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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3편 부처님의 가르침-제4장 수행의 가르침

작성자천장암|작성시간12.01.13|조회수56 목록 댓글 0

제 4장 수행의 가르침


담마바다

그는 나를 욕하고 때렸다.

그는 나를 이기고 내 것을 빼앗았다.

이런 생각릉 품는 사람에게

원한은 가셔지지 않는다.(3)


그는 나를 욕하고 때렸다.

그는 나를 이기고 내 것을 빼앗았다.

이런 생각을 품지 않을 때

마침내 원한은 가셔진다.(4)


원한을 원한으로 갚을 때

원한은 결코 가셔지지 않는다.

원한은 자애에 의해서만 가셔진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이다.(5)


기분 좋은 대상에서 쾌락을 구하고

감각기관을 절제하지 않고

무절제하게 먹고, 게으르고, 열성도 없는 사람은

바람이 연약한 나무를 넘어뜨리듯

악마가 쉽게 그를 넘어뜨린다.(7)


번뇌의 더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고

진실되지 못하면서 가사를 입는다면

그는 가사 입을 자격이 없다.(9)


모든 번뇌의 더러움을 쓸어버리고

계행이 확고하고 자신을 절제하고

진실한 사람이라면

그는 가사 입을 자격이 있다.(10)


모든 번뇌의 더러움을 쓸어버리고

계행이 확고하고 자신을 절제하고

진실한 사람이라면

그는 가서 입을 자격이 있다.(10)


진실 아닌 것을 진실이라고 하고

진실을 진실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그런 잘못된 견해 때문에

결코 진실에 도달하지 못한다.(11)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 아니라고 하고

진실을 진실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런 바른 견해로 인하여

진실에 도달한다.(12)


허술하게 이른 지붕에 비가 새듯이

수행하지 않은 마음에는 욕망이 스며든다.

잘 이른 지붕에 비가 새지 않듯이

수행이 잘 된 마음에는 욕망이 스며들지 않는다.(13.14)


경전을 아무리 많이 외울지라도

그 가르침대로 행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은

남의 소만 세고 있는 목동과 같아

깨달음의 대열에 들어갈 수 없다.(19)


경전을 조금밖에 외우지 못하더라도

그 가르침대로 행하는 사람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번뇌에서 벗어나 현세와 내세의 집착을 끊어

깨달음의 대열에 들어간다.(20)


지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바르지 않게 백 년을 사는 것보다

바르게 깨어있는 마음으로

하루를 사는 것이 더 낫다.(110)


선을 서둘러 행하고

악에서 마음을 멀리하라.

선을 행하는데 느슨할 때

그 마음은 벌써 악을 즐기고 있다.(116)


악을 저질렀다면

다시는 그것을 되풀이하지 말라.

악의 누적은 괴로움을 가져 올 뿐이니

악 속에서 즐거워하지 말라(117)


선행을 하였다면 계속해서 그렇게 하라

선을 하겠다는 열망을 일으키라.

행복은 선의 누적의 결과이다.(118)


먼저 바른 행동으로 자신을 세운 후 다른 사람을 기르치라.

이런 지혜로운 이는 비난으로 괴로워하지 않는다.(158)


자기 자신은 진정 자기의 주인이다.

어떤 주인이 따로 있겠는가.

자기 자신을 잘 다루는 사람은

얻기 어려운 의지처를 얻는다.(160)


금화가 소나기처럼 쏟아져도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다.

감각적 쾌락은 짧은 달콤함에 많은 고통이 따른다.(186)


이것을 아는 지혜로운 이는

천상의 쾌락조차 즐거워하지 않는다.

온전히 깨달은 분의 제자는

갈애의 소멸을 기뻐한다.(187)


배고픔은 가장 큰 병이며

이 몸은 가장 큰 괴로움이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알 때

최상의 행복, 열반에 이른다.(203)


건강은 가장 큰 이익이며

만족은 가장 큰 재산이다.

신뢰는 가장 친한 친척이며

열반은 최상의 행복이다.(204)


어리석은 이와 함께 길을 가는 사람은

오랜 세월 괴로움이 따른다.

어리석은 이를 가까이 하는 것은

원수를 가까이 하는 것처럼 괴롭다

지혜로운 이를 가까이 하는 것은

친척의 모임처럼 행복하다.(207)


그러므로 마치 달이별의 궤도를 따르듯

지성을 갖추고, 지혜롭고, 두루 배우고, 성실하고, 훌륭한

지혜와 덕성을 갖춘 이와 가까이 하라.(208)


좋아하는 사람도 두지 말라.

싫어하는 사람도 두지 말라.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지 못함도 괴로움이요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도 또한 괴로움이다.(210)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은 괴로움이므로

사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사랑도 미움도 사람은 걸릴 것이 없다.(211)


사랑에서 슬픔이 생기고

사랑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사랑에서 온전히 벗어난 사람은

슬픔이 없는데 어찌 두려움이 있으랴.(212)


사랑에서 슬픔이 생기고

사랑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사랑에서 온전히 벗어난 사람은

슬픔이 없는데 어찌 두려움이 있으랴.(212)


숙련된 마무가 달리는 마차를 고삐로 제어하듯

성내는 마음을 자제할 줄 아는 사람은

나는 진짜 마무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은 다만 고삐만 잡고 있다.(222)


사람들은 말없이 조용히 앉아있어도 비난한다.

너무 말이 말해도 비난한다.

말을 조금해도 역시 비난한다. 오 아뚤라여.

이것은 지금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고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다.

이 세상에서 비난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227)

비난만을 받는 사람도 없으며, 칭찬만 받는 사람도 없다.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228)


독경하지 않으면 경전이 녹슬고,

계속적인 손질이 없으면 집이 녹슬고

게으르면 아름다움이 녹슬고

태만하면 깨어있는 마음이 녹슨다.(241)


남의 잘못은 보기 쉬워도 자기 잘못은 보기 어렵다.

다른 사람의 잘못은 겨를 까부르듯이 홑어버리고

자신의 잘못은 능란한 들새 사냥꾼이

변장하여 자신을 숨기듯, 그렇게 숨긴다.(252)


전쟁터에서 코끼리가 화살을 맞고도 견디는 것처럼

나도 온갖 욕설을 견디리라.

참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련되지 않았다.

욕설을 참아내는 데 잘 단련된 사람은

사람 가운데 으뜸이다.(320 321)


행동이 바르고, 지혜롭고, 그대에게 적합한

분별있는 친구를 만났거든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기쁘게 깨어있는 마음으로 그와 함께 가라.(328)


행동이 바르고, 지혜롭고, 그대에게 적합한

분별 있는 친구를 만나지 못하였다면

정복한 나라를 버리고 떠나는 왕처럼

숲에 사는 코끼리처럼 그렇게 혼자서 가라.(329)


눈을 절제함은 훌륭하며, 귀를 절제함은 훌륭하며,

코를 절제함은 훌륭하며, 혀를 절제함은 훌륭하며,

행위를 절제함은 훌륭하며, 말을 절제함은 훌륭하며,

마음을 절제함은 훌륭하며, 모든 것을 절제함은 훌륭하다.

모든 것을 절제하는 수행자는 슬픔에서 벗어난다.(360,361)


감각기관을 절제하고, 만족할 줄 알고, 계율에 따라 절제하고,

청정한 삶을 사는 훌륭하고 열성적인 친구와 가까이 하는 것이

지혜로운 수행자가 처음을 해야 할 일이다.(375)


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따니빠따 1편 3: 35-75

살아있는 것들을 해치지 말며

그들 중 어느 것도 해치지 말며, 자녀나 친구도 갈망하지 말며 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35)


교제를 하면 집착이 생기며 집착이 생기면 괴로움이 따른다. 집착의 결과를 관찰하고 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36)


친구에게 정을 쏟으면 마음이 얽매여 유익함을 잃는다. 친밀함의 이와 같은 두려움을 보고 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37)

아내나 자식에 집착하는 것은 마치 무성한 대나무가 엉킨 것과 같다.

새로 돋은 죽순이 엉켜있지 않듯이 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38)


속박 없는 숲 속의 사슴이 한가로이 거닐고 풀을 뜯는 것처럼, 지혜로운 이는 홀로 있는 자유를 찾아 욍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39)

집에 있을 때, 길을 갈 때, 행각할 때 동료들과 함께 있으면 요구사항이 많다. 아무도 탐내지 않는 자유를 찾아 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40)


동료들과 함께 있으면 환락이 있고 자녀들이 있으면 많은 기쁨이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이 싫다면 오이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41)


동서남북 어디에고 미워함 없이 친절하고 얻은 것이 많거나 적거나 만족하고, 두려움 없이 모든 위험을 극복하고 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42)


바르고 지헤롭고 성숙한 친구를 만난다면, 모든 위험을 이겨내고 마음챙김을 가지고 그와 함께 가라.(45)

바르고 지혜롭고 성숙한 친구랄 만나지 못하였다면, 정복한 나라를 버리고 떠나는 왕처럼 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46)


친구를 얻음은 찬탄할 일이다. 자기보다 훌륭하거나 동등한 사람과 친해야 한다. 이런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허물 없이 살며 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47)

감각적 쾌락은 우아하고 달콤하고 매력적이고, 여러 가지 형태로 마음을 매혹한다. 감각적 가닥(대상)들의 해로움을 보고 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50)


해악을 가져오고 잘못된 견해에 빠져있는 악한 친구를 멀리하라.

부주의하고 무책임한 사람을 멀리하고 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57)

두루 배우고 가르침을 알아 거기에 머무는 지혜로운 친구와 가까이 하라. 사물의 이치를 알아 의심을 제거하고 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58)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더러운 물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71)


그대를 해탈로 이끄는 자애, 기쁨, 평정을 때맞추어 닦으며, 세상의 방해 없이 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73)

욕망, 증오, 어리석음을 버리고 모든 속박을 부수어 버리고, 죽음에 당명해도 용감히 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74)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우정을 갖고 사귄다.

사욕을 떠난 친구는 보기 드물다.

그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재빠르고 비열하다.

그러니 외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75)


파멸의 원인

숫따니빠따 1편 6:91-108

고다마께 여쭙니다. 무엇이 파멸의 원입니까?(91)

진리의 가르침을 사랑하는 사람은 발전하고,

진리의 가르침을 싢어하는 사람은 파멸한다.(92)

사악한 사람을 좋아하고 훌륭한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으며,

사악한 사람의 교리를 좋아하면 이것이 파멸의 원인이다.(94)

항상 졸거나 잠자는 것을 좋아하고, 서로 어울려 수다스럽고,

축 늘어져서 게으르고, 성을 잘 낸다면 이것이 파멸의 원인이다.(96)

자기는 부유하게 살면서도 나이 들어 노쇠한 부모님을 돌보지 않는다면, 이것이 파멸의 원인이다.(98)

브라흐민이나, 사문, 또는 다른 수행자를 거짓말로 속인다면, 이것이 파멸의 원인이다.(100)

많은 재물과 돈을 가진 부유한 사람이 이런 좋은 것들을 단지 자신만을 위해 쓴다면, 이것이 파멸의 원인이다.(102)

출생, 재산, 문중에 대한 자만심을 가지고 일가친척과 친한 친구를 멸시한다면, 이것이 파명의 원인이다.(104)

여자, 술, 그리고 도박에 빠져 버는 것을 다 탕진해 버린다면, 이것이 파멸의 원인이다.(106)

자기 아내로 만족하지 않고 창녀와 놀아나고 남의 아내와 희롱한다면, 이것이 파멸의 원인이다.(108)


으뜸가는 재산

숫따니빠따 1편10: 181 182

이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재산은 무엇입니까?

행복으로 이끄는 훌륭한 수행은 무엇입니까?

맛중에 최상의 맛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사는 것을 가장 훌륭하게 산다고 말합니까?


가장 으뜸가는 재산은 신뢰하며

행복으로 이끄는 훌륭한 수행은 가르침의 실천이며,

맛중에 최상의 맛은 진리이며

지혜롭게 사는 것이 가장 훌륭한 삶이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친구

숫따니빠따2편 3:253-255

‘나는 너의 친구다.’ 라고 하면서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고,

친구를 멸시하고 부끄럼 없이 행동한다면, 그는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친구에게 기분 좋은 말한 하고 말처럼 행동하지 않는 친구는,

‘행이 없는 말만 앞선 친구’라고 지혜로운 이는 알고 있다.


장차 서로 간의 불화가 생길까 노심초사하고,

그러면서 친구의 결점만 들추어내는 그런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그러나 아버지 품에 이는 아들처럼 편안하고,

다른 사람이 사이를 갈라놓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진정한 친구다.


바른 수행자의 삶

숫따니빠따 2편 13-359-368

“강을 건너 저 언덕에 이르고 열반을 성취하고 흔들림이 없는 큰 지혜의 성인께 여쭙니다. 비구가 출가하여 감각적 욕망을 버린 후에 어떻게 해야 바름 수행자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359)

부처님께 말씀하셨다.

“해몽이나 관상, 예언과 같은 점치는 일을 버리고 길흉화복의 운세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그는 바른 수행자의 삶을 살 것이다.(360)

가르침을 이해하고 윤회에서 벗어나 천상계나 인간계의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벗어버린다면 그는 바른 수행자의 삶을 살 것이다.(362)

유쾌하고 불쾌한 것을 버리고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다면 그는 바른 수행자의 삶을 살 것이다.(363)

‘사람들의 나를 존경한다.’고 생각하여 우쭐거리지 않고 욕한다하여 악의를 품지 않고 음식을 얻었다하여 교만하지 않는다면 그는 바른 수행자의 삶을 살 것이다.(366)

수행자가 출가하여 자기 분수를 알고 아무것도 해치지 않고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깨닫는다면 그는 바른 수행자의 삶을 살 것이다.”(368)


교리나 신조에 꼭 잡혀 있는 사람은

숫따빠따 4편 5  796,802

어떤 교리나 신조에 꼭 붙잡혀 있는 사람은 그것만이 이 세상에서 최고하고 주장하면서 말하기를 “이것만이 가장 훌륭하다”고 하며 다른 견해들은 열등한 것이라고 헐뜯는다. 그 결과 그런 사람은 논쟁을 뛰어넘어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796)


자신이 본 것, 들은 것, 인식한 것, 계율, 예식 등에 개인적인 이득이 있다고 보면 그것들에 열정적으로 집착하여 다른 것들은 열등하다고 여긴다.(797)


자기와 관계 있는 어떤 것에 집착하여 다른 모든 것들은 열등하다고 보는 사람은, 속박에 갇혀 있는 사람이라고 진리에 통달한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자기가 본 것, 들은 것, 인식한 것, 계율, 예식 등에 무조건 신뢰하여 그것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798)


수련된 사람은 자기의 지식이나 계율 또는 예식 등에 의존하여 독단적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남과 비교하여 ‘뛰어나다. 또는 못난이다. 또는 피장파장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799)


성자는 “나”에 대한 개념을 버려 모든 집착에서 떠나 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에도 의족하지 않는다. 논쟁하는 사람들 가운데 있으면서도 어느 한쪽 따르지 않는다. 그에게는 독단적 견해가 없다.(800)


성자는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이거 아니면 안된다는 극단적 견해가 없다. 그에게는 어떤 교의나 신조가 주는 위인이 더 이상 필요 없으며 교의나 신조가 그를 사로잡지 않는다.(801)


성자는 보고, 듣고, 느낀 것에 의한 티끌만한 편견도 갖고 있지 않다. 이와 같은 독단적인 어떤 견해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청정한 분을 어떻게 생각으로 규정지어 말할 수 있겠는가?(802)


모든 것은 죽은 후 남겨질 뿐

숫따니빠따 4편 6: 804-812


참으로 인생은 짧구나!

백년도 못되어 죽다니,

조금 더 오래 산다한들

늙어 죽기는 마찬가지(804)


사람들은‘나의 것’이라는 집착 때문에 슬퍼한다. 그러나 집착할 영원한 것은 없다. 이 이치를 안아면, 집착의 삶에서 벗어나 수행자의 길을 가라.(805)


‘이것은 내 것이야!’라고 하며 집착하는 것, 그것들은 죽은 후에 뒤에 남겨질 뿐, 바른 길을 가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내 것이라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806)


잠을 깬 사람이 꿈속에서 본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듯이, 사랑하는 사람도 죽으면 다시는 볼 수 없다. ‘아무개’하면 그를 직접 볼 수 있었고 목소리 들을 수 있었지만, 그러나 죽고 나면 그의 이름만이 남겨질 뿐이다.(807-808)

내것에 집착하는 탐심이 많은 사람은 슬픔과 한탄과 인색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자들은 안온을 보기 때문에 소유를 버리고 유행한다.(809)


집착을 떠난 성자는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좋아하지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마치 연꽃잎에 물방울이 묻지 않고 구르듯이 슬픔과 인색함도 그를 더럽힐 수 없다.


