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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1편 부처님 생애-제3장 초기 교단의 성립과 발전

작성자천장암|작성시간12.01.13|조회수34 목록 댓글 0

제1편 부처님의 생애



제 3장 초기의 교단의 성립과 발전


첫 번째 재가신도 : 따뿟사와 발리까

율장 마하왁가 1편4

[깨달음을 얻은 지 얼마 않았을 때]부처님은 라자야따 나무 아래서 해탈의 기쁨을 누리면서 삼매에 잠겨 계셨다. 그때 따뿟사와 발리까 두 상인이 욱깔라에서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향하는 큰길을 가고 있었다. 그들은 보리죽과 꿀을 가지고 부처님께서 나아가 인사를 드린 후 공손하세 말하였다.

“부처님, 여기 보리죽과 꿀을 받아 주십시오. 이 공양의 공덕으로 저희들에게 오랫동안 행복과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공양을 다 드셨을 때, 따뿟사와 발리까는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숙여 절하며 말하였다.

“부처님, 저희들은 부처님과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저희들은 재가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이와 같이 두 상인 따뿟사와 발리까는 ‘부처님과 가르침’이 두 가지에 귀의한 최초의 재가신도가 되었다.


브라흐마 신 의 설법 요청

쌍윳따 니까야:6 브라흐마 쌍윳따 1:1 율장 마하와r가 1편 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이 네란자라 강가 우루웰라의 아자빨라 보리수 나무 아래에 계셨는데 그때는 바로 깨달음을 얻은 직후였다 그런데 홀로 명상을 잠겨 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깨달은 이 가르침은 심원하고 보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고 평온하고 숭고하고 생각의 범위를 초월하며 미묘하여 지혜로운 사람이나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감각적 쾌락에 빠져 즐거워하고 기뻐한다. 이렇게 감각적 쾌락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모든 것은 원인에 의하여 일어난다는 연기의 가르침을 보기 어렵다. 또한 모든 형성을 고요히 함, 모든 집착을 버림, 갈애의 부숨, 욕망을 버림, [번뇌의]소멸, 열반의 진리를 알기 어렵다. 내가 만일 이 진리를 가르친다 하더라고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한다면 내 몸만 피로하고 괴로운 일이다.’

그때 부처님은 예전에 말한 적도 없고 전에 들어보지도 못한 게송이 떠올랐다.

참으로 힘들어 성취한 이 진리를

왜 사람들에게 알려야만 하는가?

욕망과 증오에 젖어 있는 사람에게

이 담마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심오하고 알기 어렵고 미묘하고

흐름을 거슬러 가는, 알기 힘든 담마를

어둠에 가려있고 욕망에 불타는 사람들은

결코 보지 못할 것이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숙고하고 진리를 설하지 않기로 마음을 기울였다.

그때 브라흐마 사함빠띠가 부처님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생각하기를 ‘여래, 아라한, 바르게 온전히 깨달으신 부처님이 가르침을 설하지 않으려고 하는구나. 오! 세상은 망하는구나. 세상은 버려지는구나!’그래서 브라흐만 사함빠따는 부처님께 말하였다.

“부처님, 부디 가르침을 설하옵소서. 바른 길로 잘 가신 분께서는 가르침을 설하옵소서. 더러움에 덜 물든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가르침을 듣지 못하여 버려졌습니다. 그들이 가르침을 듣는다면 이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함빠띠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번뇌에 물든 사람들이 궁리해낸 오염된 가르침이

예전에 마가다에 나타났다.

[그러나 이제] 불사의 문을 열어라.

청정한 분이 성취한 담마를 그들이 듣게 하자.


마치 산꼭대기에 서 있는 사람이

온 주변의 사람을 다 보듯이

우주적 눈을 가지신, 오! 지혜로운 이여

담마의 전당에 오르십시오.


슬픔을 벗어난 분이시여,

태어남과 늙음에 억눌려

슬픔에 잠겨있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일어서십시오

오 영웅이여! 전쟁의 승리자여!

캐러밴의 지도자, 세상을 거니십시오.

가르침을 주십시오, 오 세존이시여,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브라흐마 사함빠띠의 요청을 이해하고 중생을 향한 자비심과 깨달은 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세상에는 더러움에 덜 물든 사람과 많이 물든 사람, 예리한사람과 무딘 사람, 훌륭한 성품의 사람과 나쁜 성품의 사람, 가르치기 어려운 사람과 쉬운 사람, 내세와 잘못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부처님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그들에게 불사의 문은 열렸다.

귀 있는 자는 [잘못된] 믿음에서 벗어나라.

성가시다는 생각으로, 오 브라흐마여,

숭고하고 빼어난 가르침을

나는 가르치지 않으려 하였네.


최초의 가르침을 전하러 가시다.

맛지마 니까야:26 아리야빠리예사나 경 22-25

이와 같이 나는 가르침을 설할 것인가? 누가 빠르게 이 가르침을 이해 할 것인가? 그때 나에게 ‘알라라 깔라마는 박식하고 경험이 풍부하고 지혜롭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마음의] 눈에 먼지가 적은 사람이다. 그러니 그에게 제일 먼저 이 가르침을 설하면 어떨까? 그는 이 가르침을 단박에 이해할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이미 죽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웃다까 라마뿟다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도 역시 죽었음을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 나는 다섯 비구를 떠올렸다. ‘다섯 명의 비구들은 내가 열심히 정진하던 때에 나의 시중을 들었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니 그들에게 제일 처음으로 가르침을 설하는 것이 어떨까? 다섯 명의 비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들은 바라나시의 이시빠따의 사슴동산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우루웰라를 떠나 바라나시로 향하였다. 그때 나는 깨달음의 나무와 가야 사이의 큰길이 가고 있었는데 아지위까 교의 나체 고행자 우빠까는 나를 보고 말을 걸었다.

“벗이여, 그대의 안색은 맑고 피부는 깨끗하고 광채가 납니다. 그대는 누구에게 출가를 하였습니까? 그대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누구의 가르침을 따릅니까?”

이에 나는 우빠까에게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나는 모든 것을 이겼고

모든 것을 알았고

모든 것을 벗어났고

갈애를 소멸하여 해탈을 이루었네.


스스로 알았거니

누구를 스승으로 지적하리요.

나에게는 스승이 없네.

나 같은 사람도 발견 할 수 없네.

신과 세상 어디에도

나와 견줄만한 사람 없네.


나는 아라한, 최상의 스승

유일한 바르게 온전히 깨달은 자

적멸에 이르러 열반을 성취했네.

눈먼 세상 속에 생, 사에서 벗어나는 북을 울리기 위해

탐마의 바퀴를 굴리기 위해 까시로 가네.

이에 우빠까는 말하였다.

