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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 / 의례의식

한글 예불문 연구 (3) 헌향게와 예불 예참의 의미

작성자正牧 |작성시간10.02.28|조회수492 목록 댓글 4

한글 예불문 수용 

헌향게와 예불 예참의 의미

공동기획 / 불교신문 · 포교원 포교연구실 표준법요집 편찬연구위원회

 

 

출·재가를 막론하고 불자들은 아침저녁 법당에 들어가 삼보님께 인사를 드린다. 합장 반배, 한국형 오체투지의 예배, 고두례(叩頭禮) 등으로 거행된다. 전각에 따라 칠정례 혹은 삼정례를 올린다. 현행 조석 예불문은 1950년대 중반 성립 정착된 칠정례로 조계종단뿐만 아니라 한국불교 전반에서 거행되고 있다. 오분향례, 칠정례 등으로 지칭되었지만 <표준법요집>에서는 <석문의범>의 오분향례와 변별하기 위해 칠정례로 명명했다. 이 글에서는 상단 칠정례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생략하고, 한글 예불문 생성에 필요하다고 보이는 몇 가지만 살펴보겠다.

먼저 폭넓게 쓰이고 있는 예불과 예참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 현행 공양의식 서두에 등장하는 보례게(예불게)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가 이제 한 몸에서 다함없는 몸을 내어 두루 계신 삼보님께 빠짐없이 절합니다.”(표준법요집 번역 보례게)

이 게송은 절하는 이가 ‘다함없는 몸을 내어’ ‘두루 계신’ 삼보님께 절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우에 모셔진 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두루 계신 삼보님께 절하는 것이 예불임을 알려준다. 다시 말해서 청해 모시는 것이 아니라 각각 계신 그곳으로 내 몸을 수없이 나타내어 절을 올리는 것이다. 이를 통상 삼정례라고 하는데, 고래의 <염불작법>(1575), <범음집>(1739), <일용작법>(1869) 등에서는 보례게(예불게)의 3구 ‘변재삼보전’을 ‘제불’이라 하여 불법승의 세 곳에 절을 하는 것이 아닌, 모든 부처님께 세 번 절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는 한국불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보이는 각단 헌공의 소례에 맞도록 지장.관음.미륵 등으로 소례를 변형해 쓰고 있는 보례게는 재고되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칠정례, 오분향례, 사성례, 칠처구회례, 향수해례, 소예참례, 대예참례, 화엄대례 등은 (삼정례와 관련하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각단 예경문과는 어떤 점이 다를까. 삼보님께 드리는 삼정례의 예불과 달리 예참(경)문은 특정 사상과 경전에 근거하여 당해 불보.법보.승보님들을 청해 예경을 드리고, 그분들께 공양을 올리고 참회.권청.수희.회향.발원하고 삼매를 닦는 수행법에서 유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령 천태 지자스님이 찬한 <법화삼매참의>에서는 석가모니부처님을 중심으로 <법화경> 소재 불보살님과 경전을 청해 인사를 드리고, 같은 천태종 준식 스님이 찬한 <왕생정토참원의>에서는 법장비구 관련 불보살님과 소설 경전을 중심으로 삼보와 호법성중들이 초청되고, 그분들께 예불하고, 참회 발원 의식을 봉행하는 참법을 진행한다. 현재 우리 불교에는 이 참회의식 가운데 ‘예불’과 ‘공양’이 현존하며 ‘예참’의식이 신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소 예참과 헌공의 예참, ‘108참회문’으로 알려진 ‘예참발원문’ 등이 있다. 또 화엄교학과 선법의 영향으로 화엄사상에 근거한 예문이 주종을 이루게 되었다고 보인다.