마치 연꽃잎에 물방울이 묻지 않고 구르듯이 또는 마치 연꽃이 더러운 물에 더럽혀지지 않듯이 성자는 그가 보고, 듣고, 인식한 어떤 것에도 더럽혀지지 않는다.(812)


완전한 경지에 이른 사람 :  평화로운 성자

숫따니빠따 4편 10: 848-857

“어떻게[사물을]보고 어떻게 행동하면 ‘성자’라고 불립니까?

고따마 존자님께 간청하오니 완전한 경지에 이른 사람이 대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848)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죽음이 오기 전에 모든 것을 쉬어 고요하고 갈애를 소멸한 사람은 과거에도 집착하지 않고, 미래에 어떻게 될 것인지도 걱정하지 않고, 현재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사람은 좋고 싫고를 떠났다.(849)


그는 성내지 않고, 두려움이 없고, 교만하지 않고, 한탄하지 않는다. 성자는 그의 말을 정제한다.

그는 오지 않는 미래를 열망하지도 않고, 지나간 과거를 슬퍼하지도 않는다. 어떤 견해나 사상에 좌우되지 않고, 감각적 느낌에 묶여 있는 세상에서 멀리 떠나 있다.(851)


그는 모든 것에 초연하고, 속이지 않고, 인생하지 않고 탐욕스럽지 않고, 오만하지 않고, 불쾌감을 주지 않고, 불화를 일으키는 말을 하지 않는다.(852)


그는 쾌락에 빠지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온화하고, 총명하고, 맹목적으로 무조건 믿지 않고, 어떤 것에도 싫어함을 보이지 않는다(853)


그는 이익을 바라고 일하지 않기 때문에 얻은 것이 없더라도 평정을 잃지 않는다. 갈애로 인하여 방해받지 않으며 맛있는 음식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다.(854)


그는 마음 챙김으로 항상 평정의 마음을 유지한다. 자기가 남보다 잘났다거나 못났다거나 동등하다거나 하는 비교를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교만의 부풀음이 없다.(855)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그가 의존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에게는 존재에 대한 갈애도 비존재에 대한 갈애도 더 이상 없다.(856)


나는 그를 ‘평화의 성자’라고 부르겠다. 그는 감각적 욕망에서 이미 떠났다. 그를 얽어매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는 집착을 뛰어 넘었다.”(856)


나는 그를 ‘평화의 성자’라고 부르겠다. 그는 감각적 욕망에서 이미 떠났다. 그를 얽어매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는 집착을 뛰어 넘었다.”(857)


과거 현재 미래에 집착하지 말라

숫따니빠따 4편 15

지나간 것의 환상에 사로잡혀 아쉬워하지 말며,

새로운 것에 만족하여 안주하지 말며,

사라져 가는 것들을 슬퍼하지 말며,

욕망이 이끄는 대로 끌려다니지 말라.(944)


과거를 불살라 버리고

미래도 한쪽 옆으로 치워놓고

현재에도 집착으로 움켜쥐지 않으면

평화로운 평온한 길을 유행하리라.(949)


내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은

없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으며

잃음으로 괴로워 할 일이 없다.(950)


괴로움은 어디서 옵니까?

숫따니빠따 5편 4: 1049-1058

브라흐민 학인 멧따구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존자님께 여쭙니다. 존자님은 지혜를 통달하고 마음을 완전히 맑히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이 세상의 갖가지 괴로움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1049)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멧따구여, 그대는 괴로움이 어디서 오는지를 물었다. 나 자신이 찾아낸 진리의 길을 그대에게 말하리라. 모든 종류의 괴로움은 근본적인 집착에서 온다 이런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집착을 하게 되고 어리석은 자는 계속해서 괴로움을 겪에 된다. 그러므로 괴로움이 어디서 일어나는지 보는 사람은 집착을 해서는 안 된다.”(1050, 1051)


“존자님은 분명한 대답을 주셨습니다. 존자님께 여쭙니다. 저에게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지혜로운 사람은 피안에 이릅니까? 어떻게 그들은 태어남과 늙음과 슬픔을 초월할 수 있습니까? 이것을 설명해 주십시오, 성자여, 그대의 견해는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멧따구여, 전해들은 이야기가 아닌 [내가 깨달은]진리를 그대에게 말하리라. 이 진리를 깨닫고 마음챙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세상의 속박을 뛰어 넘을 것이다.”(1053)


“이 비할 데 없는 진리의 말씀은, 성자여, 저를 기쁘게 합니다. 마음챙김을 가지고 이 진리에 따라 살아 세상의 속박을 초월하겠습니다.”(1054)


“멧따구여, 천지사방 어느 곳에서든 그대가 인식하는 어느 것에라도 집착하지 말라. 오고 가는 무상한 것들과 존재하는 것들에 그대의 의식을 머물러 의지 하지 말라. 이와 같이 마음챙김으로 방심치 않는 수행자는 ‘나의 것’이라는 집착의 개념을 버린다. 그는 태어남과 늙음과 슬픔을 버리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1055, 1056)


“성자 고따마의 훌륭한 지혜의 말씀으로 저는 무척 기쁩니다. 존자님의 ‘집착을 하지 말라’ 는 말씀은 더 없이 훌륭합니다. 존자님은 진정으로 괴로움에서 벗어난 분이며 그대의 모든 견해는 분명합니다.(1057)


지혜로운 존자님의 가르침을 항상 듣는 사람들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저의 존경의 표시로 존자님께 예를 올리겠습니다. 위대한 분이시여, 청하옵건대 부디 자주 저에게 가르침을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1058)


저를 의혹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숫따니빠따 5편 1063-1064

브라흐민 학인 도따까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모든 것을 통찰하시는 부처님, 부디 저를 온갖 의혹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도따까여, 나는 어떤 누구라도 의혹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대가 으뜸가는 가르침을 이해한다면, 그때 그대 스스로 의혹의 강을 건너 의혹을 벗어나리라.”


테라가타

테라가타 17  다사까 비구

게으르고, 많이 먹고, 잠자고, 빈둥거리는 이는 먹이를 먹고 살찐 커다란 돼지와 같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은 거듭 태에 들어간다.


테라가타 75 수다라다 비구

정 교정된 성품이 좋은 이들을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의혹은 끊어지고 지혜는 증대한다.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을 가까이 함은 좋은 일이다.


테라가타 191 키따까 비구

누구의 마음이 바위처럼 굳건히 서 있어 흔들리지 않으며,

욕망의 집착에서 벗어나고 흔들이는 세상 가운데 흔들리지 않을까?

그의 마음의 이렇게 잘 수련되어 있는 사람에게

어디에서 괴로움이 올 것인가?



수행하는 마음 자세

테라가타 494-500 마하깟짜야나 비구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일을 벌리지 말라.

사람들과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말라.

수행할 때 너무 조바심 내서 애쓰지 말라.

탐심이 많고 맛에 탐착하면

행복을 가져오는 목표를 잃어버린다.(494)


다른 사람의 말에 따라 내가 도독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따라 내가 성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이 자기를 잘 알고 있듯이

신들도 우리 자신을 잘 알고 있다.(497)


사람들은 그들이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사실을 인식한다면 싸움은 없을 것이다.(498)

지혜로운 사람은 재산을 잃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지혜가 없으면 부유하더라도 살아가기 힘들다.(499)


귀는 모든 것을 듣고 눈은 모든 것을 본다.

지혜로운 사람은 듣는 것 보는 것을 절제해야 한다.(500)


수행자의 마음 가짐

테라가타 581-583 우빠세나 비구

성자는 구하는 바 없이 만족하며,

누구든 너무 가까이 하지 않는다.(581)


자신을 드러낼 때는 마치 둔하고 멍청이처럼 처신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대중 가운데 있을 때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해서는 안 된다.(582)


누구를 멸시한다든지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수행 규칙에 따라 절제하며 막는데 적당한 양을 알아야 한다.(583)


훌륭한 사람과 사귀는 것은 행운이다.

테라가타 1018-1026 아난다 비구

총명한 사람은, 악한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아야 하며

화 잘 내는 사람, 이기심 많은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아야 하며

다른 사람이 못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친구로 삼지 말아야 한다.

 이런 나쁜 사람과 사귀는 것은 불행이다.(1018)


총명한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을 친구로 삼아야 하며

유쾌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 두루 많이 배운 사람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 이런 훌륭한 사람과 사귀는 것은 행운이다.(1019)


배움이 적은 사람은 소처럼 늙어간다.

육시은 커지지만 지혜는 커지지 않는다.(1025)

두루 많이 배운 사람이 배움이 적은 사람을 멸시하는 것은

장님이 등불을 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많이 배운 것이 쓸모가 없다.(1026)


나는 자유!

테라가타 11  뭇따 비구니

오! 자유! 정말로 나는 완전히 벗어났다.

세 가지 굽은 것들에서 벗어났다.

절구, 절구공이, 그리고

마음이 삐뚤어진 남편으로부터 벗어났다.

나는 생사에서 벗어났다.

윤회로 이끄는 것은 뿌리째 뽑혔다.


바라는 바가 없다.

테리가타 31.32 밋따 비구니

신으로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나는 제8일, 14일, 보름, 그리고 특별한 날에

여덟 가지 계율을 지키고 포살에 참여하였다.


지금은 [출가하여 ]삭발을 하고

가사를 입고 하루 한 끼만 먹지만

내 마음에서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에

신으로 태어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갈애를 끊어 버림

테리가타 39-41 다른 사마 비구니

출가한 지 25년 흘렀다.

그러나 나는 아직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하였다.(39)


마음의 평화, 마음을 다스림,

오랜 세월 찾아 헤맸으나 얻을 수 없었다.

그때 언뜻 승리자[부처님]의 말씀

떠올리고는 전율하였다.(40)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정적으로 분투노력하였다.

그리고 갈애를 부수어 버렸다.

부처님 가르침이 성취되었다.

오늘은 갈애를 끊은 지 7일 째 날.(41)


무상의 경지에 도달함

테리가타 45-47  다른 웃따마 비구니

열반을 얻는 길인 ‘깨달음일 일곱 가지 요소’를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나는 발전시키고 연마하였다.(45)


내가 그토록 열망한

비어있음의 경지에 도달하였다.

나는 부처님의 진정한 딸이며

평화 속에서 항상 기쁘게 산다.(46)


신과 인간 세상에 대한 욕망을 완전히 끊었다.

나는 생사윤회에서 벗어났다.(47)


불을 섬기던 여인

테리가타 87-91  난듯따라 비구니

나는 불을 섬기고 달과 태양과 신들을 섬겨왔다.

목욕 예식을 하여 물에 잠기곤 하였다.

많은 서약을 지키고 머리를 절반 삭발하고

땅 위에서 자고 해진 후에는 먹지 않았다.(88)


그 전에는 화장을 하고 보석을 장식하고 향수를 뿌리고 하여

감각적 쾌락에 집착하여 육신을 치장하였다.(89)

이제 나는 바른 신심을 가지고 출가하여

무상한 이 몸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욕망을 뿌리째 뽑아버렸다.(90)


윤회는 끊어지고 모든 욕구와 열망은 가버렸다.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내 마음엔 오직 평화뿐이다.(91)


신심으로 출가하였으나

테리가타 92-96  밋따깔리 비구니

대단한 신심을 가지고  출가를 하였지만

나는 아직 칭찬을 바라는 마음과

소유욕에 대한 욕심으로 이리 저리 행각하였다.(92)


나는 내가 가야할 길을 잃어버렸다.

번뇌와 욕망에 사로잡혀

수행자 삶의 진정한 목표를 망각하였다.(93)


그때 내 작은 방에 앉아 있을 때

고뇌가 나를 엄습하였다.

“나는 잘못된 길을 헤매고 있잖아!

갈애의 손아귀에 끌려 빗나갔구나!(94)


남은 삶은 짧아! 늙음과 병마가 인생을 부수고 있구나.

이 몸이 부서지기 전에 게으름 떨 시간이 없지!”(95)

나는 몸과 마음을 구성하는 다섯 무더기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온전히 해탈하여 우뚝섰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마침내 성취되었다.(96)


비구니들의 깨달음

테라가타 117- 121 빠따짜라 장로 비구니

[빠따짜라 장로 비구니가 30명의 비구니에게 가르침]

젊은이들은 절구공이로 곡식을 찧는다.

젊은이들은 아내와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재물을 모은다.(117)


비구들이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라.

그러면 결코 후회하는 일은 없으리라.

민첩하게 발을 씻고 한쪽에 앉으라.

마음의 평화를 얻도록 전념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라.(118)


빠따짜라 장로 비구니의 가르침을 듣고

비구니들은 발을 씻고 한쪽에 앉아

마음의 평화를 얻도록 전념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였다.(119)

마침내 그들은 어리석음의 어둠을 깨고

깨달음을 성취하였다.(120)


그들은 일어서서 환희에 차서

빠따짜라 장로 비구니의 발에 절하면서 말하였다.

“당신의 가르침을 성취하였습니다.

인드라 신을 30명의 천신이 공경하듯

그렇게 당신을 공경하겠습니다.

저희들의 마음에는 어떤 집착도 남아있지 않습니다.”(121)


죽은 내아들은 어디로 갔나

테리가타 127-132  빠따짜라 장로 비구니

[아들을 잃고 슬픔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연인들이 빠따짜라 장로 비구니를 찾아와 슬픈 이유를 말하였다.

이에 빠따짜라 장로 비구니는 이렇게 그들의 슬픔을 제거하였다.

그대는 ‘내 아들아!’하면서 울부짖는다.

그러나 그대는 그 아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 오고 간 길을 알지 못한다.(127)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와 똑같다.

아이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다면 슬픔은 사라질 것이다.(128)


아이는 청하지도 않았는데 왔고 허락도 없이 떠났다.

그는 어딘가로부터 와서

잠깐 동안 머물렀을 뿐이다.(129)


그는 하나의 길을 따라 왔다가 다른 길로 떠나갔다.

그는 인간으로 죽어 윤회의 길을 갈 것이다.

그는 이렇게 왔고 이렇게 갔는데 울 일이 있겠느냐?(130)


당신은 내 가슴 속에 숨겨져 있던 내 아들에 대한

슬픔의 화살을 뽑아 주셨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밀러 내버렸고 슬픔은 가버렸습니다.(131)


오늘 나는 화살을 뽑아냈고 나의 갈증은 고요해져

온전히 평온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승가에 귀의합니다.(132)


육신이 내게는 괴로움이다.

테리가타139-144 케마 비구니


[악마가 유혹하며 말하였다.]

자 케마여! 당신은 젊고 아름답습니다. 나 또한 그렇습니다.

다섯 가지 악기를 연주하며 우리 서로 즐깁시다.(139)


[케마 비구니가 말하였다.]

더럽고 병들고 무너지는 이 육신은 나를 괴롭힌다.

나는 이 육신에 협오감을 느낀다.

육체적 쾌락의 갈애는 내게서 뿌리째 뽑혔다.(140)


육체적 쾌락은 창이나 칼과 같아서

육신을 구성하는 요소를 난도질한다.

그대가 말하는 즐거움은 내게는 즐거움이 아니다.(141)


쾌락의 즐거움은 부서지고

무명의 암흑은 파괴되었다.

악마여, 그대는 파멸되었다.(142)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하늘의 별자리를 숭배하고 불은 섬기며

그것을 청청하다고 생각한다.(143)


그러나 나는 모든 것 중에 으뜸이신

깨달으신 분을 공경한다.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나는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144)


재식을 버리고 출가하다.

테라가타 151-156 아노빠마 비구니

나는 상당한 재산과 부를 가진 지체 높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름다운 용모의 나는 금융업자 맛자의 딸이었다.(151)


왕자들도 나와 사귀기를 열망하였고

부잣집 자제들도 나를 갈망하였다.

한 사람은 아버지에게 사람을 보내 말하였다.

“아노빠마를 주십시오. 그러면 그녀 몸무게의 여덟 배의 금과 보석을 드리겠습니다.”(152,153)


그런데 나는 세상에서 으뜸이며 능가할 자 없는

온전히 깨달으신 분을 뵙고

그분의 발에 절을 하고 한쪽에 앉았다.(154)


부처님은 자비심으로 가르침을 설해 주셨다.

그 자리에서 나는 제 제3과위를 얻었다.(155)

그리고 머리를 삭발하고 출가하였다.

오늘이 갈애를 소멸한지 7일째 되는 밤이다.(156)



부처님의 양모의 게송

테리가타157-162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비구니


깨달은 분, 영웅, 존재하는 모든 것 중 으뜸이시고

나와 많은 다른 이의 고통을 소멸해 주신

부처님께 경배합니다.(157)


괴로움이 어떻게 오는지 알았고

그 원인인 갈애를 소멸하였네.

여덟 가지 바른 길을 수행하여

모든 것이 소멸된 경지에 도달하였네.(158)


전생에 나는 어머니, 아들, 아버지, 형제, 할머니였다.

진리의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윤회의 굴레에서 여러 모습으로 태어났지(159)


그러나 나는 부처님을 뵙게 되었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탄생이다.

더 이상 윤회는 없다.(160)


모두 함께 모인 제자들을 보라.

그들의 굳건한 힘, 그들의 성실한 노력,

이것이 모든 부처님께 대한 예경이다.(161)


마야왕비는 모든 이들의

이익을 위해 고따마를 낳았다.

