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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참배]곡성 태안사/사립문님 편

작성자법륜상전|작성시간05.12.17|조회수70 목록 댓글 1
곡성 태안사...사립문님

살면서 살맛나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남들 일할 때 놀 수 있는 여유로움이다.
어딜가나 호젓한 길을 독차지할 수 있고
발걸음을 늘어뜨려도 걸림이 없어 좋다.
그리고 약간의 외로움은 사색에 도움이 된다.

전남 곡성군 죽곡면의 태안사!!!
언제 곡성에 가면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에 새겨둔 곳이다.

운전하는 이에게 길을 맡겨두고
어딜가나 볼 수 있는 낯익은 정경들에
눈길을 주며 잔잔한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구불구불 시골길을 한참 달려가니
태안사로 들어가는 태안교 다리가 나온다.
입구에 보살 한 분이 입장료를 받는다.

넓지않은 비포장길을 따라 제법 올랐다.
낙엽수들이 깊은 가을의 정취를 자아낸다.
산책을 하기에 좋을 정도의 거리이다.

이 절은 742년에 세 신승들에 의해 개창되었으며
이후 중국 남종선의 개창자 육조 혜능의
법맥을 이은 서당 지장선사에게서 공부하고 돌아온
적인선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선종의 교화를(동리산파)
펼치자 절의 명성이 널이 퍼졌다고 한다.

고려 때 몽고군의 침입과 6.25전쟁으로
대부분이 파괴되고 능파각, 일주문, 부도
몇 개가 지금까지 세월을 마주한 채 서 있다.





태안사를 찾는 이를 맨처음으로 환대하며 맞는 능파각!!!
다리겸 누각인 능파각 아래로 맑은 물이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제법 호기롭게 흐른다.





그리고 주변의 나무들도 그들식으로 인사를 한다.





단청을 손보고 있는 중일까?
윗쪽에는 갈끔한데 아랫쪽에는 희끗므레하다.





지나가는 이에게 다리 역할을 해주고
머무는 이에게 쉼터가 된다.





능파각을 지나 숲속으로 난 사잇길을 따라 걸었다.
바위 위에 홍조를 띄며 곱게 자라고 있는 붉나무다.
큰 길로 갔으면 이런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였을테지.






왼쪽으로 꺾어 나 있는 길을 따라 오르니
큰 돌무더기 2개가 석주처럼 버텨 서있다.
그 위에는 덩굴들이 뒹굴며 노닐고 있다.






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잔디로 단장되어있는 둑만 보인다.
발걸음을 옮길때 마다 탑의 모습이 점점 드러나면서.
호수 한가운데에 떠있는 하얀 삼층석탑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다.
부처님 진신사리탑이다.





이 3층 석탑은 원래 사찰입구 광자대사 부도 바로 옆에 있었다한다.





당시의 상태는 기단부 면석 1매와 탑신부 일부에서
유실된 부재가 있었으나 현 위치로
옮겨 보수하면서 완전하게 복원하였다.
탑의 구조는 당초 2층 기단인 3층석탑 이었으나
연못으로 옮기면서 기단부 지대석을 높여
탑이 전체적으로 높게 보인다.





탑신부의 각 옥개석 층급 받침은 4단이며
옥개석 상면에는 2단 괴임을 하였다.
상륜부는 모두 신제로 보충하였다.
조성년대는 고려 초기로 추정된다. (도지정 지방문화재, 자료170호)





석등을 받쳐들고 있는 사자들의 엉덩이가 육감적이다.





태안사 일주문으로 도유형문화재 제 83호이다.

전면에는 동리산 태안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일주문 지붕 위로 풀씨들이 날아가 터를 잡았나보다.
마음대로 늘어뜨려져 있는 모습이 편안해 보인다.





일주문 바로 옆의 부도탑이다.
팔각 원당형의 부도와 석종형의 부도 등
모양과 크기가 다른 부도들이
여기저기에 적당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부도는 동리산문 제 2대 선사인 광자대사의 것이다.
적인선사 이후로 광자대사가 절을 더욱 빛냈는데
고려를 개국한 왕건과도 교유하던 광자대사는
그의 도움을 받아 132칸에 이르는 건물을 짓고
대규모 절을 이룩하여 동리산파의 중심적인
도량으로 삼았다고 한다.

고려 초에는 송광사, 화엄사 등 전라남도 지역에 있던
대부분의 절들이 태안사의 말사였을 정도로 사세가
대단하였으나 조선시대 배불정책에 밀려 쇠퇴하였다고 한다.

구례 연곡사의 북부도와 느낌이 비슷하다.





광자대사 탑비이다.