“벗이여, 그대의 말대로라면 그대는 무한한 승리자임에 틀림없군요!”

이에 나는 다시 게송으로 말하였다.

 번뇌를 부수어 승리한 사람은

나처럼 승리자네.

나는 악한 것을 모두 극복했네.

그러므로 우빠까여, 나는 승리자네.


내가 이렇게 말하였을 때 나체 고행자 우빠까는 말하기를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벗이여.”라고 말하고 머리를 흔들면서 옆길로 가버렸다.


다섯 수행자에게 가르치시다.

맛지마 니까야:26 아리야빠리예사나 경 26-30

그 후 나는 행각을 계속하여 마침내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의 사슴동산에 도착하여 다섯 명의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들은 멀리서 내가 오는 것을 보고 자기들끼리 약속하며 말하였다.

“사치스럽게 살고 , 정진[고행]을 포기하고 풍요로운 생활로 돌아간 사문 고따마가 저기 온다. 그가 오더라도 이사도 하지 말고 일어나지도 말고 발우와 가사도 받지 말자. 만일 그가 앉기를 원한다면 자리는 깔아주자.”

그러나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은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은 가사와 발우를 받았고, 어떤 사람은 앉을 자리를 마련하고, 또 어떤 사람은 발 씻을 물을 가져왔다. 그런데 그들은 나의 이름을 부르며, ‘벗이여’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비구들이여, 여래의 이름을 부르지 마라. ‘친구여’라고 부르지 마라. 여래는 아라한 이며 바르게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이라, 나는 불사의 경지를 성취하였다. 나는 가르치리라. 그대들에게 담마를 가르치겠다. 내가 가르친 대로 실천한다면 그대들은 오래지 않아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 출가한 청정한 삶의 최고의 목표를, 지혜에 의하여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성취할 것이다.”

이에 다섯 명의 비구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벗, 고따마여, 그대의 격심한 고행과 수행과 행함으로도 어떤 월등한 인가의 경지를 얻지 못하였고, 거룩한 분에게 합당한 탁월한 지혜와 통찰력도 얻지 못하였소, 그런데 그대는 지금 사치스럽게 살고 정진을 포기하고 풍요로운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대가 어떻게 월등한 인간의 경지를 얻었겠으며 거룩한 분에게 합당한 탁월한 지혜와 통찰력을 얻었겠습니까?”

이에 나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래는 사치스럽게 살지도 않았고, 정진을 포기 하지도 않았고, 풍요로운 생활로 돌아가지 않았다. 여래는 아라한이며 바르게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이라, 나는 불사의 경지를 성취하였다. 나는 가르치리라, 그대들에게 담마를 가르치겠다. 내가 가르친 대로 실천한다면 그대들은 오래지 않아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 출가한 청정한 삶의 최고의 목표를, 지혜에 의하여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성취할 것이다.”

그러나 비구들은 두 번째에도 세 번째에도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전에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없습니다, 존자여.”

“여래는 사치스럽게 살지도 않았고, 정진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풍요로운 생활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여래는 아라한이며 바르게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이라. 그대들에게 담마를 가르치겠다. 내가 가르친 대로 실천한다면 그대들은 오래지 않아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 출가한 청정한 삶의 최고의 목표를, 지혜에 의하여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깨달아 성취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나는 그들을 납득시킬 수 있었다. 세 명의 비구들이 탁발하러 간 동안에 나머지 두 명의 비구들에게 가르쳤다. 그래서 우리 여섯 명은 세 명의 비구들이 탁발해 온 것으로 살았다. 어느 때는 세 명의 비구들에게 가르치는 동안에 다른 두 명의 비구들이  탁발을 하러 갔다. 그래서 여섯 명은 두 사람이 탁발하여 온 것으로 살았다. 이와 같이 나의 가르침을 받은 다섯 명의 비구들은 생. 로. 병. 사. 슬픔. 번뇌가 없는 최상의 안온인 열반을 성취하였다. 그들에게 ‘우리의 해탈은 확고하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태어남이다. 다시 윤회하지 않는다. 라는 지혜와 통찰력이 생겼다.


처음으로 가르침의 바퀴를 굴리시다:중도와 네 가지 거룩한 진리

쌍윳따 니까야:56 삿따 쌍윳따11,율장 마하왁가1편6:17-3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의 사슴동산에 계셨다. 부처님의 다섯 명의 비구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비구들이여, 출가 수행자는 두 가지 극단을 피하여야 한다.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 번째는] 감각적인 쾌락에 몰두하는 것으로 이것은 저열하고, 천박하고, 하찮고, 유익함이 없으며,

[두 번째는] 지나친 고행에 몰두하는 것으로 이것은 고통스럽고, 저열하고, 유익함이 없는 것이다.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에 치우침이 없이 중도를 깨달았다. 중도는 통찰력을 주며, 지혜를 주며, 평화를 주며, 깨달음으로 이끌고, 열반으로 이끈다.

깨달음으로 이끄는 여래가 깨달은 중도란 무엇인가? 중도는 바로 여덟 가지 바른길(팔정도)이다. 여덟 가지 바른 길은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생활수단,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집중’이다. 이것이 여래가 깨달은 중도로서 통찰력을 주며, 지혜를 주며, 평화를 주며, 깨달음으로 이끌고, 열반으로 이끈다.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는 이와 같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괴로움이며,

싫은 것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며,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며,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며,

한 마디로 말하자면, 집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 가 괴로움이다.

괴로움의 근원이 거룩한 진리는 이와 같다.

갈대는 쾌락과 욕망을 수반하며

여기저기서 쾌락을 찾아 헤매고 윤회로 이끈다.

갈애에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애,

다시 태어남에 대한 갈애

다시 태어나지 않겠다는 갈애가 있다.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는 이와 같다.

갈애를 남김없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고,

포기하고 버려서 더 이상 갈애에 집착하지 않고

갈애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는 이와 같다.

갈애를 남김없이 사라지게 하고 소멸하고,

포기하고 버려서 더 이상 갈애에 집착하지 않고

갈애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괴로움의 소멸로 이르는 길의 거룩한 진리는 이와 같다.

그 길은 바로 여덟 가지 바른 길이다.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수단,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집중이다.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근원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로 이르는 길의 거룩한 진리는 일찍이 어느 누구도 말한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다. 그런데 나에게 이 들어본 적도 없는 진리를 알았다는 통찰력이 일어났고 지혜가 생기고 앎이 생기고 빛이 생겼다.

이와 같이 나는 신과 악마와 범천과 수행자와 브라흐만과 모든 신과 인간의 세계에서 최상의 온전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흔들림 없는 해탈을 얻었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탄생이다.’ ‘윤회하는 일은 이제 없다.’라는 지혜와 통찰력이 생겼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자 다섯 명의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에 기뻐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을 듣고 꼰단냐 비구는 티끌 없는 진리의 눈이 열렸다. ‘무엇이든지 생긴 것은 모두 소멸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때 부처님은 이렇게 감단의 말씀을 하셨다.

