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초기불전 승가대학원 앞에서 선운사 주지 스님과 교수사 스님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법만스님(선운사 주지), 환성스님(승가대학원 교수사), 재연스님(승가대학원 원장), 일묵스님(선운사 원주), 도정스님(승가대학원 학감).
 



최근 한국불교에서 초기불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위빠사나 수행을 하거나 초기경전을 공부하는 출재가자들의 모습에서 쉽게 확인된다. 하지만 초기와 대승을 놓고 벌어지는 학자들간 논쟁은 불자들에게 혼란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관계가 명확하게 정립돼 있지 않은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초기불교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본지는 지난 21일 제24교구본사 선운사에서 개원을 앞둔 선운사 초기불전승가대학원 원장 재연스님과 교수 환성스님으로부터 초기불교에 대한 바른 인식은 무엇인지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초기불교는 대승 교학과 수행체계의 근거”


  초기경전 한역경전보다 부처님 원음에 가까워

  근본불교에 대한 이해 없는 대승불교 사상누각

  한글번역으로 고유한 한국불교 만들어나갈 것

 

△ 초기불교란 무엇인가

환성스님=초기불교는 부처님 원음에 가까운 가르침을 말한다. 보통 아비달마는 제외시키는 경우 많은데 한국에서는 아비달마까지 포함해 초기불교로 통칭한다. 근본불교 또는 원시불교라고도 하는데, 근본불교는 이슬람 등 타종교 때문에 정치적인 부분이 있고 원시불교는 오리지널이라고 하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부처님의 이른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초기불교라고 한다.

재연스님=기독교나 무슬림 근본주의 때문에 근본불교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고, 원시 역시 개발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가 있어 초기불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무엇이 같고 다른가

재연스님<사진>=대승불교와 초기불교는 기본적으로 같은 부처님 가르침이다. 다만 대승불교는 초기불교 보다 불교의 대사회적면인 측면이 강조된 것이지, 새롭게 탄생한 것이 아니다. 초기경전에 나와 있는 내용들이 세월이 가면서 비교적 더 강조된 것이다.

예를 들어 자비나 희사 등의 말은 이미 초기경전에도 다 있다. 대승불교로 넘어 오면서 더 강조된 것이다. 소위 출가수행자 중심에서 전 불교도들로 지형이 넓어졌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다른 점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이 같은지, 왜 필요한지에 중점을 맞춰야 한다. 같은 부처님 가르침인데, 시기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진 것뿐이다.

환성스님=언어의 차이가 크다. 대승불교는 한문으로 배웠고 초기불교는 빠알리어로 배웠다. 그 언어는 언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상에서도 차이가 있다. 부처님 원음으로 배우는 경전과 한문경전 사이에는 거리감이 존재한다. 빠알리어는 접할수록 부처님과 가까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의 음성이 명확하게 가까이 오는 느낌이랄까. 반면 한문을 보면 한 다리를 건너는 그래서 끝끝내 벽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벽을 빠알리어는 무너뜨려줬다.

재연스님=굳이 차이점 말한다면 부처님 원음이 원형에 가깝게 유지 보존된 것이다. 산스크리트어, 빠알리어로 쓰인 초기경전은 부처님 열반 후 400~500년이 지나서 만들어졌고, 대승불교는 이보다 더 뒤에 나왔다. 중국에서 번역된 경전이 주로 대승불교인 것을 고려하면, 한문불전보다 초기불교 경전이 부처님 가르침의 원형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 출재가를 막론하고 초기불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환성스님=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하겠다. 강원을 졸업하고, <화엄경>을 공부했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다 빠알리 경전을 통해 부처님 말씀을 접하고 출가자로서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한 것은 물론 불자로서 자부심과 행복이 커졌다. 한역경전을 접하면서 느꼈던 부족함이 초기경전을 통해 채워졌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공통점이 있을 것 같다. 불교가 선명해지고 와닿다보니 관심이 늘어나는 것 같다. 사실 그간 한국불교에서 초기불교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극히 제한돼 있었다. 사실 초기불교가 새로워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본래 원했던 정보나 답변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승불교와 같은 부처님 가르침에는 틀림없다. 다만 형이상학적이지 않고, 실생활에 와 닿아 초기불교를 공부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라 본다.

