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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2편 부처님은 누구인가?

작성자천장암|작성시간12.01.13|조회수29 목록 댓글 0


제 2 편  부처님은 누구인가


나는 바르고 온전한 깨달음을 얻었다.

쌍윳따 니까야:3 꼬살라 쌍윳따 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때 꼬살라의 빠세나디왕이 부처님을 찾아와서 인사를 드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런데 고따마 존자님은 말씀하기를 ‘저 사람은 위없는 바르고 온전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대왕님, 만일 어떤 사람이든지 ‘저 사람은 위없는 바르고 온전한 깨달음을 얻었다.’ 바르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로 나일 것입니다. 대왕님, 나는 위없는 바르고 온전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고따마존자님, 많은 사람들이 성인이라고 생각하는 교단의 유명한 창시자들, 많은 무리의 자도자인 사문들이나 브라흐민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뿌라나 깟사빠, 막칼리 고살라. 니간타 나따뿟따, 산자야 벨라띠뿟따, 빠꾸다 깟짜야나, 아지따 께사깜발리 같은 사람들인데 이들에게 온전하고 위없는 깨달음을 얻었느냐고 물었을 때 아무도 부처님처럼 말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저들과 비교하면 나이도 어리고 출가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그런 선언을 하시는지요?”

“대왕님, 어리다고 얕보거나 업신여겨서는 안 될 것이 네 가지 있습니다. 왕족은 젊다고 얕보아서는 안 됩니다. 뱀은 어려도 깔보아서는 안 됩니다. 불은 작아도 얕보아서는 안 됩니다. 비구는 젊다고 얕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에 빠세나디왕은 부처님께 말하였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부처님, 나는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오늘부터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 주십시오.”


사욕하는 사람에게 욕하는 사람은

쌍윳따 니까야:7 브라흐마나 쌍윳따 1:2

어느 때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계셨다 그때 브라흐민 악꼬사까 바라드와자는, 바라드와자 가문의 브라흐민이 부처님께 출가했다는 소문을 듣고 화가 나고 불쾌하여 부처님을 찾아가 거칠고 상스러운 말투로 욕설을 퍼부었다.

부처님은 그의 말을 다 듣고 난 후 말씀하셨다.

“브라흐민이여, 그대의 친구나 동료나 친척이나 손님들이 당신을 방문하러 옵니까?”

 “가끔 그들이 방문하러 옵니다.”

“그러면 당신은 그들에게 다과나 음식을 대접합니까?”

“어떤 때는 대접합니다.”

“만일 그들이 그 음식을 받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누구의 것입니까?”

“그들이 음식을 받지 않으면 그것은 나의 것입니다.”

“ 그와 마찬가지로 브라흐민이여, 그대는 욕하지 않는 나를 욕하고 꾸짖지 않는 나를 꾸짖고 악담하지 않는 나에게 악담을 하였소, 이것들은 [욕설들] 나는 받지 않겠소, 그러니 그것은 모두 당신 것이오! 브라흐민, 욕하는 사람에게 욕하고 꾸짖는 사람에게 꾸짖고 악담하는 사람에게 악담하는 사람은 마치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지 않으며 주고받지도 않소, 그러니 브라흐민이여, 그것은 모두 당신의 것이요.”

“왕과 그의 신하들은 사문 고따마가 아라한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고따마 존자님은 화내는 것이 아닙니까?“

이에 부처님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성냄이 없는 사람, 바른 삶으로 잘 길들여진 사람

조화롭게 사는 사람, 바른 지혜로 해탈한 사람,

평온 속에 머무는 사람에게

어디에서 성냄이 일어나리요,


성내는 사람에게 같이 성내는 사람은

사태를 더욱 나쁘게 만들 뿐이요.

성내는 사람에게 같이 성내지 않는 사람은

이기기 어려운 전쟁에서 이기는 사람이요.


‘상대방이 화를 내고 있다. 고 알아챌 때

그는 마음집중으로 평안 속에 머뭅니다.

그는 자기 자신과 남을 위하여

그리고 양쪽 쌍방의 이익을 위하여 수행합니다.


그 후 브라흐민 악꼬사까 바라드와지는 부처님께 출가하여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쌍윳따 니까야:7 브라흐마나 쌍윳따 2: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브라흐민 마을인 에까날라에서 가까운 마가다 사람들이 사는 곳인 닥키나기리에 계셨다. 그때 브라흐민 까시 바라드와지는 파종할 때가 되어 오백 개의 쟁기를 멍에에 실었다. 이때 부처님은 탁발하기 위해 까시 바라드와자가 마침 음식을 분배하고 있는 곳으로 가셨다. 브라흐민 까시 바라드와자는 부처님을 보고 말하였다.

“사문이여,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습니다. 그대도 또한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드십시오,

“브라흐민이여, 나 또한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습니다. 그대도 또한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드십시오.”

“브라흐민이여, 나 또한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고따마 존자님의 멍에나, 쟁기, 밭가는 연장, 소몰이 막대, 황호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고따마 존자님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는다고 하십니다.”

브라흐민 까시 바라드와자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그대는 밭가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그대의 밭가는 것을 보지 못했네

그대가 밭가는 사람이라면, 말해 주시오,

그대의 밭가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이에 부처님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믿음은 씨앗이며 고행은 비이며,

지혜는 나의 멍에와 쟁기이며,

마음은 멍에의 끈이며, 부끄러움은 막대기며,

마음챙김은 보습과 소몰이 막대일세.


몸은 단속하고, 말을 조심하고 음식을 알맞게 먹습니다.

진실은 나의 제초기이며, 온화함은 멍에를 벗음일세,

정진은 나의 짐을 진 소이며,

속박으로부터 안온함으로 이끈다네.


쉬임 없는 정진으로 슬픔 없는 곳에 이르네

이렇게 밭갈이가 끝나면 불사의 열매를 거두며

모든 괴로움에 벗어난다네.




부처님이 병으로 고생하시다.

쌍윳따 니까야:7브라흐마나 쌍윳따2:3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은 풍병으로 괴로워하셨다. 그때 우빠나와 존자가 부처님의 시자였다. 부처님은 우빠와나에게 말씀하셨다.

“우빠와나, 더운물좀 가져오너라.”

그래서 우빠와나는 브라흐민 데와히따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한쪽켠에 조용히 서 있었다. 브라흐민 데와히따가 보니 우빠와나 존자가 조용히 서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비구여, 무엇이 필요합니까? 무엇을 구하러 왔습니까?”

“깨달으신 분, 복덕이 구족하신 성자께서 풍병으로 고생하고 계십니다. 브라흐민이여, 더운물을 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브라흐민은 사람을 시켜서 다운물과 물지게를  가져오게 하고, 한자루 당밀을 우빠나와에게 주었다. 우빠와나는 돌아와서 당밀을 더운 물에 타서 부처님이 마시도록 하고 더운물로 목욕을 시켜 드렸다. 그 후 부처님의 병은 나았다.


두려울 때 붓다, 담마, 승가를 생각하라.

쌍윳따 니까야:11 삭까 쌍윳따 1:3

어느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숲이나. 나무 아래나, 또는 빈집에서 수행할 때 두려움, 전율, 공포가 일어날 때는 다음과 같이 나를 생각해라.

 부처님은 ‘아라한(阿羅漢)이시며,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며, 지혜와 덕행을 갖춘분이며, 바른 길로 잘 가신분이며, 이세상을 잘 아는 분이며, 신과 인간의 스승이며, 깨달으신 분(佛:붓다)이며, 존귀하신 분이시다, 라고 외우면 두려움, 전율, 공포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나를 생각할 수 없다면 그때는 이와 같이 나의 가르침을 생각하라. ‘가르침은 부처님에 의하여 잘 설해져 있다. 그것은 지금 현재, 직접 볼 수 있는 것이고 시간을 초월하며, 와서 보라고 할 만한 것이고, 유익한 것이고, 지혜로운 이들에 의해 체득된 것이다. ’라고 외우면 두려움, 전율, 공포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나의 가르침을 생각할 수 없다면 그때는 이와 같이 승가를 생각하라. ‘부처님 제자들의 승가는 훌륭한 길을 수행하며, 정직한 길을 수행하며, 진리의 길을 수행하며, 합당한 길을 수행한다. 이러한 부처님 제자들의 승가는 네 쌍으로 여덟 가지로 되어 있고 공양 받을 만하며, 공경받을 만하며, 이 세상에서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공덕의 복 밭이다. 라고 외우면 두려움 전율, 공포가 사라질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하면 아라한이시며, 온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은 욕망과, 증오와, 어리석음에서 완전히 떠났으며, 두려움이 없고 공포에 떨지 않고 겁이 없기 때문이다.


운력의 불참

쌍윳따 니까야:21 빅쿠 쌍윳따4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때 어떤 새로 계를 받은 비구가 탁발에서 돌아와 식사를 마치고, 그의 처소로 들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그는 비구들이 가사를 만드는 일을 돕지 않았다.

이에 비구들이 부처님께 이 일을 말씀드리자, 부처님은 그 비구를 부르시고 비구들의 이야기가 사실이냐고 물으셨다. 이에 그 비구는 대답하기를 “부처님,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부처님은 이 비구 마음의 반응을 보시고 비구들에게 이 비구를 괴롭히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게송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진함에 태만한 것이 아니고 노력함이 부족한 것이 아니니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열반을 성취할 것이다.

이 젊은 비구는 실로 최상의 사람이니

마라를 쳐부수고 최후의 몸을 얻었다.



난다존자

쌍윳따 니까야:21 빅쿠 쌍윳따8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 이모의 아들, 난다존자는 잘 다듬은 가사를 입고, 두 눈가에 칠을 하고, 반짝반짝 윤기나는 발우를 들고 부처님께로 갔다.

부처님은 난다를 보고 말씀하셨다.

“난다야, 믿음을 가지고 집을 나와 출가한 사람에게는 잘 다듬은 가사를 입고, 두 눈을 칠하고, 반짝반짝 윤기나는 발우를 들고 다니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숲 속에 살고, 탁발하여 먹고, 누더기 가사를 입고, 감각적 쾌락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믿음을 가지고 집을 나와 출가한 사람에게는 어울리는 것이다.

숲 속에 살고, 누더기 가사를 입고, 탁발하여 살아가고, 감각적 쾌락에 집착하지 않는 그런 난다를 언제나 볼 수 있으려나?”

그 후 난다 존자는 숲 속에 살고, 누더기 가사를 입고, 탁발하여 살아가고, 감각적 쾌락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왜 출가 수행 생활을 하는가?

쌍윳따 니까야:22 칸다 쌍윳따 80

어느 때 부처님 사꺄 사람들이 사는 곳인 까삘라왓투의 니그로다 승원에 계셨다. 부처님은 어떤 특별한 이유로써 비구들을 나무라시고 아침에 까삘라왓투에서 탁발을 하신 후 공양을 마치고 낮 동안의 명상을 위해 마하와나 숲으로 들어가 어린 벨루와 나무 아래 앉았다.

홀로 고요히 명상에 들었을 때 부처님은 이런 생각을 하셨다.

‘나는 비구 승가를 돌보지 않고 외면했다. 거기에는 세속에서 떠나 온 지 얼마 안 되고 이 가르침과 계율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로 들어온 비구들도 있다. 만약 그들이 나를 보지 못하면 마치 어린 송아지가 어미 소를 보지 못하면 송아지에게 변화나 변동이 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 변화나 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마치 어린 씨앗이 물을 얻지 못하면 씨앗에 변화와 변동이 오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세속에서 떠나온 지 얼마 안 되고 이 가르침과 계율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로 들어온 비구들도 나를 보지 못하면 변화와 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예전에 내가 이 비구 승가를 도왔던 것처럼 지금도 도와야겠구나,

오후에 부처님은 명상을 마치고 니그로다 승원으로 가셨다. 비구들이 하나 둘 소심한 태도로 부처님 곁으로 모여들었다. 부처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탁발을 한다는 것은 가장 낮은 형태의 생계수단이다. 그러나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이 타당한 이유에서 그런 삶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대들이 선택한 삶의 길은 왕이 강요해서도 아니며, 강도에게 쫓겨서도 아니며, 빚을 졌기 때문도 아니며, 두려움 때문도 아니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함도 아니다.

그러면 무슨 이유 때문인가? ‘나는 생.로.병.사에 헤매며, 슬픔과 고통과 절망에 빠져있다. 나는 괴로움에 빠져있고 괴로움에 싸여 있다.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의 종식을 알아야겠다. 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렇게 출가한 훌륭한 가문의 아들들이 아직까지도 탐욕스러운 마음이 있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으로 불타고, 악의와 증오로 가득 차서 마음은 혼란하여 갈피를 못 잡고, 선명한 마음챙김을 잃고, 집중을 소하고, 정신은 흩어지고, 감각기관의 통제를 잃어버린다.

이와 같은 사람은 이미 가정의 즐거움도 잃었고, 또한 사문의 목표도 성취하지 못한다.

그대들은 이와 같이 자신을 반조해 보아야 한다.

‘이 세상에 비난받지 않고 집착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그러나 이 세상에는 비난받지 않고 집착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홀로 용맹정진하심

쌍윳따 니까야:45 막가 쌍윳따11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보름 동안 홀로 명상하고자 한다. 나에게 식사를 가져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나에게 와서는 안된다.”

그래서 식사를 가져가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부처님을 방해하지 않았다. 보름의 명상 기간이 끝난 후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내가 예전에 온전한 깨달음을 얻었을 때에 느꼈던 그런 깨달음을 보름 동안 다시 부분적으로 체험했다. 즉, 잘못된 견해의 결과로 오는 모든[잘못된] 형상들을 알게 되었고, 잘못된 생각, 잘못된 말, 잘못된 행동, 잘못된 생활수단, 잘못된 정진, 잘못된 마음챙김, 잘못된 집중의 결과로 오는 모든[잘못된]현상들을 알게 되었다. 또한 바름 견해의 결과로 오는 모든[바른]형상들을 알게 되었다. 바른 생각,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 수단 바른 정진, 바름 마음챙김, 바른 집중의 결과에서 오는 모든 [바른] 현상들을 알게 되었다.


사리뿟따의 열반

쌍윳따 니까야:47사띠빳타나 쌍윳따13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때 사리뿟따 존자는 마가다의 날라까 마을에 있었다. 그는 중병이 들었는데. 그때 사미쭌다가 그의 시자였다. 사리뿟따 존자는 중병으로 인하여 열반에 들었다. 사미쭌다는 사리뿟따의 존자의 가사와 발우를 가지고 와서 기원정사로 가서 아난다 존자에게 이 사실을 먼저 보고하였다.

“존자여, 사리뿟따 존자가 열반하셨습니다. 여기 발우와 가사가 있습니다.”

“벗 쭌다여, 부처님을 뵙고 이 소식을 말씀드려야 합니다. 부처님께 이 소식을 전하러 갑시다.”

그래서 그들은 부처님께 가서 이 사실을 말씀드렸다. 아난다 존자가 말하였다.

