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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 법문

“한국 스님들, 중국 선사 앵무새 노릇이나 한다”

작성자正牧|작성시간11.10.20|조회수368 목록 댓글 24

     
“한국 스님들, 중국 선사 앵무새 노릇이나 한다”
소설 <선> 15년 만에 재출간한 고은 시인
2011년 10월 20일 (목) 16:00:44 이은정 soej84@naver.com

   
고은 시인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위해 ‘선(禪)’을 한다. 옛 선사들을 비롯해 지금까지 많은 수행자들이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치열하게 정진해 왔다. 최근에는 혁신의 아이콘이라 불렸던 故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낸 제품 디자인이 ‘선(禪)’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우리가 손에서 한시도 놓지 못하는 아이폰의 배경에 ‘선’이 있었다는 말이다.

한국문학의 큰 산이라 불리는 시인 고은. 그는 “선은 그냥 여기저기 도처에 편재해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시(詩)가 자신의 종교요, 시인이라 불리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는 고은 시인이 최근 15년 만에 소설 <선>이라는 책을 재출간했다. 책은 초조 달마에서부터 육조 혜능까지 중국 선종 6대조의 선사들의 치열했던 수행과정을 담고 있다. 고은 시인에게 과연 ‘선’이란 어떤 의미인지 물어봤다.

 

-소설 <선>을 15년 만에 재출간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은의 작품세계는 ‘선(禪)’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한다. 현대에서의 ‘선’은 어떻게 이해돼야 하나.

나는 수행 생활에서 떠난 지 오래된 사람입니다. 선에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일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선의 흐름들을 말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다만, 내게는 산중 생활을 할 때 선에 대한 강렬한 집중을 바쳤던 기억은 있습니다. <선>도 그 당시의 기억을 토대로 쓰게 된 것입니다. 1950년 후반 선배 시인인 조지훈과 인연이 깊었습니다. 그 분은 한암 스님의 영향으로 ‘선’에 대한 남다른 깊이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 때 조지훈 시인은 ‘중국선’, 저는 ‘고려선’에 대해 함께 집필을 해보자고 약속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 조지훈 시인이 60년대 초반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도 산중생활을 마치고 속세로 돌아와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운허 스님이 제게 <화엄경>의 ‘입법계품’으로 서사시를 썼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것을 토대로 소설 <어린 나그네>를 집필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조지훈 시인과의 약속이 떠올랐고, 본래 조지훈 시인이 쓰려던 ‘중국선’을 제가 맡아 쓰게 됐습니다.

다만, 역사기술을 내가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소설로 엮게 됐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일본의 스즈끼 스님으로부터 유럽에는 선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도 ‘선’이 문학형식을 통해 넓혀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해서 책을 낸 바 있습니다.

하지만 선은 책 속에 있지도 않고, 찰나에 있지도 않고 햇빛 속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여기저기 도처에 편재해 있을 뿐입니다. 흔히 말하는 간화선에만 선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질만능주의에 젖어든 현대인들이 ‘참 나’를 찾기 위해 점차 불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선(禪)’은 서양인들에게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미 서양에서는 ‘선’이 크게 번성하고 있습니다. 제가 <선>을 재출간하게 된 이유도 바로 이런 연유 때문입니다. 선은 달마에 의해서 생겨난 것도 아니고, 본래 우주의 것입니다. 우리는 바람소리에 의해서도 선을 봐야하고, 또 세상의 모든 형상을 통해서도, 캄캄한 절벽 같은 어둠속에서도 선을 만나야 합니다.

15년 전에는 선은 이쪽(동양)에는 있지만, 저쪽(서양)에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저기로 가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저쪽에는 있지만 여기에는 없습니다. 그것을 다시 여기에다 놓고 싶었습니다.

 

-서양에서는 남방불교, 중국불교, 일본불교 등은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한국불교의 ‘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라 보는가.

지구상 도처에는 선을 실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15년 전 <선>을 출간할 때는 이런 사람들이 드물었습니다. 지금은 선이 많이 대중화 돼 있습니다. 선은 번뇌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명상법, 치유의 방책 등으로 다양하게 번성해 있습니다.

 

한국에서 군림하는 간화선 같은 비대중적인 선만이 선은 아닙니다. 한국선은 그런 점에서 반성해야 합니다. 이미 한국 불교계 안에서도 간화선에 대한 회의가 심각하게 재기되는 것으로 압니다. 산중 선방에서부터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선은 이미 고대서부터 서양에 알려졌습니다. 일본도 18세기부터 서양의 여러 나라에 일본의 선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확실히 알고 있지만) 세상에서는 한국이 자아를 알고 있는지조차 몰랐습니다. 때문에 많은 서양인들은 한국의 선이 중국이나 일본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근세 500년 동안 한국은 자신을 폐쇄하고 오직 중국에만 경쇄돼 있어 자아를 확대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한국은 중국선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사용되는 임제선(臨濟禪)은 본래 중국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독특한 선인 것처럼 보여 지는 것은 현재의 중국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방장스님들이 법문하는 것을 들어보면 중국 법어 얘기를 많이 합니다. 우리 선사의 법어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당송시대의 중국 승려 앵무새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보았을 때 서양에서 한국선을 몰라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한국선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이야기입니다. 한국은 일본강점기를 비롯해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 자아가 형성시키기가 더욱 어려웠습니다. 숭산 스님 등을 통해 이제 막 세상에 한국의 자아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씨를 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자손만대에 가면 중국이나 일본의 선보다 한국에서 독실하게 이어져 온 이것이, 선의 커다란 중심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불교계가 국민·사회와 소통하지 못했다는 점을 반성하며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활성화 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런 차원에서 ‘자성과 쇄신결사 추진본부’도 출범시켰다. 한국불교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는가.

조계종의 이번 결사가 어떻게 끝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국 불교에는 몇 번의 결사가 있었고, 또 괜찮은 성과를 얻은 결사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송광사가 그랬고, 강진 백련사의 백련결사 등도 잘 된 경우입니다. 반대로 담배연기처럼 공중에 흩어져 버린 결사도 있었습니다. 나는 결사를 믿기도 하고 믿지 않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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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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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쐐멩이 | 작성시간 11.11.12 요즘 성철스님이 하시는 중도법문
    변견에 머물지 않고 쌍차 쌍조 차조동시의 中道
    모든 길은 로마로가 아닌 모든 길은 중도로 해야만 모든 것이....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 작성자연꽃사랑 | 작성시간 11.12.07 이제는 변화를 시도하는 좋은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미타파의 활동이 더욱 힘을 얻을 수 있기를 ...........감사 드립니다..나무아미타불
  • 작성자가빈 | 작성시간 12.02.07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 작성자수월 | 작성시간 12.02.11 우리 불교 역사 무려 1600여 년 입니다.. 지금 여러가지 사방 육방이 어려운 때이지만,
    여기 환하게 불씨 지피고 있는 광명의 가르침이 계시기에 어려움은 서서히 걷힐 것이리라 봅니다..
    보석과도 같은 부처님 원효성사님 그리고 정목스님을 확실히 보필하고 믿으며, 일심의 가르침대로
    귀명할 뿐 !~~ 입니다..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작성자백자련 | 작성시간 12.03.04 아미타아미타아미타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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