이수부분에 아름다운 음성을 지니고 천년을 산다는
인도 상상의 새 가릉빈가가 날개를 펼치고 있다.

가릉빈가는 그 소리가 시방세계에 두루미치는데
그 소리가 지극히 신비하고 미묘하여
소리를 듣는 사람은 염증을 느끼지 않는다 한다.

그것은 바로 부처님의 범음인 것이다.
가릉빈가의 불교적 의미는 형태가 아니라
소리에 집중되어 있다.

[화엄경]에서는 부처님의 청정미묘한 범음으로
무상의 정법을 연출하니 듣는 사람이
기뻐하며 맑고 오묘한 도리를 얻는다고 했다.

범음이란, 음이 정직하고 조화롭고 우아하며
음이 맑고 투철하고 깊고 풍족하여
음이 두루 미처 멀리 들린다.

범음을 내는 가릉빈가는 부처님의 또 다른 화현이다.

그리고 여느 탑비와는 달리 보주도 3개나 있다.
그리고 거북의 등 부분이 뚜렷한 6각무늬로 새겨져있고,
배와 목 부분의 주름도 아주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잘려 나간 그의 몸뚱이에 앉은 검버섯에서
인고의 시간들이 느껴진다.





새로 단장한 태안사의 대웅전이다.





실눈 뜨고 미소 지을 듯 말 듯 바라보시는 부처님!!!
감히 눈을 마주할 수 없다.
이생 저생으로 알게 모르게 지은죄가 많음이리라.





사람아! 사람아!!
내일이 언제나 온다고 생각 말아라.
내일이란 불확실의 시간!!
지금 오늘을 살고있음에 감사하며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야 하리라.

닳고 닳아 핏기없는 마른 몸뚱이에서
깊은 경책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선암사의 뒤깐과 비슷한 해우소





말끔하게 단장한 약사전





뒷쪽에 조용한 곳에 자리잡은 스님채





스님들은 가끔 이들을 바라보실까?
지나가시다 발걸음 멈추고 애써 이들을 바라보실까?
다가가 낮게 몸을 낮추어서 이들을 바라보실까?
가끔은 그렇게 바라봐 주셨음 좋겠다.

바람 많은 곳에서 담벼락에 기대어
애써 꽃을 피우는 그들이 안스러워서이다.





소박하고 멋스러운 길 안내판.





태안사의 볼거리 중 하나인 배알문이다.

이 문은 작은 키의 사람도
머리를 정중하게 숙여 몸을 굽혀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낮은 문이었는데
새로 정비한 배알문은 머리를 숙이지 않고서도
들어갈 수 있는 높이이다.

이 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적인선사 조륜 청정탑이 보이는데,
이 탑은 경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것이 정비하기 전 배알문이다.
보기에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각으로 휘어진 나무 기둥이 아름답다.
그의 갈라지고 바랜 살갗도 멋스럽기만 한데...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오만한 마음을 질책하는 듯
낮고 낮은 문에 그이의 큰 뜻이 담겨있는 듯한데...





보물 제 273호인 적인선사조륜청탑은
경문왕 원년인 816년에 세월진 것으로 추정된다.
적인선사조륜청정탑은 태안사를 창건한
혜철선사의 부도탑이다.

화려한 듯 화려하지 않은 듯 안정적인 모습으로
고운 선과 결을 간직하고 있는 탑이다.





그리고 탑비.
선정에 잠긴 듯한 거북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마치 혜철대사의 업적을 기리는 듯 자못 엄숙하다.





거의 다 내려와서 뒤로 한번 더 돌아보았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딜가나 볼 수 있는 가을의 모습
아름답기에 다시 한번 담아본다.





길 아랫쪽으로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48명의 경찰들의 넋을 기리는 경찰 충혼탑이 있다.
네모난 층 한 개가 경찰 한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네모난 층이 모두 48개인 셈이다.





고운 단풍 위로 오후의 늦은 햇살이 내려 앉아 애무한다.
마지막 사랑을 붙태우듯.....
그의 사랑을 받아 더욱 밝게 빛난다.

이제 가을은 떠날 채비를 하려는 듯
미련없이 낙엽을 털어내고 있다.
조금만 더 머뭇거려도 좋으련만...





태안사 가는 길 안내도

▶찾아가는 길 : 광주나 곡성에서 직행∙완행버스를 타거나,
차를 몰고 간다면 곡성읍에서 구례방면
17번 국도로 가다가 압록 삼거리에서 반월교를
건너기 전에 보성강을 끼고 18번 국도로 6km정도
가다보면 태안사로 들어가는 태안교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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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법륜상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5.12.17 사립문님 태안사 참배길에 마음으로 기꺼이 동참하였습니다 성불하오소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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