재연스님=<금강경>을 외워야 계를 준다는 계사의 말씀에 따라 행자 때 <금강경>을 줄줄 외웠지만 뜻을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 때 나중에 인도에 가서 불교논리학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하고 인도로 갔다. 거기서 빠알리경전을 보기 시작했다. 초기 경전들을 보면서 부처님이 이렇게 훌륭하신데 대승불교 속 부처님은 온 우주로 확대돼 먼 꿈속 이야기 같고 구름 너머에 계신 분이었다. 우리 옆에 있는 훌륭한 스승이 부처님인데, 사찰에서 본 부처님은 탁자 위에 앉아있는 할아버지일뿐 나랑 상관없는 분이란 생각이었다. 하지만 초기경전 속 부처님은 가깝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사사건건 시비하고 훈계하고 칭찬하고 옆에 있는 스승이란 생각이 들어서 너무 좋았다.

△ 왜 초기불교를 공부해야 하나.

재연스님=지금까지 한국불교는 대승경전 위주로 수행하고 학습해 왔다. 하지만 한역경전에는 빠져 있는 것이 있다. 불교의 역사적 변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불교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 불교가 사상이나 수행체계를 갖추는 데만 500~600년의 시간이 걸렸다. 대승경전에서는 불교교단의 역사를 부처님 일생에 국한시켜서 정리한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중생을 교화한 45년 간 불교경전이 완성됐다고 보는 점이 대표적인 경우다.

부처님이 성도하시자마자 <화엄경>을 설하시고, 근기가 낮은 중생을 위해 <아함경>을 설하시는 등 순차를 두고 경전을 설하셨다고 믿는다. 그것 자체가 역사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 인도에서 500년도 넘게 걸린 시간을 부처님 일생 후반 40년 정도에 억지로 맞춘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불교가 특히 심하다. 불교에 대한 이해, 불교교단의 역사적 이해가 없다보니까 마치 <아함경>은 쉬운 경전인 것처럼 인식하고, 초기불교는 수준이 낮고 위빠사나는 간화선에 비해 수준이 낮다고 보는 것이다.

불교는 부처님을 제대로 이해한 뒤, 부처님은 어떤 분이고 무얼 어떻게 하자고 하는지 알아야 한다. 빠알리경전 속에 이야기되고 있는 내용들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고는 후기에 발전 확장된 대승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사상누각이 돼 버린 것이다. 순서가 있어야 한다. 입학모집에 ‘잃어버린 고리를 채워라’라고 말한 것도 그것 때문이다. 교학과 수행체계 가운데 잃었던 고리를 채운다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교학이나 수행이 사상누각이 되게 하지 않기 위한 방침이다.

환성스님<사진>=대승도 부처님 말씀에 의해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이고, 초기불교도 마찬가지다. 대승만 강조하다보니 놓친 부분도 있다. 초기불교는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에 접근하려는 것이다. 예전에 초기불교를 공부하기 전에 <대반열반경>을 보면서 ‘반’의 뜻이 항상 궁금했었다. 의미를 물었지만 명확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빠알리경전을 보니까 제대로 이해가 가더라. 여기서 ‘반’은 완벽하다는 뜻으로, 완벽한 열반에 대한 경전임을 그 때 비로소 알게 됐다. 또 ‘자등명 법등명’이란 구절을 보자.