"참으로 꼰단냐는 알아들었다. 참으로 꼰단냐는 깨달았다“

이로 해서 꼰단냐 비구는 안냐-꼰단냐(Anna-Kondanna:깨달은 꼰단냐)로 불리게 되었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의 사슴동산에서 이 세상에서 그 어느 누구도 다시 굴릴 수 없는 위없는 법륜을 굴리셨다.

   

최초의 다섯 명의 제자가 구족계를 받다

율장 마하왁가 1편6.32-37

그때 안냐 꼰단냐 비구는 가르침을 보았고, 가르침을 얻었고, 가르침을 알았고, 가르침에 몰입하였고, 모든 의심이 사라지고, 스승의 가르침 속에서 온전한 만족을 얻었다.

그는 부처님께 청하였다.

“저는 부처님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기를 원합니다.”

“오너라, 비구여, 가르침은 잘 설해져 있다.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을 위하여 청정한 수행을 하여라.”

그래서 이것이 안냐꼰단냐의 구족계가 되었다.

부처님은 계속해서 나머지 네 명에게 열성을 다하여 가르치셨다. 부처님이 열성을 다하여 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동안 왑빠 비구와 밧디야 비구는 ‘무엇이든지 생겨난 것은 소멸하게 마련이다.’라는 티끌없는 담마의 통찰력이 생겼다. 이들은 가르침을 보았고, 가르침을 얻었고, 가르침을 알았고, 가르침에 몰입하였고, 모든 의심이 사라지고, 스승의 가르침 속에서 온전한 만족을 얻었다.

이들은 부처님께 청하였다.

“저희는 부처님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기를 원합니다.”

“오너라, 비구여, 가르침은 잘 설해져 있다.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을 위하여 청정한 수행을 하여라.”

그래서 이것이 이들의 구족계가 되었다.

부처님[깨달음을 얻은] 세 명의 비구들이 탁발해온 음식을 드시고 나머지 두명에게 열성을 다하여 가르치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 명의 비구가 탁발해온 것이 무엇이든 그것으로 여섯 명이 살도록 하자.”

마침내 나머지 마하나마 비구와 앗사지 비구도 ‘무엇이든지 생겨난 갓은 소멸하게 마련이다,’라는 티끌 없는 담마의 통찰력이 생겼다. 이들은 가르침을 보았고, 가르침을 얻었고, 가르침을 알았고, 가르침에 몰입하였고, 모든 의심이 사라지고, 스승의 가르침 속에서 온전한 만족을 얻었다.

이들은 부처님께 청하였다.

“저희는 부처님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기를 원합니다.”

“오너라, 비구여, 가르침은 잘 설해져 있다. 괴로움을 완전한 소멸을 위하여 청정한 수행을 하여라.”

그래서 이것이 이들의 구족계가 되었다.


두 번째 법의 바퀴를 굴리시다:무상, 무아의 가르침

쌍윳따 니까야:22 칸다 쌍윳따59 율장마하왁가1편 6:38-4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의 사슴동산에 계셨다. 부처님은 다섯 명의 비구들에게 가르치셨다.

“육신은 무아(無我)이다. 만일 육신이 [영원한]자아가 있다면 몸이 병들지도 않을 것이고, 육신에게 ‘이렇게 되라 또는 이렇게 되지 말라’고 말할 수 없다. 몸이 무아인 것처럼 느낌도 무아이고 지각도 무아이고 형성도 무아이고 의식도 무아이다. 만일 느낌이나, 지각, 형성, 의식 등의 자아가 있다면, 이런 것들이 병들지 말아야 할 것이고, ‘이렇게 되라 또는 이렇게 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느낌이나, 지각, 형성, 의식 등은 무아이기 때문에 병들게 되고 ‘이렇게 돼라 또는 이렇게 되지 말라’고 말할 수 없다.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육신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인가 즐거운 것인가?”

“괴로운 것입니다.”

“무상하고 괴롭고 수시로 변하는 것을 두고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한가?”

“합당하지 않습니다,”

“느낌은, 지각, 형성, 의식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무산합니다,”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인가 즐거운 것인가?”

“괴로운 것입니다.”

“무상하고 괴롭고 수시로 변하는 것을 두고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나의자아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한가?”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바른 통찰력으로 보아야 한다. 육신과 마찬가지로 느낌이 어떤 것이든, 지각이, 형성, 의식이 어떤 것이든‘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바른 지혜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보고 가르침을 잘 습득한 훌륭한 제자들은 몸에도 집착하지 않고, 느낌에도 집착하지 않고, 지각에도, 형성에도, 의식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렇게 집착을 떠났을 때 욕망에서 벗어나 해탈한다. 해탈하면 ‘나는 해탈하였다.’고 알게 된다.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을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알게 된다, 이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다섯 명의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에 기뻐하였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 다섯 명의 비구들은 집착에서 벗어나 번뇌로부터 해탈하였다. 그때 이 세상에서 아라한은 여섯 명이 되었다.


야사의 출가

율장 마하왁가 1편 7:1-15

그때 바라니시에 귀하게 양육된 대부호 상인의 아들 야사라는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그는 왕 못지않은 호화로운 환경 속에서 쾌락을 즐기면서 살았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이런 쾌락의 모습 속에서 환멸과 무상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정말 괴롭구나, 괴로워.”

그는 집을 나와 이시빠따나의 사슴동산으로 향하였다. 그때 부처님은 새벽이 되어 밖에서 경행[걷는 명상]을 하고 계셨다. 야사는 부처님 가까이 갔을 때 이렇게 탄식을 하였다.

“정말 괴로워요, 정말 괴로워!”

부처님은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기에는 괴로운 것이 없다. 여기에는 고통이 없다, 여기 와서 앉아라, 그대를 위해서 가르침을 설하리라.”

‘여기에는 괴로움이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에 귀가 번쩍 띄어 야사는 신발을 벗고 부처님께 공손히 인사를 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은 야사에게 쉬운 가르침으로부터 시작하여 보시에 대하여, 도덕적인 습관에 대하여, 덧없음, 감각적 쾌락에 따른 재난과 위험, 또 이것들을 버렸을 때의 이익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야사가 이 모든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자세가 되었음을 아시고, 부처님은 깨달으신 진리인 괴로움과, 그 원인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야사는 그 자리에서 진리의 눈이 열렸다.

그런데 야사의 부모는 야시를 찾아다니다가 부처님께 와서 가르침을 듣고 아들을 데려가기는커녕, 그들은 오히려 부처님께 귀의하여 부처님, 가르침, 승가[삼보]에 귀의한 첫 번째 신도가 되었다. 그 후 야사는 출가하여 계를 받으니 이 세상에 아라한 일곱 명이 되었다.


