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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진제 속제의 출처

작성자천장암|작성시간14.12.24|조회수55 목록 댓글 1

부처님의 가르침들은 진제와 속제의 두 가지로 구분된다.

 

그런데 이렇게 범주가 다른 가르침을 같은 수준의 가르침으로 착각하여

 

나란히 늘어놓고 비교할 경우 모순이 발생한다.

 

“윤회와 무아의 가르침은 상충하지 않는가?”

 

“공의 가르침과 선악의 가르침은 상충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런 물음은 ‘범주의 오류(Category mistake)’를 범하고 있다.

 

진제와 속제의 구분을 모르기에 발생하는 잘못된 물음이다.

 

무아나 공의 가르침은 진제이고, 윤회나 선악은 속제다. 

 

진제와 속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리하는 중요한 틀이다.

 

진제는 평등의 입장에서 조망한다.

이를테면, '생명은 모두 소중하다. 생명에는 차별이 없다.' 이것은 진제적 조망이다.

 

반면, 속제는 차별의 입장에서 조망한다.

'다 같이 소중한 생명이지만,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므로 질서와 규율이 필요하다.'

이것이 속제적 조망이다. 

 

그러니까, 같은 현상을 가지고 조망점을 달리하는 것이다. 

구체적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아버지와 아들은 평등하다. 그 생명에 경중이 없고, 인권에도 차별은 없다. 똑같이 소중한 생명, 평등한 인권이다.(이것이 진제적 조망이다.)

 

그러나 속제적 조망에서는, 아들이 아버지와 맞먹으려 들면 안 된다가 된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의 맞는 처신을 해야 하고,

아들은 아들로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이것은 속제적 조망이다.)

불교에서는 결코 속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세간에서 통용되는 법규나 규정 약속 즉, 자동차, 사람, 꽃 등등 세간에서 널리 사용되고 쓰이는 여러 개념, 규정, 약속, 법률, 관습, 등을 속제(삼무띠 삿짜)라 한다.
그러나 이런 세간적 인습 등에 함몰되어버리면 진정한 해탈과 진정한 자유는 없게 되므로 붓다들은 진제(빠라마타 삿짜)를 설한다.

 

진제와 속제는 언제 부터 생겨났을까?

아래 상윳따까야에서 진속이제의 출처가 되는 경전이 있다.

진제와 속제는 깨달은 사람(붓다)이 중생과  대화를 해야  할 때 필히 발생하는 두 가지 종류의 언어이다.

 

 

아라한 경(S1:25)

Arahantasuttaṃ

[하늘사람] "해야 할 것을 다 마치고 번뇌를 떠나 궁극의 몸을 이룬 성자인 수행승이

'나는 말한다'라고 하든가 '사람들이 나에 관해 말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세존] "해야 할 것을 다 마치고 번뇌를 떠나 궁극의 몸을 이룬 성자인 수행승은

오로지 '나는 말한다'라고 하든가 '사람들이 나에 관해 말한다'라고 하여도

세상에서 불리는 명칭을 잘 알아서 오로지 관례에 따라 부르는 것이네"

[하늘사람] "해야 할 것을 다 마치고 번뇌를 떠나 궁극의 몸을 이룬 성자인 수행승이

참으로 망상에 사로잡혀 '나는 말한다'라고 하든가 '사람들이 나에 관해 말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세존]

"망상을 버린 자에게는 속박이 없으니

망상의 모든 속박은 남김없이 부서졌네.

개념지어진 것을 넘어서는 현자는

'나는 말한다'라고 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나에 관해 말한다'라고 하여도

세상에서 불리는 명칭을 잘 알아서

오로지 관례에 따라 부르는 것이네"

 

 

Pahīṇamānassa na santi ganthā

Vidhūpitā mānaganthassa sabbe,

So vītivatto maññanaṃ sumedho

Ahaṃ vadāmītipi so vadeyya

Mamaṃ vadantītipi so vadeyya,

Loke samaññaṃ kusalo viditvā

Vohāramattena so vohareyyā'ti.

 

 

[Deva:]

He who's an Arahant, his work achieved,

Free from taints, in final body clad,

That monk still might use such words as "I."

Still perchance might say: "They call this mine."

...

Would such a monk be prone to vain conceits?

[The Blessed One:]

Bonds are gone for him without conceits,

All delusion's chains are cast aside:

Truly wise, he's gone beyond such thoughts.[1]

That monk still might use such words as "I,"

Still perchance might say: "They call this mine."

Well aware of common worldly speech,

He would speak conforming to such us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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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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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본원(本願) | 작성시간 14.12.25 진제와 속제가 서로 갈등 구조로 작용할때?
    진정한 붓다의 뜻은 무엇일까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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