 고양이 할아버지의 눈빛이 슬며시 아련해졌어요.
“다른 생각을 할 짬이 없었어요. 가족들 좋은 거 먹이고 싶어서. 이제 좀 쉴만하니까 애들은 다 커서 제 갈 길 가고, 옆에서 평생 있을 줄 알았던 아내는 먼저 가 버렸어요. 나는 외출 한 번 하고 나면 기운이 다 빠져 버리는 늙은 고양이가 되어 버렸고요. 그래서 아, 나도 사진 하나쯤은 미리 남겨둬야겠다, 싶었어요.”
고양이 할아버지가 다시 차를 한 입 들이켰어요. 그리고 허허, 웃었어요.
“사진 받으러 와서 별 이야기를 다 하네요. 늙은이 이야기 재미 없지요?”
고양이 할아버지가 찻잔을 내려놓았어요. 마루 씨는 고양이 할아버지의 얼굴 위로 돌아가신 어버지가 겹쳐 보이는 것만 같았어요. 그러자 문득, 사진 한 장만 달랑 인쇄해 놓은 것이 떠올랐어요. 이대로 그리면 오랫동안 마음에 걸릴 것 같았지요.
“저기. 할어버님, 음..... 제가 실수로 사진을 집에 두고 왔네요. 죄송해서 어쩌죠? 더 예쁘게 뽑아 드릴 테니 내일 다시 와 주시겠어요?”
허리춤에서 복주머니를 꺼내던 고양이 할아버지가 마루 씨를 쳐다보았어요. 노란 눈동자가 사진관 전등 불빛처럼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어요.
“그럽시다. 나야 남는 게 시간이니까.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올까요?”
고양이 할아버지가 복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적이며 말했어요. 마루 씨는 손사래를 쳤지요.
“아이고, 사진 값은 내일 주세요. 사진을 드리기도 전에 받으면 제 마음이 불편해서 안돼요.”
마루 씨의 말에 고양이 할아버지가 또 다시 허허 웃었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다시 올게요. 차 잘 마셨습니다.”
문이 열렸다 닫히는 그 짧은 순간, 차가운 바람이 확 들어왔어요. 복주머니에서 흘러나온 단내도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지요. 마루 씨는 고양이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유리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어요.
그 다음 날은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어요. 라디오 방송은 저녁에는 비가 콸콸 쏟아질 거라고 예보했어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가을비였어요.
빗소리를 들으며 마루 씨는 고양이 할아버지 맞을 준비를 했어요. 어제처럼 난로를 피우고 찻물을 끓였어요. 그리고 준비한 사진을 다시 한 번 확인했지요. 어제와 달리 사진은 깔끔한 애가에 들어 있었어요. 사진을 바라보며 마루 씨는 고양이 할아버지가 마음에 들어 하기를 바랐어요. 크리스마스이브의 산타가 된 기분이었지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어요. 고양이 할아버지는 좀처럼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제 시간보다 삼십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어요. 유리창을 깨기라도 할 듯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 때문에 마루 씨는 괜히 더 초조해졌어요.
‘고양이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온갖 걱정이 끈적끈적한 물풀처럼 꼬리를 물고 늘어졌어요. 마루 씨는 우산을 쓰고 밖으로 나가 보았어요. 하지만 고양이 할아버지는 꼬리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어느 새 마루 씨는 퇴근 시간을 훌쩍 넘겨 버렸어요. 몇 번 씩이나 데운 찻물은 다 식어 버린 지 오래였지요. 비도 오는데 집에서 걱정할 게 분명했어요. 고민 끝에 마루 씨는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어요. 난로를 끄고 식어버린 찻물을 버렸어요. 불을 끄고 사진관 문을 잠그면서도 마루 씨는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 볼까?’
하지만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결국 마루 씨는 우산을 펴고 길거리로 나왔어요. 하얗게 눈에 불을 켠 자동차들이 마루 씨 옆을 쌩쌩 지나갔어요.
마루 씨가 길모퉁이를 돌았을 때였어요. 몇몇 사람이 길가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어요.
“에구, 징그러워라. 저걸 누가 치운담?”
“그러게 말이야. 비도 오는데 왜 길은 건너가지고.”
사람들의 시선 끝을 따라가던 마루 씨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어요. 도로 한가운데 무언가가 걸레처럼 늘어져 있었던 거예요. 그건 바로 고양이 할아버지였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고양이 할아버지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어요. 아무도 도로로 나서지 않았지요. 깜짝 놀란 마루 는 고양이 할아버지를 향해 달려갔어요. 그리고 서둘러 고양이 할아버지를 품에 안았어요.
“쯧쯧, 저렇게 나이 든 고양이를 제멋대로 돌아다니게 하면 안 되지.”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뒤로 하고 마루 씨는 사진관으로 돌아왔어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사진관에서 마루 씨는 고양이 할아버지를 기다란 의자에 눕혔어요. 언제부터 도로에 쓰러져 있었던 건지 온몸이 빗물에 푹 젖어 있었지요. 마루 씨는 마른 수건을 가져와 조심스레 고양이 할아버지를 닦아 주었어요. 하지만 마루 씨의 손길에도 고양이 할아버지는 눈을 뜨지 않았어요. 마루 씨는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구경꾼들 중 한 명이라도 고양이 할아버지를 도와주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때였어요. 고양이 할아버지의 복주머니가 마루 씨의 눈에 들어왔어요. 그러자 지금껏 복주머니를 만지작거리던 고양이 할아버지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망설이던 마루 씨는 조심스레 복주머니를 풀어 보았어요. 그리고 그만 울컥, 하고 말았어요. 복주머니 안에 들어 있던 건 비에 젖어 눅눅하게 녹아버린 한 움큼의 캐러멜이었던 거예요. 마루 씨는 고양이 할아버지를 꼭 끌어안았어요. 마루 씨 품속에서 고양이 할아버지는 한 덩어리의 솜뭉치처럼 느껴졌어요.
난로의 온기가 마루 씨의 사진관에서 점점 사라져 갔어요. 세찬 빗줄기만이 사진관의 창문을 덜컹덜컹 두드리고 있었지요. 마루 씨의 울음소리도 빗소리 아래에서 희미해졌어요. 전등 불빛을 받은 고양이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이 반짝 빛났어요.
2015년 KB 창작동화제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