야사의 친구 네 명의 출가

율장 마하왁가1편 9:1-4

그때 야사 비구의 출가하기 전의 친구인 위말라, 수바후, 뿐냐지, 가왐빠띠 등 네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크고 작은 부호 상인의 아들들이었다. 그들은 대부호의 아들 야사가 출가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야사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노란 가사를 입고 출가한 것을 볼 때, 이 가르침은 보통 가르침이나 계율이 아니다, 야사가 출가한 것도 보통 출가가 아니다,’

그래서 이 네 명의 친구들은 야사를 찾아갔다. 야사는 이들을 부처님께 데리고 갔다. 부처님은 이들에게도 또한 쉬운 가르침부터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가르침을 주셨다.

그들 역시 가르침을 보았고, 가르침을 얻었고, 가르침을 알았고, 가르침을 통달하였다. 의심을 벗어났고 불확실한 것을 제거하였고 스승의 가르침 속에서 온전한 만족을 얻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게 되었다.

그들은 부처님께 말하였다.

“부처님 저희들은 부처님께 출가하여 계를 받고자 합니다.”

“오너라. 비구여, 가르침은 잘 설해져 있다. 괴로움을 끝내기 위해 청정한 수행을 하여라.”

이와 같이 그들은 계를 받았다. 부처님은 그들을 가르치고, 분발케 하고, 격려하고, 그리고 기쁘게 하셨다. 부처님의 간곡한 가르침을 받는 동안 그들의 마음은 집착이 사라져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하였다.

이로써 이 세상에 아라한은 열한 명이 되었다.


야사의 50명 친구의 출가

율장 마하왁가 1편 10:1-4

그때 야사 비구의 출가하기 전 친구 50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바라나시 지방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거나, 그 다음으로 오래된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었다. 이들도 역시 야사의 출가 소식을 듣고 생각하기를, ‘야사 같은 훌륭한 가문의 자제가 출가한 것을 볼 때, 이 가르침은 보통 가르침이나 계율이 아니며 야사가 출가한 것도 보통 출가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야사를 방문하고 부처님을 뵙고 가르침을 듣게 되었다. 훌륭한 가르침을 듣고 이들도 출가를 결심하여 계를 받고 집착이 사라져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하였다. 이로써 이 세상에 아라한은 61명이 되었다.


전법선언:중생의 행복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쌍윳따 니까야4마라 쌍윳따 1:5 율장 마하왁가 1편 11:1-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바라나시의 이시빠따의 사슴동산에 계셨다.

제자들 60명이 아라한이 되었을 때 부처님은 제자들을 모으시고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대들도 또한 속박에서 벗어났다.

중생에 대한 자비심을 가지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자비심을 가지고

신들과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둘이 함께 같은 길을 가지 마라.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바른 뜻과 문장을 갖춘 가르침을 설하여라.

완전하고도 청정한 수행의 삶을 보여주어라.

세상에는 더러움에 덜 물든 사람들도 있다.

다만 그들은 가르침을 듣지 못하였기에 얼어졌지만, 만일 가르침을 듣는다면 그것을 곧 알아들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도 또한 가르침을 설하기 위하여 우루웰라의 세나니 마을로 가야겠다.


30명의 젊은이의 출가

율장 마하왁가 1편 14:1-5

부처님은 바라나시를 떠나 우루웰라로 가셨다. 도중에 길에서 벗어나 숲에 들어가 어떤 나무 아래 앉으셨다. 그때 30명의 양갓집 자제들이 부부 동반하여 놀러 왔는데 부인이 없는 한 사람은 기생을 데려왔다 그런데 모두 재미있게 노는 틈에 그 기생은 귀중품들을 훔쳐서 달아났다. 그래서 그들은 여인을 찾아 나섰다가 부처님을 만나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 한 여인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은 그 여인과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이에 그들은 자초지종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말씀하셨다.

“그대들을 위하여 달아난 여인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가?”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이여, 앉아라. 그대들에게 가르침을 설하겠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들에게 쉬운 교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순서적으로 가르침을 설하셨다. 그들이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아시고 마지막으로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가르치셨다. 그들은 의심을 벗어나 가르침을 사무치게 꿰뚫어 볼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출가하여 계를 받았다.


깟사빠 삼형제의 귀의

율장 마하왁가 1편 15:1-23

부처님은 우루웰라에 도착하셨다. 그때 우루웰라에는 머리를 땋은 결발 고행자인 우루엘라 깟사빠, 나디, 깟사빠, 가야 깟사빠 삼형제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불의 신 아그니를 섬기는 사람들이었다.]그들의 지도력은 대단하여 우루웰라 깟사빠는 50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부처님은 우루웰라 깟사빠의 불을 섬기는 사당에 머무실 때 그와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교만심으로 부처님께 쉽사리 승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꿰뚫어 아시는 부처님의 훌륭하심에 그는 결국 부처님께 귀의하게 되었고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도 모두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그들은 머리를 깎고 불을 섬기는 제사 도구들을 모두 물에 떠내려 보내고 부처님께 계를 받았다. 그런데 나디 깟사빠와 가야깟사빠는 물에 머리카락과 불을 섬기는 제사 도구들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놀라서 우루웰라 깟사빠를 찾아가 물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더 훌륭한 것입니까?”

“그렇다. 이것이 참으로 더 훌륭하다.”

그래서 두 동생과 그의 제자들도 형과 똑같이 머리를 깎고 불을 섬기는 제사 도구들을 물에 떠내려 보낸 뒤 부처님께 귀의하여 계를 받았다. [이렇게 깟사빠 삼형제의 귀의로 부처님 교단은 천명이 넘는 가장 큰 교단이 되었다.]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

율장 마하왁가 1편21:1-4

부처님은 전에 불을 섬겨왔고 결발 고행자였던 천 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우루웰라를 떠나 가야지방 근처 가야산 마루에 올라 이렇게 가르치셨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 무엇이 모든 것이 불타고 있는 것인가? 눈이 불타고 있고, 눈에 보이는 것이 불타고 있고, 눈의 닿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인 즐거움과 괴로움, 즐겁지도 않고 괴롭히지도 않은 것들이 불타고 있다.

무엇으로 불타고 있는가? 욕망으로 불타고, 증오로 불타고, 어리석음으로 불타고 있다. 생. 로. 병. 사. 슬픔. 괴로움. 절망으로 불타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알고 눈으로 보이는 것들, 느끼는 것들, 여기서 오는 괴로움과 즐거움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집착을 떠났을 때 해탈에 이른다.”