“부처님, 저는 이 소식을 듣고 약에 쉬한 것처럼 정신이 멍하니 혼미하고 가르침도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제게 조언자였고 상담자였고 저를 가르쳐 주었고, 분발케 하고, 격려하고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는 담마를 가르치는데 지칠 줄 몰랐습니다. 그는 함께 청정한 삶을 사는 동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리뿟따 존자가 저희들에게 준 담마의 도움, 담마의 풍성함, 담마의 자양물의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아난다, 우리는 사랑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고 내가 이미 가르치지 않았더냐? 생겨나고, 존재하고, 조건지어진 것들은 무너지고 만다.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마치 탄탄한 큰 나무의 가장 큰 가지가 부러진 것처럼, 탄탄한 큰 비구 승가에서 사리뿟따는 마지막 열반에 들었다. 아난다. 생겨나고 존재하고 조건지어진 것은 무너지고 만다.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의 열반

쌍윳따 니까야:47 사띠빳타나 쌍윳따 14

어느 때 부처님은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열반에 든 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많은 비구들의 무리와 함깨 갠지스 강변 욱깔젤라의 왓지족들 있는 곳에 계셨다. 부처님은 바깥 노천에서 비구들에 둘러싸여 앉아 계셨다. 부처님은 침묵하고 앉아 있는 비구들을 둘러보시고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열반에 든 지금 이 모임이 내게는 텅 빈 것 같구나, 전에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모임이 텅 빈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으뜸가는 한 쌍의 제자였다. 제자로서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했는지, 얼마나 스승의 충고에 순응했는지, 얼마나 사부대중의 사랑을 받고 기쁨을 주었는지, 얼마나 존경을 받았는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와 같은 한 쌍의 제자가 열반에 들었는데도 여래에게 슬픔과 비통이 없으니 그것 또한 놀라운 일이구나.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생겨나고 존재하고 조건 지어진 것은 붕괴하고 만다.  붕괴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마치 탄탄한 큰 나무의 가장 큰 가지가 부러진 것처럼 승가의 탄탄한 큰 비구니인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마직막 열반에 들었다. 비구들이여, 생겨나고 존재하고 조건 지어진 것은 붕괴하고 만다. 붕괴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가련한 늙음이여

쌍윳따 니까야:48 인드라야 쌍윳따4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동쪽 승원 미가라 마뚜 강당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은 저녁나절 명상을 끝내고 일어나 양지에 앉아 서쪽 햇빛에 등을 따뜻하게 하고 계셨다. 아난다존자는 부처님께 와서 손과 발을 문질러 드리면서 말하였다.

“부처님, 놀라운 일입니다. 부처님은 안색은 더 이상 맑지 않고 빛나지 않고 사지는 주름지고 물렁해졌습니다. 등도 앞으로 굽고 감각기관의 변화가 눈에 보입니다.”

“그렇다, 아난다, 젊은 사람은 늙게 마련이고, 건강한 사람은 병들게 마련이고, 살아있는 사람은 죽게 마련이고, 건강한 사람은 병들게 마련이고, 살아있는 사람은 죽게 마련이다. 안색은 더 이상 예전처럼 맑지 않고 빛나지 않는다. 나의 사지는 주름지고 물렁해졌고 등은 굽고 감각기관의 변화가 눈에 보인다.”

부처님은 이어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기분을 망치네, 가련한 늙음이여

아름다움을 시들게 하는 늙음이여

그렇게 매혹적이던 육신도

늙어감에 따라 산산이 부서지네


백년을 산다해도

그 종착역은 죽음이네

죽음은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것

죽음은 모든 것을 부수어버리네.


부처님을 위해 법복을 만들다.

쌍윳따 니까야:55 소따빳띠 쌍윳따6

어느 때 사왓티에서 많은 비구들이 ‘앞으로 3개월 후면 부처님은 이 완성된 가사를 입으시고 행각에 나설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부처님의 법복을 만들고 있었다.

그때 [빠세나디왕의]시종인 목수 이시닷따와 뿌라나가 일이 있어 사두까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많은 비구들이 부처님 법복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 3개월 후에 부처님은 새로 만든 법복을 입고 행각에 나서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부처님이 지나실 때쯤 한 사람을 시켜 길목을 지키게 하고 말하였다.

“여보게, 아라한이여, 온전히 깨달으신 부처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면 즉시 우리에게 알려 주게,”

그 후 삼일이 지나서 그 사람은 부처님을 보았고 즉시 보고하였다. 그래서 이시닷따와 뿌라나는 부처님을 뒤따라가서 인사를 드리고 부처님 뒤를 따라 걸었다. 부처님은 길에서 나와 나무 아래로 가서 그들이 마련한 자리에 앉으셨다. 이시닷따와 뿌라나는 부처님께 에를 올리고 한쪽에 앉아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저희들은 부처님이 사왓티에서 꼬살라로 행각을 떠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처님은 우리에게서 말리 계실 것이다.’라는 생각에 실망이 되고 우울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꼬살라에서 사왓티로 행각을 떠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처님은 우리 가까이 계실 것이다.’라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계시다고 들으면 ‘부처님은 우리 가까이 계신다.’는 생각에 더욱 기뻤습니다.”

“그런가, 집에서 사는 것은 속박의 삶이며[탐.진.치의] 티끌에 덮인 삶이다. 그러나 출가의 삶은 확 트인 공간과 같다. 이제 그대들의 정진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그런데 부처님, 저희들은 아직도 더욱 억압하는 속박이 있습니다. 정말 그것은 가장 억압적입니다.”

“아직도 어둑 억압하는 속박은 무엇인가?”

“부처님, 빠세나디왕이 정원에 나들이를 갈 때 왕이 탁 갈 코끼리를 준비하여 왕이 사랑스런운 아내들을 한 명은 앞에 한 명은 뒤에 앉힙니다. 그런데 그들 몸에서 나는 향기가 너무 달콤합니다. 마치 향 상자를 열어놓은 것 같습니다. 그들 몸의 감촉은 마치 목화솜털처럼 너무 부드럽고 굉장히 섬세하게 자란 왕실의 여인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이런 때에 저희들은 코끼리나 돌보아야 하고, 그 여인들이나 보고해야 하고, 우리 자신들이나 보호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여인들에 대하여 어떤 나쁜 생각을 떠올리는 것을 그만두지 못합니다. 부처님 이것이 저희들을 아직도 더욱 억압하는 속박이고 가장 억압적인 것입니다.”

“그런가, 집에서 사는 것은 속박의 삶이며[탐.진. 치의]티끌에 덮인 삶이다. 그러나 출가의 삶은 확 트인 공간과 같다. 이제 그대들의 정진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부처님은 그들에게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 대하여 더 말씀하셨다.


천 명의 비구니 승가에 주신 가르침

쌍윳따 니까야:55 소따빳띠 쌍윳따11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라자까라마[비구니 승원]에 계셨다. 부처님은 천명의 비구니 승가에 설법하셨다.

“비구니들이여, 네 가지 법을 갖춘 훌륭한 제자는 ‘진리의 흐름에 들어간 사람’이다. 그는 더 이상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고 가는 곳이 결정되어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무엇이 네 가지인가?

훌륭한 제자는 이와 같이 부처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심을 갖는다.

부처님은 ‘아라한이며, 온전한 깨달으신 분이며, 지혜와 덕행을 갖춘 분이며, 바른 길로 잘 가신 분이며, 세상을 잘 아는 분이며, 견줄 바가 없는 분이며, 사람을 길들이는 분이며, 신과 인간의 스승이시며, 깨달으신 분이며, 존귀하신 분이다.’

훌륭한 제자는 이와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 대하여 확고한 신뢰심을 갖는다. ‘가르침은 부처님에 의하여 잘 설해져 있고, 지금 현재 직접 볼 수 있는 것이고, 시간을 초월하며, 와서 보라고 할 만한 것이다. 유인한 것이고, 지혜로운 이들에 의해 체득된 것이다.’

훌륭한 제자는 이와 같이 승가에 대하여 확고한 신뢰심을 갖는다. ‘부처님 제자들의 승가는 훌륭한 길을 수행하며, 정직한 길을 수행하며, 진리의 길을 수행하며, 합당한 길을 수행한다. 이러한 부처님 제자들의 승가는 훌륭한 길을 수행하며, 정직한 길을 수행하며, 진리의 길을 수행하며, 합당한 길을 수행한다. 이러한 부처님 제자들의 승가는 네 쌍으로 여덟 가지로 되어 있고 공양을 만하며, 공경받을 만하며, 이 세상에서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공덕의 복 밭이다.’

또한 훌륭한 제자는 계행을 갖춘다. 이 계행은 훌륭한 이들이 친근히 한 것으로써 깨지지 않고 흠 없고 얼룩지지 않고, 자유롭고, 현자에 의해 찬탄되며 삼매로 이끄는 것이다.

“비구니들이여, 이와 같이 네 가지를 갖춘 사람은 ‘진리의 흐름에 든 사람’ 으로써 더 이상 나쁜 곳에 떨어지지 않고 가는 곳이 결정되어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부처님을 신뢰하는 이유

맛지마 니까야:27 쭐라핫티빠도빠마 경 1-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때 브라흐민 자눗소니는 한 암말이 끄는 온통 하얀색의 수레를 타고 한 낮에 사왓티를 나섰다. 그는 방랑 수행자 삘로띠까가 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불었다.

“왓차야나여, 이 한낮에 어디서 오십니까?”

“선생님, 저는 지금 사문 고따마가 계신 곳에서 옵니다.”

“왓차야나님은 수행자 고따마의 지혜의 명석함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가 지혜롭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선생님, 제가 누구기에 감히 사문 고따마가 지혜가 명석한지 아닌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아는 사람이라면 그는 아마도 사문 고따마와 동등한 자일 것입니다.”

“왓차야나님은 정말 사문 고따마를 높이 찬탄하는군요,”

“선생님, 제가 누구기에 감히 사문 고따미를 찬탄하겠습니까? 사문고따마는 신과 인간 가운데 으뜸으로써 칭찬받는 사람들에 의하여 칭찬받습니다.”

“무슨 이유를 보았기에 왓차야나님은 사문 고따마에게 그와 같은 깊은 신뢰심을 갖는 것입니까?”

“선생님, 마치 지혜로운 코끼리 사냥꾼이 코끼리 숲에 들어가 길이가 길고 폭이 넓은 코끼리 발자국을 보았다면, 이것은 커다란 숫 코끼리 발자국이라고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내가 사문 고따마의 네 가지 자취를 보았을때  ‘바르게 온전히 깨달으신 분은 세존이시다. 부처님에 의하여 담마는 잘 설해져 있고 승가는 올바른 길을 잘  실천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무엇이 네 가지입니까? 저는 머리카락을 가는 만큼 그렇게 예리한 명사수처럼 논쟁에 있어 도사이고 영리한 학식이 있는 귀족들을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날카로운 재치로 다른 사람의 견해를 박살내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닙니다. 그들은 사문 고따마가 어느 도시에 온다는 소리를 들으면 이런 질문을 만듭니다. ‘사문 고따마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그의 교리를 이렇게 반박하자, 라고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문 고따마가 이런이런 마을과 도시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으로 갔는데 사문 고따마는 그들에게 담마에 대하여 가르치고 분발케 하고 격려하고, 기쁘게 하였습니다. 이런 가르침을 듣고 난 후에 기쁘게 된 그들은 전혀 질문을 할 수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를 반박하겠습니까? 반대로 그 귀족들은 사문 고따마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내가 이와 같은 사문 고따마의 첫 번째 자취[두번째 자취는 브라흐민, 세 번째는 장자인데 이들도 부처님을 논박하려다 오히려 제자가 되었고, 네 번째 자취인 사문은 출가하게 됨]를 보았을 때, ‘바르게 온전히 깨달으신 분은 세존이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잘 설해져 있고 승가는 바른길을 잘 실천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방랑 수행자인 삘로띠까가 말을 마치자 브라흐민 자눗소니는 하얀 맘말이 끄는 온통 흰색의 마차에서 내려, 한쪽 어깨에 웃옷을 걸치고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하여 합장하고 세 번 감탄의 말을 하였다.

“부처님, 아라한, 바르게 온전히 깨달으신 분께 귀의합니다.

부처님, 아라한, 바르게 온전히 깨달으신 분께 귀의합니다.

언젠가 고따마 존자님을 만나서 그와 함께 대화할 수 있겠지.”


자이나교도 우빨리의 개종

맛자마 니까야:56 우빨리 경 5-3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날란다의 빠와리까의 망고 숲에 계셨다. 그때 니간타 나따뿟따는 많은 니간타 무리들과 함께 날란다 머물고 있었다.

그때 니간타 나따뿟따는 많은 니간타 무리들과 함께 날란다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니간타 나따뿟따는 발라까에서 온 많은 재가신도들과 함께 앉아 있었는데 이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 우빨리였다. 그들은 디가 따빳시로부터 부처님과의 대화 내용을 모두 들었다. 이에 니간타 나따뿟따는 말하였다.

“훌륭하다, 따빳시, 그대는 스승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한 잘 배운 제자로서 사문 고따마에게 대답했다. 행동의 잘못이 큰 것에 비하면 생각의 잘못은 얼마나 하찮은가! 반대로 행동의 잘못은 악업을 짓고 악행을 함에 있어 가장 비난받을 만한 것이며, 말의 잘못이나 생각의 잘못은 그렇지 않다,”

이에 장자 우빨리는 니간타 나따뿟따의말에 동의하면서 말하였다.

“존자님, 제가 가서 이 논쟁점에 대하여 사문 고따마의 말을 논파하겠습니다.”

“가시오, 장자여, 이 논쟁점에 대하여 사문 고따마의 교리를 논박할 수 있소.”

이에 니간타 디가 나빳시는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말하였다.

“존자님, 우빨리 장자가 사문 고따마의 교리를 논박한다는 것이 제게는 탐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문 고따마는 마술사이고 ‘개종하는 마술’을 알고 있고 그 마술에 의하여 다른 교단의 제자들을 개종시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빳시, 우빨리장자가 사문 고따마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장자여, 가서 논쟁점에 대하여 사문 고따마의 말을 논파하시오. 나와 디가 따빳시 또는 그대도 사문 고따마의 교리를 논박할 수 있소.”

(우빨리 장자가 부처님을 논박하러 가다)

그래서 장자 우빨리는 빠와리까의 망고 숲으로 부처님을 찾아갔다. 그는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한쪽에 앉아서 따빳시와의 대화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질문한 후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님, 니간타 디가 따빳시는 스승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한 잘 배운 제자로서 부처님께 대답하였습니다. 행동의 잘못이 큰 것에 비하면 생각의 잘못은 하찮은 것입니다. 반대로 행동의 잘못은 악업을 짓고 악행을 함에 있어 가장 비난받을 만한 것이며, 말의 잘못이나 생가의 잘못은 그렇지 않습니다.”

“장자여, 그대가 만일 진리에 근거해서 토론을 한다면, 우리는 이것에 대하여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소.”

“존자님, 진리에 근거해서 토론을 하겠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좀 대화를 하도록 합시다.”