마야왕비는 질병과 죽음의 수렁에 빠진 이들의

고통의 덩어리를 저 멀리 쫓아 버렸다.


욕정의 허망함을 가르침

테리가타 366-399 수바 비구니

아름다운 지와까의 망고 숲을 비구니 수바가 걸어가고 있는데

한 남자가 길을 가로막았다. 수바 비구니가 말하였다.


[수바 비구니]

“그대는 왜 길을 막고 있습니까? 내가 잘못이라도 했습니까? 출가비구니에게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나의 스승께서는 계율을 정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존중하고 따릅니다. 나는 티없는 청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대는 왜 길을 막고 있습니까? 그대는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고 욕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평온합니다. 욕망은 모두 가버렸습니다. 그대는 왜 길을 막고 있습니까?”


[남자]

“당신은 젊고 아름답고 청순합니다. 청정한 삶에서 무엇을 구합니까? 가사를 벗어 던지고 자! 어서 꽃이 만발한 이 숲에서 즐깁시다.

숲에 혼자 들어가서 무슨 즐거움이 있습니까? 맹수들이 출몰하는 인적이 없는 두려운 숲에 당신은 동행 없이 혼자 들어가려는 것입니까? 금빛 인형처럼, 천상 정원의 여신처럼 당신은 걷고 있습니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까시산의 옷을 입으면서 당신은 더욱 빛날 것입니다. 오! 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여, 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대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소. 하녀의 시중을 받으며 궁전에 삽시다. 온갖 금은보석으로 당신을 입혀드리겠소.“


[수바 비구니]

“결국은 부서질 이 육신은 시체로 가득한 무덤의 묘자리만 하나 더 늘려주겠지요, 그런데 그대는 이런 육신에서 무슨 가치를 보았기에 나를 그렇게 쳐다보는 것입니까?

그대는 정신이 돌았습니다.”


[남자]

“그대의 눈은 어린 사슴과 같고 산 속의 요정과 같소, 당신의 눈을 보면 나의 감각적 쾌락은 더욱더 솟아납니다. 티 없는 금빛 얼굴 위에 당신의 눈은 연꽃 봉우리같이 청초하고 빛납니다. 그대가 설령 멀리 있다하더라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대의 긴 속눈썹, 청순한 눈빛, 그대의 눈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수바 비구니]

“그대는 길이 없는 곳을 결으려 하오, 달을 잡으려 하고 수메루 산을 뛰어넘으려 하고 있소. 그대는 부처님의 자녀를 쫓고 있습니다. 천상에도 이 지구상에도 나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에 의해 욕망은 뿌리째 뽑혔습니다. 마치 그릇 속의 독이 증발해 버리듯이.

이런 것을 성찰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스승의 가르침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유혹하시지요. 그러나 이런 것을 아는 사람을 유혹한다면 그대는 괴롭기만 할 것입니다. 내 마음은 즐거움이나 괴로움 칭찬이나 비방에도 흔들림 없이 굳건히 마음챙김에 머뭅니다. ‘인연 따라 생긴 것은 부청한 것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나는 부처님을 따릅니다. 그리고 훌륭한 팔정도의 수레를 타고 갑니다. 번뇌의 화살은 뽑혔습니다.

나는 막대기와 줄로 만든 화려하게 색칠한 춤주는 꼭두각시를 본 적이 있습니다. 만일 이 꼭두각시의 막대기나 줄들을 떼어내고 던져버리면 흩어져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꼭두각시의 형체를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까요? [어느 것을 꼭두각시라 하겠습니까?]

나의 몸도 이와 같습니다. 육신의 특성[형상]을 떠나서 육신은 존재 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특성들을 제거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까요?[어느 것을 육신이라 하겠습니까?]

나의 몸도 이와 같습니다. 육신의 특성[형상]을 떠나서 육신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특성을 제거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까요? [어느 것을 육신이라 하겠습니까?]

어리석은 이여, 그대는 사라져 버린 신기루 같은, 꿈속의 황금나무 같은, 군중 속에서 보여 주는 마술 같은 있지도 않은 것을 맹목적으로 쫓고 있습니다.

[그대가 그렇게 찬탄하는 ] 눈은 구멍 속의 작은 구로서 중앙에 거품이 있고 눈물도 나고 눈곱도 낍니다. 다양한 양상들이 눈의 모양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때 그토록 아름다운 눈을 수바 비구니는 아무런 애착도 없이 뽑았다.

그리고 말하였다.

“여기 이 눈을 가져가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그 남자에게 주었다. 그 남자의 욕정은 즉시 사라졌다. 그리고 용서를 빌었다.

“그대의 눈이 원래대로 복구되기 빕니다. 청정한 삶의 여인이여. 이런 일은 두 번 다시없을 것입니다.

그대와 같은 사람을 해치려는 것은

마치 불길을 끌어안는 것 같습니다.

나는 마치 독사를 움켜쥔 것 같습니다.

그대의 눈이 원래대로 복구되기를 빕니다.

나를 용서하십시오.”


수바 비구니는 그 남자에게서 벗어나 온전히 깨달으신 부처님께 나아갔다. 부처님의 거룩한 공덕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녀의 눈은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얼굴빛이 평온한 이유

쌍윳따 니까야 : 데와따 1:1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때 하늘신 이 부처님 앞에서 이런 게송을 읊었다.


깊은 숲 속에 사는

평화롭고 청정한 수행자는

하루 한 끼만 먹는데도

어떻게 얼굴빛이 그렇게 평온합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지나간 과거를 슬퍼하지 않고

오지 않은 미래를 열망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기 때문에

얼굴빛은 그렇게 평온하다네.


오지 않은 미래를 열망하고

지나간 과거를 슬퍼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낫에 잘린 푸른 갈대처럼

그렇게 시든다네.”


기뻐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다.

쌍윳따 니까야:2 데와뿟따 쌍윳따 2: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께따의 안자나 숲에 있는 사슴동산에 계셨다. 그때 하늘아들 까꾸다가 부처님께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사문이여, 당신은 기쁘십니까?”

“그대는 내가 무엇을 얻었기 때문에 기쁘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면 당신은 슬프십니까?”

“그대는 내가 무엇을 잃었기 때문에 슬프다고 생각하는가?”

“사문이여, 그러면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습니다.?”

“벗이여, 그렇다네.”


[까꾸다] “오, 수행자여 그대는 어떻게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습니까?

어떻게 홀로 그렇게 고요히 앉아

불만에 휩싸이지 않습니까?”


[붓다] “진정으로 나에게는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네.

홀로 고요히 앉아 있을 때

불만족에 휩싸이지 않는다네.


[붓다]기쁨은 슬퍼하는 사람에게 따라오고,

슬픔은 기뻐하는 사람에게 따라오네.

수행자는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다네.

벗이여 이와 같이 알아야 하네.”


[끼꾸다] “오랜 세월 후 나는 드디어 만났네

온전히 해탈한 성인

세상의 집착을 멀리 떠난 분

슬픔도 기쁨도 없는 수행자.”




훌륭한 사람을 가까이 하라

쌍윳따 니까야 : 2 데와뿟따 쌍윳따 3:1


훌륭한 사람을 가까이 하고

훌륭한 사람과 함께 사귀어라

훌륭한 사람의 진정한 가르침을 배우면

①보다 좋아지고 결코 나빠질 수 없으며

② 다른 사람에게서는 얻을 수 없는지 지혜를 얻으며

③ 슬픔 속에 있어도 슬퍼하지 않으며

④ 친척들 가운데서 빛나며

⑤ [죽은 후] 좋은 곳으로 가며

⑥ 편안함 삶을 살며

⑦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한다네.


게으른 수행자

쌍윳따 니까야:2 데와뿟따 쌍윳따 3: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많은 비구들이 꼬살라의 히말라야산기슭에 있는 숲 속의 작은 오두막들에 있었다. 그런데 비구들은 마음이들떠 있고, 자만심으로 가득하고, 허영심으로 들떠있고, 시끄럽고, 거친 말을 하고, 조심성이 없고, 지혜가 없고, 집중하지 못하고, 침착하지 못하고, 감각기관을 절제하지 못하였다.

그때 보름날, 포살날에 하늘아들 잔뚜가 비구들에게 다가와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예전에 고따마의 훌륭한 제자들은 행복하게 살았네

바라는 마음 없이 음식을 구하고

바라는 마음 없이 거처를 구하고

세상의 무상함을 알아 괴로움의 소멸을 이루었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마을의 촌장처럼

자신을 제어하기 힘들고

먹고 또 먹고 드러눕고

다른 이의 집에 있는 것을 탐내네


나는 승가에 공손히 합장하고

여기 있는 일부의 사람에게 말하네

이들은 돌보는 이 없이 버림받고

죽은 시체처럼 버려진다네.

나는 게으른 이에게는 충고하지만

부지런한 이에게는 공손히 예경 드리네.



탐욕, 증오, 어리석음은 자신을 해친다.

쌍윳따 니까야 :3  꼬살라 쌍윳따 1:2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때 빠세나디왕이 부처님을 방문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 사람 안에서 일어나서 해로움을 주고 괴로움을 주고 불편함을 주는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대왕님, 사람 안에서 일어나서 해로움을 주고 괴로움을 주고 불편함을 주는 것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탐욕과, 증오와, 어리석음입니다. 이 세 가지는 사람 안에서 일어나 그 자신을 해치고 고통을 주고 불편하게 합니다.

마치 갈대에서 나온 열매가

바로 그 갈대를 파괴하듯이

탐욕과, 증오와, 어리석음은

사람 안에서 일어나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 스스로를 해칩니다.”



죽을 때 무얼 가지고 가는가

쌍윳따 니까야 :3 꼬살라 쌍윳따 1: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때 꼬살라의빠세나디왕이 부처님께 말하였다.

“부처님, 내가 고요히 홀로 명상에 들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에게 자기 자신은 사랑스러운 친구가 되며 누구에게 자기 자신은 미운 적이 되는가?’그래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을 악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은 미운 적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사랑스러운 적은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할지라도 그러나 그들에게 자신은 미운 적이다. 왜냐하면 적이 적에게 하는 짓[생각, 말, 행동]을 자기 자신에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자신은 미운 적이다.

그러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은 사랑스러운 친구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자신은 사랑스러운 친구.’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대왕님.

자기 자신이 사랑스럽다면.

악으로 자신에게 멍에를 씌우지 말라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행복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죽음의 신에게 잡힐 때

목숨을 버려야 하는데

정말로 내 것이라고 할 것이 있는가?

죽을 때 무얼 가지고 가는가?

그림자가 항상 따라다니듯

무엇이 사람을 따라다닐까?


공덕과 악행 두가지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지은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자기의 것이다.

죽을 때 이것을 가지고 간다.

마치 그림자가 항상 따라다니듯

이것이 항상 따라다닌다.

그러므로 사람은 선행을 닦아야 한다.

공덕은 제 세상에서 든든한 후원자다.


참으로 자신을 보호 하려면

쌍윳따 니까야 :3 꼬살라 쌍윳따 1:5


빠세나디왕은 부처님께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 내가 홀로 고요히 명상에 들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자기 사신을 보호하는 사람이고, 누가 자기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잘못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설령 코끼리부대로, 기마부대로, 전차부대로, 또는 보병부대로 자신을 지킨다 해도 자신을 지킬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보호[부대들]는 모두 다 내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 자신을 보호받지 못한다. 그러나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바르게 사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보호한다. 설령 코끼리부대, 기마부대, 천차부대, 또는 보병부대 등으로 지키지 않는다. 해도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보호는 내 마음 안에 있지 밖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 자신을 보호한다고.’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왕님!

생각으로 절제하난 것은 훌륭합니다.

말로 절제하는 것은 훌륭합니다.

행동으로 절제하는 것은 훌륭합니다.

모든 면에서 절제하는 것은 훌륭합니다.

모든 면에서 절제하는 성실한 사람을

‘보호받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해쳐서는 안 된다.

 쌍윳따 니까야 :3  꼬살라 쌍윳따 1: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때 꼬살라의 빠세나디왕과 말리까왕비는 궁전의 높은 누각에 있었다. 빠세나디왕은 말리까왕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말리까, 누군가 그대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있소?”

“대왕님,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누군가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있습니까?”

“나도 마찬가지요, 말리까. 누군가 나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은 없소.”

그리고 나서 빠세나디왕은 누각에서 내려와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그리고 말리까왕비와의 대화 내용을 말씀드렸다. 부처님은 그 이야기를 이해하시고 이렇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당신의 마음이 천지사방으로 다 돌아다녀도

어디서도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한 것을 찾지 못하듯.

다른 사람에게도 자기 자신은 소중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


겉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

쌍윳따 니까야:3 꼬살라 쌍윳따 2:1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동쪽 승원, 미가라마뚜 강당에 계셨다.그때 부처님은 저녁나절 명상에서 일어나 동쪽 문 밖 회랑에 앉아 계셨다.

그때 빠세니다왕이 부처님을 방문하여 인사를 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그때 부처님과 빠세나디왕이 앉아 있는 곳과 멀지 않은 거리에서 일곱 명의 결방 고행자. 일곱 명의 자이나교도, 일곱 명의 나체고행자, 일곱 명의 한 벌 옷의 고행자, 일곱 명의 방랑 수행자 등이 더부룩한 겨드랑이 털, 긴 손톱과, 긴 몸의 털을 한 채 그들의 필수품 꾸러미를 들고 지나가게 되었다.

그때 빳나디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무릎을 꿇고 합장한 채 이들수행자들을 향하여 ‘나는 꼬살라의 왕 빠세나디입니다. 존자들이여, 라고 세 번 말하였다. 이들이 다 지나간 후 빠세나디왕은 부처님께 물었다.

“부처님, 저들은 아라한들입니까. 또는 아라한의 길에 들어선 이들입니까?”

“대왕님, 세속에 사는 사람이 그것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가 계행을 지니고 있는지는 함께 살아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청정한지 어떤지는 함께 대화를 해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지혜가 있는지는 토론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그것도 짧은 시간에도 알 수 엇고 긴 시간이 지난 후에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주의 깊어야 알 수 있지 주의가 깊지 않으면 알수 없습니다.

또한 지혜로워야 알 수 있지 우둔하면 알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사람은 겉으로는 드러난  모양으로는 쉽게 알 수 없고

잠깐 슬쩍 보아서는 또한 믿을 수가 없네.

잘 절제된 듯한 모습을 한

절제되지 않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네.

점토로 만들 가짜 귀고리처럼

금을 입힌 동전 반전처럼

어떤 사람은 위장한 채 돌아다니니

안은 더럽고 겉은 아름답네.


태어날 때 입안에 도끼가 생긴다.

쌍윳따 니까야:6 브라흐마 쌍윳따 1:10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때 고깔라까 비구가 부처님께 와서 말하였다.

“부처님, 사라뿟따와 목갈라는 사악한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사악한 욕망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고깔리까.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에게 믿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훌륭히 행동하고 있지 않느냐.”

그런 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똑같이 부처님께 와서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사악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그런 후 얼마 되지 않아 고깔리까는 종기가 생겨 점점 커져서 결국은 그 병으로 죽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와 관련하여 말씀하셨다.


“사람이 태어날 때

입안에 도끼가 생긴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쁜 말을 하여

그것으로 자기 자신을 찍는다.


비난할 것은 칭찬하고

칭찬할 것은 비난하니

입으로 불운을 만들어

행복을 얻지 못한다.

바른 길을 간 훌륭한 이에게

증오를 품는다면

그 불운은 무엇보다 큰 것이다.”


브라흐민 다난자니 여인의 신심

쌍윳따 니까야:7 브라흐마나 쌍윳따 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계셨다. 그때 바라드와자 가문의 어떤 브라흐민의 아내인 다난자니는 붓다.담마. 승가의 삼보에 열렬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브라흐민 다난자니 여인은 브라흐민에게 음식을 가져가다가 걸려 넘어졌다.

그녀는 자동적으로 이렇게 세 번 말하였다.


“붓다, 아라한, 온전히 깨달으신 분께 귀의합니다.

붓다, 아라한, 온전히 깨달으신 분께 귀의합니다.

붓다, 아라한, 온전히 깨달으신 분께 귀의합니다.”

이 말을 듣고 브라흐민은 다난자니에게 말하였다.

“이 가엾은 여인은 기회가 닿는 모든 경우에 아주 하찮은 것에도 머리 깎은 사문을 찬탄하는 말을 한다. 나는 당신 스승의 교리를 논박하러 가야겠소.”

“브르흐민이여, 나는 이 세상에서 신과 인간을 통틀어 어떤 사람도, 어떤 브라흐민도, 어떤 사문도, 아라한이시며, 온전히 깨달으신 분 부처님의 교리를 논파할 수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가보십시오. 가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브라흐민은 화가 나고 불쾌하여 부처님을 찾아갔다. 그는 인사를 드리고 앉아서 부처님께 게송으로 말하였다.


무엇을 베어버려 편안히 잠듭니까?

무엇을 베어버려 슬퍼하지 않습니까?