  

빔비사라왕과의 만남

율장 마하왁가1편 22:1-11

부처님은 천 명의 제자들과 함께 가야산 마루를 떠나 라자가하로 가tu서 야자나무 숲의 수빠띳타 사당에 머무셨다. 그때 마가다국의 세니야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이 천 명의 제자들과 함께 라자가하에 오셔서 수빠띳타 사당에 머무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한 부처님은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며, 그분에 대한 훌륭한 평판이 자자하다는 것, 이런 훌륭한 아라한을 친견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는 것 등을 듣고는 수많은 브라흐만과 장자들을 데리고 부처님을 방문하였다.

이들은 불을 섬기던 우루웰라 깟사빠가 이 위대한 사문을 모시고 청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부처님은 이들에게 쉬운 가르침부터 시작하여 빔비사라왕과 많은 마가다의 브라흐만과 장자들은 티 없는 법의 눈이 열렸다. 그들은 ‘생긴 것은 무엇이든지 소멸한다.’ 고 깨달았다. 그래서 많은 브라흐만과 장자들은 부처님께 귀의하여 재가신도가 되었다.

빔비사라왕은 말하였다.

“부처님, 저는 왕자 시절에 다섯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왕위에 오르는 것, 둘째는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 내 영토에 오시는 것, 셋째는 내가 그 분께 예배드리는 것, 넷째는 그분의 가르침을 듣는 것, 다섯째는 내가 그 가르침을 알아듣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 다섯 가지 저의 소원이 모두 다 이루어 졌습니다.”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꿰뚫어 보아 진리의 눈이 열렸다. 그는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하였다.[빔비사라왕과 왕비는 일생동안 부처님 승단에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빔비사라왕의 대나무 숲 기증

율장 마하왁가 1편 22:1-18

빔비사라왕 부처님과 천 명의 제자들을 공양에 초대하였다. 왕은 손수 부처님께 시중들며 음식을 권하였다. 왕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디에 부처님께서 머물면 좋을까? 마을에서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고, 오고 가기에 편리하고, 사람들이 방문하기 쉽고, 낮 동안 너무 번잡하지 않고, 밤에 소음이 없고, 조용하고, 인적이 드물고, 방해받지 않고, 명상 수행에 적합한 곳이 어딜까? 그런데 나의 이 대나무 숲은 모든 구비 조건을 갖춘 숲이다. 나는 이 대나무 숲을 부처님과 승단에 기증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왕은 부처님께 말하였다.

“부처님, 저는 이 대나무 숲을 부처님과 승단에 기증합니다.”

부처님은 숲을 받으시고 왕을 위하여 가르침을 설하여 왕을 기쁘게 하셨다. 왕은 환희에 넘쳐 기뻐하였다.


대나무 숲에 최초의 승원을 지음(죽림정사)

율장 쫄라왁가6편1:1-5, 3:11

어느 때 부처님은 라자가하의[빔비사라왕이 기증한]대나무 숲에 계셨다. 그때에는 비구들에게 숙소에서 사는 것이 허락 되지 않았다.

그래서 비구들은 숲의 여기저기 즉 숲속, 나무아래, 언덕, 골짜기, 동굴, 묘지주변, 짚더미 등에서 살았다.

그때 라자가하의 대부호 상인이 아침 일찍 이 대나무 숲에 가게 되었는데 그는 마침 비구들이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비구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존자여, 제가 숙소를 지어드리면 거기에서 사시겠습니까?”

“장자여, 숙소에 사는 것은 부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존자여, 부처님께[허락해 주시도록]여쭌 후에 저에게 알려 주십시오.”

그래서 비구들은 장가의 간청을 부처님께 여쭈었는데 부처님은 이를 허락하셨다. 장자는 서둘러 하루 동안 60개의 거처를 만들었다. 그리고 부처님과 비구들을 공양에 초대하였다. 공양 후 부처님은 장자에게 감사의 게송을 말씀하셨다.

장자가 기증한 60개의 거처는

추위와 더위를 막을 것이오.

동물, 파충류, 모기를 피하게 하고

뜨거운 바람과 비를 피하게 할 것이오.

명상하기에, 통찰력을 얻기에 훌륭한 곳이오.

거처는 승가의 으뜸가는 선물로써 깨달은 분의 의하여 찬탄됩니다.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대부호 상인에게 감사의 게송을 말씀하신 후 자리를 떠나셨다. 부처님이 숙소 짓는 것을 허락하셨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신도들은 앞다투어 숙소를 지어 기증하게 되었다.

 그때 마가다의 세니야 빔비사라왕은 승가를 위하여 좀 더 견고한 재료인 점토와 회반죽을 발라, 대나무 숲에 길고 연속한 숙소를 건축하게 되었다.


사라뿟따와 목갈라나의 개종

율장 마하왁가1편23:1-24:4

그때 라자가하에 방랑 수행자인 산자야가 250명의 제자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사라뿟따와 목갈라나는 산자야 아래에서 청정한 수행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먼저 불사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알려주도록 하자.’고 약속을 하였다.

어느 날 사라뿟따는 탁발하고 있는 앗사지 비구를 보았는데 그는 앞으로 갈 때도 뒤돌아 갈 때도, 앞을 볼 때도 뒤를 볼 때로, 팔을 펼 때도 굽힐 때도 의젓한 몸가짐으로 눈은 아래로 뜨고 호감이 가는 태도로 걷고 있었다. 사라뿟따는 앗사지 비구의 이런 수행자다운 행동거지에 이끌려 그를 따라가서 물었다.

“존자여, 그대의 얼굴은 아주 맑고 빛납니다. 그대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누구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까?”

“사꺄족에서 출가하신 위대한 사문이 계시는데 그분은 부처님이십니다. 나는 부처님께 출가를 하였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대의 스승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가르침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벗이여, 나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르침과 계율에 초년생입니다. 그대에게 가르침을 온전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간단히 그 뜻을 말할 수 있습니다.”

“존자여, 많든 적든 저에게 말해 주십시오. 뜻만 말해 주십시오, 많은 수식보다는 그 의미를 듣고 싶습니다.”

이에 앗사지 존자는 말하였다.

“모든 것은 원인으로부터 생긴다고 여래는 그 원인을 말씀하시고, 그리고 그 소멸을 말씀하셨습니다. 위대한 사문은 이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사라뿟따는 이런 간결한 표현의 담마를 들었을 때 티 없는 진리의 눈이 열렸다. 그래서 ‘생겨난 것은 무엇이든지 소멸하게 마련이다.’라고 깨달았다. 그리고 말하였다.

“이것이 참으로 담마라면, 우리들이 무수한 겁 동안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슬픔 없는 길을 그대는 꿰뜷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라뿟따는 목갈라나를 찾아갔다. 사라뿟따를 보고 목갈라나는 말하였다

“벗이여, 그대는 감관은 아주 깨끗하고 안색은 맑고 빛납니다. 불사의 경지라도 얻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벗이여, 나는 불사의 경지를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대는 어떻게 불사의 경지를 얻었습니까?”