 

예불은 모셔진 분에 한정하지 않고
두루 계신 삼보님께 절하는 ‘삼정례’

예참은 불법승 삼보 청해 예경하고
참회…발원, 삼매 수행법에서 유래

 
‘예불’ ‘공양’ 현존…예참의식 신행

잘 알려져 있듯이 현행 칠정례는 불법승 삼보 예경에 교조 석가모니부처님과 4대보살과 부처님의 법을 부촉 받은 초전 제자와 전법제자를 삼보로 하여 예경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예참류 의궤에서 예불편만 조석 예경문으로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는 현행 예불문은 불보께 2배, 법보께 1배, 승보께 4배를 봉행한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부분은 승보와 주로 관련되는데, 시식의식(공양을 베푸는 의식) 등에 남아 있는 보례삼보(법신 보신 화신, 경장 율장 논장, 보살 성문 연각)를 보면 삼보는 신앙의 대상인 별상삼보(別相三寶)로, 여기에서 승보는 보살승, 성문승, 연각승의 삼승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법을 전한 역대 조사에 대한 예경이 더해졌다. 이 가운데 보살승은 그 숫자가 무한에 가깝다.

하지만 성문승은 일반적으로 대승경전 도입(서분)부에 설해지고 있는 1250명의 아라한이라고 할 수 있다. 제시한 예문1)은 칠정례의 다섯 번째 예경문으로 성문승 예경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원문의 ‘무량’은 칠정례에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칠정례 생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이는 대예참, 소예참, 칠처구회례 등에는 ‘무량’과 ‘자비’가 없이 바로 ‘성중’이라고 하여 앞에서 거명한 분들이 성중임을 말해 주고 있다. 그렇지만 <석문의범>의 ‘오분향례’에는 ‘자비’가 삽입되었고, 이후 칠정례에 다시 ‘무량’이 삽입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예문에서 제시되었듯이 ‘아라한과 모든 성인들께’와 ‘아라한의 성인들께’로 그 의미가 확연히 달라진다. 접속조사와 관형격조사의 차이만큼이나 외연이 다르다. ‘아라한과 모든 성인들께’는 원문 ‘무량’을 해석하여 일어난 현상이다. 하지만 표준법요집에서는 원문 ‘무량’을 연문으로 이해해 관습적으로 쓰이는 원문에서는 그대로 두더라도 해석에서는 삭제했다.

‘무량’을 해석하지 않은 본이 <표준법요집>이 처음이라고 할 수 없다. “지극한 마음으로 영산 회상에서 ~ 오백성중과 독수성중이신 천이백 모든 아라한에게 절합니다”(고산스님, 우리말 수지독송경, 반야샘, 1986), “영산회상 부처님의 부촉받으신 여러 거룩한 제자들께 지극한 마음으로 절하옵니다”(김재영, 이 기쁜 만남, 불광 1993) 등이 그 예이다. 불법 문중에는 무변, 무진, 무량, 무상 등 범위를 한정할 수 없는 숫자가 많이 등장한다. 표현이 불가한 세계를 수식할 때 쓰이고 있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효과가 감손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성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본이라고는 하지만 그 의미가 어느 정도 분명하다고 보여 ‘무량’을 번역하지 않았다.

‘지심귀명례’의 번역은 대체로 ‘지심’을 부사구로 하여 선행번역하고 ‘귀명례’의 목적어를 진술한 후 귀명례를 서술하거나 ‘귀명례’의 목적어를 거명한 후 ‘지심귀명례’를 번역하는 경우가 비슷한 비율로 등장하고 있다. 각각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표준법요집에서는 ‘지극한 마음으로’를 선행 번역하여 발어사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였다.

예문2)는 헌향 게송이라고 할 수 있다. 근자에 들어와 아침에는 청수를 올려 다게를 하고 예불을 시작하며, 저녁에는 향을 올리고 헌향게를 한 후에 예불을 한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통일법요집>(포교원, 2003)에도 이를 명기하고 하지만 <통일법요집>(포교원, 초판 1998)과 <한글통일법요집>(2006)에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예불 때 삼정례를 올리는 보례게의 장치가 바로 이 헌향게와 진언(또는 다게의 ‘원수애납수’ 삼설 삼배)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게’는 내가 올리는 청수가 부처님의 가지에 의지하여 감로다로 변해지고, 그 감로다를 일체처에 두루하는 삼보님께 올리는 구조라면, ‘헌향게’는 향을 올려 공양하며 지금 거불하는 부처님 등 삼보님을 청해 모시고 ‘예경하고 참회하려는 제자의 마음’을 전달하는 ‘신향(信香)’, ‘고향(告香)’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다게와 헌향게가 삼정례를 하는 유사한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다게가 자리에 앉으신 제위께 다를 올릴 때 주로 사용되었고, 두루하는 모든 부처님께는 주로 헌향게가 그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인다. 그러므로 <표준법요집>에서는 조석에 따라 다게와 헌향게를 선택하기보다 함께 제시하였다고 할 수 있다. 다게와 헌향게는 법당에 처음 들어가 예경.예참의식을 봉행하기에 앞서 올리는 삼정례 의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헌향게는 향 공양하며 삼보 청해
예경참회 마음 전하는 信香 告香