“장자여, 그대는 이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떤 니간타가 중병이 들어서 괴로워하는데 그는 찬물을 거절하고 오직 더운물만 취한다고 합시다. 그가 만약 찬물을 얻지 못하면 그는 죽을지도 모릅니다. 이 사람이 어디에 태어난다고 니간타 나따뿟따는 말합니까?”

“존자님, 그는 ‘집착된 마음’이라는 신의 나라에 태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죽었을 때 마음이 집착되어[*생각의 잘못에 해당됨] 그때까지도 묶여 있었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장자여, 그대가 대답하는 말에 주의를 기울이시오, 먼저 말한 것과 나중에 말한 것이 전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대는 진리에 근거해서 토론하고 대화를 하자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존자님이 그렇게 말하셔도 행동의 잘못은 악한 행위를 짓고 악한 행위를 행하는데 있어서 가장 비난받을 만한 것이며, 말의 잘못이나 생각의 잘못은 그렇지 않습니다.”

“장자여, 여기 어떤 니간타가 ‘네 가지 조심’으로 자신을 절제한다고 합시다. 그는 물을 사용하는데 있어 온전히 절제를 합니다. 그는 모든 악을 쫓아버리는 데에 있어 온전히 절제를 합니다. 그는 모든 악을 쫓아버리는 데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는 모든 악을 떨쳐버립니다. 그는 모든 악을 떨쳐버리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밖에서 다니는 동안 많은 조그만 생물들을 죽입니다. 이때 니간타 나따뿟따는 그에게 어떤 과보를 말합니까?”

“니간타 나따뿟따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면 비난받을 만한 것이 못된다고 말합니다.”

“장자여, 만약 의도적인 것이라면 그러면 비난의 대상이 됩니까?”

“그렇습니다. 의도적인이라면  크게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존자여.”

“그러면 의도적이란 것은 행동, 말, 생각의 잘못 중 어느 것에 속합니까?”

“생각의 잘못에 속합니다. 존자님.”

“장자여 그대가 말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시오, 먼저 말한 것과 나중에 말한 것이 전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대는 진리에 근거해서 토론하고 대화를 하자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빨리 장자의 개종)

“존자님, [사실은] 존자님께서 처음에 예를 들어 설명하셨을 때 저는 기쁘고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부처님의 다양한 문제 해결을 듣고 싶었기 때문에 [계속] 반대를 했습니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마치 넘어진 것을 바로 세우듯이,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이 길 잃은 자에게 길을 보여주듯이,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이, 길 잃은 자에게 길을 보여주듯이, 눈 있는 자들은 모양을 보라고 등불을 들어 올리듯이, 부처님은 여러 면에서 담마를 명쾌하게 밝혀주셨습니다. 존자님, 저는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저를 재가신도로 받아주십시오.”

“장자여, 깊이 심사숙고하십시오, 그대와 같은 잘 알려진 사람에게는 깊이 심사숙고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존자님, 부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는 더욱 만족하고 즐겁습니다. 다른 교단 사람들이 저를 제자로 얻었다면 그들은‘장자 우빨리가 우리 교단의 제자가 되었다.’고 온 날란다에 깃발을 들고 행진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들과는 달리 ‘깊이 심사숙고하십시오. 장자여, 그대와 같이 잘 알려진 사람에게는 깊이 심사숙고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에도 저는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저를 재가신도로 받아주십시오.”

이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장자여, 그대의 가정은 오랫동안 니간타(자이나교도)들을 후원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니간타들이 탁발을 오면 그들에게 보시를 해야 합니다.”

“존자님, 부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는 너무 만족하고 기쁩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수행자 고따마는 말하기를 ‘보시는 나에게만 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마십시오, 보시는 나의 제자들에게만 하고 다른 제자들에게는 하지 마십시오, 왜나햐면 나와 나의 제자들에게 보시하는 것만이 큰 결실이 있으며 다른 이에게 보시하는 것은 그렇지 못합니다.’라고 말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제가 들은 것과는 정반대의 말씀인 ‘니간타들에게도 보시를 하라’고 저를 격려하셨습니다. 세 번째에도 저는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저를 재가신도로 받아주십시오,

그래서 부처님은 장자 우빨리에게 순차적인 가르침을 주셨다. 처음에 보시와 계행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고, 다음으로 감각적 쾌락의 위험, 헛됨, 타락에 대하여 말씀하신 후, 이것을 멀리하고 버릴 때의 이익을 말씀하셨다. 부처님은 장자 우빨리의 마음이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고, 장애로부터 벗어나 만족하고 고무되어 있음을 아시고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말씀하셨다.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자세하게 말씀하셨다.

마치 때묻지 않은 깨끗한 천이 염색이 잘 들듯이 장자 우빨리도 생겨나는 모든 것은 소멸한다.‘라고 티글없는 진리의 눈이 열렸다. 그리고 그는 담마를 보았고 담마를 얻었고 담마를 이해하였고 담마를 통찰하였다. 그는 의심과 혼란을 뛰어넘고 다른 사람에 의지함 없이 스승의 가르침 속에서 온전한 만족을 얻었다.


(나는 부처님의 제자)

그 후 니간타 나따뿟따는 장자 우빨 리가 개종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믿을 수가 없어 디가 따빳시를 우빨리의 집에 보내어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게 하였다. 따빳시는 개종한 것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니간타 나뿟따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님, 제가 전에 말씀드리기를, ‘우빨리 장자가 사문 고따마의 교리를 논박한다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문 고따마는 마술사이며 개종하는 마술을 알고 있고 그 마술에 의하여 다른 교단의 제자들을 개종시킵니다.’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지금 장자 우빨리는 사문 고따마의 ‘개종하는 마술’에 의하여 개종되었습니다.!”

“그럴 리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지 따빳시, 장자 우빨 리가 사문 고따마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니간타 나따뿟따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사실임을 안 후에도 그래도 믿을 수 없어 니간타 나따뿟따 자신이 직접 장자 우빨리가 정말로 사문 고따마의 제가가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많은 니간타 무리와 합께 장자 우빨리의 집을 찾아갔다.

예전과 달리 자신을 대접하는 태도가 달라진 장자 우빨리에게 니간타 나따뿟따는 말하였다.

 “장자여, 그대는 미쳤다. 그대는 멍청이다. 그대는 이렇게 말하고 나갔다. ‘존자님, 제가 사문 고따마를 논박하겠습니다.’그런데 그대는[사문고따마의]교리의 거대한 그물에 걸려버렸다. 장자여, 그래는 ‘개종하는 마술’을 가진 사문 고따마에 의하여 개종되었다!”

“개종하는 마술은 상서로운 것입니다. 존자님, 개종하는 마술은 훌륭합니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종족이안 친척이 개종하는 마술에 의하여 개종된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그들을 행복과 복지로 이끌 것입니다. 만일 왕족이, 브라흐민이나 상인이나 노예들이 갱종하는 마술에 의하여 개종된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그들을 행복과 복지로 이끌 것입니다.”

“장자여, 니간타의 대중들이나 왕은 생각하기를 ‘장자 우빨리는 니간타 나따뿟따의 제자다.’라고 알고 있다 그러면 그대는 누구의 제자라고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가?”

이 말을 듣고 장자 우빨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에 웃옷을 걸치고 부처님이 계신 곳을 향하여 합장하고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존자님, 내가 누구의 제자인지 들어보십시오.”

어리석음을 벗어버린 지혜로운 분

마음의 황무지를 버린 분, 승리자,

괴로움에서 벗어났고 치우침이 없으며

계행이 성숙하고 빼어난 지혜를 가지신 분

욕망의 출렁임을 건너 티끌이 없는

부처님이 바로 그 분이고 나는 그 제자이네.


혼돈을 벗어나 만족에 머물고

세속적 이득에 초연하고 기뻐하며

인간의 마지막 몸으로 태어나

사문의 할 일을 해 마치신 분

참으로 무엇과도 견줄 바 없고 티 없는

부처님이 바로 그 분이고 나는 그 제자였네.


의혹이 없고 훌륭하고

계행을 지키는 분, 빼어난 지도자,

견줄 자 없고 빛나고, 주저함이 없고,

빛을 비추고, 교만을 부수고, 영웅이신

부처님이 바로 그 분이고 나는 그 제자이네


많은 무리의 지도자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묵묵한 성자

안온함을 주는 분, 지혜를 갖춘 분

진리 위에 서서, 안으로 절제하는 분

집착의 저 너머로 가신 분, 해탈하신

부처님이 바로 그 분이고 나는 그 제자이네.


한적한 곳에 사는 티 없는 코끼리

속박을 부수고 온전히 해탈한 분

지혜로 물들어 토론에 막힘이 없고

교만심을 내려놓고 욕망을 떠나고

자신을 길들여 희론을 떠나고

자신을 길들여 희론을 떠난

부처님이 바로 그분이고 나는 그 제자이네.


거룩한 분이며 마음을 닦아

목표를 성취하고 진리를 설하시는 분

마음챙김과 꿰뚫은 통찰력을 타고 나

앞으로도 뒤로도 기울지 않네.

동요함이 없고 통달을 얻으신

부처님이 바로 그 분이고 나는 그 제자이네.


바른 길을 가고 선정에 머무는 분

안으로 번뇌기 다하고 온전히 청정하고

의존하지 않고 두려움이 없으며

한적한 곳에 살며 최상을 성취한 분

윤회를 건넜고 우리도 건너도록 인도하시는

부처님이 바로 그 분이고 나는 그 제자이네


무한한 지혜로 최상의 평온에 머무는 분

탐욕이 전혀 없고 위대한 지혜의 사람

그는 여래이며, 바른 길로 잘 가신 분

견줄 자도 없고 동등한 자도 없네.

용맹하고 모든 것에 막힘이 없는

부처님이 바로 그 분이고 나는 그 제자이네


갈애를 끊고 깨달음을 얻으신 분

의혹의 구름을 걷어내고 티끌하나 없는

존경받을 만하고 가장 위대한 영혼

가장 완벽하고 측량을 초월하는 분

가장 훌륭한 최고의 영예를 얻은

부처님이 바로 그 분이고 나는 그 제자이네


이어서 장자 우빨리는 말하였다.

“존자님, 부처님은 수많은 칭찬받을 만한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찬탄할 만한 사람을 찬탄하지 않겠습니까?”




여래도 다른 사람에게 불쾌한 말을 합니까?

맛지마 니까야:58 아바야라자꾸마라 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계셨다. 그때 아바야 왕자는 니간타 나따뿟따에게 니간타 나따뿟따는 왕자 아바야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왕자님, 수행자 고따마의 교리를 논박하십시오. 그러면 ‘아바야왕자가 그렇게 큰 영적인 힘이 있고 그렇게 막강한 사문 고따마를 논박하였다.’라는 좋은 평판이 퍼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존자여, 어떻게 내가 그렇게 큰 영적인 힘이 있고 그렇게 막강한 사문 고따마를 논박할 수 있습니까?”

“왕자님, 사문 고따마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십시오. ‘존자여, 여래도 다른 사람에게 불쾌한 말을 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만일 불쾌한 말을 한다고 대답하면 ‘존자여, 그대가 다른 일반 사람들처럼 그렇게 불쾌한 말을 한다면, 다른 사람과 그대와의 다름 점이 무엇입니까?’일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한 말을 합니다.’

그러나 만일 다른 사람에게 불쾌한 말을 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면 이렇게 말하십시오, ‘존자여, 그러면 왜 데바닷따에게 구제할 길이 없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고 불쾌한 말을 했습니까? 데바닷따는 그 말에 화가 났고 불쾌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왕자여, 이와 같이 두 개의 뿔 달린 질문을 했을 때 수행자 고따마는 그것을 뱉을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을 것입니다.”

니간타 나따뿟따와 이런 대화를 한 수 아바야 왕자는 그 다음날 아침 공양에 부처님과 세 명의 비구를 그의 집으로 초대하였다. 왕자는 직접 음식 시중을 들며 온갖 맛있는 음식으로 부처님을 대접하였다. 공양 후 왕자는 준비된 질문을 부처님께 하였다. “존자님, 여래도 다른 이에게 불쾌한 말을 합니까?”

“왕자님, 그 질문에 대하여 일방적인 대답은 없습니다.”

“존자님, 그러면 니간타 나따뿟따는 졌습니다.”

“왕자님,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래서 왕자는 니간타 나따뿟따의 자초지종 이야기를 다 하였다. 그때 어린 아기가 왕자의 무릎에 누워 있었다. 부처님은 왕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왕자님이나 그대의 유모가 부주의한 동안 이 아기가 마대기 조각이나 작은 돌을 입에 넣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존자님, 그것을 꺼내야지요, 만일 즉시 꺼낼 수 없다면 아기의 머리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 손가락을 입에 넣어 입에 피가 나더라도 이 물질을 제거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아기에 대한 자비심 때문입니다.”

“아찬가지로 왕자님.

① 여래는 사실이 아니고 진실되지 않고 유익하지 않은 말들을 아는데, 이 말을 다른 사람이 좋아하지 않고 그들에게 불쾌감을 준다면 여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② 여래는 사실이고 진실되지만 유익하지 않은 말들을 아는데, 이 말들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고 그들에게 불쾌감을 준다면 여래는 그와 같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③ 여래는 사실이고 진실되고 유익한 말들을 아는데, 그러나 이 말들을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고 그들에게 불쾌감을 준다면 여래는 이 말을 해야 할 적절한 때를 알아서 합니다.

④ 여래는 사실이 아니고 진실되지 않고 유익하지 않은 말들을 아는데, 이 말들이 다른 이에게 기분 좋고 유쾌함을 준다 하더라고 여래는 이런 말들을 하지 않습니다.

⑤ 여래는 사실이고 진실되더라고 유익하지 않은 말들을 아는데, 그런 말들이 기분 좋고 유쾌함을 준다하더라고 여래는 그런 말들을 하지 않습니다.

⑥ 여래는 사실이고 진실되고 유익한 말들을 아는데, 이 말들이 다른 이에게 기분 좋고 유쾌함을 줄때 여래는 말해야 할 적절한 때를 알아서 합니다. 왜냐하면 여래는 중생을 향한 자비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라훌라에게 주신 교훈

맛지마 니까야:61 암발랏티까라훌로와다경

1. 빈 물그릇의 교훈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계셨다. 그때 라훌라 존자는 암발랏티까에 있었다. 저녁나절 부처님은 명상을 끝내고 암발랏티까의 라훌라가 있는 곳으로 가셨다. 라훌라는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자리를 준비하고 발 씻을 물을 준비하였다. 부처님은 자리에 앉아서 발을 씻으셨다. 라훌라는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은 물그릇에 물을 조금 남긴 후 라훌라에게 말씀하셨다.

“하훌라야, 이 물그릇에 물이 조금 있는 것이 보이지?”

“네, 부처님.”

“고의로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수행자의 공덕은 이 물과 같이 적다.”

부처님은 조금 남아 있던 물을 다 버리고 물으셨다.

“라훌라야, 조금 남은 물을 버리는 것을 보았지?”

“네 부처님.”

“고의로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수행자의 공덕을 내 버리는 것이다.”