고따마여, 그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어떤 것의 죽임을 그대는 승인합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성냄을 베어버려 편안히 잠들며

성냄을 베어버려 슬프지 않네.

뿌리에는 독이 있고 꼭지에는 꿀이 있는

성냄을 죽이는 것, 오 브라흐민이여,

이것이 거룩한 이가 칭찬하는 죽임이라네.

성냄을 베어버려 그는 슬프지 않기 때문이네.”


부처님의 훌륭한 말씀을 듣고 그는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그 후 그는 출가하여 열심히 수행 정진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공격심에 가득 찬 사람

쌍윳따 니까야:7 브라흐마 쌍윳따 2:6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때 브라흐민 빳짜니까사띠는 생각하기를, ‘부처님의 말끝마다 반박하리라’고 생각하고 부처님을 찾아갔다. 그때 부처님은 기원정사 뜰을 거닐고 계셨다. 브라흐민은 부처님을 따라 걸으며 이렇게 물었다.

“담마를 말해보시오, 수행자여!”

[부처님은 기질과 타락한 마음으로 공격심에 가득 차 있는 사람은 잘 설해진 가르침이 이해하기 어렵소, 그러나 공격심과 불신의 마음을 버리고 반감을 떨쳐버리면, 그때는 잘 설해진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만심을 버려라

쌍윳따 니까야:8 방기사 쌍윳따3


어느 때 방기사 존자는 알라위의 악갈라와 사당에 그의 스승 니그로다깝따 존자와 합께 있었다. 그런데 방기사 존자는 자신의 재능 때문에  다른 훌륭한 비구들을 깔보았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재능 때문에 다른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깔보는 것이 많은 좋은 것을 잃는 것이지 결코 얻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이것은 나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뉘우치면서 게송을 떠올렸다.


교만심을 버려라. 고따마의 제자여!

고만의 길에서 그대의 발걸음을 완전히 끊어라.

교만의 길에 빠져 정신을 못 차렸기 때문에

오랜 세월 자책이 뒤따랐다.


위선으로 더럽혀진 사람들.

교만에 정복되어 지옥에 떨어져

오랜 세월을 슬퍼한다.


그러나 바르게 수행하는

바른 길을 아는 자는 결코 슬프지 않다.

그는 기쁨과 행복을 누린다.

참으로 그는 진리를 보는 자라 부른다.


훌륭한 설법의 네 가지 요소

쌍윳따 니까야 :8 방기사 쌍윳따5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말을 할 때 네 가지 요소가 있으면 그런 말은 잘 설해진 말이며 지혜로운 사람들로부터 비난의 여지가 없다. 네 가지란 무엇인가?

훌륭히 설해진 것만 말하며 나쁘게 설해진 것은 말하지 않는다.

이에  방기사 존자는 자신이 들은 부처님 설법에 대해 칭송하는 게송을 하였다.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는 그런 말만을 할때

그와 같은 말을 참으로 잘 설해진 말이다


다만 유쾌한 말만을 하여야 한다.

그 말이 어떤 사악함도 없을 때

그런 말은 다른 이에게 유쾌함을 준다.


진리가 참으로 불사의 말인 것은

변함없는 진리이다.

수행의 목표도, 부처님 법도, 훌륭한 이는 말한다.

모두 진리 위에 세워져 있다고,

열반에 이르기 위해, 괴로움을 종식키 위해,

부처님이 설하신 평온의 말씀은

진정으로 가장 훌륭한 말씀일세.


큰 지혜의 사리뿟따

쌍윳따 니까야 : 8 방기사 쌍윳따 6

어느 때 사리뿟따 존자는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있었다. 그때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설하여 그들을 깨우치고, 분발시키고, 격려하였다. 그 설법은 세련되고, 유창하고, 명확하고, 뜻을 잘 전달하는 그런 설법이었다. 그래서 비구들은 온 마음과 정성을 기울여 열성적으로 그 가르침을 들었다.


방기사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를 이렇게 칭송하였다.


심오한 지혜와 슬기로움으로

바른 길과 그른 길을 잘 아는

큰 지혜를 가진 사리뿟따는

비구들에게 가르침을 설하네.


그는 간략하게 가르치기도 하고

성세하게 말하기도 하네.

그 목소리는 마치 구관조 새처럼

분발시키는 법문을 쏟아내네


그가 가르칠 때

그의 매혹적이고 우렁차고 유쾌한 목소리에 고무되고 기쁘게 되어

비구들은 귀를 기울이네.


뿌린대로 거둔다.

쌍윳따 니까야 11 삭까 쌍윳따 1:10

어떤 종류의 씨를 뿌렸든지

뿌려진 씨에 따라

그는 바로 그 열매를 거둔다.

선을 행하면 선을 거두고

악을 행하면 악을 거둔다.

너의 씨앗은 뿌려졌다.

그러니 열매를 거두리라.


분노를 극복하라.

쌍윳따 니까야 11 삭까 쌍윳따 3:4-5

분노를 극복하여

우정을 사들게 하지 말라.

잘못이 없는 이를 헐뜯지 말며,

분열시키는 말을 하지 말라.

분노에 의해 악한 이들은 무너진다.

마치 눈사태가 무너지듯이.


분논에 정복당하지 말라.

화내는 이에게 같이 화내지 말라.

성내지 않고 남을 해치지 않는 이는

항상 부처님 안에 사는 사람일세.

분노에 의해 악한 이들은 무너진다.

마치 눈사태가 무너지듯이.


마하깟사빠

쌍윳따 니까야 16 깟사빠 쌍윳따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깟사빠는 어떤 법의 [가사]에도 만족한다. 그는 어떤 법의에도 만족하는 것을 칭찬하며, 부적합한 방법으로 법의를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법의를 얻지 못해도 애태우지 않으며 법의를 얻는다 해도 집착 없이 그것을 사용하며, 법의에 열광하지 않으며 맹목적으로 법의에 탐착하지 않으며 또한 탐착의 위험을 알기 때문에 그 벗어남을 안다.

깟사빠는 어떤 음식에도, 어떤 거처에도, 그리고 어떤 필수 의약품에도 만족한다. 그는 이것들에 만족하는 것을 칭찬하며 부적합한 방법으로 이것들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들을 얻지 못한다 해도 애태우지 않으며, 이것들을 얻는다 해도 집착 없이 사용하며, 열광하지 않으며, 탐착하지 않으며, 또한 탐착의 위험을 알기 때문에 그 벗어남을 안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나는 깟사빠나 또는 깟사빠와 비숫한 사람의 모범을 들어 그대들에게 간곡히 권고한다. 가르침을 들은 후에는 가르침에 따라 그대로 수행하여야 한다.”


달과 같이 너 자신을 멀리하라

쌍윳따 니까야 16 깟사빠 쌍윳따 3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그대들은 남의 집에 갈때에 몸과 마음을 달처럼 멀리하고 항상 새로 오는 사람처럼 행하며 가족들에게 겸손하게 대하여야 한다. 마치 오래된 우물이나, 절벽이나, 가파른 강둑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몸과 마음을 멀리하고 가족들을 대하여야 한다.

깟사빠는 남의 집에 갈 때 몸과 마음을 달처럼 멀리하고 항상 새로 오는 사람처럼 행하며 가족들에게 겸속하게 대한다.

어떤 태도의 비구가 가정을 방문하기에 합당한가?”

이어서 부처님은 허공에 손을 휘저으면서 말씀하셨다.

“이 손이 허공을 붙잡지도 않고, 허공에 붙잡히지도 않고, 허공에 묶여 있지도 않듯이, 이와 같이 남의 집을 방문할 때는 사람들 사이에 사로잡히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묶여 있지 말고 다만 생각하기를 덕을 얻기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다른 이기 이익을 얻는 것을 자기의 이익처럼 기뻐한다.

이런 비구가 남의 집을 방문하는 훌륭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훌륭한 설법

쌍윳따 니까야 16  깟사빠 쌍윳따3

이어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훌륭한 가르침을 설하는 것인가? 만일 어떤 비구가 생각하기를, ‘가르침은 부처님에 의해 잘 설해져 있고 지금, 현재, 직접 볼 수 있는 것이고,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할만한 것이고, 유익한 것이고, 지혜 있는 이들에 의해 체득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부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들은 후에는 가르침을 이해하기를, 이해한 후에는 그 가르침을 실천하기를!’이런 생각을 가지고 설법한다. 그리고 진정한 자비심과 동정심과 따뜻한 관심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한다면, 이런 가르침의 설법은 훌륭하다.”


마하 깟사빠의 수행

쌍윳따 니까야 16  깟사빠 쌍윳따 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계셨다. 그때 마하 깟사빠 존자가 부처님께 와서 인사를 드리고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그대는 연로하여 그 낡은 삼베 누더기가 짐스럽고 무거울 것 같군. 그러니 신도들이 공양하는 새 가사도 입고 식사 공양 초대에도 가고 내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구나.”

“부처님, 저는 오랫동안 숲에서 수행해 왔고 숲에서는 수행을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탁발하여 먹었고 탁발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는 오랫동안 탁발하여 먹었고 탁발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랫동안 누더기 가사를 입었고 누더기 가사를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 가지 가사만 소유하고 세 가지 가사만 소유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적은 것, 어떤 경우에도 만족하는 것, 홀로 있는 것, 사회와 거리를 두고 사는 것 열심히 수행 정진하는 것 등을 좋게 생각해 왔고 또 그렇게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깟사빠여, 어떤 이익 때문에 그와 같은 것들을 좋게 생각하는가?”

“두 가지 유익한 점 때문입니다. 부처님, 첫째는 지금 여기서의 나 자신의 행복한 삶이며, 둘째는 다음 세대들에 대한 자비심 때문입니다. 다음 세대의 사람들은 이것을 모범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들이 이런 수행을 듣게 되면 그들은 이것에 따라서 수행할 것이고 그런 수행은 오랫동안 그들을 행복과 복지로 이끌 것입니다.”

“참으로 훌륭하다 깟사빠여, 그대는 세상에 대한 자비심으로, 중생의 행복과 복지를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수행하고 정진해 왔다.”


경계해야 할 이익, 명성, 찬탄

쌍윳따 니까야 17 라바삭까라 쌍윳따 2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이득과 명성을 얻고 남에게서 찬탄을 받는 것은 속박을 벗어나 최상의 안온을 얻는 데서 격심하고 혹독한 방해물이다.

만일 어부가 미끼를 단 낚시바늘을 깊은 연못에 던지면 먹이를 찾던 물고기가 그것을 삼킬 것이다. 낚시바늘을 삼킨 물고기는 큰 재난과 불행을 만나 어부의 원하는 대로 이끌리게 된다. 여기에서 어부는 악마를 의미하고 미끼 달린 바늘은 이득과, 명성과, 찬탄을 의미한다.

누구라도 이득이나, 명성, 찬탄을 즐기는 사람은 미끼 달린 갈고리를 삼킨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로 인하여 재난과 불행을 만나 악마가 원하는 대로 이끌리게 된다.

이와 같이 이득과 명성과, 찬탄은 속박을 벗어나 최상의 안온을 얻는데 격심하고 혹독한 방해물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왕 같이 ‘우리는 이미 일어난 이득과, 명성과, 찬탄을 버릴 것이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득과, 명성과, 찬탄이 우리 마음에 계속적으로 들러붙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라고 자신을 단련하여야 한다.“


가르침을 보는 자는 나를 본다.

쌍윳따 니까야 22  칸다 쌍윳따 8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계셨다. 그때 왁깔리 존자는 도공의 헛간에 있었는데 병이 들어 괴로워하였으며 아주 중병이었다. 그래서 왁깔리 존자는 시자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 가서 내 이름으로 부처님 두발에 예를 올리고 이렇게 여쭈어라. ‘부처님, 왁깔리 비구가 병이 들어 괴로워하는데 아주 중병입니다. 그가 부처님 두 발에 머리 숙여 예를 올립니다. 부처님께서 자비심으로 왁깔리를 방문해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려라.”

부처님은 시자의 전갈을 듣고 발우와 가사를 챙겨서 왁깔리 존자를 방문하였다. 왁깔리 존자는 부처님이 오시는 것이 보이자 침상에서 일어나려고 애썼다. 이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왁깔리, 됐다. 일어나지말아라, 그대는 고통을 잘 참아내고 잘 견디어 내기를 바란다. 증세가 차도가 있고 고통의 느낌이 가라앉기를 바란다. 좀 나아진 느낌이 드는가?”

“부처님, 고통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격심한 고통이 옵니다. 점점  더 고통이 심해지고 차도가 없습니다.”

“왁깔리, 양심의 가책이나 후회가 그대를 괴롭히지는 않는가?”

“부처님, 사실 저는 양심의 가책이나 후회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왁깔리, 계행을 지킴에 있어서 나무랄만한 것이 없는가?”

“부처님, 계행을 지킴에 있어서 나무랄 만한 것이 없습니다.

“왁깔리, 계행을 지킴에 나무랄만한 것이 없다면, 양심의 가책이나 후회로 괴로워할 일이 없지 않겠는냐?”

“저는 오랫동안 부처님을 뵈려고 열망해왔지만 부처님을 뵈러 갈 만큼 육신이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 됐다, 왁깔리, 이 [썩어 없어질]더러운 육신을 보아서 무엇 하느냐 나의 가르침을 보는 사람은 나는 보는 것이며, 나를 보는 사람은 가르침을 보는 것이다.”

부처님은 계속하여 왁깔리 존자에게 오온의 무상함을 간곡하게 말씀하신 후 자리에서 일어나 영취산으로 향하셨다.


가장 기본적인 수행

쌍윳따 니까야 35 사라야따나 쌍윳따120

어느 때 사리뿟따 존자는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있었다. 그때 어떤 비구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벗, 사리뿟따여, 나와 함께 지내던 비구가 수행생활을 그만두고 세속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습니다. 벗이여, 감각기관의 문을 지키지 않을 때, 먹는 것에 적당한 양을 조절하지 못할 때, 그리고 온전히 깨어있지 못할 때, 이런 사람이 그의 온 일생을 온전하고 청정한 수행자의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섯 감각기관의절제)

그러면 감각기관의 문을 어떻게 지킵니까? 눈으로 대상을 볼 때 거죽으로 드러난 모습이나 특성에 집착하지 말라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눈을 다스리지 않으면 탐욕과 불쾌함의 바람직하지 않은 수행에 전념하고 눈을 잘 지킵니다. 그런 결과 그는 눈의 절제를 얻습니다.

귀로 소리를 들을 때, 코로 냄새를 맡을 때, 혀로 맛볼 때, 몸으로 촉감을 느낄 때, 마음으로 형상을 지각할 때, 이 모든 감각형상에서 거죽으로 드러난 모습이나 특성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귀를, 코를, 혀를, 몸을,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탐욕과 불유쾌함의 바람직하지 않은 나쁜 것들이 마음속에 스며들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감각기관을 절제하는 수행을 전념하고 감각기관을 잘 지킵니다.

그런 결과 그는 감각기관의 절제를 얻습니다.

(먹는 것의 절제)

‘먹는 것에 적당량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주의 깊게 이와 같이 살핍니다. ‘음식을 먹는 것은 즐거움을 위함도 아니며, 탐닉하기 위함도 아니며, 신체적인 매력이나 꾸미기 위함도 아니며, 다만 육신을 지탱하고 유지하기 위함이며, 육신의 고통을 덜고 청정한 삶을 돕기 위함이다.’ 이것이 바로 ‘먹는 것에 적당량을 안다,’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마음)

어떻게 ‘깨어있음’에 몰두합니까? 낮 동안 앞으로 가고 뒤로 가고 [경행하는 것]앉아 있는 동안[좌선하는 것] 그의 마음을 방해하는 것으로부터 마음을 맑게 합니다. 밤의 초경의 앞으로 가고 뒤로 가고 앉아 있는 동안 그의 마음을 방해하는 것으로부터 마음을 맑게 합니다. 밤의 중경에 사자가 눕듯이 오른쪽으로 누워 두 발을 가지런히 하고 마음챙김으로 다시 일어날 것을 생각합니다. 밤의 후경에 이른 새벽에 일어나 앞으로 가고 뒤로 가고 앉아 있는 동안 그의 마음을 방해하는 것으로부터 마음을 맑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깨어있음’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벗이여, 우리는 ‘감각기관의 문을 지키고, 막는데 적당한 양을 알며, 깨어있음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벗이여, 우리는 ‘감각기관의 문을 지키고, 먹는데 적당한 양을 알며, 깨어있음에 몰두할 것이다.’라고 자신을 단련하여야 합니다. 이와 같이 벗이여, 그대 자신을 단련하여야 합니다.”


육체적인 괴로움을 극복하는 사람

쌍윳따 니까야 36 웨다나 쌍윳따 4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르침을 듣지 못한 범부는 이렇게 말한다.‘큰 바다에는 끝없이 깊은 구렁이 있다.’고 그러나 그런 말은 무엇인가 있지도 않고 발견될 수 도 없는 것을 말한다. ‘끝없이 깊은 구렁’이라는 말은 사실 육신의 괴로운 느낌을 지적하는 말이다.

