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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스크랩] 임승택의 초기불교순례 - 4. 붓다의 출가와 수행

작성자천장암|작성시간11.12.01|조회수11 목록 댓글 0

4. 붓다의 출가와 수행
있는 그대로를 인정함으로 깨달음을 얻다
2011.02.08 13:26 입력 발행호수 : 1083 호 / 발행일 : 2011년 2월 2일

붓다의 출가와 수행 여정은 어떠했는가. 유년기의 붓다는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그는 유복한 환경 속에서 살았지만 감각적 쾌락에 매몰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의 덧없음과 권태로움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그가 살던 도시의 네 성문 밖으로 나가 인간의 생로병사를 차례대로 목격했다고 한다.


동문에서는 나이 든 노인을, 남문에서는 병들어 괴로워하는 환자를, 서문에서는 싸늘히 죽은 시체를, 북문에서는 출가 생활을 하는 사문을. 이러한 경험은 인간의 삶이 괴로움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자각을 일깨웠고 또한 먼 훗날 출가를 선택하게 된 간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붓다의 전기는 그의 인격적 성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기질적으로 그는 세속적 성공이나 출세를 갈망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과 달랐다. 그는 대다수 사람들과 달리 들뜬 희열보다는 고요한 행복에 더욱 친화적인 인물이었다. 이러한 성향은 구도의 과정에서만이 아니라 이후의 전법 활동에서도 계속되었다. 붓다는 세속적인 삶을 벗어남으로써 얻어지는 즐거움에 주목했고, 또한 그렇게 해서 도달되는 평안의 경지를 나누고자 하였다. 우리는 바로 이것이 초기불교의 가르침에서 풍겨 나오는 기본 분위기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출가 직후 붓다는 유명한 요가수행자였던 알라라깔라마와 웃다까라마뿟따를 찾아간다. 그리하여 ‘아무 것도 없는 선정(無所有處定)’ 혹은 ‘지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선정(非想非非想處定)’ 등을 배운다. 이들은 고도로 집중된 의식 상태로서 당시 엘리트 명상가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수준 높은 삼매의 경지였다. 그러나 그는 그 체험이 일시적이고 가식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서 독자적인 길로 나서게 된다. 그가 선택한 두 번째 방법은 엄격한 육체적 고행을 통해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구하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육년 동안 극소량의 음식만을 섭취하면서 가혹한 고행을 감행한다. 그 결과 팔다리는 시든 갈대처럼 되었고 배를 만지면 등뼈가 만져질 정도로 여위게 되었다고 한다.


고대 인도에서는 고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수행전통이 유행하였다. 고행은 오늘날에도 일부 전해지는데, 단식이라든가 삼천 배 혹은 만 배 정진 등이 그것이다. 적당한 고행은 헤이해진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결의를 굳건히 하는 데 유효할 수 있다. 또한 정진의 힘을 북돋고 강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친 고행은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고 오히려 아만을 높이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붓다는 오랜 고행 끝에 이러한 문제점을 알게 되었고, 고행만으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붓다에게 깨달음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은 요가도 아니었고 고행도 아니었다. 그것은 어렸을 적 아버지를 따라 나섰던 농경 축제에서 홀로 나무 밑에 앉아 우연히 경험했던 ‘첫 번째 선정(初禪)’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는 첫 번째 선정의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마음 상태에서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데 따른 기쁨과 즐거움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깨달음의 길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는 그 확신을 바탕으로 지극히 맑고 청정한 마음지킴(念, sati)의 상태인 ‘네 번째 선정(第四禪)’에 이르게 되었고, 마침내 거기에서 번뇌의 씨앗이 완전히 사라진 지혜(漏盡智)를 얻게 된다.


이상이 가장 널리 인정되는 붓다의 수행 여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붓다는 먼저 전문적인 요가수행을 하였고 이후 고행을 통해 육체적인 한계에 도전하는 방법으로 나아갔다. 그는 그러한 절차를 겪고 나서 다시 일상의 마음으로 돌아와 깨달음의 인연을 만난다.


▲임승택 교수
이후 그는 자신의 수행 여정을 중도(中道)로 부르게 되었고, 쾌락에도 얽매이지 않고 고통에 이끌리지도 않는 가운데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을 가르쳤다. 이러한 중도란 세속적 삶에 대한 반성은 물론 타성화된 수행전통에 대한 반성까지를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어떤 특정한 방법을 무작정 강제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수용할 때 깨달음의 길이 열린다는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다.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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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미주현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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