다시 부처님은 빈 물그릇을 뒤집어 놓고 말씀하셨다.

“라훌라야, 빈 물그릇을 뒤집어 놓는 것을 보았지?”

“네 부처님”

“고의로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수행자의 공덕을 뒤집어엎는 것이다.”

다시 부처님은 빈 물그릇을 바로 놓고 말씀 하셨다.

“라훌라야, 이 물그릇이 텅 빈 것이 보이지?”

“네 부처님.”

“고의로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수행자의 공덕이 텅 비게 된다. 그리고 고의로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악한 행동도 서슴지 않고 하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너 자신을 단련하여야 한다.”

 2. 거울의 교훈

“라훌라야, 거울은 뭐하는 데 쓰는 거지?”

“비춰 보는데  씁니다. 부처님.”

“마찬가지로 라훌라야, 반복해서 네 자신을 비추어 돌아본 후에 행동을 해야 하고, 반복해서 네 자신을 비추어 돌아본 후에 말을 해야 하고, 반복해서 네 자신을 비추어 돌아본 후에 생각을 하여야 한다.”


(행동하려고 할 때)

“라훌라야, 네가 행동을 하려고 할 때 이와 같이 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내가 하려고 하는 행동이 나에게 해로움을 주지 않을 까? 또 남에게 해로움울 주지 않을까? 또 나와 남 모두에게 해로움을 주지 않을까? [혹시] 이 행동이 좋지 못한 행동으로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라고 돌아보아야 한다.

네가 비추어 보았을 때 만일 ‘내가 하려고 하는 행동이 나에게 해로움을 줄 것이다. 또는 남에게 해로움을 줄 것이다. 또 나와 남 모두에게 해로움을 줄 것이다. 이 행동은 좋지 못한 행동으로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안다면 그런 행동은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네가 비추어 보았을 때 만일 ‘내가 하려고 하는 행동이 나에게 해로움을 주지 않을 것이다. 남에게 해로움을 주지 않을 것이다.  나와 남 모두에게 해로움을 주지 않을 것이다. 이 행동은 선한 행동으로 행복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안다면 그런 행동은 해도 좋다.”


(행동하고 있을 때)

“또한 라훌라야, 네가 행동을 하고 있을 때에도 이와 같이 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내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나에게 해로움을 주고 있지 않은가? 또는 남에게 해로움을 주고 있지는 않은가? 또는 나와 남 모두에게 해로움을 주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이 행동이 좋지 못한 행동으로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라고 돌아보아야 한다.

네가 비추어 보았을 때 만일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나에게 해로움을 주고 있다. 또 남에게 해로움을 주고 있다. 또는 나와 남 모두에게 해로움을 주고 있다. 이 행동은 좋지 못한 행동으로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온다.’라고 안다면 그런 행동은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네가 비추어 보았을 때 만일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나에게 해로움을 주지 않는다. 이 행동은 선한 행동으로 행복한 결과를 가져온다.‘ 라고 안다면 그런 행동은 계속해도 좋다.”


(행동한 후)

“또한 라훌라야, 네가 행동을 한 후에도 이와 같이 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한 행동이 나에게 해로움을 가져오지는 않았는가? 또 남에게 해로움을 주지는 않았을까? 또는 나와 남 모두에게 해로움을 주지 않았을까? [혹시] 이 행동이 좋지 못한 행동으로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을까?’라고 돌아보아야 한다.

네가 비추어 보았을 때 만일 ‘내가 한 행동이 나에게 해로움을 주었다. 이 행동은 좋지 못한 행동으로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왔다. 라고 안다면, 그때는 그런 행동을 함께 수행하는 지혜로운 동료나 스승에게 고백하고 드러내 보여야 한다. 그런 행동을 고백하고 드러내 보이고 열어 보이기 때문에 앞으로 조심하게 된다.

그러나 네가 비추어 보았을 때 만일‘내가 한 행동이 나에게 해로움을 주지 않았다. 또는 남에게 해로움을 주지 않았다. 또는 나와 남 모두에게 해로움을 주지 않았다. 이 행동은 선한 행동으로 행복한 결과를 자져왔다.’라고 안다면 그때는 행복하고 기쁘게 지내게 되고 밤낮으로 그 좋은 행을 닦아야 한다.”


(말할 때에도 자신을 비추어 보라)

“행동할 때와 마찬가지로 말하려고 할 때에도, 말하는 동안에도, 말한 후에도, 행동할 때와 똑같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비추어 본 후에 말을 하여야 한다.”


(생각할 때에도 자신을 비추어 보라)

“행동 할 때와 마찬가지로 생각하려고 할 때에도, 생각하는 동안에도, 생각한 후에도, 행동할 때와 똑같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비추어 본 후에 생각을 하여야 한다.”

(과거.미래. 현재의 모든 수행자처럼 너도 생각과 말과 행동을 비추어 보라)

“라훌라야, 과거의 어떤 사문이나 브라흐민들도 모두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보고 또 되플이하여 비추어 본 후에 생각을 하였고, 말을 하였고, 행동을 하였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그들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깨끗하게 하였다.

미래의 어떤 사문이나 브라흐민들도 모두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보고 되풀이하여 비추어 본 후에 생각을 할 것이고, 말을 할 것이고, 행동을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그들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깨끗하게 할 것이다.

현재의 어떤 사문이나 브라흐민들도 모두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보고 되풀이하여 비추어 본 후에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한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그들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깨끗하게 한다.

그러므로 라훌라야, 너는 이와 같이 단련하여야 한다. ‘나는 내 행동을 반복하여 돌아봄으로써 말을 깨끗이 할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을 반복하여 돌아봄으로써 마음을 깨끗이 할 것이다.’이것이 바로 어떻게 너 자신을 단련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다.”


번뇌가 뿌리째 뽑힌 뿐

맛지마 니까야:68 날라빠나 경7

두려운 윤회를 가져오고, 그 결과로 괴로움을 가져오고, 생.로.병.사를 가져오고, 번뇌를 일으키는 것들을 여래는 버렸으며, 여래는 이것들을 뿌리째 잘라 버렸으며, 마치 야자수 나무의 그루터기처럼 장차 다시는 존재하지 않게 말들었다. 아누룻다, 그것은 마치 야자수 나무의 순을 잘라버리면 장차 다시는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여래는 두러운 윤회를 가져오고, 괴로움을 가져오고, 생.로.병.사를 가져오고, 번뇌를 일으키는 것들을 버렸으며, 여래는 이것들을 뿌리째 잘라 버렸으며, 마치 야자수 나무의 그루터기처럼 장차 다시는 존재하지 않게 만들었다. 모든 번뇌를 잘라 번뇌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였다.


사문 고따마의 특성

맛지마 니까야: 77 마하사꿀루다이 경 1-9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계셨다. 그때 잘 알려진 많은 방랑 수랭자들이 그들의 숲인 모라니와빠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부처님은 이른 아침 라자가하로 탁발을 가셨다. 그런데 탁발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부처님은 모라니와빠 숲의 방라 수행자 사꿀루다인을 방문하기로 하셨다.

그때 사꿀루다인은 많은 방랑 수행자들과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여러 가지 핵심 없는 이야기들을 소란스럽게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즉 왕의 이야기, 도둑, 대신, 군대, 전쟁, 음식, 음료, 의복, 침상, 화환, 향수, 친척, 수레, 마을, 도시, 시골, 여자, 영웅, 거리, 세상의 기원 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꿀루다인은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그의 무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떠들지 말고 조용히 하시오, 저기 사문 고따마가 옵니다. 그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그렇게 수련 받았고 조용한 것을 칭찬합니다. 아마도 그는 우리가 조용한 무리임을 알면 우리에게 올 것이오,”

그래서 그들은 조용해졌다. 사꿀루다인은 부처님에게 말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존자님, 환영합니다. 오랜만에 여기 오실 기회를 만드셨군요. 자리에 앉으십시오.”

“그대들은 무슨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까. 우다인? 무슨 토론이 중단되었습니까?”

“존자님, 저희들이 여기에서 한 이야기는 나중에 들으실 수 있습니다. 얼마전에 여러 교간의 사문이나 브라흐민들이 토론하는 회당에 함께 모였을 때 이런 주제가 대두되어습니다. ‘앙가국과 마가다국의 사람들은 커다란 득을 보고 있다 왜냐하면 여러 훌륭하고 잘 알려진 성자들이 우기를 보내기 위하여 라자가하에 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뿌라나 깟사빠 등 여섯 명의 교단의 지도자들을 차례로 평가하면서 이야기 한 후 어떤 사람이 사문 고따마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는 사문 고따마)

“사문 고따마는 교단을 이끄는 지도자이고, 한 단체의 지도자이며, 스승이며, 매우 잘 알려져 있으며, 교단의 유명한 창시자이며, 많은 사람으로부터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많은 제자들로부터 존경과 공경을 받으며 제자들은 존경심으로 가득차서 그에게 의지한다.

언젠가 사문 고따마가 수백 명의 대중들에게 설법할 때 어떤 제자가 헛기침을 하였는데 그의 동료가 무릎으로 살짝 건드리며, 부처님께서 담마를 설하고 계십니다. 종용히 하세요.라고 하였습니다. 사문 고따마가 수백 명의 대중들에게 설법할 때에는 기침소리 하나 나지 않고 조용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기다리는 많은 대중들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서 ‘부처님이 설하실 담마를 우리는 듣겠다.’고 설법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네 거리에서 진짜 꿀을 짜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기대에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이와 같이 사문 고따마가 수백 명의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설할 때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들어야 겠다는 기대감에 가득차) 기침소리 하나 나지 않습니다.

그의 제자 중에 청정한 삶에서 동료들과 다투고 수도생활을 포기하고 속세로 돌아간 제자들도 부천님과, 가르침과, 승가를 찬탄합니다. 그들은 이와 같이 오직 그들 자신만 책망하지 다른 사람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운이 없다. 우리들은 공덕이 없다. 잘 설해진 담마와 계율에 출가를 하였지만, 남은여생 동안 완전하고도 청정한 성스러운 삶을 살 수가 없었다. 고 말합니다. 그들은 사원의 관리인으로 그리고 재가신도로서 오계를 지킵니다. 이와 같이 사문 고따만는 그의 제자들로부터 존경과 공경을 받으며 그의 제자들은 지극한 존경심을 가지고 스승에게 의지합니다.


(제자들이 부처님을 존경하는 이유)

이어서 방랑 수행자 사꿀루다인에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우다인, 나의 제자들이 나를 존경하고 공경하고 또 존경심을 가지고 나에게 의지하는 그 이유에 대하여 그대는 몇 가지나 그 특징을 나에게서 보았습니까?”

“존자님, 다섯가지의 특징을 보았습니다. 첫째는 부처님은 식사를 적게 하며 적게 먹는 것을 칭찬합니다. 둘째는 부처님은 어떤 법의라도 만족하며 어떤 법의로도 만족하는 것을 칭찬합니다. 셋째는 부처님은 어떤 탁발음식이라도 만족하며 어떤 탁발음식이라도 만족하는 것을 칭찬합니다. 넷째는 부처님은 어떤 거처라도 만족하며 어떤 거처에도 만족하는 것을 칭찬합니다. 다섯째는 부처님은 세속과 멀리 초연히 살고 초연히 사는 것을 칭찬합니다. 존자님, 이 다섯 가지 이유로 해서 제자들이 부처님을 존경하고 공경하고 그리고 지극한 존경심을 가지고 부처님께 의지한다고 봅니다.

이에 부처님은 우다인에게 말씀 하셨다.

“우다인이여, 그러나 나는 어떤 때는 발우 가득 먹기도 합니다. 그리나 어떤 때는 장자가 보시한 훌륭한 법의를 입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어떤 때는 초대되어 훌륭한 음식을 먹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어떤 때는 편리하게 지어진 승원에서 지냅니다. 그러나 나는 어떤 빼는 비구와 비구니,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 왕과 왕의 대신들, 다른 교단의 수행자들 그리고 그들의 제자들에 둘러싸여 지냅니다. 그러므로 우다인이여, 그대가 말하는 다섯 가지 이유 때문에 나의 제자들이 나를 존경하고 공경하고 또 존경심을 가지고 나에게 의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담마에 대한 신앙 고백

맛지마 니까야:89 담마쩨띠야 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꺄족들이 사는 곳에 계셨는데 메다룸빠라는 도시에 계셨다. 그때 꼬살라의 빠세나디왕은 일이 있어 낭가라까에 도착하였다. 왕은 정원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하여 마차를 타고 정원으로 갔다. 왕은 여기 저기 거닐다가 조용하고 사람들의 인적이 드물고 인가에서 떨어져 있고 홀ㄹh 명상하기에 너무나 마음에 드는 나무 밑을 발견하였다. 그 장소를 보니 부처님 생각이 간절하였다. ‘이곳은 온전히 깨달으신 부처님께 존경의 예를 드리던 곳과 같구나,’라고 생각하였다.

대왕은 디가 까라나야에게 물었다.

“부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대왕님, 부처님은 지금 사꺄국 메다룸빠 마을에 계십니다.”

“낭가라까에서 메다룸빠까지는 얼마나 먼가?”

“멀지 않습니다. 대왕님. 3요자나 거리입니다. 그곳까지 가는데 아직 충분히 해가 남아 있습니다.”

빠세나디왕이 부처님이 계신 숲에 도착하였을 때 그곳에는 많은 비구들이 밖에서 경행[걷는 명상]을 하고 있었다. 왕은 조용히 부처님 처소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왕은 부처님 발에 머리를 대어 인사를 드리고 발에 입을 맞추고 발을 어루만지면서, ‘존자님, 빠세나디왕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부처님은 그의 신심을 보고 이와 같이 물으셨다.

“대왕님, 나에게 그렇게 친애를 보이시고 최상의 존경을 표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존자님, 저는 부처님에 대하여 담마에 따라서 이와 같이 추론합니다. ‘부처님은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고 담마는 부처님에 의하여 잘 설해져 있고 부처님의 제자들의 승가는 훌륭한 길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담마에 대한 신앙 고백1)

부처님, 나는 어떤 사문이나 브라흐민들은 10년. 20년. 30년 또는 40년간 한정된 거룩한 살a을 사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는 이 기간 이후에는 잘 치장하고 기름을 바르고 머리와 수염을 다듬고,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여기 비구들이 일생 동안 완전한 청정한 삶을 사는 것을 봅니다. 정말로 나는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온전히 청정한 승가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제가 부처님에 대하여 ‘부처님은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고 담마는 부처님에 의하여 잘 설해져 있고 부천미의 제자들의 승가는 훌륭한 길을 수행하고 있다. 고 담마에 따라서 추론하는 이유입니다.


(담마에 대한 신앙고백2)

부처님, [세속에서는]왕이 왕광 싸우고, 귀족과 귀족이 싸우고, 브라흐민과 브라흐민, 장자와 장자, 부모와 자식, 형제, 자매, 친구들이 서로서로 싸웁니다.