 등불과 밝음에 대한 얘기인 것 같은데 뜻이 한 눈에 다가오지 않는다. ‘스스로를 의지처로 삼아라 법을 의지처로 삼아라’고 해석되는 이 구절을 원어로 보면 이런 뜻이다. 고해에서 헤매고 있을 때 스스로가 섬이 되고 법이 곧 불빛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초기경전을 읽으면서 무릎을 친 경우가 많았다. 원어를 알게 되면 한문경전이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알게 된다. 한역경전을 폄훼하는 입장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빠알리경전과 한역경전은 서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재현스님=대승불교에서 출가했지만, 경전 속 부처님은 명확하지 않았다. 우리 스승으로 가르침을 본받고 배우려고 출가했는데 십수년을 살아도 대체 어떤 분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초기경전 속에서 단순하고 명료하게 보였다.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의 큰 차이는 장식이 없다는 점이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반야심경>을 보면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게 <반야심경>의 핵심이다. 연기적 깨달음으로 모든 고통에서 면했다는 그것이 전부다. 제대로 꿰뚫어 봤기에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인간존재가 연기적 존재라는 것을 너도 보고 실천하면 된다는 게 <반야심경>의 가르침이지만 지금 100명 불자들 모아놓고 물어보면 모르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불교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기경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으면 초기 가르침이 대승경전에서 확장 심화됐음을 알게 된다. 불교의 근본바탕을 알기 위해 초기불교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다. 뿌리도 모르면서 이파리, 꽃만 얘기한다면 우리나라 불교수행이나 학문풍토를 바로 세울 수 있다.

△ 부처님 말씀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 초기불교인가.

환성스님=부처님 말씀을 이해하는데 빠알리어 뿐인가 묻는다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다른 방법도 있다. 그런데 모든 길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부처님 말씀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준을 명시해 놓은 것이 초기경전이다. 빠알리경전과 중국의 아함을 비교해보자. 아함은 부처님이 초기에 설하신 말씀으로, 아함으로 공부하는 것과 빠알리로 공부하는 것은 선명도와 깊이가 다르다. 빠알리경전을 공부하고 아함을 보면 ‘이렇게 번역됐구나’ 하고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대승불교에서 어떻게 보충하고 이해했는지 비교할 수 있게 된다. 빠알리경전은 불교를 공부하는 데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최선인 것은 확실하다.

재연스님=초기경전과 한역경전은 서로 상호보완관계가 분명히 있다. 한역에 이해되지 않을 때 초기경전은 반드시 필요하다. 깨달을 ‘각’자를 보자. 중국에서 초기에 번역할 때 각(覺)자는 느낀다 감각의 의미였지만 후기에 부처님이 정각을 얻는다는 깨침의 의미로 변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 없이 한역경전을 번역하다보면 경전 속 모든 ‘각’자는 깨달음으로만 번역된다. 원전의 도움 없이는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다.

한글로 번역된 한글대장경에서 ‘각’자는 무조건 깨달음이라고 나온다. 이 중 50퍼센트는 잘못된 번역이다. 알아차린다 깨어있다 감각이란 뜻도 많다. 그래서 불교를 설명하는 경전 중에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이는 초기경전 이해를 통해서만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출발이 늦은 셈이다. 1920년 이윤재라는 해인사 스님이 스리랑카를 갔다. 돌아와서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후대에 제자들을 못 키웠다. 이미 그때 100여년 전 일본 학자들은 원전공부를 하러 유럽과 인도로 가던 때였다. 한국불교가 100년 정도 뒤늦은 이유가 여기있다. 오늘날 서점에 있는 불교서적 대다수가 일본어 번역물이다. 일본불교의 아류인 셈이다. 우리도 중국과 일본불교의 틀을 벗어날 때가 됐다. 한국어로 초기경전을 직접 번역해 한국만의 불교를 만들어야 한다.