그러나 가르침을 받는 훌륭한 사람들은 육체적인 괴로움의 느낌을 당해도 슬픔에 빠지지 않고, 한탄하지 않고, 울지 않고, 가슴을 치고 통곡하지 않고, 산란과 혼란 속에 빠지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끝없는 깊은 구렁 속에서 위로 올라온 사람이며 견고한 발판을 얻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괴로운 느낌을 참아내지 못하는 사람은 생명을 해치는 육체적[고통의]느낌이 그를 엄습할 때 그는 전율한다.

큰 소리로 울고, 울부짖는 사람은 기운 없는 병약자가 되어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견고한 발판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괴로운 느낌을 참아내는 사람은 생명을 해치는 육체적 [고통의] 느낌이 그를 엄습해도 그는 전율하지 않으며 끝없이 깊은 구렁에서 솟아오르며 견고한 발판을 얻는다.”



욕망은 괴로움의 뿌리이다.

쌍윳따 니까야 :42 가마니 쌍윳따 11

어느 때 부처님은 우루웰라깝빠라는 말라족의 마을에 계셨다. 그때 촌장 바드라까는 부처님께 와서 이렇게 청하였다.

“부처님, 괴오움의 근원과 괴로움의 소멸에 대하여 가르쳐 주십시오.”

이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과거에 일어난 어떤 괴로움이라도 그것은 모두 욕망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욕망은 괴로움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일어날 어떤 괴로움이라도 그것은 모두 욕망 때문에 일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욕망은 괴로움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에 일어나는 어떤 괴로움이라도 그것은 모두 욕망 때문에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욕망은 괴로움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음이 앞에 있으면

쌍윳따 니까야:45 막가 쌍윳따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타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어리석음이 갈을 인도하면 불건전한 상태에 이르기 때문에 잘못하고도 부끄러움도 없고 겁내는 것도 없게 된다. 어리석음에 지배되는 사람은 잘못된 견해가 일어난다. 잘못된 견해에서 잘못된 생각이, 잘못된 생각에서 잘못된 말이, 잘못된 말에서 잘못된 행동이, 잘못된 행동에서 잘못된 생활수단이, 잘못된 생활수단에서 잘못된 노력이, 잘못된 노력에서 잘못된 마음챙김이, 잘못된 마음챙김에서 잘못된 집중이 일어난다.

그러나 참된 지혜가 맨 앞에 있으면 건전한 상태에 이르기 때문에 잘못에 대하여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게 된다. 참된 지혜에 도달한 지혜로운 사람은 바른 견해가 일어난다. 바른 견해에서 바른 생각이, 바른생각에서 바른 말이, 바른 말에서 바른 행동이, 바른 행동에서 바른 생활수단이, 바른 생활수단에서 바른 노력이, 바른 노력에서 바른 마음챙김이, 바른 마음챙김에서 바른 집중이 일어난다.”


좋은 우정은 청청한 삶의 전체이다

쌍윳따 니까야 45 막가 쌍윳따 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꺄 사람들이 사는 나가라까라는 마을에 계셨다. 그때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께 말하였다.

“부처님, 좋은 우정, 좋은 교우관계는 청정한 삶의 절반입니다.”

이에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그렇지 않다. 아난다, 그렇지 않다. 좋은 우정, 좋은 교우관계는 청정한 삶의 전부이다. 왜냐하면 좋은 친구, 좋은 동료가 있으면 그로 인하여 여덟 가지 바른 길을 연마하게 되고 여덟 가지 바른 길을 더 발전시키게 된다.”


열반의 세계에 도달함

쌍윳따 니까야 45 막가 쌍윳따 34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인간 가운데 저 언덕 너머[열반의 세계]로 간 사람은 매우 적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 언덕에서 오르락 내리락 한다. 잘 설해진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건너가 어려운 영역을 지나 저 언덕에 도달하리.”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는 논쟁

쌍윳따 니까야 56 삿짜 쌍윳따 9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이와 같이 논쟁적인 이야기들을 삼가야 한다. ‘너는 이 가르침과 계율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는 이 가르침과 계율을 잘 알고 있어 이 가르침과 계율에서 네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이지? 나는 바른 수행을 하고 있지만 너는 잘못된 수행을 하고 있어, 너는 앞에 말해야 할 것을 뒤에 말하고, 뒤에 말해야 할 것을 앞에 말하고 있어, 나는 핵심을 말하지만 너는 그렇지 못해, 네가 그렇게 오랫동안 생각해 낸 것도 거꾸로 된 거야. 너의 이론은 논박거리다. 네가 졌지 때문에 너의 이론을 살려보든지 아니면 할 수 있으면 밝혀보시지.’라고 말하는 논쟁적인 이야기를 삼가야 한다. 왜 그런가?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아무런 유익함이 없으며,거룩한 삶의 근본에 적합지 않으며,

경계에서 멀리함으로 이끌지 않으며,

욕망의 집착을 놓음으로 이끌지 않으며

건전치 않은 요소를 소멸함으로 이끌지 않으며.

평화, 지혜, 깨달음 그리고 열반으로 이끌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

왜 나는 이런 말을 하는가?


이것은 유익하며

거룩한 삶의 근본에 적합하며,

경계에서 멀리함으로 이끌며,

욕망의 집착을 놓음으로 이끌며,

건전치 않은 요소를 소멸함으로 이끌며.

평화, 지혜, 깨달음 그리고 열반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더러움이란 무엇인가?

맛지마 니까야5 아낭가나 경 9-30

(악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욕망의 영역)

목갈라나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벗이여, 사리뿟따여, ‘더러움, 이라고 말하는데 더러움이란 무엇입니까?”

“벗이여, 더러움이라는 것은 악한 욕망에서 나오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을 말합니다.
[무엇이 악한 욕망에서 나오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입니까?]

- 어떤 비구가 이런 열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는 정말 잘못하였는데 다른 비구들은 그가 잘못을 몰랐으면 좋겠다.’고 바랍니다. 그러나 벗이여, 다른 비구들은 그가 잘못한 것을 알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는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 더러움입니다.

- 어떤 비구가 이런 열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는 잘못을 범하였다. 비구들은 사적으로 나를 나무라고 승가 대중 앞에서 나무라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바랍니다. 그러나 벗이여, 다른 비구들은 그를 사적으로 나무라지 않고 승가 대중앞에서 나무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비구는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 더러움입니다.

- 어떤 비구가 이런 열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나는 정말 잘못하였다. 그런데 어느 모로 보나 나와 대등한 자가 나를 책망하지 못한 자가 나를 책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랍니다. 그러나 자기와 대등하지 못한 자가 책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비구는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 더러움입니다.

- 어떤 비구가 이런 열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스승께서 비구들에게 담마를 설하실 때 오직 나에게만 질문하고 다른 비구에게는 질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랍니다. 그러나 스승은 다른 비구에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비구는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 더러움입니다.

발하러 들어갈 때 오직 나만 선두에 세우고 다른 비구들은 선두에 세우지 않고 다른 비구를 선두에 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비구는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 더러움입니다.

- 어떤 비구가 이런 열망을 기질 수 있습니다. ‘지정된 식사하는 장소에서 나만 제일 좋은 자리, 제일 좋은 물, 제일 좋은 탁발 음식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바랍니다. 그러나 다른 비구들이 제일 좋은 자리, 제일 좋은 물, 제일 좋은 탁발 음식을 얻고 그는 좋은 것을 얻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비구는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 더러움입니다.

- 어떤 비구가 이런 열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지정된 식사하는 장소에서 식사 후 오직 나만 훌륭한 행위의 이익에 대한 담마를 설하였으면 좋겠다.’고 바랍니다. 그러나 다른 비구들이 축복의 말을 하고 그는 축복의 말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비구는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 더러움입니다.

- 어떤 비구가 이런 열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승원에서 비구들에게 나만 오직 담마를 설하고 다른 비구들은 담마를 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바랍니다. 그러나 승원에서 비구들에게 다른 비구가 담마를 설하고 그는 담마를 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비구는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 더러움입니다.

- 어떤 비구가 이런 열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승원에서 비구니들에게 나만 오직 담마를 설하고 다른 비구들은 담마를 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 바랍니다. 그러나 승원에서 비구니들에게 다른 비구가 담마를 설하고 그는 담마를 설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비구는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가지 모두 더러움입니다.

- 어떤 비구가 이런 열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승원에서 재가 남녀 신도들에게 나만 오직 담마를 설하고 다른 비구들은 담마를 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 바랍니다. 그러나 승원에서 재가 남녀 신도들에게 다른 비구가 담마를 설하고 그는 담마를 설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비구를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 더러움입니다.

- 어떤 비구가 이런 열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비구들이 나만 존경하고 공경하고 다른 비구들은 존경하고 공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바랍니다. 그러나 비구들이 다른 비구들을 존경하고 공경하고 그는 존경과 공경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비구는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 더러움입니다.

- 어떤 비구가 이런 열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비구니들이 나만 존경하고 공경하고 다른 비구들은 존경하고 공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랍니다. 그러나 비구니들이 다른  비구를 존경하고 공경하고 그는 존경과 공경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비구는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가지 모두 더러움입니다.

- 어떤 비구가 이런 열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른 비구가 아닌 나만이 좋은 법복, 좋은 탁발 음식, 좋은 거처, 좋은 필수 의약품을 얻었으면 좋겠다. 고 바랍니다. 그러나 다른 비구가 좋은 법복, 좋은 탁발 음식, 좋은 거처, 좋은 필수 의약품을 얻고 그는 좋은 것들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비구는 화를 내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벗이여, 화를 내는 것과 불쾌하게 여기는 것 두 가지 모두 더러움입니다.

벗들이여, 이와 같이 ‘더러움’이란 악한 욕망에서 나오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을 말합니다.

벗들이여, 만일 어떤 비구든지 이와 같은 악한 욕망에서 나오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을 버리지 못한 것을 사람들이 보거나 듣는다면, 비록 그가 숲이나 멀리 떨러진 곳에 살고, 탁발하여 살고, 누더기 옷이나 거친 옷을 입고, 격심한 고행을 한다 하더라도, 청정한 삶의 동료들은 그를 존경이나 공경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비구에게서 악한 욕망에서 나오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을 버리지 못한 것을 보거나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비구든지 이와 같이 악한 욕망에서 나오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을 버린 것을 사람들이 보거나 듣게 된다면, 비록 그가 마을의 승원에 머물고, 공양의 초대가 가고, 장자가 보시한 법복을 입는다 해도, 청정한 삶의 동료들은 그를 존경하고 공경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비구에게서 악한 욕망에서 나오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을 버린 것을 보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르치기 어려운 사람과 쉬운사람의 특성

맛지마 니까야15 아누마나 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존자 마하 목갈라나 박가국의 승수마라기리의 베사깔라 숲의 사슴동산에 있었다. 존자 마하목갈라나 비구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가르치기에 어렵게 만드는 특성]

벗들이여, 어떤 것이 가르치기에 어럽게 만드는 특성입니까?

① 악한 욕망을 가지고 있고 악한 욕망에 지배당하는 사람

② 자신은 칭찬하고 남은 헐뜯는 사람

③ 화를 내고 분노의 마음에 완전히 지배당하는 사람

④ 화를 내고 성냄으로 인하여 원한을 품는 사람.

⑤ 화를 내고 성냄으로 인하여 요지부동의 고집을 부리는 사람.

⑥ 화를 내고 성냄으로 인하여 분노에 찬 말을 하는 사람.

⑦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사람에게 대항하는 사람.

⑧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사람을 헐뜯는 사람.

⑨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사람에게 대드는 사람.

⑩ 꾸짖음을 듣고 어물쩍 넘기거나. 제대로 듣지 않고 화를 내고 미워하고 빈정대는 사람.

⑪ 꾸짖음을 듣고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

⑫ 남에게 혹독하고 원한을 품는 사람

⑬ 남을 시기하고 인색한 사람.

⑭ 남을 사기 치고 기만하는 사람.

⑮ 완고하고 건방진 사람.

⑯ 세속에 묶여 견고하게 집착하여 그것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

벗들어여, 이 열여섯가지 가르치기에 어렵게 만드는 특성입니다.


[가르치기에 쉽게 만드는 특성]

벗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가르치기에 쉽게 만드는 특성입니까?

① 악한 욕망이 없고 악한 욕망에 지배당하지 않는 사람.

②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남은 헐뜯지 않는 사람

③ 화를 내지 않고 분노에 지배당하지 않는 사람.

④ 화를 내지 않고 성냄으로 인하여 원한을 품지 않는 사람.

⑤ 화를 내지 않고 성냄으로 인하여 요지부동의 고집을 부리지 않는 사람.

⑥ 화를 내지 않고 성냄으로 인하여 분노에 찬 말을 하지 않는 사람.

⑦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사람에게 대항하지 않는 사람.

⑧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사람을 헐뜯지 않는 사람.

⑨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사람에게 대들지 않는 사람

⑩ 꾸짖음을 듣고 어물쩍 넘기거나. 제대로 듣지 않고 화를 내고 미원하고 빈정대지 않는 사람

⑪ 꾸짖음을 듣고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는 사람.

⑫ 남에게 혹독하지 않고 원한을 품지 않는 사람.

⑬ 남을 시기하지 않고 인색하지 않는 사람.

⑭ 남을 사기 치지 않고 기만하지 않는 사람.

⑮ 완고하지 않고 건방지지 않는 사람

⑯ 세속에 묶여 견고하게 집착하지 않아 그것을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람.


벗들이여 이 열섯가지가 가르치기에 쉽게 만드는 특성입니다.

[열여섯 가지 자질을 자신과 비교하라]

벗들이여 그대들을 다음과 같이 지신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① 악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악한 욕망에 지배당하는 사람은 나에게 기분 나쁘고 싢은 사람이다. 만일 내가 악한 욕망을 가지고 있고, 악한 욕망에 지배당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나는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나는 악한 욕망을 품지 않을 것이며 악한 욕망에 지배당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② 자신은 칭찬하고 남은 헐뜯는 사람은 나에게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헐뜯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나는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나는 나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헐뜯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③ 화를 내고 분노의 마음에 완전히 지배당하는 사람은 나에게 기분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만일 내가 화를 내거나 분노의 마음에 완전히 지배당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나는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헐뜯나면 다른 사람에게 나는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나는 나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헐뜯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④ 화를 내고 성냄으로 인하여 원한을 품는 사람은 나에게 기분 나쁘고 삻은 사람이다. 만일 내가 화를 내고 성냄으로 인하여 원한을 품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나는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나는 화를 내가 않을 것이며 성냄으로 인하여 원한을 품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⑤ 화를 내고 성냄으로 인하여 요지부동의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나에게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만일 내가 화를 내고 성냄으로 인하여 요지부동의 고집을 부린다면 다른 사람에게 나는 기분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나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며, 성냄으로 인하여 요지부동의 고집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⑥ 화를 내고 성냄으로 인하여 분노에 찬 말을 하는 사람은 나에게 기분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만일 내가 화를 내거나 분노에 찬 말을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나는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나는 화를 내가 않을 것이며, 분노에 찬 말을 하지 않을 것다. 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⑦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사람에게 대항하는 사람은 나에게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만일 내가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사람에게 대든다면 다른 사람에게 나는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나는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사람에게 대들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⑧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사람을 헐뜯는 사람은 나에게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만일 내가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사람을 헐뜯는다면 다른 사라에게 나는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이것은 아는 사람은 나는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사람을 헐뜯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⑨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사람에게 대드는 사람은 나에게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만일 내가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사람엑게 대든다면 다른 사람에게 나는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나는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사람에게 대들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⑩ 꾸짖음을 듣고 어물쩍 넘기거나 제대로 듣지 않고 화를 내고 미원하고 빈정대는 사람은 나에게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만일 내가 꾸짖음을 듣고 어물쩍 넘기거나 제대로 듣지 않고 화를 내고 미원하고 빈정댄다면, 다른 사람에게 나는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나는 꾸짖음을 듣고 어물쩍 넘기지 않을 것이며, 올바로 듣고 화내거나 미워하거나 빈정대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⑪ 꾸짖음을 듣고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에게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만일 내가 꾸짖음을 듣고 나의 행동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나는 기분좋거나 유쾌한 사람이 아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나는 꾸짖음을 들으면 나의 행동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⑫ 남에게 혹독하고 원한을 품는 사람은 나에게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만일 내가 남을 멸시하고 지배하려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나는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나는 남을 멸시하지 않을 것이며, 남을 지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⑬ 남을 시기하고 인색한 사람은 나에게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만일 내가 남을 시기하고 인색하다면 다른 사람에게 나는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나는 남을 시기하지 않을 것이며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⑭ 사기 치고 남을 기만하는 사람은 나에게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만일 내가 사기 치고 남을 기만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나는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나는 사기 치지 않을 것이며 남을 기만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⑮ 완고하고 건방진 사람은 나에게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만일 내가 완고하고 건방진 사람은 나에게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만일 내가 완고하고 건방지다면 다른 사람에겍 나는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나는 완고하지 않을 것이며 건방지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⑯ 세속에 묶여 견고하게 집착하여 그것을 쉽게 버릴 수 없는 사람은 나에게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만일 내가 세속에 묶여 그것을 쉽게 버릴 수 없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나는 기분 나쁘고 싫은 사람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나는 세속에 묶여 견고하게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쉽게 버릴 것이다. 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열여섯 가지 자질을 성찰하라]

벗들이여,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와 같이 성찰하여야 합니다.