그러나 여기 비구들은 우호적이고 화목하고 논쟁 없이 물고 우유처럼 융화하며 서로 친절한 눈빛으로 대하는 것을 봅니다. 저는 다른 곳에서는 이와 같이 화목한 집단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것ㅇ 제가 부처님에 대하여 ‘부처님은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고 담마는 부처님에 의하여 잘 설해져 있고 부처님의 제자들의 승가는 훌륭한 길을 수행하고 있다.’고 담마에 따라서 추론하는 이유입니다.


(담마에 대한 신앙고백3)

부처님, 나는 어기저기 숲과 정원을 산책하기고 하고 돌아다니기도 하였습니다. 거기에서 나는 사문이나 브라흐민들을 보게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여위고, 추루하고, 안색이 나쁘고,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추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 비구들은 미소짓고, 쾌활하고, 진정으로 기뻐하고, 검소한 것을 기뻐하며, 감관이 청정하고, 평안하고, 산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보시로 살아가며, 야생의 사슴처럼[자유롭게]사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살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없이 이 존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점차적으로 성취도는 뛰어난 탁월함을 알고 있다.’ 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제가 부처님에 의하여 잘 설해져 있고 부처님의 제자들의 승가는 훌륭한 길을 수행하고 있다.’고 담마에 따라 추론하는 이유입니다.


(담마에 대한 신앙고백4)

부처님, 나는 왕으로서 사형시켜야 할 사람은 사형시키고 벌금을 물려야 할 사람은 벌금을 물게 하고 귀양을 보내야 할 사람은 귀양을 보냅니다. 그렇지만 내가 의회에 앉아 있을 때에 사람들은 내 말을 차단하거나 가로 막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여러분, 내가 의회에 앉아 있을 때는 내 말을 차단하거나 가로막지 말고 내 말을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리시오.’라고 말을 해도 그들은 내 말을 가로막고 차단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수백 명의 대중에게 설법하실 때는 기침소리 하나 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정말로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어떻게 칼이나 몽둥이를 사용하지 않고도 집단이 이렇게 잘 수련될 수 있는지 경이롭습니다. 나는 이렇게 잘 수련된 집단을 어디에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부처님에 대하여 ‘부처님은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고 담마는 부처님에 의하여 잘 설해져 있고 부처님의 제자들의 승가는 훌륭한 길을 수행하고 있다.’고 담마에 따라서 추론하는 이유입니다.


(담마에 대한 신앙고백5)

부처님, 저는 머리카락을 가를 만큼 그렇게 예리한 명사수처럼 논쟁에 있어 도사이고 영리하고 학식이 있는 귀족들 [브라흐민, 장자, 사문들]을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날카로운 재치로 다른 사람의 견해를 박살내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닙니다. 그들은 사문 고따마가 어느 도시에 온다는 소리를 들으면 이런 질문을 만듭니다. ‘사문 고따마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사문 고따마가 이런저런 마을과 도시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으로 갔는데 사문 고따마는 그들에게 담마에 대하여 가르치고, 분발케 하고, 격려하고, 기쁘게 하였습니다. 이런 가르침을 듣고 난 후에 기쁘게 된 그들은 전혀 질문을 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그를 반박하겠습니까? 반대로 그 귀족들은 사문 고따마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부처님에 대하여 ‘부처님은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고 담마는 부처님에 의하여 잘 설해져 있고 부처님의 제자들의 승가는 훌륭한 길을 수행하고 있다.’ 고 담마에 따라서 추론하는 이유입니다.


(담마에 대한 신앙고백6)

부처님, 제에게는 이시닷따와 뿌라나라고 하는 두 명의 검열관이 있습니다. 그들은 나의 음식을 먹고 나의 마차를 사용하고 나로 인해 생계를 유지하고 명성을 얻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보다는 부처님을 더 존경합니다. 언젠가 내가 군대를 이끌고 다른 곳에 갔을 때 나는 이들을 시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굉장히 비좁은 숙소에 묵게 되었습니다. 이시닷따와 뿌라나 두 감독관은 법담으로 밤늦게까지 보낸 뒤, 부처님이 머물고 계시다고 들은 곳으로 머리를 두고 내 쪽으로 발을 둔 채 자리에 누웠습니다. 저는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정말 경이로운 일이다. 내가 그들에게 많은 것들은 주는데도 나보다도 부처님을 더 존경한다. 이들은 틀림없이 부처님 가르침 속에서 점차적으로 성취되는 뛰어난 탁월함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내가 부처님에 대하여‘부처님은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고 담마는 부처님에 의하여 잘 설해져 있고, 부처님의 제자들의 승가는 훌륭한 길을 수행하고 있다.’고 담마에 따라서 추론하는 이유입니다.”

이어서 빠세나디왕은 말하였다.

“부처님은 왕족이고 나도 왕족입니다. 부처님은 꼬살라인이고 나도 꼬살라인입니다. 부처님은 여든 살이고 나도 여든 살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부처님께 이렇게 친애를 보이고 최상의 존경을 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빠세나디왕이 떠난 후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꼬살라의 빠세나디왕은 ‘담마에 대한 신앙 고백’을 말한 후에 떠나갔다. [그가 말한 것과 같은]

‘담마에 대한 신앙 고백’을 배워라.

‘담마에 대한 신앙고백’을 숙달하여라.

‘담마에 대한 신앙 고백’을 기억하여라.

‘담마에 대한 신앙 고백’을 유익하며

‘담마에 대한 신앙 고백’은 청정한 삶의 근본이다.”


빼어난 용모의 부처님

맛지마 니까야:92 셀라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1,250명의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앙굿따라빠를 유행하시다가 아빠나라는 마을에 도착하셨다. 그때 머리를 땋은 고행자[브하흐민] 께니야는 이런 소문을 들었다. ‘사문 고따마가 1,250명의 제자들과 함께 아빠나에 도착하셨다는 것, 그분은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라는 것, 그분의 명성은 자자하고 훌륭한 가르침을 주신다는 것, 이런 훌륭한 분을 뵙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께니야는 부처님을 방문하여 인사를 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은 께니야에게 가르침을 주시고, 일깨우고, 분발시키고, 격려해 주셨다. 께니야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일깨움을 듣고 마음이 분발되고 격려되어 환희심으로 가득 차서 부처님께 말하였다.

“고따마 존자님, 승가 대중과 함께 내일 저의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비구 승가 대중은 많습니다. 니께야, 1,250명입니다. 그리고 그대는 브라흐민들에게 신뢰를 두고 있지 않습니까?”

“비구 승가 대중은 많다하더라도, 고따마 존자님 그리고 제가 브라흐민에게 신죄를 두고 있다하더라고 내일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이에 부처님은 똑같은 대답으로 허락하지 않으셨으나 께니야의 계속된 세 번째 청원에 마침내 침묵으로 승낙하셨다. 께니야는 그의 장원의 예배소를 돌아가서 그의 친구, 동료, 친지, 친척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도록 부탁하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화덕을 파고, 어떤 사람은 나무를 패고, 그릇을 씻고, 물 단지를 준비하고, 앉을 자리를 준비하였다. 께니야 자신은 대형 천막을 쳤다.

그때에 아빠나에는 브라흐민 셀라가 살고 있었다. 그는 세 가지 베다에 통달하였고 그것의 어휘, 예식, 음운론, 어원론, 전승의 다섯 가지와 또한 문헌학과 문법의 숙달하였다, 세간의 철학과 훌륭한 사람의 특징에 능통하였고 300명의 브라흐민 셀라를 깊이 신뢰하고 있었다. 브라흐민 셀라는 그의 300명의 학생들과 함께 이리저리 걷다가 께니야의 사당으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화덕을 파고, 나무를 패고, 그릇을 씻고, 단지에 물을 준비하고, 앉을 자리를 준비하고 그리고 께니야는 대형 천막을 치고 있었다. 그래서 께니야에게 물었다.

“누가 시집갑니까, 아니면 장가갑니까, 아니면 큰 제사라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니야 빔비사라왕과 그의 군대를 식사에 초청이라도 했습니까?”

“셀라님, 그런 것이 아니고 지금 아빠나에 사문 고따마와 그의 제자1,250명이 있습니다. ‘그분은 온전히 깨달으신 분(붓다)이라는 좋은 평판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분과 비구 승가 대중을 함께 내일 공양에 초대하였습니다.”

“그대는 ‘붓다[깨달은 성자]’라고 했습니까. 께니야?”

“네, ‘붓다’라고 했습니다. 셀라님”

“그대는 ‘붓다’라고 말했습니까. 께니야?”

“네, ‘붓다’라고 말했습니다. 셀라님.”

브라흐민 셀라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서 붓다라는 말조차 듣기 어렵다. 위대한 사람의 32가지 상호가 [베다의] 친가에 전해져 오고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오직 두 가지 길 밖에 없다. 만일 그가 세속에 살면 그는 담마에 의하여 통치하는 정의로운 왕, 전륜성왕이 되어 칼이나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담마에 의하여 나라를 통치하여 평안을 가져온다. 그러나 만일 그가 출가하면 그는 [진리를] 성취한 사람, 온전히 깨달은 사람이 되어 세상의 [괴로움의] 장막을 걷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께니야, 온전히 깨달으신 분, 고따마 존자님이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 저기 푸른 숲에 계십니다. 셀라님.”

브라흐민 셀라는 300명의 그의 학생들과 함께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그는 인사를 나누고 한쪽에 앉아 생각하기를, ‘사문고따마는 위대한 사람의 32가지 상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가 깨달은 분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전승에 따라서 말하는 브라흐민에게서 듣기를 온전히 깨달은 사람들은 칭찬을 받을 때 자신을 드러낸다고 들었다. 그러니 적합한 시로서 사문 고따마를 칭찬하면 어떨까?’

그는 부처님 앞에서 이렇게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셀라:] 팔등신의 완벽한 풍채

보기에 매우 아름답네.

 오! 부처님, 몸은 금빛이고

하얀 치아, 강건한 힘이 있네.


훌륭한 태생의 사람에 있는 특성

모든 모습 당신 속에 다 있네.

맑은 눈, 보름달처럼 수련한 얼굴

훤칠하고 위엄이 있어

사문 중에 태양처럼 빛나네.


황금빛 피부의 비구

보기에 매우 아름답네.

이렇게 빼어난 용모 보기 드문데

어찌하여 사문의 삶에 만족하십니까?

전륜성왕이 어울립니다.

온 세계의 승리자가 되십시오.


귀족과 부유한 왕들은

당신께 충성과 헌신을 다할 것입니다.

오! 고따마시여, 왕 중의 왕,

인간의 군주로서 통치하십시오.

[붓다:] 셀라여, 나는 이미 왕이네

담마의 최상의 왕이네

나는 담마의 바퀴를 굴리네

그 바퀴는 아무도 멈출 수 없네.


[셀라:] 오! 고따마시여,

당신은 ‘온전히 깨달았다’고 선업합니다.

‘나는 담마의 최상의 왕이다

나는 담마의 바퀴를 굴린다‘고

당신은 말씀하십니다.


스승이 가신 갈을 따르는 제자로서

누가 당신의 장군입니까?

당신이 굴린 법의 바퀴를

누가 도와 굴립니까?


[붓다:] 내가 굴린 법의 바퀴

똑같은 최상의 법의 바퀴를

여래의 계승자 사리뿟따

나를 도와 굴릴 것입니다.


나는 알아야 할 것을 곧바로 알았고

닦아야 할 것을 이미 닦았으며

버려야 할 것을 이미 버렸소,

그러므로 브라흐민이여,

나는 깨달은 자, 붓다입니다.


나는 온전히 깨달은 자

나는 최상의 의사

나는 비할 데 없는 성자

악마의 군대를 쳐부수고

모든 적을 제압하고

두려움 없이 기뻐합니다.


[셀라:] 여러분, 이것을 들어라!

그 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라!

통찰력을 갖춘 분, 의사,

숲 속에서 사자처럼 포효하는

위대한 영웅.


원하는 자는 나를 따르라

원하지 않는 자는 떠나라

나는 드높은 지혜를 가진 분께 출가하겠다.


[셀라의 제자들:]

온전히 깨달은 분의 가르침을

당신께서 따르신다면

드높은 지혜를 가진 분께

저희들도 출가하겠습니다.


[셀라:]여기300명의 브라흐민은

합장하고 청원합니다.

저희들은 부처님 아래서

청정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붓다:] 셀라여, 청정한 삶은 잘 설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보이는 것이며 시간을 초월합니다.

부지런히 정진하는 사람은

출가의 좋은 결실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래서 브라흐민 셀라와 그의 학생들은 부처님께 출가하여 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후 얼마 되지 않아 셀라 존자는 홀로 부지런히 열성을 다하여 확고한 마음으로 정진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셀라와 그 대중들은 부처님을 찾아뵙고 이와 같은 게송을 말하였다.


통찰력이 있으신 분이여,

당신께 귀의한 지 8일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에 부처님

당신의 가르침에 길들여졌습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당신은 스승이십니다.

당신은 성인이십니다.


마라를 정복하고 모든 악한 성향을 끊어버리고

[고해를] 건너고 저희들도 건너도록 인도하십니다.

모든 집착을 물리치고 모든 번뇌를 제거하셨습니다.

당신은 집착에서 벗어난 사자이며 두려움과 공포가 없습니다.


여기300명의 비구들이 합장하고 서 있습니다.

오, 성자시여, 발을 내십시오.

이들이 스승의 발 앞에 절하려 합니다.


고따마 존자님은 어떤 분인가?

맛지마 니까야:95 짱끼 경 1-9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많은 비구와 함께 꼬살라국을 우행하여 브라흐민 마을인 오빠사다에 도착하셨다. 부처님은 오빠사다의 북쪽에 있는 살라 나무숲인 데와 숲에 머무셨다. 그때 브라흐민 짱끼는 빠세나디왕이 하사한 비옥한 땅인 오빠사를 다스리면서 권세를 누리며 살았다.

그런데 이 브라흐민 마을에 온전히 깨달으신 부처님이 오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브라흐민과 장자들은 떼지어 데와 숲으로 가고 있었다.

브라흐민 짱끼는 자신의 궁전 위층에서 한낮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많은 브라흐민과 장자들이 떼지어 살라 숲의 데와 숲으로 가는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의 사무관에게 물었다.

“오빠사다의 브라흐민과 장자들이 왜 떼지어 북쪽의 데와 숲으로 가는가?”

“짱끼님, 사까족의 사문 고따마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오빠사다에 도착하여 데와 숲에 머물고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온전히 깨달은 분이라는 명성이 자자합니다. 그분의 훌륭한 가르침을 주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고따마 존자님을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그대는 오빠사다의 브라흐민과 장자들에게 가서 말하기를, ‘기다리십시오, 브라흐민 짱끼도 사문 고따마를 만나기 위하여 갈 것입니다.’라고 말하시오.”

사무관은 그대로 전하였다. 그때 500여 명의 브라흐민이 무슨 일이 있어 함께 모여 있었는데 사무관의 말을 듣고는 그들은 브라흐민 짱끼에게 가서 물었다.

“짱끼님, 사문 고따마를 만나러 간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렇소 여러분, 나는 사문 고따마를 만나러 가려고 합니다.”