이에 사라뿟따는 앗사지 존자와의 만남과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그대로 말해주었다. 이에 목갈라나는 말하였다.

“벗이여, 부처님께로 갑시다. 이 분이 우리의 스승입니다.”

“그렇지만 벗이여, 여기 250명의 방랑 수행자들은 우리에게 의지하고 우리 때문에 여기 머물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말하여 그들 뜻대로 하도록 합시다.”

그들은 방랑 수행자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벗들이여, 우리들은 부처님께로 가려고 합니다. 부처님이 우리의 스승입니다.”

“우리들은 존자님들이 여기 있기 때문에 존자님들을 의지하고 여기 있습니다. 존자님들이 위대한 사문에게 출가하신다면, 우리 모두도 위대한 사문에게 출가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라뿟따와 목갈라나는 250명의 방랑 수행자들을 데리고 부처님이 계신 대나무 숲으로 향하였다. 부처님은 사라뿟따와 목갈라나가 오는 것을 보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저 두 사람, 꼴리따와 우빠띳사가 오고 있다. 이들은 나의 중요하고 훌륭한 한 쌍의 제자가 될 것이다.

이미 깊은 심오한 지혜의 경지에 이르렀고,

집착을 소멸하여 위없는 해탈을

이미 이룬 두 사람에게 부처님은

대나무 숲에서 말씀하셨네

저기 두 사람,

꼴리따와 우빠띳사가 오고 있다.

이 한 쌍의 제자는

나의 중요하고 훌륭한 제자가 될 것이다.”

사라뿟따와 목갈라나는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인사를 드리고 말하였다.

“부처님, 저희들은 부처님께 출가하여 계를 받기 원합니다.”

“오너라, 비구여, 담마는 잘 설해져 있다. 괴로움의 완전한 소멸을 위하여 청정한 수행을 닦아라,”

그들은 이와 같이 모두 부처님께 출가하여 계를 받았다.


사람들의 원망

율장 마하왁가1편24:5-7

그때 마가다국의 지체 높은 가문의 훌륭한 젊은이들이 부처님 아래에서 청정한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이런 비난이 퍼졌다.

‘사문 고따마는 우리 아들을 빼앗아간다. 그는 우리를 과부로 만든다. 그는 가정을 파괴한다. 이미 천 명의 결발 고행자들을 출가시켰고, 산자야의 250명의 방랑 수행자들도 출가시켰다. 지금 마가다의 지체 높은 가문의 훌륭한 젊은이들이 고따마 사문 아래서 청정한 수행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비구들을 보면 게송으로 불평하기 시작하였다.

저 위대한 사문이 마가다의 기립바자[라자가하를 말함]에 왔네.

산자야의 제자들을 모두 꾀어내더니

이제 또 누구를 꾀어내려 하는가!

비구들은 이런 비난의 말의 듣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런 이야기들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7일이 지나면 [자연히]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대들을 비난하면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위대한 영웅이신 여래는

바른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인도하시네.

바른 가르침으로 인도된 지혜로운 사람을

어찌 비난하는가.”

그 후 사람들은 사꺄의 아들인 그 사문은 바른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인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평과 원망의 소리는 7일이 지나자 곧 사라졌다.


기원정사의 건립

율장 쫄라왁가6편4:1-10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빔비사라왕이 기증한 대나무 숲에 60개의 숙소를 지은 라자가하의 대부호 상인의 누나의 남편이었다. 사왓티에 살고 있는 아나타삔디까 장자도 역시 대부호 상인이었다. 그는 라자가하에 볼일이 있어 가게 되었다.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그 집에 도착하였을 때, 다른 때와는 달리 처남되는 라자가하의 대부호 상인은 노예와 종들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며 내일 먹을 음식을 준비로 분주하였다. 마치 밤비사라왕과 그 군대라도 초청한 듯이 [엄청난] 음식을 만들고 난리였다. 그는 웬일이냐고 물으니 내일 깨달으신 분과 그의 제자들을 초대한다고 하였다. 그는 다시 물었다. 

“깨달으신 분이라고 말했는가?”

“예, 깨달으신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장자여.”

그러나 또 다시 물었다.

“깨달으신 분이라고 말했는가?”

“예, 깨달으신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장자여.”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똑같은 질문을 세 번씩이나 하면서 깨달으신 분이라고 말하였는지를 확인하였다.

“이 세상에서 ‘깨달으신 분’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기란 어려운데 지금 온전히 깨달으신 분, 부처님을 뵐 수 있을까?”

“지금은 부처님 뵙기에 적당한 때가 아닙니다. 내일 아침 일찍 부처님을 뵐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나타삔다까 장자는 부처님을 뵙는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고 동트기 전 이른 새벽에 일어나 집을 나서서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어두운 숲을 지나 부처님을 찾아갔다. 그때 부처님은 밖에서 경행[천천히 걷는 명상]을 하고 계셨다. 부처님은 아나타삔디까 장자를 보고 말씀하셨다.

“어서 오십시오. 수닷따.”

장자는 자신의 이름을 듣고는 기쁘고 환희심이 일어났다.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어 인사를 드리고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편히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마음이 평화롭기 때문에 편안하게 머뭅니다.”

부처님은 아나타삔디까 장자를 위하여 쉬운 가르침부터 시작하여 점차적인 가르침을 주셨다. 장자의 마음이 가르침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아시고 부처님은 깨달으신 진리인 사성제의 가르침을 주셨다. 장자는 깨끗한 천에 물감이 쉽게 물들 듯이 그 자리에서 ‘생기는 모든 것은 소멸하게 마련이다.’ 라고 티없는 진리의 통찰력이 생겼다. 그래서 그는 담마를 보았고, 담마를 알았고, 담마를 얻었다, 담마 속에 완전히 뛰어들어 의심을 제거하고, 주저함을 치워버리고, 스승의 가르침에서 완전한 만족을 얻었다.

“부처님.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저는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승가에 귀의합니다. 오늘부터 제를 재가신도로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그는 부처님과 승가 대중을 다음 날 공양에 초대하였다.

그는 집이 사왓티였기 때문에 라자가하의 대부호인 처남의 집에서 부처니을 대접하였다. 공양 후 그는 우기철에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사왓티에서 지내도록 청하였다.

장자는 라자가하에서의 일을 마치고 사왓티로 떠났다. 가는 길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깨달으신 분과 승가 대중을 초청했다는 이야기, 그러니 정사와 숙소를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 이 길을 따라서 오실 것이라는 이야기 등을 열성적으로 말하였다. 그래서 장자의 권고로 사람들은 승원을 짓고 거처를 마련하고 선물을 준비하였다.

