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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임승택의 초기불교순례 - 7. 붓다의 최초 설법

작성자천장암|작성시간11.12.01|조회수6 목록 댓글 0

7. 붓다의 최초 설법
 
“쾌락도 고행도 아닌 중도의 길을 가라”
2011.03.02 10:19 입력 발행호수 : 1086 호 / 발행일 : 2011년 3월 2일

붓다의 최초 설법은 어떠했을까. 항상 모든 사람들을 감복시키는 탁월함을 보였을까. 붓다의 전법은 깨달음을 얻은 이후 여든의 나이로 입멸에 들 때까지 쉼 없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문헌에 따르면 그의 최초 설법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는 그의 가르침을 알아들을 만한 첫 번째 인물들로 한때 자신에게 요가를 가르쳐 주었던 알라라깔라마와 웃다까라마뿟따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들은 연로하여 이미 죽고 없었다. 그러자 그는 한 동안 도반으로서 함께 고행을 닦았던 다섯 명의 수행자들을 생각해 낸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가르침을 베풀기 위해 먼 전법 여행에 나선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루었던 곳과 다섯 수행자들이 머물던 지역은 상당히 떨어진 거리였다. 그는 그곳으로 가던 도중 어떤 외도 수행자를 만나 가르침을 설했지만 공감을 얻지 못한다. 홀로 수행하여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붓다의 말에 그 외도 수행자는 “그럴 수도 있겠지요.”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흔들며 작별을 고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어렵게 재회한 다섯 수행자들도 처음에는 그의 가르침을 완강히 거부했다고 한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붓다는 “내가 예전에 이렇게까지 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그의 가르침에 경청할 것을 요구하였다.


붓다의 최초 설법에서는 치밀하게 구성된 철학적 논변도 불가사의한 초능력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쾌락적인 삶도 버리고 고행에 대한 탐닉도 벗어나 중도(中道)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한 중도란 다름 아닌 바른 견해·바른 결심·바른 언어·바른 행위·바른 삶·바른 노력·바른 마음지킴·바른 삼매의 팔정도이다. 그는 이 중도의 길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진리인 사성제를 깨달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꼰단냐 존자에게 “모든 일어난 현상은 소멸한다”는 깨우침이 있었고, 순차적으로 다섯 비구 모두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첫 번째 설법이 성공한 후 비로소 붓다의 교화 활동은 탄력을 얻게 된다. 붓다를 포함한 여섯 명의 아라한들로 구성된 최초의 비구 승단이 형성된 것이다. 아라한 제자들은 붓다와 동일한 인격을 이룬 존재로 인정되었고, 또한 그들의 깨달음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율장’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하늘과 땅이 진동했다고 기술한다. 땅의 신(地神)들과 하늘의 신(天神)들이 등장하여 “세존께서 굴리신 최상의 법의 수레바퀴는 사문·바라문·데바·마라·범천 등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뒤로 물러나지 않게 되었다”고 노래하였다.


첫 번째 설법의 성공은 붓다 자신의 깨달음 이상의 의의를 지닌다. 그것으로 인해 붓다의 깨달음은 다른 이들의 괴로움을 제거할 수 있는 보편적 능력을 지닌 것으로 입증되었다. 이후 입멸에 이를 때까지 그의 제자로서 아라한의 경지에 이른 분은 통상 천이백오십명으로 거론된다. 세계의 종교사를 통해 이처럼 많은 제자들이 최초로 가르침을 펼친 스승과 동일한 성취를 이룬 사례는 찾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초기경전에는 냐띠까라는 촌락에서만 무려 500명 이상의 재가자들이 수다원(sota-patti)이라는 성인(聖人)의 경지를 이루었다고 전한다.


다섯 비구들에 대한 설법 이후, 붓다는 재가자인 야사와 그의 친구들을 상대로 가르침을 펼친다. 그는 우선 보시에 관한 가르침(施論), 계율에 관한 가르침(戒論), 천상세계에 관한 가르침(生天論)를 들려주었고, 그런 연후 듣는 사람의 상태를 충분히 고려하여 사성제의 가르쳤다. 마치 더러움이 없는 깨끗한 천으로 물감을 들이듯이, 마음을 정화하는 가르침을 먼저 펼친 다음 사성제로 넘어갔던 것이다.


▲임승택 교수
이상과 같이 붓다의 전법은 스스로의 깨달음의 여정과 마찬가지로 점차적으로 다듬어지는 과정을 걸쳤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전법 양상은 지극히 인간적인 붓다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며, 모든 이들이 자연스럽게 수긍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임승택 경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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