△ 대승불교 중심인 한국불교에서 초기불교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

재연스님=어차피 대승경전의 바탕은 빠알리경전이고 빠알리경전의 바른 이해를 통해서만 대승불교가 살아날 수 있고 대승이 대승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근본 없이 응용이 될 리 없다. 원리가 이해돼야 어플리케이션이 가능한 거 아니냐? 최근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사이의 논쟁은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됐다. 조계종헌을 보면 <전등록>과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한다고 나와 있다. 수행도 간화선뿐만 아니라 염불이나 주력도 함께할 수 있다. 문제는 당연한 내용을 별개로 보는 학자들이다. 우리나라 학자들 특징은 학문과 생활이 별개라는 점이다. 유럽이나 서양학자들을 보면 염불, 위빠사나, 선 등 자신의 전공에 대해 학문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 동시에 실수행을 한다. 반면 우리나라 학자들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해보지도 않은 것을 확신하는 경향이 있다. 대승불교와 초기가 공존하려면 소승학자가 아닌 초기불교학자여야 한다.

환성스님=대승이 대승다워지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 초기경전을 배우는 존재는 무엇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 부처님 말씀을 경청하고 그것에 바탕해 고민하고 그대로 이 시대에서 함께 살아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승이니 소승이니 나누는 것은 탈피해야 한다. 제대로 공존하기 위해서는 부처님 말씀에 의지해서 해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된다. 대승과 소승으로 이분화시키는 것은 껍데기일 뿐이다.

재연스님=대승이란 용어 자체가 차별화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그 자체가 부파적인 것이다. 핵심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떻게 하면 충실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대승이란 아이디어 자체는 훌륭하다. 불교의 대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게 대승이라면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 인도의 용수, 무착, 세친, 달마와 혜능스님은 불교사의 전환이 된 스승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떻게 하면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 이 시대에 어떻게 적용하는 지를 고민해야 한다.

환성스님=우리가 부처님 원음을 다 같이 고민하자고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해보니까 좋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큰 이익을 줬고 행복하게 만들더라는 경험을 통해 행복하고자 한다면 같이 가자는 것이다.

재연스님=한역경전을 보면 불교는 대단히 고상한 종교다. 그런데 그 뜻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죽어라 외우는 불자는 많아도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제대로 이해를 못하면 내 마음을 바꿀 수 없다. 내 마음 바꾸지 못하면 실천할 수 없다. 결국 바른 이해 없이는 아무것도 될 수 없다. 교단의 교학수행이 잘못된 것이. 초등학생들도 읽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경전이 나와야 한다. 그것을 바로 잡는 것 자체가 엄청난 변화이다. 초기불교 공부는 우리 교단의 교학과 수행체계를 변화시키는 주역이 될 것이다.

△ 3월 개원하는 선운사 초기불전승가대학원은 어떻게 운영되나.

재연스님=초기불교 삼장을 공부한다. 맨 먼저 경은 환성스님이, 계율은 제가 맡고, 논에 대한 부분은 각묵스님이 강의한다. 일상의 경전공부나 실수행은 미얀마에서 오랫동안 수행한 학감 도정스님이 맡는다. 스님이 직접 위빠사나 수행법을 지도할 계획이다. 경전변역이나 포교 등의 특강은 중앙승가대 교수 미산스님에게 부탁할 것이다. 호진스님과 법산스님을 포함해 재가교수들도 모실 예정이다. 특강 말고도 해제철인 봄 가을에는 특별한 수행코스도 만들었으면 좋겠다. 재가불자 포함하고 스님들도 동참해서 경전공부도 하고 실수행도 하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면 새로운 형태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선운사에서 선보이게 될 것이다.

환성스님=빠알리경전을 텍스로 읽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그것에 대해 준비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초기나 대승의 이론을 따지기에 앞서, 초기경전을 원어로 정독해보고 그것을 이해의 폭이 넓어졌을 때 다른 부분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삼장을 빠알리경 위주로 하고 대승경전이나 그런 것은 축적이 된 후에 넓혀 갈 생각이다.

재연스님=우리나라 불교에서 가장 취약한 점이 원전을 보고 연구하는 학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 서구불교에서 연구된 논문을 보고 토론하는게 전부다. 1차 자료인 경전을 읽지 않고 남이 쓴 번역본이나 보는 것은 학문도 수행도 아니다. 특정인의 해석일 뿐이다. 불교공부에 가장 기본은 부처님 말씀을 직접 읽는 것이다. 남이 쓴 해설서로 불교공부를 했다고 할 수 없다. 철저히 우선 빠알리 삼장을 철저히 읽고 그 다음에 해석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교학도 수행도 변화한다.
환성스님=빠알리경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자료가 필요한데 거기에 들어가는 도구로 가장 유용한 것은 영어다. 영어 쪽에 필요로 한 부분에 대해서는 원장 재연스님이 보강을 계획하고 있다.