장자는 사왓티를 죽 둘러보면서 생각하기를 ‘마을에서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고, 사람들이 오고 가기에 편리하고, 낮에 번잡하지 않고, 밤에는 시끄럽지 않고, 인적이 드물고, 명상하기에 적합한 곳은 더딜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때 장자는 제때 왕자의 훌륭한 숲을 보았다. 그것은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그래서 장자는 제따 왕자를 찾아가서 왕자님의 훌륭한 숲에 승원을 지을 수 있도록 요청하였다. 그러나 왕자는 억만금을 준다해도 줄 수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끈질긴 장자의 요청으로 결국 왕자가 부르는 값에 지울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래서 장자는 마차에 금화를 싣고 가서 그곳에 깔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금화는 입구 근처의 작은 공간에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장자는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가서 금화를 가져오십시오. 이 공간에 금화를 깔아야 합니다.”

이것을 보고 제따 왕자는 생각하기를, ‘장자가 이렇게 많은 금화를 가져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그래서 장자에게 말하였다.

“됐습니다. 장자여, 이 공간을 나에게도 주십시오, 이것은 나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왕자 자신도 숲의 입구 쪽에 건물을 짓고 현관을 지어 자신의 훌륭한 숲을 기증하였다.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그곳에 건물을 짓고 방사를 만들고 현관, 시자실, 불 때는 장소, 창고, 벽장, 경행하는 장소, 회랑, 경행할 수 있는 방, 우물, 우물가 정자, 목욕탕에 딸린 방, 작은 오두막들, 연못, 나무를 심어 그늘을 만듦 등으로 편리한 시설을 갖춘 승원을 지었다.


사까족 왕족 젊은이들의 출가

율장 쫄라왁가7편1:1-4

어느 때 깨달으신 분, 부처님은 말라족의 작은 마을인 아누삐야에 계셨다. 그때 많은 사꺄족의 훌륭한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부처님을 본받으려고 출가하게 되었다. 이들은 부와 권력을 모두 향유하며 살아온 사꺄족의 왕족 출신인 마하나마와 그의 형제인 아누룻다. 그리고 바디야, 아난다. 비구, 낌빌라, 데와닷따였다.이중 아난다와 데와닷따는 부처님의 사촌이었다. 그리고 왕궁 이발사인 우빨리도 출가하게 되었다. 부처님은 이발사인 우빨리에게 먼저 계를 주셨고 이어서 왕족 젊은이들에게 계를 주셨다. 바디야 존자는 오래지 않아 세 가지 지혜를 얻었고, 아누릇다 존자는 혜안이 열리고, 아난다 존자는 깨달음의 길에 들어서고, 데와닷따 존자는 영적인 힘을 얻게 되었다.


부처님 주치의 지와까

율장 마하왁가8편1:1-35

어느 때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계셨다. 그때 웨살리는 매우 번창하였고 사람들로 북적대고 먹을 것이 풍성하였다. 수많은 건물과, 집들, 공원, 연못이 곳곳에 있었다. 더욱이 이곳에는 미모와 기예를 겸비한 유명한 기생 암바빨리에 못지않은 기생을 내세웠는데 살라와띠라고 하였다. 그런데 미모와 명성을 날리는 유명한 기생 살라와띠는 남자 아기를 낳아서 쓰레기 더미에 버렸다.

그때 아바야 왕자는 아침에 왕을 알현하기 위하여 왕궁으로 가고 있었는데 까마귀에게 둘러싸여 있는 아기를 보았다. 남자 아기는 살아 있었다. 왕자는 아기를 데려다 후궁에서 기르도록 하였다. 그래서 이름도 ‘알아있다’는 뜻으로 ‘지와까’라고 지었고‘왕자의 보호로 양육되었다’는 뜻으로 ‘꼬마라밧짜’라고 이름 지었다.

지와까는 분별력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탁실라의 유명한 의사를 찾아가서 7년동안 의술을 배웠다. 그런 후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부호 아내의 병을 고쳐주고 많은 돈과 노비와 마차까지 얻었다. 지와까는 왕자에게 돌아와 길러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처음으로 번 많은 돈을 왕자에게 주었지만 왕자는 돈을 받지 않았다. 지와까는 왕자의 후원에 거처를 지었다. 그때 빔비사라왕이 병이 나서 그를 고쳐 주니 많은 궁녀들을 주셨지만 지와까는 궁녀들보다는 할 일을 달라고 여쭈었다. 그래서 빔비사라왕은 말하였다.

“그러면 지와까야, 나와 왕궁의 여인들과 깨달으신 분과 비구 승단을 돌아보도록 하여라.”

“네, 알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처님의 주치의가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고치지 못하는 고질병들을 고쳐 주어 유명한 의사가 되었다.

지와까는 어느 때 웃제니의 빳조따왕의 병을 치료해 주었는데 왕은 감사의 표시로 ‘시웨아까’라는 한 쌍의 천을 지와까에게 보냈다. 그 천은 온갖 천중에서 가장 값지고 으뜸이고 귀한 천이었다. 지와까는 ‘이 천을 사용할만한 분은 오직 온전히 깨달으신 분, 부처님과 마가다의 빔비사라왕뿐이다.’라고 생각하였다.

지와까는 부처님께 공손히 청원하기를 ‘승가 대중이 지금까지 누더기 가사를 입었지만, 빳조따왕이 보내 준 온갖 천중에서 가장 값지고, 으뜸이고, 귀한 천을 받아 주십사’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장자들이 가사나 가사 만들 천을 승단의 비구들에게 공양 올리는 것을 허락해 주십사고 간정하였다.

그 후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장자가 공양 올린 가사를 입어도 좋다. 누구든 누더기 가사를 원하면 그것을 입어도 좋고 장자들이 공양 올린 천으로 만든 가사를 입기를 원하면 그렇게 해도 좋다. 어느 것에 만족하든지 나는 그것을 권한다.”

이때부터 재가신도들은 보시의 공덕을 쌓기 위하여 앞다투어 가사를 만들어 승가에 공양하였다.


꼬삼비 비구들의 논쟁

율장 마하왁가10편1:1-2:20,4:6-5:14

어느 때 깨달으신 분, 부처님은 꼬삼비의 고시따 승원에 계셨다. 그때 비구들은 어떤 비구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여 정권시켰다. 그러나 정권된 비구는 잘못이라고 생각지 않았고 그 정권이 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말에 동조하는 무리를 지어 정권을 내린 무리들과 서로 다투게 되었다.

