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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 공부자료

100일 정진 29-그렇구나 효과

작성자선법행|작성시간12.02.04|조회수162 목록 댓글 48

방학중 한 번이라도 정토원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마침 갈 일이 생겨서 오늘 다녀 왔습니다.

어제 카페에서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정토원 사진을 본 터라

물도 없는 곳에 민폐될까 싶어 아주 잠깐 있다 왔습니다. 

 

오랜만에 가니  긴장도 되고, 소풍전야 처럼 설레기도 해서

새벽 2시 조금 넘어 저절로 잠에서 깨어,

가만히 앉아 있다, 책보다, 카페에 들어와보다 하면서 3시간을 보낸 후,

새벽예불을 하고 <대.신.염> 읽었습니다.

습관이 되어서인지 아무리 시간이 남아도 예불 후에 책을 읽게 됩니다.

 

정토원 밖에서 놀고 있던 오순이는 나를 잘 모를텐데도

옆에 바짝 붙어 따라오며 혀로 손등을 핥아 대고,

언덕과 마당에 있던 용이와 무량이는 꼬리를 흔들며 엄청 짖어댑니다.

잘 왔어 뜻인지, 왜 왔어 뜻인지, 개를 길러보지 못한 터라 애매합니다.

 

정토원 가는 길은 온통 얼어 붙어 있었고,

그 추위속에서도 스님께선 여전히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물이 얼어 안 나와서 배수관 공사를 하신다셨던 것 같습니다.

얼굴이 좀 야윈 것 같아서 추위때문에 힘드시나보다 짐작만...

작업복을 입고 계시다가, 때늦은 세배를 드리겠다고 하니,

귀찮으실텐데도 법복을 갈아 입고 나오셔서,

그 '황송한' 맞절을 하신 후 세배돈까지 주십니다.

 

스님께 세배돈 받는다는 거- 듣지도, 알지도 못한 일인데다

세배돈 주기만 했지 받아본 지 수 십년이나 된 터라

참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 돈은 어디 쓸 수도 없을 것 같고...

스님께 세배돈 받으신 경험이 있는 법우님들께

여쭈어 봐야겠습니다.

 

***   ***   ***   ***   ***   ***   ***   ***   ***   ***

 

오늘 일정때문에 정진일기를 쓰지 못할까 염려되어

새벽에 몇자 미리 적어둔 것을 다시 챙겨봅니다.

스님께서는 더러 빼먹어도 된다고 허용하셨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어느 때, 상담에 관심이 생겨서 한 3년간 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마음의 문제를 상담심리학이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 공부 늦게 시작한 것을 후회했을 정도로 그때는 심리학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렸을 적에는 문학에, 어른되어서는 심리학에,

그리고 지금은 돌고 돌아서 종교(불교)에 빠져 있는데,

이런 과정이 평범한 사람의 자연스러운 진화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담공부를 하면서 타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자기치유가 많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끝까지 내면에 꽁꽁 감추고 싶은 상처로 부터 결코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이런저런 사례발표를 하면서 자신을 노출시키기도 하고,

남의 말을 들으며 공감하는 연습, 의사소통기법 같은 것도 공부하면서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계속 말하게 하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을 계속 들어야 하고,

알고 싶지 않은 남의 개인사에 관심을 표시하는 등 소통과 공감법에 대해

공부하는 내내 어떤 거부감, 풀리지 않는 경계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기술을 배울 때,

'그렇구나' 하는 연습을 꽤 많이 했습니다.

한 번 씩 애들에게도 그 말의 효과를 실습시켜보기도 하는데,

이 말에는 묘한 위로와 신뢰형성의 힘이 있습니다.

 

한 번 해보세요. 사실인지 어떤지.

'나 어제 엄청 속상한 일이 있었다'

1. 너 또 무슨 사고쳤나?

2. 시끄럽다. 니가 늘 그렇지 뭐.

3. 고마해라. 나도 지금 속상한데...

4. 그렇구나, 속상한 일이 있었구나.

 

사람들은 말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뭐 이런 식으로 맞장구를 쳐주고 속상한 그마음을 알아주는 말이

'그렇구나' 랍니다.

 

우스운 것은 그 말에 진심이 담겨있지 않을 때는

희화화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나 배고픈데...'

'그렇구나. 지금 배가 고픈 게로구나.'

'뭐 좀 먹을까?'

'그렇구나, 뭐가 먹고 싶은 게로구나'

이렇게 계속 '그렇구나'를 연습하다가

드디어 실습하다 상담원끼리 하는 말이

'~구나 하고 자빠졌네.' 하면서 박장대소를 하며

자조섞인 한계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신뢰감 형성을 위한 놀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앞 뒤로 섭니다.

앞에선 사람이 뒤로 넘어지면

뒤에 사람이 넘어지지 않게 받아주는 놀이입니다.

뒷사람이 자기를 받아줄거라는 신뢰가 확실하면,

앞사람은 두려움없이 뒤로 넘어집니다만

'과연 다치지 않게 잘 받아줄까?' 의심들면 결코 쉬운 동작이 아닌데

의심이 많은 나는 한 번도 편하게 '뒤로 자빠지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가족이랑 한 번 해보세요.

의외로 뒤로 넘어가는 게 쉽지 않답니다.

믿음의 문제라고 합니다.

 

집단상담을 밤새워서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다음날 헤어지기 전에, 강사가 서로서로 포옹하라고 하더라구요.