재연스님=PTS(Pali text society)에서 만든 영어번역본을 주로 활용하고, 영국이나 미국 쪽 학자들이 출판된 자료들 보조로 쓸 것이 많다. 빠알리어 공부에 영어가 많이 쓰이기 때문에 영어 관련 소양이 있는 스님 위주로 신입생을 선발할 계획이다.

환성스님=초기불전 승가대학원 개원되면 우리 때보다 좋은 여건에서 공부할 수 있다. 1980년대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공부할 때는 초기불교를 가르쳐줄 선배가 없어서 해외에 나가 공부해야만 했다.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는데 13년이 걸렸다. 하지만 후학들은 이런 고생을 할 필요가 없어 다행이다. 여건을 만들어준 주지 스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또 원장 재연스님 덕분에 좋은 도량에 와서 빠알리경전을 함께 읽어볼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뜻 맞는 사람들이 부처님 말씀 하나를 두고 같이 모인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크다.

재연스님=초기불전승가대학원은 중국 특유의 국수주의와 한자철학을 통해 들어온 불교를 빠알리어 경전을 통해 바로 읽고 공부한다는 것은 중요한 사안이다. 부처님 말씀을 우리말로 바로 옮기는 의미 있는 역경불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번역 자체보다는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열정 있는 스님들이 와서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인터뷰 / 제24교구본사 선운사 주지 법만스님


“교학체계 정립ㆍ발전에 적극 지원”



“초기불교는 불교 2600여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깊은 뿌리입니다. 초기불전의 심도깊은 이해는 이 시대 불교가 가장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입니다.”

제 24교구본사 선운사 주지 법만스님<사진>은 ‘선운사 불학(초기불전)승가대학원’을 개원하면서 초기불교에 대한 중요성을 이같이 밝혔다. 법만스님은 불학승가대학원 개원과 관련 “오랫동안 우리 교학과 수행체계 가운데 잃었던 고리를 찾아 채움으로써 바른 수행자상을 정립하고 새 시대의 승가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전문교육기관으로 문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선운사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강학ㆍ수선도량입니다. 백파스님과 석전스님 등 역대 훌륭한 고승들의 강맥을 이어왔습니다. 지금까지 중국서 건너온 불교만을 중심으로 공부하고 연구해온 현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초기불전 연구 정립을 통해 한국불교가 제대로 된 교학체계로 발전ㆍ전개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하고 협력해나갈 계획입니다.”

불학승가대학원은 조계종 승가개혁방침에 따른 승가대학 폐교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초기불교 교육도량으로 지난 2010년 11월25일 설립인가를 받아 오는 3월 공식 개강을 앞두고 있다. 초기불전과 범어원전을 통해 초기불교를 이해하고, 그 자료들을 우리 언어로 표현하는 역경불사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설립됐다. 조계종 교육원으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은 선운사 불학승가대학원은 향후 최초로 초기불전을 연구하는 전문교육기관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선운사에 불학승가대학원이 문열기까지는 법만스님의 역할이 컸다. 교육원이 승가교육을 개편하면서 초기불전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대학원 설립을 추진한다는 정보를 접한 법만스님은, 선운사 승가대학 폐교에 따른 대안으로 적극 검토했다. 이어 대학원 설립 추진위원회를 긴급 구성해서 내부 논의를 충분히 거친 뒤 마침내 최종결정을 내렸다.

