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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스크랩] 임승택의 초기불교순례 - 6. 붓다 가르침의 특징

작성자천장암|작성시간11.12.01|조회수12 목록 댓글 0
6. 붓다 가르침의 특징
정서적 안정을 통해 지혜를 개발하다
2011.02.22 17:01 입력 발행호수 : 1085 호 / 발행일 : 2011년 2월 23일

붓다는 무엇을 가르쳤을까. 그의 가르침은 과연 어떠한 특징을 지닐까. 붓다는 깨달음을 얻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의 게송을 읊었다.


“참으로 힘들게 성취한 진리, 왜 내가 가르쳐야 하는가. 탐욕과 분노에 사로잡힌 자들은 이 진리를 깨닫기 어렵네. 흐름을 거슬러가고 오묘하고 심오하고 미세한 진리를 보기 어렵네. 어둠에 싸여 탐욕에 물든 자들은 보지 못하네.”


이것을 읊고 나서 붓다는 전법(傳法)을 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그의 가르침이 다른 사람들에게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우려하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또 다른 상처와 괴로움이 발생하는 것을 피하고자 하였다.


붓다는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되는 요인으로 탐욕과 분노를 꼽고 있다. 이점은 그의 깨달음이 단순히 이지적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흔히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붓다는 우리가 진리를 깨치지 못하는 이유를 이성이 아닌 정서적 측면에서 찾는다. 즉 탐욕에 눈이 멀고 분노에 귀가 가려 있는 그대로(如如)의 진리로부터 벗어난다고 보았다.


따라서 깨달음을 얻느냐 얻지 못 하느냐의 문제는 머리의 좋고 나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정화되어 있느냐 그러지 못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전법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기울던 붓다에게 하늘의 신(天神)이 나타나 간곡히 가르침을 청한다.
“이 세상에는 더러움에 거의 물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가르침을 베풀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바른 가르침을 접하지 못한다면 다시 더렵혀지고 말 것입니다.”


붓다는 그 요청을 받아들여 깨달은 이의 눈으로 세상을 비추어 본다. 그리하여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연꽃처럼 오염된 세상에 젖지 않고 살아가는 중생들이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에 대한 자비의 마음으로 전법에 나서게 된다. “죽지 않음의 문이 열렸도다. 듣는 자들은 스스로의 잘못된 믿음을 버려라.”라는 게송과 함께.


이렇게 시작된 가르침의 여정에서 붓다는 항상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였다. 그는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뿐 아니라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가르침을 펼쳤다. 이와 관련하여 머리 나쁘기로 유명한 쭐라빤타까라는 수행자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의 기억력은 단 한 구절의 경전도 외울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고 한다. 그러한 그에게 붓다는 얼굴에 묻은 먼지를 닦으라고 권하면서 ‘먼지 닦음’이라는 말을 계속해서 되뇌도록 하였다. 얼마 후 쭐라빤타까는 먼지가 닦이어 없어지듯이 마음의 번뇌와 어리석음도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무상의 진리를 자각하게 되고 마침내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쭐라빤타까가 깨달은 무상의 진리는 결코 난해한 것이 아니다. 무상하다는 것은 곧 변화한다는 것으로,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의 삶에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명예라든가 신념 혹은 가치 따위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내려놓아야 할 때 내려놓지 못하고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또한 그것이다. 바로 거기에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탐욕과 분노가 도사리고 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갈등과 불화는 이러한 감정적·정서적 문제들로 인해 막다른 길로 치닫기 일쑤다.


▲임승택 교수
붓다는 처음 수행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이지적 능력보다 심리적 안정을 더욱 강조하였다. 내면적인 감정과 충동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붓다는 그러한 연후라야 비로소 참된 지혜가 발현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붓다의 가르침의 특징은 정서적 안정을 통해 지혜의 개발로 나아가는 양상을 띤다. 마음의 고요함을 의미하는 사마타(止)와 지혜를 의미하는 위빠사나(觀)는 바로 이러한 과정을 집약하는 불교 수행의 양 날개라고 할 수 있다.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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