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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6강. 제 1장 연기란 무엇인가 (2)

작성자천장암|작성시간11.12.16|조회수25 목록 댓글 0

6강 : 1장. 연기란 무엇인가 (2)

 

지난 시간에는 12연기의 열두 요소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더불어

12연기의 흐름은 창조주나 어떤 신도 거역할 수 없는 법칙이지만,

불교 수행으로 얻는 해탈 열반은 이 열두 요소의 흐름을 끊어

태어남과 죽음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는 설명을 했습니다.

 

연기법을 요약하면

 

세간. 세속적 진리. 속제

관념. 빤냐띠. concept

출세간. 궁극적 진리. 진제

실재. 빠라마타. reality

세속적 진리는 실재를 부르기 위해 도입한 나, 너, 사람, 등의 관념에 지배당하는 세계다. 결국 나라는 사견으로 오온의 흐름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궁극적 진리는 마음, 마음의 작용, 물질인 유위법과 열반의 법인 무위법이 있다. 관념이 아닌 reality를 대상으로 하여 법을 통찰한다. 결국 오온의 흐름이 멈춘다.

나, 너라는 사견으로 갈애, 집착, 업을 생성하여 그 인과의 법칙으로 윤회가 지속된다. 속제는 인과의 법칙이 적용되는데 원인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지속된다.

나, 너라는 사견을 제거하고 실재인 느낌에서 갈애를 제거 윤회가 끝나는 세계다. 인과의 법칙이 적용되는데 원인을 소멸하기 때문에 결과도 소멸된다.

세간은 사성제의 고제와 집제가 있다. 즉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이 반복되며 흐른다.

출세간은 사성제의 멸제와 도제가 있다.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의 길인 8정도가 있어 연기가 멈춘다,

 

1. 연기법의 흐름은 세속적 진리이다.

우리가 말하는 나, 인간, 사람, 존재라는 것은 관념이며,

그 안에 실재하는 것은 매 순간의 물질과 정신이다.

세속에서 나, 인간, 사람, 존재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이런 물질과 정신을 표현하기 위한 방편이다.

 

2. 연기법은 지각이 있는 존재의 물질과 정신,

즉 다섯 무더기가 조건에 의해 끊임없이 생멸을 반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깨달음은 세속적 진리 즉 개념이나 관념을 벗어나

그 실재인 대상과 그것을 아는 마음, 즉 물질과 정신만 실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오온 안에 나의 것, 나의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3. 궁극적 진리에서는 남자, 여자, 혹은 존재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고,

다만 조건에 의한 물질과 정신의 생멸만 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존재하고, 이것이 일어남으로 저것이 일어나며,

이것이 존재하지 않으면 저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연기의 법칙만 적용되고 있다.

연기는 일어나는 연기와 소멸하는 연기가 있다.

 

4. 12연기 안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가 있다.

시제로 볼 때 과거의 원인에서 현재의 결과를 연결하는 다리,

과보를 받는 현재에서 업을 생성하는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

업을 생성하는 현재에서 그 과보를 받는 미래를 연결하는 다리가 있다.  

즉 세 개의 다리가 있는데, 行과 識 사이, 受와 갈애 사이,

업의 생성과 生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가 있다. 

 

5, 나무가 열매를 맺고, 열매 안에 있는 그 씨앗이 다시 새로운 열매를 맺는 것처럼,

중생들에게 무명과 갈애라는 씨앗이 있으면 그에 맞는 몸과 마음이라는 열매가 생기고,

다시 현재의 몸과 마음으로 짓는 생각과 말과 행위가 새로운 씨앗을 되어

미래의 결과로 나타날 열매를 숙성시키고 있다.

 

이처럼 무명과 갈애가 완전히 소멸되지 않는 한 

지금 받는 과보가 새로운 원인 되어 새로운 결과를 만든다.

12연기는 중생들의 태어남과 늙음 죽음이 무명과 갈애로 인해 끝없이 반복되는 실상을 보여준다.

 

6, 중생들의 이런 반복의 과정은 끝없는 고통과 슬픔의 연속을 의미한다.

가끔은 삶속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 성취의 즐거움도 경험하지만,

이 즐거움은 집착의 대상이 되어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힘을 키워 새로운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그래서 삶의 실재하는 성품은 괴로움(苦)이다.

 

7. 이 과정은 불과 연료의 상호작용과 같다.

연료가 들어가면 불이 일어나고, 연료가 다 소모되면 불은 꺼진다.

그러나 연료가 다시 공급되면 불은 다시 일어난다. 

중생은 불이 꺼지려하면 연료를 다시 보충해서 불이 꺼지지 못하게 자가발전한다. 

 

연료는 몸과 마음이며 불은 갈애와 집착과 업의 생성이다.

매순간 접촉하는 대상에 대하여 갈애, 집착, 업의 생성이 끊임없이 일어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만들어 연료를 끊임없이 공급하고

몸과 마음은 끊임없이 갈애 집착 엄의 생성이라는 불을 만든다. 

불은 계속 연료를 원하고, 연료는 계속 불을 만든다. 

이와 같이 불과 연료는 서로를 지탱하기 노력하며 불이 꺼지지못하게 한다.  

 

그러나 여기서 연료와 불이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지혜가 있으면,

비로소 윤회의 불을 끄려는 노력을 할 수가 있다.

그것이 괴로움의 원인을 소멸하는 8정도를 닦아서 열반을 성취하는 것이다.

 

8. 연기의 흐름에서는 집제와 고제가 끝없이 반복된다.

그러나 연기의 소멸에는 도제와 멸제가 반복된다.

 

9. 연기는 세 가지 굴레가 들어있다.

무명으로 인하여 번뇌를 생성하는 번뇌의 굴레,

번뇌로 인하여 업을 생성하는 업의 굴레,

업으로 인하여 과보를 생성하는 과보의 굴레,

다시 과보로 인해 다시 번뇌를 일으키는 번뇌의 굴레,

이 세 가지 굴레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 윤회다.

 

감각기관이 대상과 만나 대상에 혹하는 것이 번뇌의 굴레이며

대상을 갖고 싶어 업을 생성하는 것이 업의 굴레이며

그 결과로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과보의 굴레다.

 

10. 시제로는 과거, 현재, 미래가 찰나의 간격으로 자리를 바꾼다.

지금 경험하는 현재는 즉시 과거가 되며,

그 자리에 미래가 들어오지만 미래였던 현재도 즉시 과거가 된다.

이처럼 연기의 시제는 현재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반복하며 매순간 실재하는 것은 현재다. 

과거 미래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실재하지 않는 과거는 회한이고 미래는 두려움이다.

 

마음이 오직 현재에 있을 때만 회한이나 두려움이 없다.

현재는 단지 원인과 결과로 일어난 한순간의 하나의 현상이며 그것도 그 다음 찰나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마음을 현재에 두는 노력을 하는 수행으로 회한이나 두려움이 없는 행복을 경험한다.

그러므로 수행자가 마음이 머물러야 하는 곳은 현재 뿐이다.

마음이 현재에 있을 때만 원인과 결과로 생멸하는 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2연기의 흐름에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흐름이 있지만

연기의 멈춤은 이런 시간이라는 관념을 초월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원인이 있어서 생긴 결과다.

일어나는 원인이 있으면 일어나는 결과가 있고

소멸하는 원인이 있으면 소멸하는 결과가 있다.

연기법은 괴로움의 원인을 만들지 않으면 괴로움이라는 결과가 없다는

아주 간단한 이치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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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상좌불교 한국 명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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