그때 어떤 비구가 부처님께 비구들의 논쟁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그들을 타이르기를 청하였다. 부처님은 정권 내린 비구들에게 가셔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에게 그렇게 보인다 해서 모든 경우에 대하여 어떤 비구를 정권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타이르시고 정권 당한 비구 무리에게 가셔서는, “잘못이 있을 때는 믿음으로 고백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양쪽 모두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로 인하여 승단은 서로 다투고 논쟁하고 시끄러운 싸움이 일어난다. 결국 승단은 불화가 일어나고 분열될 것이다.”라고 타이르시고 떠나셨다.

그때 비구들은 승단에서 싸우고 다투고 논쟁에 빠져들고 말로 서로 찔러 상처를 입혔다. 그들의 논쟁을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부처님께 이 사실을 알렸고 부처님은 그들에게 가셔서 이렇게 타이르셨다.

“비구들이여, 더 이상 다투지 말고, 더 이상 싸우지 말고, 더 이상 논쟁하지 말라.”

이때 담마 아닌 것을 말하는 어떤 비구가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 담마의 도사이신 세존께서는 기다리십시오, 걱정하지 마시고 하루하루 편안히 지내십시오, 이 다툼과 논쟁은 저희들이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부처님은 ‘원한에 의해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디가우 왕자의 이야기를 예를 들어 말씀하시고, 이와 같이 잘 설해진 가르침과 계율에 출가한 비구들은 서로 인내하고 따뜻하게 서로 대하여 다투지 말고 화목해야 한다고 타이르셨다. 그러나 비구들이 뉘우치는 기색이 보이지 않자 부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셨다. 다음 날 아침 부처님은 앉은 자리와 발우와 가사를 꾸리셨다 그리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승단 가운데 서서 이런 게송을 말씀하셨다.

모두들 서로 똑같이 고함을 치지만

아무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모른다.

승단이 분열된다 하더라도

자신의 이익만 생각한다.

산만한 재치로 지혜로운 척하면서

온갖 말을 다한다.

입을 크게 벌렸지만

그것이 가져올 결과를 알지 못하는구나.


‘그가 나를 욕한다, 그가 나를 해쳤다.

그가 나를 이겼다. 그가 내 것을 빼앗았다.’

이렇게 집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원한은 가라앉는다.


언제 어느 때나

원한은 원한으로 가라앉지 않는다.

원한 아닌 것으로만 원한은 가라앉는다.

이것은 변함없는 진리이다.


부처님은 게송으로 대중을 가르치신 후 발라까로나까라 마을로 떠나셨다. 이곳에서 수행하고 있는 비구 존자를 방문하여 어려움 없이 수행을 잘 하고 있는지 물으시고 그를 격려하신 후 빠찌나왕사 숲으로 가셨다. 그곳에는 아누룻다. 난디야, 낌빌라 존자가 수행하고 있었다. 부처님은 이들에게도 어려움 없이 수행을 잘 하고 있는지 물으신 후 그들을 격려하고 다시 빠릴레야로 떠나셨다.

부처님은 빠릴레야에 도착하셔서 락키따 숲의 훌륭한 살라 나무 아래 계셨다. 부처님은 명상하는 동안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전에 나는 꼬삼비 비구들의 논쟁을 괴로웠다. 그들은 승단에서 싸우고 논쟁하고 계율적인 문제를 제기하여 나는 편치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홀로 있다. 다투고 논쟁하는 비구들로부터 떠나 있으니 내 마음은 편안하구나,’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로 가셨다. 한편 꼬삼비의 신도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꼬삼비의 비구들은 우리에게 많은 손실을 가져왔다. 부처님은 이 비구들의 괴롭힘으로 말미암아 여기를 떠나셨다. 꼬삼비의 비구들에게 안사도 하지 말고, 일어서지도 말고, 합장도하지도 말고, 신자가 할 일을 하지 말자. 존경하지도 말고, 공경하지도 말고, 그들이 걸식 나와도 공양을 올리지 말자. 이와 같이 그들이 신도들로부터 존경도 받지 못하고 공경도 받지 못하면 그들은 승단을 떠나든지 아니면 부처님께 나아가 화해할 것이다.’

그래서 신도들로부터 존경과 공경도 받지 못하고 공양도 얻을 수 없게 되자 비구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들이여, 사와티로 가서 부처님 뵙고 이 계율적인 문제를 해결합시다.”

그래서 정권된 비구의 무리들과 정권시킨 비구의 무리들은 모두 부처님께 나아가 잘못한 비구는 참호l하고 자신이 잘못했음을 고백하고 정권이 타당하다고 고백하였다. 그래서 그의 정권은 복권되었고 상대방 비구들에게도 잘못을 고백하고 모두 서로 화해하게 되었다. 부처님은 이런 복권예식 직후에 우뽀사타 예식을 행하고 빠띠목차를 암송하라고 말씀하셨다.


최초의 비구니 마하빠자빠띠

율장 쫄라왁가10편

 어느 때 부처님은 까삘라왓투의 사꺄족들이 사는 곳의 니그로다 승원에 계셨다. 그때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부처님을 방문하여 예를 갖춘 후 이렇게 말하였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계율과 가르침에 여성도 출가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오! 고따미여, 계율과 가르침에 여성도 출가하는 것에 마음 쓰지 마십시오.”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다시 요청하였지만 부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녀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그곳을 나왔다.

부처님은 까삘라왓투를 떠나 웨살리의 큰 숲의 중각강당으로 가셨다. 그때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삭발을 하고 노란 가사를 입고 많은 무리의 사꺄족의 여성들과 함께 웨살리로 출발하여 중각강당에 도착하였다.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발을 붓고 사지는 먼지로 뒤덮여서 문밖에 서서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아난다 존자는 그녀를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고따미여, 왜 그렇게 발은 붓고 사지는 먼지로 뒤덮여서 문 밖에 서서 울고 있습니까?”

“아난다 존자여, 부처님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계율과 가르침에 여성도 출가를 할 수 있도록 허락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고따미여, 부처님께서 여성의 출가를  허락해 주십사고 말씀드릴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부처니,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발은 붓고 사지는 먼지로 뒤덮여서 밖에서 울고 있습니다. 여성도 부처님의 계율과 가르침에 출가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아난다 존자는 다른 식으로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이렇게 말씀드렸다.

“부처님, 만일 여성이 부처님의 계율과 가르침 아래 출가를 하면, 그들도 예류과. 불환과. 아라한과를 성취 할 수 있을까요?”

“그들도 성취할 수 있지, 아난다.”

“부처님, 만일 그들이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를 성취 할 수 있다면,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부처님의 이모로서, 양모로서, 양육자로서, 부처님의 친모가 돌아가셨을 때 부처님께 젖을 먹여 길렀습니다. 그러니 부처님, 여성도 부처님 계율과 가르침 아래 출가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부처님은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셨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을 29년간 길러주신 왕비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최초의 비구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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