① 나는 화를 내고 분노의 마음에 지배당하고 있지는 않는가?

② 나는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헐뜯지 않는가?

③ 나는 화를 내고 분노의 마음에 지배당하고 있지는 않는가?

④ 나는 화를 잘 내고 성냄으로 인하여 원한을 품지는 않는가?

⑤ 나는 화를 잘 내고 성냄으로 인하여 요지부동의 고집을 부리지는 않는ㅓ가?

⑥ 나는 화를 잘 내고 분노에 찬 말을 하지는 않는가?

⑦ 나는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사람에게 대항하지는 않는가?

⑧ 나는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사람을 헐뜯지 않는가?

⑨ 나는 꾸짖음을 듣고 꾸짖는 사람에게 대들지 않는가?

⑩ 나는 꾸짖음을 듣고 어물쩍 넘기거나 잘 듣지 않고 화를 잘 내고 미워하고 빈정대지는 않는가?

⑪ 나는 꾸짖음을 듣고 나의 행동을 설명하지 못하는가?

⑫ 나는 남에게 시기하고 인색하지 않는가?

⑬ 나는 남을 시기하고 인색하지 않는가?

⑭ 나는 남에게 사기 치고 남을 기만하지는 않는가?

⑮ 나는 완고하고 건방지게 굴지는 않는가?

⑯ 나는 세속에 묶여 견고하게 집착하여 그것을 쉽게 버릴 수 없는 사람인가?

만일 그렇다면 악하고 건전치 못한 성향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밤낮으로 좋은 성향을 닦으며 기쁘고 행복하게 머물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는 욕망을 제거하고 소멸하였다.

맛지마 니까야 19  드웨다위딱까 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깨달음을 얻기 전 내가 아직 깨닫지 못한 보디삿따였을 때였다.

내가 부지런하고 열성적이고 굳건히 머물 때 감각적 욕망이 일어났다.

그래서 나는 이와 같이 이해하였다.

‘감각적 욕망이 나에게 일어났다. 이것은 나와 남을 해친다 이것은 지혜를 방해하고 괴로움이 되고 열반으로 이끌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하였을 때 감각적 욕망은 네게서 사라졌다.


감각적 욕망이 내 안에서 일어날 때는 언제든지 나는 그것을 버렸고, 제거하였고,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멀리하였다.


자주 생각하고 숙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들에 그대들의 마음은 기울어진다. 만일 그대들의 마음이 자주 감각적 욕망, 악한 생각. 해로운 생각에 마음을 기울이고 숙고한다면, 감각적 욕망, 악한 생각, 해로운 생각을 버리겠다는 마음을 포기하게 되고, 결국 반복되는 감각적 욕망, 악한 생각, 해로운 생각에 빠져버린다.


내가 부지런하고, 열성적이고, 굳건히 머물 때 감각적 욕망을 떠난 [청정한] 마음이 일어났다. 그래서 나는 이와 같이 이해하였다. ‘감각적 욕망을 떠난 청정한 마음이 나에게 일어났다. 이것은 나와 남을 해치지 않는다. 이것은 지혜를 샘솟게 하고 괴로움이 없으며 열반으로 이끈다. 마일 내가 하루 동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하면 나에게 두려움이 없어짐을 본다.


그러나 지나치게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고 숙고하면 육신이 피로고, 육신이 피로하면 마음이 산만해지고, 마음이 산만하면 삼매에 들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안으로 마음을 한결 같이 하고, 고요히 하고, 하나로 하고, 그리고 집중한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내 마음이 산만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자주 생각하고 숙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들에 그대들의 마음은 기울어진다. 만일 자주 감각적 쾌락을 떠난 청정한 마음, 선한 마음, 자비스러움에 대하여 생각하고 숙고하면, 감각적 욕망, 악한 생각, 해로운 생각을 버리게 되고, 결국 감각적 쾌락을 떠난 청정한 마음, 선한 마음, 자비스런 마음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남이 나에게 나쁘게 대하더라도

맛지마 니까야 21 까까쭈빠마경 10-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가르치셨다.

“어떤 사람은 불쾌한 말을 그에게 하지 않는 한 극도로 친절하고 부드럽고 고요하다. 그러나 그에게 불쾌한 말을 하였을 때 비로소 그가 정말로 친절하고 부드럽고 고요한지 어떤지 알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그대들에게 말을 할 때에는 다섯 가지 형태가 있다.

① 때에 맞는 말, 때에 맞지 않는 말

② 진실한 말, 진실하지 않는 말

③ 부드러운 말, 거친 말

④ 선한 말 , 남을 해치는 말

⑤ 우정어린 말, 증오심으로 가득한 말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그대들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우리의 마음은 [불쾌한 말에] 영향 받지 않을 것이며 악한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불쾌한 말을 하는] 그의 이익을 위하여 증오심 없이 자애로운 마음으로 자비로움에 머물 것이다. 우리는 자애로 물든 마음으로 그를 가득 채우면서 머물리라. 그리고 그 사람에서부터 시작하여 증오 없이, 악의 없이, 무한하고, 광활하고, 무량한 자애의 마음으로 온 세상을 물들여 가득 채우면서 머물리라.’

이것이 바로 ‘어떻게 그대들 자신을 단련하여야 하는가’ 의 가르침이다.


배우고 나서 지혜로 뜻을 새기라

맛지마 니까야 22  알라갓두빠마 경 10-12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여기에 어떤 어리석은 사람들이 가르침을 배운다. 숫따, 게야 웨야까라나, 가타, 우다나. 잇띠웃따까, 자따까 아붓따담마, 웨달라. 그러나 이런 가르침을 배우고 나서 지혜로 그 뜻을 새기지 않는다.

지혜로 그 뜻을 새기지 않기 때문에 가르침이 선명치 않다. 그들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교리를 반박하기 위해, 또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위해 가르침을 배우기 때문에 가르침의 배움에서 결실을 얻지 못한다.

여기에 어떤 훌륭한 사람들이 가르침을 배운다 숫따, 게야 웨야까라나, 가타 우다나, 잇띠웃따까, 자따까, 아붓따담마. 웨달라.

그들은 가르침을 배우고 나서 지혜로 그 뜻을 새긴다. 지혜로 그 뜻을 새기기 때문에 가르침을 배우고 나서 지혜로 그 뜻을 새긴다. 지혜로 그 뜻을 새기기 때문에 가르침의 배움에서 결실을 얻는다. 바르게 알아들은 이런 가르침들은 그들에게 오랜 세월동안 행복과 이익을 준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가르침을 바르게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이 나의 가르침을 이해한다면 그것을 마음속에 잘 새기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에게 질문하든지 또는 지혜로운 비구들에게 물어야 한다.”


담마에 대한 토론과 고귀한 침묵

맛지마 니까야 26  아리야빠리예사나 경 1-1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아난 존자에게 와서 말하였다.

“벗 아난다여, 우리는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들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부처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에 아난다 존자가 말하였다.

“존자들어여, 그러면 브라흐민 람마까의 상당으로 오십시오. 거기서 부처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부처님은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 낮 동안 머물기 위해 동쪽 승원, 마가라마뚜 강당으로 가자.”

부처님은 아난다 존자와 함께 동쪽 승원, 미가라마뚜 강당으로 가셨다.

저녁나절 부처님은 명상을 마치고 아난다 존자와 함께 몸을 씻기 위해 목욕하는 곳인 뽑빠꼿따까로 가셔서 몸을 씻은 후 나와서 옷을 하나만 걸치고 몸을 말리셨다.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 브라흐민 람마까 사당이 이 근처에 있는데 아주 쾌적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부처님께서 자비로 그곳으로 가신다면 좋겠습니다.”

부처님은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부처님이 그곳에 도착하였을 때에 그곳에는 많은 비구들이 담마에 대하여 토론을 하고 있었다.

부처님은 잠시 문 밖에서 토론이 끝나기를 기다리신 후 이야기가 끝난 것을 아시고 문을 두드리셨다. 부처님은 준비된 자리에 앉으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지금까지 무엇에 대하여 토론을 하고 있었는가? 중단된 토론은 무엇인가?”

“부처님, 저희들의 중단된 토론은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부처님이 오셨습니다.”

훌륭하다. 그대들이 모여 앉아 담마에 대하여 토론하는 것은 믿음으로 출가한 그대들에게 합당한 일이다. 그대들이 모였을 때는 두 가지를 해야 한다. 그 하나는 담마에 대한 토론과 다른 하나는 고귀한 침묵이다.”


이익과 존경과 명성을 경고하심

맛지마 니까야 29  마하사로빠마 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영취산에 계셨는데 데와닷따가 승단을 [분열하여]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부처님은 데와닷따에 관하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기 한 가문의 자제가 신심으로 출가하엿다. 그는 생각하기를, 나는 생, 로, 병, 사 슬픔, 괴로움, 한탄, 절망에 빠져 있다. 나는 괴로움에 빠져 있고 괴로움에 압도되어 있다. 이 모든 괴로움 덩어리의 종식을 알아야겠다. 고 생각하고 출가 수행자가 되어 살아가면서 물질적 이익도 얻고 존경도 받고 명성도 얻게 된다. 그는 이런 이익과, 존경, 명성에 만족하게 되고 그의 목적은 성취되었다고 여긴다.

이런 이익과 존경과 명성 때문에 그는 우쭐해져서 자기 자신은 추켜세우고 남은 얕잡아 보며 말하기를, 나는 이렇게 이익과, 존경, 명성을 받는데 다른 비구들은 알려지지도 않고 그렇지 못해, 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이익과 존경, 명성에 도취되어 점점 나태해지고 게으르게 된다. 게으르기 때문에 그는 괴로움 속에 머물게 된다. 이런 사람은 청정한 삶의 단단한 나무심이 아닌, 가지와 잎을 잡고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며 수행을 성취하지 못하고 거기서 멈추게 된다.


또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출가하여 물질적 이익, 존경, 명성을 얻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 그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이익, 존경, 명성에 도취하지 않고, 게으름에 빠지지 않아서 계행을 성취한다. 그는 계행을 성취하였다고 생각하고 그의 목표를 이루었다고 여긴다. 그래서 계행을 온전히 갖추었다는 것 때문에 자신은 칭찬하고 남은 비난한다. ‘나는 계행을 갖추고 훌륭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다른 비구들은 계행을 갖추지 못하고 악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계행을 갖추었다는 것에 도취되어 점점 나태해져서 괴로움 속에 살게 된다. 이런 사람은 청정한 삶의 단단한 나무심이 아닌 겉껍질만 붙잡고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며 수행을 성취하지 못하고 거기서 멈추게 된다.


어떤 사람은 출가하여 이익, 존경, 명성을 얻지만, 그것에 도취되지 않고 계행을 잘 지킨다는 자부심에 빠지지도 않으며 삼매를 얻었다고 자만심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는 게으르지 않아 지혜와 통찰력을 얻는다 그는 이런 얻음으로 인하여 자신을 추켜세우고 남을 얕보지 않는다, 그는 지혜와 통찰력에 도취도지 않는다 그는 나태하지도 않고 게으름에 빠지지도 않는다. 이런 정진력으로 그는 중단없는 해탈을 얻는다. 이 중단없는 해탈은 결코 타락하여 퇴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청정한 삶은 이득과 존경, 명성에 이익을 구하고자 함이 아니며, 계행의 성취에서 이익을 구하고자 함이 아니며, 삼매를 얻음에서 이익을 구하고자 함이 아니며 지혜와 통찰력을 얻음에서 이익을 구하고자 함이 아니다. 청정한 삶은 흔들림 없는 마음의 해탈을 앋고자 함이며, 그것은 청정한 삶의 목표이며, 그것은 단단한 나무심을 얻은 것이며, 그것은 궁극이다.”


세 비구의 모범적 수행

맛지마 니까야 31   쫄라고 싱가 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나디까의 긴자까와사타승원에 계셨다. 그때 아누릇다. 난디야, 그리고 낌빌라 존자가 고싱 가살라 나무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부처님은 저녁 무렵 명상을 끝내고 고싱가 살라나무 숲으로 가셨다. 숲을 지키는 사람이 부처님이 오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사문이여, 이 숲에 들어오시면 안됩니다. 여기는 세 명의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 수행하고 있으니 그들을 방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아누루다 존자는 숲을 지키는 사람의 이 소리를 듣고 부처님이 오신 것을 알고는 그에게 말하였다.

“부처님을 막지 마십시오, 오시는 분은 우리 스승이신 부처님이십니다.”

그리고 나서 아누룻다는 난디야와 낌빌라에게 가서 말하였다.

“어서 나오세요, 스승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세 사람 모두가 나와서 부처님을 맞이하였다. 한 사람은 부처님의 발우와 가사를 받고, 한사람은 앉을 자리를 준비하고, 한 사람은 발 씻을 물을 준비하였다. 부처님은 깔개에 앉아 발을 씻으셨다. 세 명의 비구는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누룻다여, 그대들이 잘 지내기를 바라며 편안하기를 바라며 탁발하는데 어떤 어려움도 없기를 바란다.”

“부처님, 저희들은 잘 지내고 편안하고 탁발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아누룻다여 그대들이 서로 화합하고 다툼없이 우유와 물처럼 융합하고 서로 친절한 눈빛으로 대하며 지내기를 바란다.”

“부처님, 저희들은 서로 화합하고 다툼 없이 우유와 물처럼 융합하고 서로 친절한 눈빛으로 대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

“아누룻다여,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잘 지내고 있는가?”

“부처님, 저는 생각하기를, ‘참으로 이것은 나에게 이익이다. 청정한 삶에서 이와 같은 동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커다른 이익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두 존자들에게 자애로운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대합니다. 저는 생각하기를, ‘내가 원하는 것을 제쳐놓고 이 존자들이 원하는 것을 하면 어떨까?’하고 생각하고는 내가 원하는 것은 제쳐놓고 이 존자들이 원하는 것을 따릅니다. 우리들은 몸은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입니다.”

난디야 존자와 낌빌라 존자도 아누룻다 존자가 말한 것과 똑같이 말하였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저희들이 서로 화합하고 다툼 없이 우유와 물처럼 융합하고 서로 친절한 눈빛으로 대하며 지내는 이유입니다.”

“훌륭하구나! 훌륭해. 바라건대 그대들은 모두 부지런하고 열성적이고 굳건히 지내기릴 바란다.”

“부처님, 저희들은 부지런하고 열성적이고 굳건히 지냅니다.”

“아누룻다여, 어떻게 그렇게 부지런하고 열성적이고 굳건히 지내는가?”

“부처님, 그것은 저희들 중 제일 먼저 탁발에서 돌아온 사람이 앉을 자리를 준비하고 마실 물과 씻을 물을 준비하고 찌꺼기 통을 준비합니다. 제일 나중에 탁발에서 돌아온 사람은 남은 음식을 먹고 싶으면 먹고 그렇지 않으면 풀 없는 곳에 버리든지 벌레가 살지 않는 물에 버립니다. 그는 자리를 치우고 마실 물과 씻을 물을 치웁니다. 찌꺼기 통은 깨끗이 씻어서 치우고 식당을 청소합니다. 누구든지 마실 물그릇이나 또 씻을 물그릇이나 또는 배설한 후 씻을 물그릇에 물이 조금 남아 있든지, 또는 비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각각의 물그릇에 물을 채워 놓습니다. 만일 물통이 너무 무거워 혼자 움직이기 어려우면 손짓으로 도와달라고 불러서 손을 맞잡고 옮겨 놓습니다. 이런 작업들 때문에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닷새마다 함께 앉아서 밤을 새워가며 담마를 토론합니다. 이것이 바로 저희들이 부지런하고, 열성적이고 굳건히 지내는 이유입니다.”

이에 부처님은 화합하고 살며 열심히 정진하는 그들을 격려하고 칭찬하셨다.


사문에 합당한 길

맛지마 니까야 40  쭐라앗사뿌라 경 1-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앙가 사람들이 사는 곳에 계셨는데 앙가의 마을인 앗사뿌라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그대들을 ‘사문’이라고 부른다. 떠힌 사람들이 그대들에게 ‘누구냐’고 물었을 때 그대들은 ‘사문’이라고 대답한다. 그처럼 사람들이 말하고 또 그대들이 그처럼 대답하기 때문에 그대들은 이와 같이 수행하여야 한다. 우리는 사문에 합당한 길을 수행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에 대한 사람들의 호칭이 참되고 우리의 대답이 사실이 될 것이며, 우리가 사용하는 법복이나, 탁발음식, 거처 필수의약품을 보시한 사람들에게 큰 결실과 이익을 가져올 것이며, 우리의 출가한 것이 헛되지 않고 알찬 열매를 맺을 것이다.‘


[사문에게 합당하지 않은 길]

그러면 어떤 것이 사문에게 합당한 길을 수행하지 않는 것인가?