표준법요집은 ‘다게’와 함께 제시
사상 시대에 따라 ‘성불의길’ 다양

 
우리말의례 생성도정 간단치 않아

 
헌향게는 내가 올린 오분향이 하늘의 구름 대처럼 빛나고 일체처에 두루 계신 삼보님께 일일이 공양을 올리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자의 서원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향이 구름으로 변해지고 다시 구름 대가 되어 빛난다. 여기서 향이 일으키는 연기, 냄새 등의 이미지는 일체의 공양물로 전화되고 제자의 의지를 담은 서신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제시한 예문들도 다 그와 같은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이지만 <표준법요집>에 비해 길다는 느낌이다. <표준법요집>의 한글 내용은 “온누리 광명구름 시방세계 두루하여 한량없는 삼보님전 공양합니다”(광덕스님), “광명구름 일산되어 온 법계에 두루하사 시방의 한량없는 불법승께 공양합니다”(고산스님)와 그 번역의 궤를 같이하고 있다. “온누리에 법신의 광명 가득하옵신 시방의 무량한 불법승께 공양하나이다.”의 진흥원본은 향운이 법신으로 승화하고 있는데 나름의 의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논리의 비약이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두루 계신 제불 혹은 삼보님께 삼정례를 올리고, 예경의 대상을 청해 (청하는 의식문은 존재하지 않지만) 예경을 하는 상단예불과 달리 각단에는 각단에 모셔진 불보살님이나 성중께 예경을 한다.

우리 불교에서는 그간 조석예불, 조석송주, 도량석 등의 의궤에서 볼 수 있듯이 아침저녁 그 특징을 살려 송주하거나 경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통을 잇기 위해 <통일법요집>(2003)에는 ‘향수해례’와 ‘사성례’를 상단예불의 다른 하나로, ‘천수경’.‘사대주’.‘약찬게’.‘법성게’ 등을 도량석으로 제시하였지만 <표준법요집>에서는 의식의 한글화 정신을 살려 도량석은 우리말 법성게로, 아침 종성 이후에 놓였던 장엄염불은 별도의 장엄염불편으로 편제했다.

사상과 시대에 따라 성불의 길은 다양하게 제시된다. 오늘의 시대에 부응하는 종단의 우리말 의례를 생성해나가는 도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고 할 수 있다.



[불교신문 2602호/ 3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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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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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푸르름 | 작성시간 10.03.01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_()()()_
  • 작성자유정해원명심 | 작성시간 10.03.01 '사상과 시대에 따라 성불의 길은 다양하게 제시된다' ....... 한글 예불문 연구원들께 신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작성자류미해 | 작성시간 10.03.01 칠정례에 대한 보다 정확한 예문 감사합니다 오늘의 시대에 부응하는 종단의 우리말 의례를 생성해나가는 도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많은 어려움에도 연구하여 주시는 모든분께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작성자바람바람 | 작성시간 11.02.24 _()()()_"사상과 시대에 따라 성불의 길은 다양하게 제시된다. 오늘의 시대에 부응하는 종단의 우리말 의례를 생성해나가는 도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고 할 수 있다. " 하지만 불교를 공부하는 불자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도 쉽게 널리 읽혀지는 "표준 법요집"이 편찬되어지면 좋겠습니다. 종교와 관계없이 성경책을 읽어 보는것이 좋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와같이 불교의경전도 모든 사람이 언제 읽어도 쉽게 이해되고 예경될수있어면 좋겟습니다.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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