“사문 고따마를 만나러 가지 마십시오. 짱끼님이 간다는 것은 적합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문 고따마가 짱끼님을 만나러 오는 것이 합당합니다. 짱끼님은 출생이 있어서 7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양쪽 모두 나무랄 데 없이 깨끗한[브라흐민] 혈통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대부호이고 대자산가입니다. 어휘, 예식, 음운론, 어원론, 전승의 다섯 가지와 세 가지 베다에 정통하고, 또한 문헌학과 문법에 숙달하였고, 세간의 철학과 훌륭한 사람의 특징에 능통하였습니다. 그리고 용모가 수련하고 기품이 있으며 보기에도 훌륭합니다. 또한 덕성이 충만하고, 훌륭한 연사이며, 예의 바르고, 분명하고, 의미 있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스승의 스승을 가르치며 300명의 브라흐민 학생들에게 베다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짱끼님은 빠세나디왕과 브라흐민 뽁카라사띠의 경을 받습니다. 이런 이유로 짱끼님이 간다는 것은 적합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문 고따마가 짱끼님을 만나러 오는 것이 합당합니다.

이에 브라흐민 짱끼는 말하였다.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왜 고따마 존자님을 뵈러 가야 하는지 왜 존자님이 여기로 오는 것이 합당하지 않은지 이야기하겠습니다. 고따마 존자님은 이런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출생에 있어서 7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양쪽 모두 나무랄 데 없는 깨끗한 [왕족]형통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금고나 저장소에 비축해둔 많은 금과 은을 버리고 출가하였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아직 젊었을 때 젊음의 축복이 주어진 인생의 한창때에 검은 머리의 젊은이는, [아들의 출가를] 원치 않는 부모님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지만, 그의 수염과 머리를 깎고 노란 가사를 입고 출가하였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보기에 아름답고, 용모가 빼어나고, 기품이 있으며, 안색이 최상의 아름다움을 지녔으며, 숭고한 아름다움과 고아한 풍채를 지녔으며, 당당한 외모를 지녔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계행을 갖추고, 훌륭한 계행을 지니고, 바람직한 계행을 지닙니다.

사문 고따마는 훌륭한 설법가입니다. 그는 예의바르고, 분명하고, 결함이 없으며, 의미 있는 말을 합니다.

사문 고따마는 많은 사람들의 스승의 스승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모든 감각적 쾌락에서 떠났으며 허영심이 없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업에 대하여 가르치고 업의 과보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사문 고따마는 브라흐민들에게 어떤 해로움도 주지 않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뛰어난 귀족 계급인 왕족 가문에서 출가하였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막대한 부와 재물이 있는 매우 부유한 가정에서 출가하였습니다.

사문 고따마의 가르침을 듣기 위하여 사람들은 먼 왕국과 먼 고장에서 찾아옵니다.

사문 고따에 대한 이와 같은 좋은 평판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아라한이시며, 온전히 깨달으신 분, 지혜와 덕행을 갖춘 분, 바른 길로 잘 가신 분, 세상을 잘 아는 분, 견줄 바가 없는 분, 사람을 길들이는 분, 신과 인간의 스승, 깨달으신 분, 존귀한신 분’이라고 합니다.

사문 고따마는 훌륭한 사람의 특징인 서른두 가지 상호를 갖추고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에게 마가다국의 세니야 빔비사라왕과 왕비와 그 자녀들, 꼬살라국 빠세나디왕과 왕비와 그 자녀들, 브라흐민 뽁카라사띠와 그의 아내와 자녀들이 일생동안 귀의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사문 고따마가 오빠사다에 도착하여 데와 숲에 머물고 계십니다. 우리 마을에 오는 어떤 사문이나 브라흐민도 우리의 손님이며 그 손님은 마땅히 존경과 공경을 받아야 합니다. 사문 고따마는 우리의 손님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고따마 존자님이 나를 보러 노는 것은 합당하지 않으며, 오히려 내가 고따마 존자님을 뵈러 가는 것이 합당한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이 범위는 내가 알고 있는 고따마의 훌륭함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제한된 것이 아니고 그 분의 훌륭함은 측량한 길이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님은 이 여러 가지 특징의 각각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나를 보러 오는 것은 합당치 않으며, 오히려 내가 그분을 뵈러 가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모두 고따마 존자님을 뵈러 갑시다.”

그래서 많은 브라흐민 무리들은 부처님을 뵈러 길을 떠났다.


여래는 다만 길을 안내할 뿐이다.

맛지마 니까야:107 가나까목갈라나 경 12-16

브라흐민 가나까 목갈라나는 부처님께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

“고따마 존자님의 제자들이 이와 같이 존자님의 충고와 가르침을 듣고 모두가 최상의 목표인 열반을 얻습니까? 아니면 어떤 사람은 얻고 어떤 사람은 얻지 못합니까?”

“브라흐민, 어떤 제자는 최상의 목표인 열반을 얻고 어떤 제자는 얻지 못합니다.”

“고따마 존자님, 최상의 목표인 열반이 있고 열반에 이르는 길이 있고 안내자인 고따마 존자님이 계시는데도, 왜 [똑같은]충고와 가르침을 받고도 어떤 제자들은 최상의 목표인 열반을 얻고 어떤 제자들은 열반을 얻지 못합니까? 그 원인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브라흐민이여, 내가 되묻겠습니다. 그대는 라자가하로 가는 길에 익숙합니까?”

“예, 익숙합니다.”

“브라흐민이여, 여기 라자가하로 가기를 원하는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와서 이렇게 물었다고 합시다, ‘나는 라자가하로 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가는지 좀 가르쳐 주십시오.’그대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이 길은 라자가하로 갑니다. 잠시 동안 이 길을 따라가면 어떤 마을이 보입니다. 조금 더 가면 도시가 보입니다. 조금 더 가면 아름다운 공원과 숲과 들판과 연못이 있는 라자가하가 보일 것입니다.’ 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대의 이런 충고와 안내를 듣고서도 그는 잘못 된 길로 가서 서쪽으로 갈지도 모릅니다. 또 한사람이 당신에게 와서 라자가하로 가는 길을 물었다고 합시다. 그대는 첫 번째 사람에게 설명한 것고 똑같이 말해 주었습니다. 이런 그대의 충고와 안내를 듣고 그는 안전하게 라자가하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러면[목적지인]라자가하가 있고 라자가하로 가는 길이 있고 가는 길을 안내해 준 그대가 있는데, 그대로부터 [똑같은] 충고와 안내를 받고도 한 사람은 잘못된 길을 가서 서쪽으로 가고, 또 한 사람은 안전하게 라자가하에 도착합니다. 그 원인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고따마 존자님, 저는 다만 길을 안내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브라흐민이여, 최상의 목표인 열반이 있고 열반에 이르는 길이 있고 아내자인 내가 있습니다. 어떤 제자들은 나의 충고와 가르침을 듣고 열반을 성취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내가 어찌하겠습니까? 여래는 다만 길을 보여줄 뿐입니다.”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자 브라흐민 가나까 목갈라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꽃과 향기 중에서 쟈스민의 향기가 최고이듯이 고따마 존자님의 가르침은 오늘의 가르침 가운데 으뜸입니다.”


가르침이 우이의 의지처

맛지마 니까야:108 고빠까목갈나라 경 1-1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아난다 존자는 라자가하의 죽림적사에 있었다. 그때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지 오래지 않아서였다.

아난다 존자는 라자가하에서 탁발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되어 브라흐민 고빠까 목갈라나가 일하는 곳으로 갔다.

브라흐민 고빠까 목갈라나는 아난다 존자를 환영하면서 자리를 권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물었다.

“아난다 존자님, 부처님의 제자 중에 온전히 깨달으신 부처님의 모든 자질을 갖고 있는 제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온전히 깨달으신 부처님의 모든 자질을 갖고 있는 제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브라흐민. 부처님은 일어나지 않은 길을 일으킨 분이고, 없던 길을 만든 분이며, 선포되지 않은 길을 선포한 분입니다. 부처님은 길을 아는 분이며, 길을 발견한 분이며, 길에 통달한 분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은 다만 그 길을 따라서 머물며 후에 그 길을 성취하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의 대화는 마가다국 대신이며 브라흐민 왓사까라의 등장이 중단되었다. 그는 라자가하에서 일을 감독하다가 아난다 존자를 찾아왔다. 그는 아난다 존자에게 인사를 드리고 한쪽에 앉아 이렇게 말하였다.

“무슨이야기를 하고 계셨습니까, 아난다 존자님? 중단된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아난다 존자는 하고 있던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이에 왓사까라가 물었다

“아난다 존자님, 부처님이 ‘내가 이 세상을 떠나면 이 사람이 그대들의 의지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의지하라,’고 지명하신 제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의지처로 지명한 제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난다 존자님 그러면 ‘그는 부처님이 열반하시면 우리의 의지처가 될 것이며 그에게 그대들은 의지하라’고 승단에서 동의하고 많은 장로 비구들에 의해 지명된 비구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승가에서 동의하고 많은 비구들에 의하여 지명된 비구는 없습니다.”

“그러나 브라흐민이여, 우리에게 의지처가 없다면 무엇이 화합의 이유입니까?”

“브라흐민이여, 우리에게 의지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의지처가 있습니다. 가르침이 우리의 의지처입니다.”

“아난다 존자님, '가르침이 우리의 의지처입니다.’라고 하신 말의 뜻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브라흐민이여, 정해진 수련 규칙이 있습니다. 온전히 깨달으신 부처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빠띠목차를 정하셨습니다. 매 우뽀사타 날에 같은 지역과 마을에 사는 우리들은 함께 모입니다. 우리들이 함께 모였을 때 빠디목차를 외울 사람을 요청합니다. 그가 빠띠목차를 외우고 있는 동안 만약 어떤 비구가 가르침을 어긴 것이 생각나면, [그는 잘못을 고백하고] 우리들은 배운 바에 따라서 가르침에 따라서 그의 잘못을 처리합니다. 그 사람의 잘못을 처리하는 것은 우리들이 아니고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반복하여 조언한다.

맛지마 니까야 : 122:26 마하순냐따 경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 어떻게 스승에게 적으로 대하지 않고 친근하게 대하는 것인가? 제자들의 이익을 바라는 마음으로 스승은 자비심에서 이와 같이 담마를 가르친다.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제자들은 가르침을 귀담아 듣고 이해하려 애쓴다. 그들은 가르침에서 어긋나지 않으며 스승의 가르침에 등을 돌이지 않는다. 이와 같이 이 제자들은 적의로 대하지 않고 친근하게 스승을 대한다. 그러므로 아난다, 적으로 나를 대하지 말고 친근함으로 나를 대하라. 그것은 오랫동안 그대들을 행복함과 유익함으로 이끌 것이다.

나는 옹가장이가 아직 굽지 않은 젖은 점토를 다루듯이 그대들을 다루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반복해서 타이르고 또 반복해서 타이를 젓이다. 반복하여 잘못을 제거하고 또 반복하여 잘못을 제거할 것이다.

착살한 사람은 이런 수련을 견디어 낼 것이다.”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부처님께 법복을 드리다.

맛지마 니까야:142 탁키나위방가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꺄국의 까삘라왓투에 있는 니그로다 승원에 계셨다. 그때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한 벌의 새 법복을 만들어 가지고 부처님께로 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 이 한 벌의 법복은 제가 부처님을 위해 특별히 천을 자르고 기워서 만든 것입니다. 자비로 이 법복을 받아 주십시오.”

부처님은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고따미여, 이것을 승가 공동체에 주십시오, 이것을 승가에 보시할 때 그 보시는 나에게 하는 것인 동시에 승가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두 번, 세 번 계속하여 법복을 부처님이 받아 입으시기를 바라는 가절한 마음에서 자비로 받아주시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똑같이 승가에 보시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께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 이 한 벌의 옷을 받아 주십시오,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께서는 부처님께 많은 은혜를 베푸신 분입니다. 그분은 부처님 어머니의 동생으로 부처님을 보살피시고 돌보셨습니다. 부처님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양모가 되어 젖을 먹여 주셨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렇구나. 아난다. 정말 그렇구나!”


아자따삿뚜와으이 부처님 방문

다가 나까야:2 사만나팔라 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라자가하에서 1,250명의 비구 대중과 함께 자와까 꼬마라밧짜의 망고 숲에 계셨다. 그때 웨데히 왕비의 아들인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는 우기 철의 마지막 달 네 번째인 꼬무디 달 보름날, 포살날 밤에 대신들과 함께 궁성의 누각에 앉아 있었다. [거룩한 날] 포살 날 왕은 진지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

“아, 정말 기분 좋은 달빛어린 밤이구나! 참으로 아름다운 달밤이여! 참으로 사랑스런 달밤이여! 참으로 상서로운 달밤이여! 오늘 어떤 사문이나 브라흐민을 방문하면 좋을까? 어떤 사문이나 브라흐민이 나의 [어지러운] 마음을 맑혀 평화롭게 해줄까?”

이에 한 대신이 말하였다.

“대왕님, 뿌라나 깟사빠라는 분이 있는데 그는 교단의 교주이고,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으며, 고단의 창시자이고, 잘 알려져 있고, 존경을 받으며, 오랫동안 공행하였고, 연로함의 지혜를 갖춘 분입니다.

이런 분을 방문한다면 왕께서 마음의 평화를 얻으실 것입니다.”

왕은 침묵하였다. 이어서 대신들은 각기 추천하여 말하였다.

막칼리 고살라, 아지따 께사깜발리, 빠꾸다 깟자야나, 산자야 벨랏 타붓따, 니깐타 나따뿟따를 거른하였다. 그러나 왕은 역시 침묵하였다.

그때 지와까 꼬마라밧짜는 조용히 왕의 곁에 앉아 있었다. 왕은 지와까에게 물었다.

“지와까, 어찌 그대는 묵묵히 앉아 있는가?”

“대왕님 온전히 깨달으신 부처님께서 1,250명의 비구와 함께 저의 망고 숲에 계십니다. 그분은 온전히 깨달은 분이라는 명성을 널리 퍼져 있습니다. 대왕님, 부처님을 방문하십시오, 부처님을 방문하신다면 평화를 얻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지와까, 티고 갈 코기리를 준비하도록 일러라.”

그래서 왕은 코끼리를 타고 화려한 행차를 하여 망고 숲이 멀지 않은 곳에 이르렀는데 왕은 머리털이 쭈뼛 서는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지와까에게 말하였다.

“자와까, 그대가 나를 속이려는 것은 아니겠지? 나를 적에게 넘기려는 것은 아니겟지? 1,250명이나 되는 비구들이 있다는 숲이 아무 소리도 없고 재채기 소리도 없고 기침 소리도 없고 사람 소리도 없고 이렇게 조용 할 수 가 있는가?”

“대왕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저는 대왕님을 속이거나 적들에게 넘기려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대왕님, 앞으로 똑바로  가십시오. 저기 천막에 등불이 켜저 있습니다.”

왕은 코끼리가 갈 수 있는 곳까지 간 다음에 걸어서 천막 앞까지 가서 지와까에게 말하였다.