탐욕스러운 사람이 탐욕을 버리지 않는 한, 악의를 품은 사람이 악의를 버리지 않는 한, 분노, 원한, 경멸, 질투, 인색, 기만, 사기, 악한 욕망,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이런 나쁜 성향을 버리지 않는 한, 사문에게 합당한 수행을 하지 않는다고 나는 말한다.

- 가사를 입은 자에게 그가 가사를 입었다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나체 고행자에게 그가 다만 나체라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고행하는] 자에게 그가 다만 흙먼지를 뒤집어쓴다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목욕 예식을 하는 자에게 그가 다만 예식을 한다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나무 밑어서 사는 자에게 그가 다만 나무 밑에서 산다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노천에서 사는 자에게 그가 다만 노천에서 산다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서서 고행하는 자에게 그가 다만 서서 고행한다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일정한 간격에 막는자에게 그가 다만 일정한 간격에 먹는다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진언을 외우는 자에게 그가 다만 진언을 외운다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결발 고행자에게 그가 다만 결발 고행자라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 탐욕이 있는 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탐욕이 버려진다며,

- 악의가 있는 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악의가 버려진다면,

- 분노가 있는 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분노가 버려진다면,

- 원한이 있는 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결멸심이 벼려진다면,

-질투가 있는 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질투심이 버려진다면,

-인색한 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인색함이 벼려진다면,

- 남을 가만하는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기만심이 버려진다면,

- 남을 사기치는 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사기심이 버려진다면,

- 악한 욕망이 있는 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악한 욕망이 버려진다면.

- 잘못된 생각을 가진 자가 단지 가사를 입었기 때문에 잘못된 생각이 버려진다면,

그렇다면 그의 친척들이 그가 태어난 바로 그날 가사를 입힐 것이다.

그러나 가사를 입는 사람 가운데서도 탐욕, 성냄, 원한, 경멸, 질투, 인색함, 기만, 사기, 악한 욕망,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본다. 그렇게 때문에 가사 입은 자에게 그가 다만 가사를 입었다고 해서 사문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사문에게 합당한 길]

그러면 어떤 것이 사문에게 합당한 길을 수행하는 것인가? 어떤 사람이든지 탐욕스러운 비구가 탐욕을 버릴 때, 악의를 품고 있는 사람이 악의를 버릴 때, 성내는 사람이 성냄을 버릴 때, 원한에 찬 사람이 원한을 버릴 때, 경멸하는 사람이 경멸을 버릴 때. 기만하는 사람이 기만을 버릴 때, 속이는 사람이 속임을 버릴 때. 기만하는 사람이 기만을 버릴 때, 속이는 사람이 속임을 버릴 때,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잘못된 생각을 버릴 때, 윤회의 근거가 되고 행복하지 않은 곳으로 가게 되는 사문의 이런 얼룩과 결점과, 잘못을 버렸기 때문에 그는 사문에게 합당한 길을 수행한다고 나는 말한다. 그는 자신이 이런 악하고 불건전한 성향에서 깨끗하게 됨을 보며 해탈된 자신을 본다. 이런 것을 볼 때 기쁨이 솟아 난다. 기쁨이 솟아나면 환의심이 일어난다. 환희심이 일어나면 육신은 고요해진다. 육신이 고요해지면 마음은 즐거워진다. 마음이 즐거우면 삼매에 든다.”


괴로운 삶, 즐거운 삶의 이유

맛지마 니까야 46  마하담마사마다나 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 이런 염원을 가지고 있다. 원하지 않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줄어들기를! 원하고 유쾌하고 마음에 드는 일은 늘어나기를!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염원한다 하더라도 원하지 않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늘어나고, 원하고 유쾌하고 마음에 드는 이은 줄어든다. 그대들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가르침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무엇을 따르지 말라야 하는지, 무엇을 연마해야 하는지, 무엇을 연마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는 따라야 할 것은 따르지 않고 따르지 말아야 할 것은 따르고, 연마해야 할 것은 연마하지 않고 따르지 말아야 할 것은 연마하게 된다. 그래서 그에게 원하지 않고 불쾌한 미음에 들지 않는 일은 늘어나고, 원하고 유쾌하고 마음에 드는 일은 줄어 든다.

그러나 여기 가르침을 아는 사람들은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무엇을 따르지 말아야 하는지. 무엇을 연마해야 하는지 무엇을 연마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그는 따라야 할 것은 따르고 따르지 말아야 할 것은 따르지 않고 연마해야 할 것은 연마하고 연마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연마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에게 원하지 않고 불쾌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줄어들고, 원하고 유쾌하고 마음에 드는 일은 늘어난다.”


감각적 쾌락보다 더 평화로운 어떤 것

맛지마 니까야 68  날라까빠나 경 1-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꼬살라국의 날라까바나의 빨라사 숲에 계셨다.

그때 존자 아누룻다, 난디야, 낌빌라, 바구, 꾼다다나, 레와따, 아난다 그리고 그 외에 잘 알려진 여러 명의 매우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 부처님께 신심을 가지고 출가하여 비구가 되었다. 그때 부처님은 비구 승가 대중에 둘러싸여 바깥에 앉아 계셨다. 부처님은 이들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 믿음으로 출가하였는데 이들 은 청정한 삶에서 기뻐하는가?”

부처님이 이렇게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처님은 훌륭한 가문의 자제에게 직접 질문해야겠다고 생각하시고 존자 아누룻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누룻다, 그대들은 모두 청정한 삶을 기뻐하는가?”

“네, 부처님, 저희들은 모두 진정으로 청정한 삶을 기뻐합니다.”

“훌륭하다, 아누룻다여! 청정한 삶을 기뻐한다는 것은 믿음으로 출가한 그대들  모두에게 지당한 일이다. 그대들은 인생의 한창때의 젊은이로서 감각적 쾌락에 빠질 수도 있었지만 그러나 출가를 하였다. 그대들의 출가는 왕의 요청 때문도 아니며, 도둑에 쫓겨서도 아니며, 빛을 졌기 때문도 아니며, 두려움 때문도 아니며, 생계수단을 잃었기 때문도 아니다. 그대들은 이와 같이 ‘나는 생. 로, 병. 사. 슬픔, 한탄, 괴로움. 절망속에 빠져 있다. 참으로 이 괴로움의 덩어리의 종식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출가하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부처님.”

“아누룻다여, 이렇게 출가한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대들이 감각적 쾌락과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에서 벗어나서 환희로움과 즐거움을얻지 못하면,

또는 감각적 쾌락과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에서 벗어나서 환희로움과 즐거움을 얻지 못하면,

또는 감각적 쾌락이나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보다 더 평화로운 어떤 것을 얻는다면,

탐욕과 악의, 게으름과 무기력, 들뜸, 의심, 불만족, 권태가 마음을 사로잡아 머물지 않는다.”


랏타빨라 존자의 출가 이야기

맛지마 니까야 82 랏타빨라 1-25

(랏타빨라의 출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많은 무리의 제자들과 함께 꾸루국을 유행하다가 툴라꼿티따라는 꾸루족의 도시에 도착하셨다.

그때 톨라꼿티따의 브라흐민들과 장자들은 이렇게 들었다.

“사꺄족에서 출가한 고문 고따마가 많은 무리의 제자들과 함께 이곳에 왔다. 지금 그에 대한 이와 같은 좋은 평판이 퍼져 있다. ‘그분은 아라한이고 온전히 깨달은 분이다. 그분은 스스로의 지혜로 깨달아 이셍상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분은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고, 바른 뜻과 문장을 갖추어 가르치신다. 그분은 참으로 완전하고 청정한 삶을 보여주신다.’ 그러니 이러한 아라한을 뵙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래서 톨라꼿티따의 브라흐민들과 장자들은 부처님께로 갔다. 부처님은 그들을 위해 훌륭한 법문을 설해 주시고, 분발케하고, 권고하고, 기쁘게 하셨다.

그런데 거기에는 톨라꼿티따에서 가장 명망 높은 가문의 아들인 랏타빨라도 그 무리 중에 앉아 있었다. 그는 생각하기를, ‘부처님의 가르침을 내가 이해하기로는 집에 살면서 윤이나는 조개껍질처럼 순수하고 완벽한 청정한 삶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머리와 수염을 깎고 노란 가사를 입고 출가하면 어떨까?’

그때 브라흐민들과 장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기뻐하면서 모두 돌아갔다. 그들이 모두 가고 나자 랏타빨라는 부처님께 가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싶다고 말하였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랏타빨라, 출가하겠다고 부모님의 허락은 받았는가?”

“부모님 허락을 받지 않았습니다.”

“여래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지 않은 사람을 출가시키지 않는다.”

“그러면 부모님의 허락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랏타빨라는 부모님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어머니. 아버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가 이해하기로는 집에 살면서 윤이나는 조개껍질처럼 순수하고 완벽한 청정한 삶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머리와 수염을 깎고 노란 가사를 입고 출가하려고 합니다. 제가 출가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사랑하는 랏타빠라야, 너는 우리의 사랑스럽고 소중한 외아들이다.

너는 아주 편안하게 양육되었고 극진한 보살핌 속에 자랐다. 그러니 너는 전혀 괴로움을 모른다. 설령 네가 죽는다 해도 너와 헤어지기를 원치 않는데 하물며 네가 살아있는데 너를 출가하도록 하락하겠느냐?”

랏타빨라는 두 번, 세 번 출가를 요청하였으나 부모님은 여전히 거절하였다. 허락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는 맨바닥에 드러누워서 말하였다.

“나는 어기서 죽든지 아니면 출가할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말하였다.

“사랑하는 아들아, 어서 일어나서 음식을 좀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살아라.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감각적 쾌락도 즐기고 공덕도 쌓으면 도지 않겠니, 우리는 너의 출가를 허락할 수 없다. 설령 네가 죽는다 해도 너와 헤어지기를 원치 않는데 네가 살아있는데 너를 출가하도록 허락하겠느냐?”

그러나 랏타빨라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부모님의 간곡한 부탁에도 랏타빨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랏타빨라의 부모님은 아들의 친구들에게 가서 그동안의 사정을 말하고 아들을설득하도록 부탁하였다. 그러나 친구들의 여러번의 간곡한 청에도 랏타빨라는 침묵할 뿐이었다. 할 수 없이 친구들은 부모님에게 말하였다.

“어머니, 아버지, 랏타빨라는 맨바닥에 드러누워 말하기를 ‘나는 여기서 죽든지 아니면 출가하겠다고.’ 합니다. 만일 부모님이 출가를 허락지 않는다면 그는 거기서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출가를 허락한다면 출가한 후에도 그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출가수행이 재미없으면 집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더 있겠어요? 그러니 출가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래서 부모님은 출가를 허락하였다. 그리고 출가하더라도 반드시 부모님을 방문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렇게 해서 랏타빨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운을 차린 후에 부처님께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그 후 그는 홀로 머물고, 초연하게, 근면하게 열성적으로, 굳건하게 수행하여 오래지 않아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 출가한 목적인 청정한 삶의 최상의 목표를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깨달아 성취하였다. 그는 알았다. 태어남은 부수어지고, 청정한 삶은 성취되었고, 해야 할 일을 다 마쳤고, 더 이상 윤회는 없다.’고 알았다. 그는 아라한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부모님 집을 방문하다)

그 후 랏타빨라 존자는 부처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부모님을 방문하고 싶습니다.”

“랏타빨라, 좋을대로 하여라.”

그래서 랏타빨라 존자는 발우와 가사를 챙겨서 톨라꼿티따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그는 목적지에 도착하여 톨라꼿티따 근교의 꾸루 왕 꼬라위야의 사슴동산에 머물렀다. 그는 아침 일찍 탁발하러 나갔다. 차례로 탁발을 하면서 부모님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랏타빨라의 아버지는 문이 있는 중앙의 방에서 머리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는 저멀리 어떤 사문이 오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이 까까머리 사문들 때문에 우리의 사랑스럽고, 소중한 외동아들이 출가를 해 버렸어!”

랏타빨라 존자는 자신의 아버지 집에서 음식도 얻지 못하고 좋은 대접도 못 받고 오직 수모만 받았다.

그때 그의 친족의 여종이 때 지난 죽을 쏟아 버리려고 하였다. 그것을 보고 랏타빨라 존자는 말하였다.

“자매여, 그것을  쏟아 버리려면 여기 내 발우에다 부르시오.”

여종은 죽을 쏟아 부으면서 그의 목소리 그리고 손발의 특성을 알아 챘다. 그녀는 랏타빨라 존자의 어머니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마님, 주인님의 아들 랏타빨라가 돌아 왔어요!”

“뭐라고? 네가 말한 게 정말라면 너는 더 이상 존의 신분이 아니다.”

그때 존자 랏타빨라는 탁발 수행자를 위해 마련된 거처에서 그 죽을 먹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즉시 그를 찾아가서 말하였다.

“사랑하는 아들 랏타빨라야, 네가 어째서 지난 죽을 먹고 있느냐? 네가 갈 집이 있지 않느냐?”

“장자여, 출가한 자에게 어떻게 자기 집이 있겠습니까? 장자여, 우리는 집이 없습니다. 저는 부모님 집에 갔었습니다. 그러나 음식도 못 얻고 수모만 당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가자, 집으로 가자,”

“됐습니다. 장자여 오늘 음식은 다 먹었습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랏타빨라야, 내일 음식을 들도록 하여라.”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거서 금화로 큰 무더기를 쌓아놓고 덮어 놓았다. 그리고는  랏타빨라의 전처들에게 말하였다.

“얘, 며늘 아가들아, 라타빨라에게 사랑스럽게 보이도록 예쁘게 꾸미고 장식하여라.”

날이 밝자 장자는 온갖 종류의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놓고 랏타빨라에게 알렸다. 랏타빨라는 발우와 가사를 들고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장자는 금화 무더기의 덮개를 벗기고 말하였다.

“사랑하는 랏타빨라야, 이것은 네 어머니의 재산이고 저것은 네 아버지의 것이고 또 이것은 네 조상들의 재산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이 부를 즐기면서 너는 공덕을 쌓을 수 있다. 자, 출가수행을 버리고 잡으로 돌아와라, 이 재산을 즐기면서 그리고 공덕을 쌓으면 되지 않겠니?”

“장자여, 제 충고를 받아들이신다면 이 금화 더미를 수레에 실어 갠지스 강의 깊은 곳에 던저 넣으십시오, 왜냐하면 이런 재물 때문에 슬픔, 괴로움,재난, 절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때 존자 랏타빨라의 전처들이 그의 발을 잡고 말하였다.

“서방님, 그 선녀들이 얼마나 아름답기에 그들을 위해 청정한 삶을 사시는 것입니까?”

“자매들이여, 우리는 선녀들을 위해서 청정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랏타빨라 서방님이 우리를 자매라고 부르다니!”

전처들은 울면서 졸도하고 말았다. 존자 랏타빨라는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장자여, 주실 음식이 있으시면 주십시오. 저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십시오.”

“음식을 먹어라. 사랑하는 랏타빨라야, 음식이 차려져 있다.”

랏타빨라 존자의 아버지는 손수 이것저것 먹으라고 권하고 여러 가지 훌륭한 음식으로 그를 대접하였다. 랏타빨라 존자는 공양을 다 마치고 발우를 챙기고 일어서서 이와 같은 게송을 읊었다.


꾸며진 인형을 보라,

상처로 지어진 육신

병들고 근심 덩어리,

견고하게 머물 곳 없네.


꾸며진 모양새를 보라.

보석과 귀걸이로

해골이 가죽 속에 둘둘 말려 있네.

옷 때문에 매력적인 것 같지.


두 발을 적갈색 물감으로 물들이고

얼굴에는 분을 바르고

어리석은 자는 속일 수 있지만

피안을 구하는 자는 속일 수 없네.


머리는 어덟 갈래로 땋아 내리고

눈에 연고를 발라 꾸미었네.

어리석은 자는 속일 수 있지만.

피안을 구하는 자는 속일 수 없네.


새로 페인트칠한 연고 단지처럼

오물로 가득 찬 몸을 멋지게 꾸미었네

어리석은 자는 속일 수 있지만

피안을 구하는 자는 속일 수 없네


사슴 사냥꾼이 올가미를 쳐 놓았지만

사슴은 올가미에 걸리지 않네

사냥꾼이 슬퍼하게 내버려두고

사슴은 먹이를 먹고 간다네.


랏타빨라 존자와 꼬라위야왕의 대화

맛지마 니까야 82   랏타빨라 경 26-42

(네 가지 상실)

랏타빨라 존자는 아버지 집에서 나와 꼬라위야왕의 사슴동산으로 가서 낮 동안의 명상을 위해 한 나무 아래 앉았다. 그때 이곳의 사냥터 관리인은 청소를 하다가 랏타빨라 존자를 보고 왕에게 가서 말하였다.

“대왕님, 왕께서 항상 그렇게 칭찬하시던 톨라꼿티따에서 가장 훌륭한 가문의 아들인 랏타빨라 존자가 정원의 나무 아래 앉아 있습니다.”