출가 전 사범대학서 수학했던 법만스님은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모든 불사(佛事)는 교육으로 회향돼야 마땅하다”는 스님은 “소승이나 대승을 떠나서 부처님법에 가장 가까운 도량으로 만들기 위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공부할 수 있는 최상의 여건을 만드는데 최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며 “재연스님(대학원장)과 환성ㆍ각묵ㆍ미산스님(교수사), 도정스님(학감스님) 등 인적구성도 잘 갖춰졌으니 스님들과 여법하게 운영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2007년 선운사 주지로 취임한 법만스님은 그동안 수행과 교육, 포교, 불사, 문화, 복지를 통해 선운사의 위상을 단기간에 큰 폭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백파사상연구소 설립 석전스님 선양사업 등으로 수행ㆍ연구 풍토를 조성했다. 선운사 인근 4개면 이장단 회의를 주관하면서 선운사 불사 등을 지역에 알리고 주민 민원을 청취하는 자리도 정기적으로 마련하는 등 지역과의 긴밀한 연대로 지역사찰의 모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공개살림을 원칙으로 한 투명한 사찰 운영을 실천하고 있는 스님은 자생력 확보 차원에서 보은염(소금) 판매 등 수익사업 추진도 계획하고 있다. 이외에도 지난해 1월 발생한 아이티 지진사태에 1200여만원의 성금을 종단에 기탁했고 동국대에 장학금을 지급하고 총무원 차원의 생태환경책자 발간에 교구본사로 첫 단추를 끼우는 등 다양한 종단 종책사업에 적극 동참해 타 본사의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이란 모든 중생들이 저마다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부처님 법 안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수행하면서 불법이 널리 전달되어 보다 살기 좋고 행복한 세상, 상생과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우리 선운사와 24교구, 그리고 종단이 큰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법만스님의 ‘꿈’은 철저한 계획과 24교구의 화합과 대중공사 속에서 선운사를 수행과 교육, 문화ㆍ포교 전문도량으로 한층 빛내고 있다.

 

인터뷰 / 불학(초기불전) 승가대학원 학감 도정스님


“초기불전 명품 대학원으로 운영”



“초기불전의 심도깊은 이해와 연구, 실천으로 대승불교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대학원 운영을 위해 학감으로서 최선을 다해 조력할 것입니다.”

백양사승가대학을 나와 10여년간 미얀마에서 초기불교를 연구하고 수행한 도정스님<사진>은 이번에 개원하는 선운사 불학승가대학원에서 학감소임을 맡았다.

‘해외학파’인 도정스님은 미얀마 현지에서 오랫동안 수행해온 이력과 상당한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다. 대학원생들의 교육시설과 수행환경을 지원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최상의 여건을 구비하는 역할 역시 도정스님의 몫이다. “쾌적한 공간에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대학원 시설정비와 운영에 있어 주지 스님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원전을 연구하는 ‘명품 대학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도정스님에 따르면 원서교부를 시작한 지난 20일부터 전화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도정스님은 “승납이 적지 않고 심지어 강원에서 강사를 지낸 스님들의 문의도 많다”며 “제방에서 한문경전을 가르치다 보니 초기불교에 대한 공부가 부족해서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스님들이 다수”라고 했다. 스님은 “공부에 일가견이 있는 실력자들이 대거 응시하리라 예상되고 경쟁률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우수한 학생을 선별하여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교육도량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만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도정스님은 대학원 2년 과정을 수료한 뒤 졸업여행지를 미얀마로 선택해서 현지에서 수행을 체험하고 논문을 쓰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주지 법만스님의 지원으로 졸업여행비용도 예산으로 이미 짜놓은 상태다. 이외에도 도정스님은 향후 가칭 ‘선운사 수행센터’를 개설해서 위빠사나 수행을 체험하고 지도하는 프로그램도 운용할 방침이다. 스님 뿐만아니라 재가불자들도 산철결제를 통해 수행프로그램에 동참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도정스님은 “철저한 준비를 통한 빠른 판단과 강한 추진력을 갖춘 주지 법만스님에 힘입어 수행ㆍ교육도량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쉼 없이 노력하고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정리=어현경 기자

사진 김형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