가족 외에 남편말고는 한 번도 다른 사람 안아본 적이 없는데,

하라고 시키니까, 남들도 다 하니까, 공부하는 차원에서

이 여자 저 남자 막 악수하고 포옹하고 방을 빙빙 돌아다녔는데,

영 어색하고 정서에도 맞지 않아 불편했고,

무엇보다도 집에 와서 남편얼굴보니

못 갈 데 갔다 온 것처럼, 나쁜 일 하고 온 것 같아,

며칠동안 미안해서 저절로 잘해 주었던 기억도 납니다.

바람난 사람들 심리가 이렇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허그가 우리 정서에는 맞지 않나 봅니다.

 

강사를 초빙해서 명상여행도 해보았습니다.

'자, 눈을 감으세요.

 여러분은 지금 백두산에 있습니다.

 천지가 보입니까?

 물에 손을 담궈 보세요.

 시원합니까?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들리십니까?

  ............'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데,

'보입니다. 찹습니다. 들려요' 등등의

여기저기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나면

속으로 엄청 초조해집니다.

 

'근데 나는 왜 눈에 보이는 게 없지?' 질문하니,

강사가 설명하기를 '자의식이 강하고 의심이 많아서'랍니다.

지금까지도 진행형인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으로

내면에 뭔가 엄청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일상관할 때, 콩알커녕 깨알만한 것도 아직  안 보입니다.

또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최면을 걸기까지 합니다.

조그만 점만 스쳐지나가도

'넌 지금 해를 본 것이다.

 저게 해인거야.' 합니다.

해를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입니다.

그게 공부의 증거라고 믿는 때문입니다.

그만 '해에 대한 집착'이 생겨버렸습니다.

 

또래상담을 배우던 중 일입니다.

두 파트로 나누어서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래포를 형성하는 실습을  하며 발견한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한 파트는 호호하하 웃으면서 화기애애하게 진행하는데,

우리 파트는 훌쩍훌쩍 울면서 진행하는 겁니다.

한 쪽은 자기가 얼마나 행복했고 사랑받고 자랐는지를 이야기하는데,

한 쪽은 이러저러한 일로 힘들고 슬펐다는 이야기를 주로 했습니다.

끼리끼리, 유유상종, 밝은 사람 끼리, 어두운 사람끼리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나누어지더군요.

지금은 그것이 '도반'이라는 말로 다가 옵니다.

 

그 이후 배운대로 상담을 더러 해보았지만,

지금은 회의를 느껴 흥미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이제는 상담이야기 더 이상 안 합니다.

문학보다도, 심리학보다도,

부처님 공부하는 것이 비교할 바 없이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설프고 아마추어적인 이론으로

분석하고 이유를 따져가며 상담학적으로

애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일체가 아미타불의 화신이다.'

이 한마음으로 다가가고 싶은 것입니다.

 

잘 안됩니다.

그래서 열심히 스님따라 갑니다.

본래 넉넉한 사람이 아니어서

잘 안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끝을 보고 싶습니다.

 

세상 그 무엇으로 부터도,

그리도 감추고 싶은 별 것 아닌 것들로 부터도,

이젠 훨~훨 벗어나고 싶은 때문입니다.

감출 게 뭐 있다고...

속박으로 부터의 자유.

모든 찌찔한 자기 연민으로 부터의 해방.

 

대 자유

삶과 사상의 자유

그것이 어떤 기분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이 나이에 아직도 무명인 것이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부끄럽다고 숨지 말아야겠습니다.

끝은 있으리라 믿습니다.

 

요즘 <대.신.염>을 읽으며

그렇지, 그.렇.구.나-를 많이 중얼거립니다.

구구절절이 옳고, 게다가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문득 그렇구나의 두 가지 의미 알 것 같습니다.

상담할 때 그렇구나는 공감의 언어이고,

<대.신.염>에서 그렇구나는 깨달음의 언어인 것 같습니다.

상담의 그렇구나는 감각의 언어이고,

<대.신.염>의 그렇구나는 진실한 신심입니다.

 

<대.신.염> p.44~45

"是心作佛 是心是佛" 이라 하셨다. 이 마음은 자성청정심이 아니며, 그렇다고 번뇌의 마음도 아니다. 이 마음은 부처님의 지혜를 믿는 진실신심이다. 진실한 믿음으로 염불하여 부처를 지어가니, 신심이 불성이요, 이 신심이 마침내 부처를 이룬다.'

 

부처님, 우리 부처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무량광 무량수 화신을 성취하신 아미타 부처님께 귀명합니다.

일심으로 광명의 지혜를 원하여 아미타 부처님께 귀명합니다.

일심으로 화신의 지혜를 원하여 아미타 부처님게 귀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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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선법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2.06 감사합니다. 염불인은 형제자매라고 하신 스님말씀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 작성자산이운이 | 작성시간 12.02.06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작성자LilPhil | 작성시간 12.02.07 선법행님,
    미국생활이 20년째 들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허그는 아니올시다랍니다.
    한국에서 30년쯤 살았으니 30년을 여기서 살면 되려나 생각해보지만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가보다 하고 산답니다.
    감사합니다.
    아미타파 아미타파 아미타파 ()()()
  • 작성자Amita | 작성시간 12.02.08 그.렇.구.나. 공감 & 깨달음의 언어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 작성자줄리앤 | 작성시간 13.06.20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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