“지와까, 어디에 부처님이 계시지?”

“대왕님, 중앙 기둥 앞에 동쪽을 향하여 비구들 앞에 앉아 계신 분이 부처님이 십니다.”

왕은 부처님께 나아가 한족에 서서 비구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마치 맑은 호수의 물처럼 그렇게 완전한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왕은 감동하여 말하였다.

“나의 아들, 우다이밧다 왕자가 이 비구들의 모임처럼 그렇게 평화롭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왕은 부처님께 절을 하고 비구들을 향하여 합장하여 인사를 하고 한쪽에 앉았다.


중생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오신 분

앙굿따라 니까야 1부 13:1-7


여기에 한사람이 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것은

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서이다.

신과 인간의 행복과 복지와 이익을 위하여,

세상에 대한 자비심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다.


그 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분은 여래시며, 아라한이시며,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시다.

이 한 사람의 나타나심은 이 세상에서 보기 어려운 일이다.


그 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분은 여래이시며, 아라한이시며,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시다.

이 세상에 오신 그 한 사람은 비범한 분이시다.


그 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분은 여래이시며, 아라한이시며,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시다.

이 한 사람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한다.


그 한사람은 누구인가?

그분은 여래이시며, 아라한이시며,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시다.


이 세상에 오신 한 사람이 있다.

그분은 유일하시고, 동등한 자가 없고, 비교할 자가 없고,

짝할 자가 없으며, 경쟁할 자가 없으며,

두 발 가진 자 가운데 으뜸이시다.


그 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분은 여래이시며, 아라한이시며,

온전히 깨달으신 분이시다.


끊임없는 노력

앙굿따라 니까야 2부 1:5

비구들이여, 나는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성취한] 좋은 상태에 만족하지 않는 것과, 물러남 없는 분투노력이다. 물러남이 없이 이와 같이 나는 분투노력하였다.

“나의 살가죽과 심줄과 뼈만 남아라, 내 몸의 살과 피는 말라버려라, 그러나 인간의 강함과, 인간의 힘과,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을 성취할 때까지 나의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나는 깨달음을 성취하였고 속박에서 벗어나 견줄 바 없는 안온을 얻었다. 그대들도 끊임없이 정진하여야 한다.

목표를 성취할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을 멈추지 않고 정진한다면 그대들도 청정한 삶의 위없는 목표를 이생에서 지혜를 깨달아 머물 것이다.


편안한 잠을 자는 사람

앙굿따라 니까야 3부 3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알라위 인근에 머물고 계셨는데 싱사빠 숲의 마차갈이 있는 곳의 나뭇잎 더미 위에 계셨다. 그 때 알라위국 핫타까 왕자가 산책하러 나왔다가 이 길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는 나뭇잎 위에 앉아 계신 부처님을 보았다. 그는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왕자여, 나는 잘 잤소, 나는 세상에서 편히 잘 자는 사람 중에 하나 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부처님, 겨울밤은 춥은 ‘중8일’ 은 눈 오는 때입니다.

소 발굽으로 다져진 땅은 딱딱하고 떨어진 이파리 더미도 얇고 나뭇잎도 거의 다 떨어진 황갈색의 가사는 춥고 강풍이 불어 춥습니다. 그런데도 부처님은 편안히 주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왕자여, 그대에게 질문을 하겠소. 여기 어떤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무척 부자여서 호화로운 궁궐 같은 집에서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편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대 생각에 이 장자는 편안한 잠을 자겠습니까, 아니면 그렇지 못하겠습니까?”

“그는 편안한 잠을 잘 것입니다. 부처님,”

“그러면 왕자여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탐욕이나 증오, 어리석음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잠을 잘 자지 못한다면 그의 몸과 마음에 번뇌의 열기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번뇌의 열기가 일어날 것입니다. 부처님”

“왕자여, 장자의 괴롭히고 잠을 편안히 자지 못하게 하는 탐욕과 증오, 어리석음이 여래에게서 버려졌고 뿌리째 뽑혀졌고, 야자수의 그루터기처럼 다시는 자라지 못하게 되었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잘려졌습니다. 그러므로 왕자여, 나는 잠을 편안히 잡니다.”



자만심의 사라짐

앙굿따라 니까야 3부 38

비구들이여, 나는 섬세하게 [귀하게] 자랐다. 지극히 섬세하게 양육되었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귀하에 양육되었다. 내 아버지의 집에서 연못이 있었는데 하나는 푸른 연꽃이 피는 연못, 또 하나는 빨간 연꽃이 피는 연못, 그리고 하얀 연꽃이 피는 연못이 있었다.

그것들은 나의 즐거움을 우이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백단향은 까시에서 나는 것만을 사용하였고 까시에서 나는 천만으로 터번과, 자켓, 긴겉옷, 그리고 외투를 만들었다. 밤이고 낮이고 더위와 추위와 먼지와 이슬이 나에게 닿지 않도록 하dis 일산이 내 위에 받쳐졌다.

나는 세 개의 궁전이 있었다. 겨울을 위한 것, 여름을 위한 것, 그리고 우기를 위한 것이었다. 넉 달 우기 철에는 여자 악사들만의 향연을 즐기며 궁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집에서는 하인이나 노예에게 싸라기밥에 시큼한 죽을 주었지만, 내 아버지의 집에서는 하인이나 노예에게도 좋은 질의 쌀밥과 고기를 주었다.

이와 같이 극도로 섬세하게 양육되었고 이런 호화로운 삶의 나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르침을 받지 못한 범부들도 그들 자신도 늙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늙어가고 있지만, 다른 사람의  늙어 망가진 모습을 볼 때 그들 자신도 그와 같으리라는 것을 잊은 채 불쾌하고 창피하고 역겨워한다. 나 역시 늙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늙음의 대상이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의 늙어 망가진 모습을 볼 때 불쾌하고 창피하고 역겨워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적절치 못하다.’

이렇게 나 자신을 반조해 보았을 때 젊음에 대한 자만심에 사라졌다.

‘가르침을 받지 못한 범부들은 그들 자신도 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병들지만, 다른 사람의 병들어 망가진 모습을 볼 때 그들 자신도 그와 같으리라는 것을 잊은 채 불쾌하고 창피하고 역겨워 한다. 나 역시 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병듦의 대상이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의 병들어 망가진 모습을 볼 때 불쾌하고, 창피하고 역겨워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적절치 못하다.’

 이렇게 나 자신을 반조해 보았을 때 건강에 대한 자만심이 사라졌다. ‘가르침을 받지 못한 범부들은 그들 자신도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지만, 다른 사람의 죽은 모습을 볼 때 그들 자신도 그와 같으리라는 것을 잊은 채 불쾌하고 창피하고 역겨워한다. 나 역시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의 대상이다. 만일 내가 다른 사람의 죽은 모습을 볼 때 불쾌하고 창피하고 역겨워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적절치 못하다.’

이렇게 나 자신을 반조해 보았을 때 생명에 대한 자만심이 사라졌다.


연꽃이 더러움에 물들지 않듯이

앙굿따라 니까야 4부 36

부처님은 브라흐민 도나에게 말씀하셨다.

“브라흐민이여, 모든 번뇌가 네게서 버려졌소, 그것은 뿌리째 잘려졌고, 야자수의 그루터기처럼 다시는 자라지 못하게 되었고, 미래에 더 이상 다시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도록 말살되었소, 마치 푸른 연꽃, 붉은 연꽃, 희 연꽃이 물에서 생겨 자라지만, 물위로 올라와서는 물에 더럽혀지지 않고 서 있는 것처럼 여래도 이 세상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이 세상을 극복하고, 이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습니다. 브라흐민이여, 나는 붓다입니다.”


붓다, 담마, 승가로 향함

담마빠다:273, 296-298

모든 길 중에서 여덟 가지 바른 길이 가장 으뜸이고

모든 진리 중에서 네 가지 거룩한 진리가 가장 으뜸이고

모든 담마 중에서 갈애의 소멸[열반]이 가장 으뜸이고

두 발 가진 존재 중에서 부처님이 가장 으뜸이시다.(273)


고따마의 제자들은 항상 깨어 있고

밤이나 낮이나 항상 부처님께로 향하여 있다.

고따마의 제자들은 항상 깨어 있고

밤이나 낮이나 항상 담마로 향하고 있다.

고따마의 제자들은 항상 깨어 있고

밤이나 낮이나 항상 승가로 향하고 있다.(296-298)


부처님 그 분은 위대한 성자

숫따니빠따1편9: 153-180

오늘은 보름인 포살날이다. 신성한 밤이 가까워졌다. 비할 데 없는 훌륭한 스승, 고따마를 뵈러 가자(153)


그분은 자신의 생각을 잘 다스리며 이런 다스림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까지 미친다. 유쾌하거나 불쾌하거나 그는 마음을 잘 다스린다.(157)


그분은 주지 않은 것을 취하지 않으며 살아 있는 것을 해치지 않으며 게으르지 않다. 깨달은 분은 늘 명상에 든다.(157)


그분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악담하지 않으며, 이간질하지 않으며, 진실되고 유익한 말만 한다.(159)


그분은 감각적 쾌락에 집착함이 없고 아무 것에도 손상받지 않으며, 착각에서 벗어났으며, 깨달으신 분은 모든 존재에 대한 통찰력을 갖고 계시다.(161)


그분은 지혜롭고 행동은 바르고 깨끗하다. 모든 번뇌를 부숴 버리고 윤회에서 벗어났다. 성자의 마음은 훌륭한 말과 행동에 나타나 있다.(163)


저 위대한 성자를 보라, 그분은 깊은 지혜가 있고, 심오한 진리를 터득하고, 욕망을 떠나고, 세속적 쾌락에 집착치 않으며,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분이다.(176)


오늘 우리는 훌륭한 광경을 보았다. 동트는 새벽, 아름다운 태양의 솟음을 보았다. 번뇌의 물결을 건너 욕망을 온전히 깨달으신 분을 보았다.(178)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 1천 야차들은 여기 함께 모여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당신은 우리의 훌륭한 스승이십니다.(179)


우리들은 깨달으신 분과 그 분의 잘 설해진 가르침에 예경하면서 마을에서 마을로 산에서 산으로 돌아다니겠습니다.(180)


우리들은 깨달으신 분과 그 분의 잘 설해진 가르침에 예경하면서 마음에서 마을로 산에서 산으로 돌아다니겠습니다.(180)


보배의 경: 모든 존재들에게 평안이 있기를

숫따니빠따2편 1:222-238

여기 모여든 모든 존재들은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모든 존재들은 다 행복하라. 그리고 내가 하는 이 말을 잘 새겨들어라,(222)


모든 존재들이여 귀를 기울이라, 밤낮으로 그대들에게 제물을 올리는 인간들에게 자애를 베풀어 그들을 해로움으로부터 성심껏 보호하라.(223)


어떤 종류의 보배라 할지라도 이 세상 것이든 천상의 것이든 여래와 견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소중한 보배는 부처님 안에 있다. 이런 부처님의 진리에  의해 모든 존재들에게 평안이 있기를!(224)


사Ri족의 성자는 선정 삼매를 통하여 욕망의 소멸을 깨달았고 죽음이 없는 온전한 평화를 깨달았다. 이것과 견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소중한 보배는 가르침 안에 있다. 이런 부처님의 진리에 의해 모든 존재들에게 평안이 있기를!(225)


견줄 바 없는 부처님은 즉각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순수한 선정 삼매를 찬탄하셨다. 이 선정 삼매와 견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소중한 보배는 가르침 안에 있다. 이런 부처님의 진리에 의해 모든 존재들에게 평안이 있기를!(226)


선한 사람들이 칭찬하는 열반에 이르는] 여덟 가지 단계의 수행자가 있다. 그들은 부처님의 제자들로서 공양받을 만하며 그들에게 공양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많은 복덕을 가져온다. 이 소중한 보배는 승가 안에 있다. 이런 부처님의 진리에 의해 모든 존재들에게 평안이 있기를!(227)


욕망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굳건한 마음으로 고따마의 가르침에 머물게 된다. 이들은 목표를 이루고 죽음이 없는 경지에 이르러 평화를 즐긴다. 이 소중한 보배는 승가 안에 있다. 이런 부처님의 진리에 의해 모든 존재들에게 평안이 있기를!(228)


마치 단단한 기둥이 사방에서 부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듯이, 부처님의 거룩한 진리를 사무치게 보는 사람은 이와 같이 흔들림이 없다. 이 소중한 보배는 승가 안에 있다. 이런 부처님의 진리에 의해 모든 존재들에게 평안이 있기를!(229)


여름의 첫 더위에 숲의 나뭇가지마다 꽃을 피워내듯이 열반으로 인도하는 부처님의 숭고한 가르침은 가장 높은 목표를 향한 가르침이다. 이 소중한 보배는 부처님 안에 있다. 이런 부처님의 진리에 의해 모든 존재들에게 평안이 있기를!(233)


그분은 가장 훌륭한 분이며 가장 훌륭한 것을 아시며 가장 훌륭한 것을 주신다. 그분은 가장 훌륭한 가르침을 주셨다. 이 소중한 보배는 부처님 안에 있다. 이런 부처님의 진리에 의해 모든 존재들에게 평안이 있기를!(234)


묵은 업은 소멸되고 새로운 업은 짓지 않았으며 미래의 존재에 집착하지 않는다. 존재의 씨앗은 부서졌고 윤회를 원치 않으니 지혜로운 이는 꺼진 등불처럼 열반에 든다. 이 소중한 보배는 승가 안에 있다. 이런 부처님의 진리에 의해 모든 존재들에게 평안이 있기를!(235)


여기 모여든 모든 존재들은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우리 모두 부처님께 예경을 드리자, 우리 모두 가르침에 예경을 드리자, 우리 모두 승가에 예경을 드리자. 여래는 모든 신과 인간의 존경을 받으시는 분이다. 모든 존재들에게 평안이 있기를!(236-238)


날라까 경: 성자의 삶

숫따니빠따 3편11:695-723

사꺄족들은 아시따 선인의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선인은 궁성을 나와 그의 청정하고 드높은 삶의 수행터로 돌아갔다. 아시따 선인은 조카에 대한 자비심으로 가득 차서 그의 여동생의 아들인 날라까에게 이 비할 데 없는 분과 그의 가르침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695)

어느 날 선인은 조카에게 말하였다.

“얘야, 훗날 너는 붓다(깨달은 사람)에 대하여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른 길을 수행하여 온전한 깨달음을 얻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 분에게 가서 모든 가르침을 배우도록 하여라. 그리고 그 분께 출가하여 그 분을 따라서 청정한 수행을 하도록 하여라.”(696)

이와 같은 현자의 앞을 내다보는 가르침을 듣고 날라까는 여러 해 동안 바른 선행의 공덕을 쌓고, 자신을 절제하고, 깨어 있고, 감관을 절제하고, 승리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697)

어느 날 그는 승리자가 진리의 바퀴를 굴리신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시따 선인의 말씀을 딸 날라까는 훌륭한 성자를 찾아갔다. 그는 이 지혜로운 분에게 어떻게 성자가 되는지에 대하여 여쭈었다.(698)

“오래 전에 아시따 선인이 저에게 예견한 것이 진실로 드러났습니다.

고따마시여, 모든 것의 완벽함에 도달하신 분께 여쭙니다.(699)

저는 출가하여 수행자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성자시여, 저에게 성자의 최상의 삶에 대하여 가르쳐 주십시오.“(700)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성자의 최상의 삶에 관하여 말하리라. 그것은 도달하기 어렵고 성취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대에게 알려 줄 것이니 정신을 가다듬고 마음을 굳건히 하여 잘 새겨 들어라.(701)


그대는 마을에서 칭찬도 듣고 비난도 듣는다.

그러나 그대의 마음은 평정을 유지하여야 한다.

비난한다고 혼란에 빠져서도 안 되고

칭찬한다고 교만해서도 안 된다.(702)


한적한 숲에 있더라도 마치 불꽃의 혀처럼 [날름거리며]

크고 작은 감각을 유혹하는 대상들이 나타난다.

여인은 홀로 있는 성인을 유혹한다.

그러나 그대는 여인이 유혹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703)


육체적 쾌락을 버려라.

약한 것이건 강한 것이건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집착하지도 말고 싫어하지도 말라(704)


‘그들은 나와 같고 나는 그들과 같다.’고

자신을 다른 것들과 비교하여

생명 있는 것들을 죽여서는 안 되며 죽이게 해서도 안 된다.(705)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망과 탐욕에 묶여 있다.

그대는 이 욕망과 탐욕을 버리고 바른 길을 가라

그리고 그대의 통찰력으로 괴로움을 혜쳐나가라.(706)


적게 먹고, 음식을 절제하고,

적은 것에 만족하고, 욕심을 부리지 말아라.

욕망이 사라지면 평화의 고요함이 찾아온다.(707)


성자의 길을 가는 사람은 탁발을 한 후 숲에 들어가

나무 아래 앉아 명상에 전념하여야 한다.

명상 수행을 통하여 즐거움이 온다.(708-709)


마을에 탁발을 나갔을 때 후한 보시를 받았다 해서

또는 공양 초대를 받았다 해서 너무 반겨서도 안 되며,

이 집 저 집 서둘러 다녀서는 안 되며,

음식을 달라고 말을 하거나 어떤 암시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된다.(710,711)


‘그들은 보시를 하였다.’ 좋은 일이다.

‘그들은 나를 거절하였다.’ 그래도 괜찮다라고 생각하고

탁발에 대한 이런 태도를 가질 때

마음의 동요 없이 다시 나무 아래로 돌아갈 수 있다.(712)


발우를 가지고 탁발을 하는 그는 벙어리는 아니지만

마치 벙어리처럼 보일 것이다.

받은 음식이 적다고 경멸하지 않으며

주는 사람을 멸시해서는 안 된다.(713)


사문의 높고 낮은 여러 길에 대하여 나는 말하였다.

거듭 피안에 이르지 못하며

단번에 이르지도 못한다.(714)


욕망에서 벗어나고 윤회를 끊어버리고,

해야 할 선도 하지 말아야 할 약도

다 초월한 사람은 번뇌가 없다.(715)


그대에게 최상의 경지를 말하리라.

칼날처럼 날카롭게 마음을 집중하라.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배를 호흡의 일어나고 사라짐에 마음을 집중하여 자신을 다스려라.(716)


활기찬 마음을 지녀야 한다.

쓸데없이 많은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번뇌 없이 집착함이 없이

오직 청정한 삶을 궁극의 목표로 삼으라.(717)


초연하게 홀로 있음을 배우라.

홀로 있는 침묵 속에서 지혜가 나온다.

그때 홀로 있음은 기쁨이 된다.(718)


물소리를 들어보아라.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와 강물 소리를 들어보아라.

얕은 개울은 소리내며 흐르지만

깊은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720)


빈 것은 메아리가 치지만 가득 찬 것은 고요하다.

어리석은 사람은 물이 반만 찬 항아리 같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이 가득 찬 호수와 같다.(721)


사문이 적절하고 의미 있는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풍부한 지식에 입각하여 교리의 요점을 설명한다.

그가 이런 견지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많다.(722)


그러나 이런 지식이 있는 사람이 자신을 절제하여

설령 안다하더라도 많은 말을 하지 않을 때

그는 지혜를 발견한 사람이고 지혜를 성취한 사람이다.(723)


피안에 이르는 길 : 피안에 이르신 분, 붓다

숫따니빠따5편16:1131-1145

훌륭한 성자 삥기야는 브라흐민 바와리에게 가서 자신이 부처님을 뵙고 보고 들은 대로 부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에게 ‘피안에 이르는 길’을 말하겠습니다. 티 없고 지혜롭고 모든 집착을 초월한 그분은 자신이 본 것을[깨달은 것]그대로 우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지혜와 온전한 청정함과 욕망을 떠난 분이 어떻게 헛된 말씀을 하겠습니까? 티끌을 여의고 교만함과 위선을 버린 분에게 찬탄의 게송을 드리렵니다.(1131,1132)

사람들은 그분을 붓다, 깨달은 분, 어둠을 물리친 분, 통찰력을 갖춘 분, 세상을 아는 분, 윤회의 저 너머로 가신 분, 번뇌가 없는 분, 괴로움을 온전히 극복하신 분이라고 부릅니다. 브라흐민이여, 내가 따르는 분이 바로  이 분입니다. 나는 이분을 가까이 모셨습니다.(1133)


마치 새들이 작은 덤불 숲을 떠나 열매가 많은 큰 숲 속으로 날아가듯이, 나도 또한 생각이 모자라는 사람들을 떠나 마치 백조처럼 큰 호수에 이르렀습니다.(1134)


내가 고따마 존자님의 가르침을 듣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항상 말하기를, ‘예전에는 이러했고 앞으로는 이럴 것이다, 라고 하는데 이런 말들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상투적인 말뿐이었습니다. 이것들은 내생각의 혼란을 가져올 뿐이었습니다.(1135)


고따마는 어둠을 떨쳐내고 빛을 비추십니다. 고따마는 큰 지혜를 갖춘 분이며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분입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지금 여기서 즉시 알 수 있고 시간을 초월하고 어떤 해로움 없이 온전히 갈애를 부수게 합니다. 그분의 가르침과 비교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1136,1137)


“삥가야여, 그렇다면 왜 그렇게 큰 지혜를 가지신 분, 세상을 아는 분과 매 순가 매 시간 함께 있지 않습니까?”

“브라흐민이여, 큰 지혜를 가지신 분, 세상을 아는 분과 나는 한 순간이라도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1138,1140)


나는 항상 부지런히 밤이고 낮이고

그분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있습니다.

그분을 예배하면서 밤을 보냅니다.

한 순간도 그분을 떠나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1142)


믿음, 환희, 깨어 있는 마음은

고따마의 가르침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큰 지혜를 가진 분이 어디로 가시든

내 마음은 그리로 향해 있습니다.(1143)


나는 늙어 기력도 없어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이 완전히 가 있는 분께

내 마음은 그분과 일치되어 있습니다,(1144)


나는 삶의 진흙탕에서

여기저기 떠돌았습니다.

그때 나는 온전히 깨달으신 분

번뇌를 맑히고 온전히 깨달은 분을 만났습니다.”(1145)


테라가타

91빠리뿐나까 비구

백 가지 맛이 나는 훌륭한 음식도

오늘 내가 즐긴 것에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은 고따마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그의 통찰력은 무한을 꿰뚫어 본다.


287-290세나까 비구

가야의 봄 축제에 온 것은

내게는 정말 좋은 일이었다.

그때 나는 깨달으신 분께서

최상의 가르침을 설하시는 것을 보았다.

환히 빛을 발하는 무리의 스승, 최상의 경지에 이른 분

견줄 바 없는 통찰력을 갖추신 인도자.

신과 인간의 승리자, 그분을 보았다.

그분은 위대한 코끼리, 위대한 영웅,

번뇌를 여윈 위대한 광채

번뇌를 완전히 소멸하신 분

어디에도 두려움은 없다.


진정 오랜 세월 그른 길로 갔고

잘못된 견해의 사슬에 묶여 있던

나, 세나까를 부처님은 모든 속박에서 해방시켰다.


365소나 꾸띠깐나 비구

나는 구족계를 받았다.

그리고 모든 번뇌에서 벗어났다.

나는 부처님을 항상 뵐 수 있었고

부처님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부처님은 많은 밤을 노천에서 지내신 후,

주거에 익숙하신 스승은 처소에 들어오셔서,

마치 바위 동굴 속의 사자처럼

두려움과 공포를 제거한 고따마는

가사를 펴고 자리를 마련하셨다.

  

도둑과 비구

테라가타 705-724 아다뭇따 비구

[도둑이 아디뭇따 비구에게 말하기를]

“전에 우리는 재산이 탐나서 또는 희생으로 사람들을 죽였는데 그들은 두려워서 덜덜 떨었다. 그런데 당신은 두려워하지 않고 안색은 점점 더 평안해진다. 이렇게 두러운 상황에서 당신은 왜 슬퍼하지 않는가?”(705,706)

[비구가 말하기를]

“두목이여, 열망이 없는 사람에게 정신적인 고통이란 없다. 진정으로 속박을 근절해 버린 사람에게 두려움이란 없다.(707)

윤회로 이끄는 길이 근절되고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때, 마치 짐을 내려놓으면 더 이상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란 없다.(708)

청정한 삶은 성취되었고 진전되었다. 존재란 즐거워 할 것이 없음을 알았다. 그것은 마치 독을 마신 사람이 토해버리는 그런 독과 같은 것이다.(710)

저 언덕으로 간 사람은, 집착을 벗어난 사람은, 할 일을 해 마친 사람은, 번뇌에서 벗어난 사람은 목숨을 멸절을 기뻐한다. 마치 사형장에서 풀려난 사람처럼(711)

최상의 진리를 성취하고 세상에 대한 집착이 없는 사람은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마치 불타는 집에서 벗어난 사람처럼(712)

인연 따라 생겨난 것은 무엇이든지 또는 어디에 다시 태어났건 이런 모든 것들은 [변하지 않는] 자아는 없다. 이것은 위대한 선인의 말씀이다.(713)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누구나 어떤 윤회의 존재도 잡지 않는다. 마치 뜨거운 쇳덩이를 잡지 않듯이(714)

‘나는 존재해 왔다.’ 라는 생각도 없고 나는 장차 ‘존재할 것이다.’

라는 생각도 없다. 존재가 소멸할 것인데 거기에 무슨 슬픔이 있겠는가?(715)

현상의 순수하고 단순한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에게 두려움은 없다.(716)

세상을 풀이나 나무조각처럼 보는 지혜로운 사람은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없다. 그래서 그는 ‘나의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슬퍼하지 않는다,(717)

나는 이 육신에 만족하지도 않으며 사는 것도 관심도 없다. 이 몸뚱이는 결국은 부서져버릴 것이고 또 다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718)

그대가 원한다면 내 육신을 그대 마음대로 하라, 나에게 육신에 대한 증오도 사랑도 없다.”(719)

비구의 예상 밖의 마음을 흔드는 말을 듣고 도둑들은 칼을 내려놓고 젊은이는 말하였다.(720)

“존자님은 무엇을 하셨기에, 스승은 누구시기에, 누구의 가르침 때문에 슬픔이 없는 경지를 얻었습니까?”(721)

“나의 스승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꿰뚫는 승리자이시다, 큰 자비의 스승, 온 세상 사람들을 치유하는 분이시다.(722)

그분은 열반으로 이끄는 위없는 도리를 가르치셨다. 그런 그의 가르침 때문에 슬픔이 없는 경지를 성취하였다.”(723)

이와 같이 훌륭히 설해진 선인의 말씀을 듣고 그들은 모두 칼과 무기를 버리고, 어떤 사람은 도둑의 일에서 손을 떼고 어떤 사람은 출가를 선택하였다.(724)


사문을 찬탄함

테리가타 271-289 로히니 비구니

[로히니의 아버지가 말하였다.]

“너는 잠이 들 때에도 잠을 깰 때에도

사문들을 말하는구나.

사문의 칭찬을 입에 달고 있구나.

얘야, 너는 출가 수행녀가 되겠구나.(271)


너는 사문에게 많은 양의 음식과 음료를 보시한다.

이제 로히니야, 너에게 묻겠는데

어째서 그토록 사문을 좋아하는지 말해보렴.(272)


그들은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게으르고

남이 주는 것으로 살아가고,

갈망으로 가득하고 맛있는 것들을 찾는다.

그런데 너는 어째서 그토록 사문을 좋아하는냐?“(273)


[로히니가 말하였다]

“사랑하는 아버지, 당신은 오랫동안 사문에 대하여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계행과, 지혜와, 정진에 대하여 찬탄하겠습니다.(274)


그들은 일하기를 좋아하고 게으르지 않으며,

훌륭한 일을 하며 욕망과 성냄을 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문을 좋아합니다.(275)


그들은 세 가지 악의 뿌리를 남김 없이 제거하고

청정한 행을 닦아 모든 악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문을 좋아합니다.(276)


그들은 몸에 의한 행이 청정합니다.

말에 의한 행이 청정합니다.

생각에 의한 행이 청정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문을 좋아합니다.(277)


그들은 티가 없고 진주조개처럼

안과 밖이 청정하고

깨끗한 특성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문을 좋아합니다.(278)


그들은 학식이 많고 가르침을 지니고

거룩하고, 가르침대로 살아가고,

목표와 담마를 가르칩니다.

그래서 저는 사문을 좋아합니다.(279)


또한 그들은 하나로 집중된 마음으로

마음챙김에 머뭅니다.

그래서 저는 사문을 좋아합니다.(280)


그들은 먼 길을 행각하고, 마음챙김에 머물고

지혜롭고 산란하지 않으며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압니다

그래서 저는 사문을 좋아합니다.(281)


어떤 마을이든지 떠날 때는

어떤 것에라도 뒤돌아보지 않습니다.

아무 미련 없이 떠납니다.

그래서 저는 사문을 좋아합니다.(282)


그들은 재물을 창고나, 단지나, 바구니에 저장하지 않으며

완전히 조리된 음식만 탁발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문을 좋아합니다.(283)


그들은 동전이나 금과 은을 지니지 않습니다.

그날그날 탁발한 것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사문을 좋아합니다.(284)


그들은 여러 다른 가문에서, 다른 지역에서 왔지만

서로간에 친근하게 대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문을 좋아합니다.(285)


“오, 사랑하는 로히니야, 너는 정말로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서 이 집에 태어났구나.

너는 부처님과 가르침에 신뢰심이 있고

승가에 참으로 깊이 존경하는구나,”(286)


“아버지, 괴로움이 두렵고 달갑지 않으신다면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하십시오,

그리고 계행을 지키십시오,

그것이 아버지를 행복으로 이끌 것입니다.”(288)


“나도 그처럼 훌륭하신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하겠다. 그리고 계행을 지키겠다. 그것은 나의 행복으로 이끌 것이다.”(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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