“그럼 오늘 다른 일은 그만두고 지금 존자님을 뵈러 가야겠구나.”

왕은 음식을 준비하여 보내라고 말하고 많은 수레를 대동하고 제왕의 화려한 위용을 보이면서 가장 훌륭한 대신들을 데리고 랏타빨라 존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인사를 나눈 후 왕은 말하였다.

“여기 코끼리 깔개에 앉으십시오. 저는 제 깔개가 있습니다.”

왕은 자리에 앉아 이런 질문을 하였다.

“랏타빨라 존자님. 네 가지 상실[잃음]이 있는데 여기 어떤 사람들은 이 네 가지 상실의 괴로움을 겪었기 때문에 머리와 수염을 깎고 노란 가사를 입고 그리고 출가를 합니다. 네 가지 상실이란 늙음으로 인한 상실, 병듦으로 인한 상실, 재산의 상실, 친족의 상실을 말합니다.

늙음으로 인한 상실이란 무엇일까요. 랏타빨라 존자님, 랏타빨라 존자님, 어떤 사람이 나이가 들어 늙고, 노쇠하고, 고령이 되고, 생의 마지막 단계에 이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나는 늙고, 노쇠하고, 고령이 얻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있는 재산을 늘리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머리와 수염을 깎고 노란 가사를 입고 출가하면 어떨까?“

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늙음으로 인한 상실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랏타빨라 존자님은 지금 아직 젊고 칠흑같은 머리의 젊은이로서 젊음으로 인한 상실도 겪지 않았습니다. 존자님은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들었기에 출가하였습니까?

병듦으로 인한 상실이란 무엇일까요. 랏타빨라 존자님 어떤 사람이 병으로 고통스럴워하고 괴로원하고, 심하게 아픕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나는 병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심하게 아픕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나는 병으로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고 심하게 아프다. 이제는 더 이상 얻지 못한 재물을 얻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있는 재산을 늘리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머리와 수염을 깎고 노란 가사를 입고 출가하면 어떨까?’ 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병듦으로 인한 상실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존자님은 지금 병도 없고 괴로움도 없습니다. 존자님 소화가 잘되고 몸이 너무 차지도 않고 너무 덥지도 않은 중간입니다. 존자님은 어떤 병듦으로 인한 상실도 겪지 않았습니다. 존자님은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들었기에 출가하였습니까?

재산의 상실이란 무엇일까요. 랏타빨라 존자님, 어떤 사람이 부유하고 대부호이고 굉장히 소유한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재산이 점점 줄어듭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전에 나는 부유하고 대부호이고 소유한 것이 굉장히 많았다. 그런데 점점 재산이 줄어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얻지 못한 재물을 얻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있는 재산을 늘리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머리와 수염을 깎고 노란 가사를 입고 출가하면 어떨까? 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재산의 상실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랏타빨라 존자님은 툴라꼿티따의 가장 명망있는 가문의 자제입니다. 존자님은 어떤 재산의 상실도 겪지 않았습니다. 존자님은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들었기에 출가하였습니다.

친족의 상실이란 무엇일까요, 랏타빨라 존자님, 어떤 사람이 많은 친구와 동료와 친척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친척들이 점점 줄어듭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전에 나는 많은 친구와 동료와 친척이 있었다. 그런데 그 친척들이 점점 줄어든다. 이제는 더 이상 얻지 못한 재물을 얻는 것도 쉬운 일도 아니고 있는 재산을 늘리는 일도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니 머리와 수염을 깎고 노란 가사를 입고 출가하면 어떨까?’

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친척의 상실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랏타빨라 존자님은 툴라꼿티따에 많은 친구와 동료, 친적들이 있습니다. 존자님은 어떤 친족의 상실도 겪지 않았습니다. 존자님은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들었기에 출가하였습니까?”

(랏타빨라 존자의 출가 이유 : 네 가지 담마의 요점)

“랏타빨라 존자님, 이것들은 네 가지 상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상실의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출가를 합니다. 그러나 존자님은 이것들 중에 어떤 것도 겪지 않았습니다. 존자님은 무엇을 알았고,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들었기에 출가하였습니다.?”

“대왕님, 온전히 깨달음을 성취하신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네 가지 가르침의 요점이 있습니다. 이 가르침을 듣고, 보고, 알았기 때문에 출가하였습니다. 무엇이 넷입니까.

‘첫째는 이 세상 모든 것은 불안정하여 횝쓸려 가버린다.

둘째는 이 세상은 의지처도 없고 보호자도 없다.

셋째는 이 세상은 내 것이라고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한다.

넷째는 이 세상은 불완전하고 만족이 없으며 갈애의 노예삶이다.‘

대왕님 온전히 깨달음을 성취하신 부처님께서 이렇게 네 가지 가르침의 요점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가르침을 듣고, 보고, 알았기 때문에 출가하였습니다.”

(① 이세상은 불안정하여 휩쓸려 가버린다.)

“랏타빨라 존자님, ‘이 세상 모든 것은 불안정하여 횝쓸려 가버린다.’고 하셨는데 이말은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겠습니까?”

“대왕님게서 20대의 나이에는 코끼리를 타는 것에도 능하고, 말에도 능하고, 전차에도 능하고, 활에도 능하고,칼에도 능하고, 팔과 다리에 힘이 있고, 강건하여 전쟁도 할 수 있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존자님. 가끔 내가 그때 초인적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힘에 있어서 나와 대등한 자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대왕님, 그러면 그대는 지금도 팔과 다리에 힘이 있고 전쟁을 할 정도로 강건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랏타빨라 존자님, 지금 나는 늙어 노쇠하고, 생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는데 내 나이 여든이 되었습니다. 가끔 이쪽으로 발을 디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곳으로 발이 갑니다.”

“대왕님, 이런 이유로 온전히 깨달으신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 모든 것은 불안정하여 횝쓸려 가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알고보고 들었을 때 나는 출가를 하였습니다.”

존자님, 부처님께서 얼마나 훌륭하게 말씀하셨는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불안정하여 횝쓸려 가버립니다.”


(② 이 세상은 의지처도 없고 보호자도 없다.)

“그렇면 존자님. 우리  궁성에는 코끼리군대, 기마군대, 전차군대, 보병이 있어서 어떤 위험에서도 우리를 지켜 줍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의지처도 없고 보호자도 없다.’고 하셨는데 이 말 뜻은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겠습니까?”

“대왕님은 어떤 만성질환이 있습니까?”

“나는 만성 풍병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친구들과 친척들이 내 주위에 서서 ‘꼬라위야왕은 죽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대왕님의 친구나 동료나 친척들에게 ‘이리 와서 내가 좀 덜 아프게 내 고통을 좀 나누어 가져가라.’고 명령할 수 있습니다까? 아니면 그 고통을 홀로 감당해야 합니까?”

“명령할 수 없습니다. 존자님, 그 고통을 나 홀로 감당해야 합니다.”

“대왕님, 이런 이유로 온전히 깨달으신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은 의지처도 없고 보호자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알고 보고 들었을 때 나는 출가를 하였습니다.“

“존자님, 부처님께서 얼마나 훌륭하게 말씀하셨는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의지처도 없고 보호자도 없습니다.

(③ 이 세상은 내 것이라고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존자님. 우리 궁성에는 지하 저장실과 금고에 많은 금화와 금이 있습니다. 그런데 존자님은, ‘이 세상에는 내 것이라고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모두 두고 떠나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말 뜻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겠습니까?”

“대왕님은 지금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을 즐기면서 삽니다. 그러나 저 세상에도 똑같은 감각적 쾌락을 즐길 수 있을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그 재산을 이어받고 당신은 지은 업에 따라 갈 길을 갈까요?”

“나는 저 세상에서 그것들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 재산을 이어받고 나는 업에 따라 내 갈 길을 갈 것입니다.”

“대왕님, 이런 이유로 온전히 깨달으신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에는 내 것이라고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모두 두고 떠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알고보고 들었을 때 나는 출가를 하였습니다.”

“존자님. 부처님께서 얼마나 훌륭하게 말씀하셨는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침으로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내 것이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두고 떠나야 합니다.”

(④ 이 세상은 불완전하고 만족이 없으며 갈애의 노예의 삶이다.)

“존자님, ‘이세상은 불완전하고 만족이 없으며 갈애의 노예의 삶이다.’라고 하셨는데 이 말뜻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겠습니까?”

“대왕님은 번창한 꾸루국을 통치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존자님.”

“대왕님, 어떤 믿을만한 사람이 동쪽에서 와서 말하기를, ‘나는 동쪽에서 왔는데 그곳에 부유하고 번창하고 사람들로 붐비는 큰 나라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코끼리군대, 기마군대, 천차군대 보병군대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상아가 있고 많은 가공된 금은과 가공되지 않은 금은이 있으며 그리고 많은 여인들이 있습니다. 대왕님의 현재의 병력으로 그것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정복하십시오, 대왕님.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왕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타빨라 존자님, 나는 그 나라를 정복하여 통치할 것입니다.”

“대왕이여, 어떤 믿을만한 사람이 서쪽에서 말하고, 남쪽에서 와서 똑같이 말하였다고 합시다. 그러면 대왕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존자님, 나는 그 나라들을 모두 정복하여 통치할 것입니다.”

“대왕이여, 이런 이유로 온전히 깨달으신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은 불완전하고 만족이 없으며 갈애의 노예의 삶이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알고, 보고 들었을 때 나는 출가를 하였습니다.”

“존자님, 부처님께서 얼마나 훌륭하게 말씀하셨는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불완전하고 만족이 없으며 갈애의 노예의 삶입니다.”

이어서 랏타빨라 존자는 게송으로 말하였다.

세상에서 부유한 사람을 보면

어리석어 얻는 재물을 보시할 줄 모르네.

욕심스럽게 재물을 쌓아두고

더욱더 감각적 쾌락을 열망하네.


땅의 무력으로 정복한 왕은

바다에 이르기까지 온 땅을 다 통치하고

아직도 바다 이쪽에 만족하지 못하고

바다 저쪽까지 탐내네.


왕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와 같이

갈애를 버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면

아직 만족하지 않은 채 시체를 떠나네.

세상에서 감각적 쾌락은 만족이 없네.


친족들은 울며 머리를 쥐어뜯고

‘이이고,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네.’

수의로 감싸서 운반하여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불태우네.


재물은 뒤에 남긴 채 수의 한 벌만 입고

불타는 막대기에 찔리면서 장작더미 우이에서 불타네.

죽는 사람에게는 친족도, 친구도,

안식처가 될 수 없고 의지처가 될 수 없네.

 

상속자가 재물을 가져가고

사람은 업에 따라 제 갈 길을 가야 하니

죽을 때는 자식도. 아내도, 재물도, 토지도

아무것도 그를 따를 수 없네.


재물이 많다해서 장수할 수 없고

부유함이 늙음을 몰아낼 수 없네

‘인생은 짭다’고 모든 성인은 말하네

영원한 것은 없으며 변화할 뿐이라고


부자든 가난하든 똑같이 죽음이 오네

성인도 어리석은 자도 똑같이 죽음이 오네

어리석은 자는 그 어리석음에 의해

마치 때려눕힌 듯 누워 있지만

현명한 자는 죽음이 와도 흔들리지 않네.


재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혜이며

그 지혜로움으로 궁극의 목표를 얻네.

어리석음으로 사람들은 악행을 저지르고

세세생생 그 목표를 도달하지 못하네.


달콤한 즐거운 수 많은 감각적 쾌락이

여러 면으로 마음을 괴롭히니

감각적 쾌락에 얽매임의 위험을 보고

대왕이여, 나는 줄가를 하였네.


과일이 나무에서 떨어지듯이 사람도 그와 같네

젊은이든 늙은이든 몸이 부서지면 떨어지나니

대왕이여, 이것을 보고 나는 출가하였네

사문의 삶이 확실히 더 훌륭하다네.



바람직하지 못한 생각과 말과 행동

맛지마 니까야:88 바히띠까 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때 아난다 존자는 낮 동안의 명상을 위하여 동쪽 승원 미가라마뚜 강당으로 갔다.

꼬살라의 빠세나디왕은 아난다 존자를 멀리서 보고 사람을 보내어 잠깐만 기다리라고 해 놓고 아난다 존자에게 가서 말하였다.

“아난다 존자님, 바쁘지 않으시면 자비심으로 아찌라와띠 강가로 저와 함께 가신다면 좋겠습니다.”

아난다 존자는 침묵으로 동의하였다. 아난다 존자는 아찌라와띠 강가로 가서 나무 아래 앉았다. 왕은 말하였다.

“아난다 존자님. 여기 코끼리 깔개에 앉으시지요.”

“아난다 존자님, 부처님은 지혜로운 사문이나 브라흐민들이 비난할 만한 그런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을 하실까요?”

“대왕님, 부처님은 그런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아난다 존자님, 우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조사나 평가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들이 조사와 평가를 하고 남을 칭찬하거나 비난하는 것에 대하여는 가치가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사문이나 브라흐민들이 비난할만한 그런 생각과 말과 행동은 어떤 것입니까?”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이나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비난의 대상입니다. 대왕님.”

“아난다 존자님,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이 바람직하지 못한 것입니까?”

“비난받을 만한 생각과 말과 행동은 어떤 것이든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아난다 존자님, 비난받을 만한 생각과 행동은 어떤 것입니까?”

“괴로움을 가져오는 생각과 말과 행동입니다.”

“아난다 존자님,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이 괴로움을 가져옵니까?”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이든 고통스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아난다 존자님,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이 고통스런 결과를 가져옵니까?”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이든 고통스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아난다 존자님,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이 고통스런 결과를 가져옵니까?”

“자신을 괴로움으로 이끌거나 다른 사람을 괴로움으로 이끌거나 나와 남 모두를 괴로움으로 이끌거나, 이로 인하여 바람직하지 못한 것은 증가하고 바람직한 것은 줄어들 때, 이와 같은 생각과 말과 행동은 지혜로운 사문이나 브라흐민에 의하여 비난을 받습니다.”


깨달음으로 이끄는 것들

맛지마 니까야 122  마하순냐따 경1-7,1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이 사꺄족들이 있는 곳에 계셨는데 까삘라왓투의 니그로다 승원에 계셨다. 부처님은 낮 동안의 명상을 위해 사꺄족의 처소인 깔라케마까로 가셨다.

그런데 그곳에는 많은 잠자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생각하기를 ‘많은 잠자리가 여기 준비되어 있는데 많은 비구들이 여기에 머무는가?’ 라고 생각하셨다. 그때 아난다 존자와 많은 비구들을 사꺄족의 처소인 가따에서 법복을 만들고 있었다.

부처님은 저녁나절, 명상을 마치고 아난다 존자가 있는 가따로 가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 깔라케마까에 깔개와 잠자리가 많이 준비되어 있는데 거기에 비구들이 많이 머무는가?”

“예, 부처님, 거기에 많은 비구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지금은 가사를 만드는 때라서 그렇습니다.”

“아난다, 만일 비구가 동료들과의 모임을 즐기고, 모임의 즐거움에 몰두하고, 무리에서 즐기고, 무리에서 기쁨을 구한다면, 빛이 바래어 빛나지 않는다. 참으로 아난다. 이런 모임을 즐기고 무리의 즐거움에 빠져버린 사람이 벗어남의 더 없는 기쁨, 떠남의 더 없는 기쁨, 평화의 더 없는 기쁨, 깨달음의 더 없는 기쁨을 곤란이나 어려움 없이 뜻대로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기 여래에 의하여 발견된 머묾이 있다. 보이는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안으로 비어있음에 머무는 것을 발견했다. 만일 안으로 비어있는 마음에 머물기를 원한다면 마음을 차분히 안청시켜야 한다. 그리고 고요히 하고 골똘히 한 가지에 집중을 해야 한다.

만약 말을 하고 싶어지면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일너 이야기들은 천박스럽고, 상스럽고, 조잡하고, 유익하지 않다.’이런 이야기들은 천박스럽고, 상스럽고, 조잡하고, 유익하지 않다. 이런 이야기들은 어리석음에서 깨어나게 하지 않으며, 번뇌의 소멸, 평화로움, 개달음, 그리고 열반으로 이끌지 않는다.’

그러나[번뇌의] 소멸에 대한 이야기, 해탈로 이끄는 이야기, 완전한 깨어있음, 평화로움, 깨달음, 열반으로 이끄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말하자면 욕심이 적음, 만족, 떠남, 세속으로부터 초연함, 정진, 계행, 심매, 지혜, 해탈, 해탈의 앎과 봄과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나는 말할 것이다.’라고 결심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온전히 깨어있게 된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수행자의 재난

맛지마 니까야 122 마하순냐따 경 24

이어서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 청정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 어떻게 재난이 일어나는가? 어떤 수행자가 숲이나, 나무 밑, 산비탈, 언덕 동굴, 확 트인 곳과 같은 한적한 곳에 수행처를 마련한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수행하는 사람을 브라흐민이나 장자들 그리고 도시와 시골에서 사람들이 그를 방문한다. 그들과의 만남의 결과 그는 욕망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갈애에 휘말리고, 그들을 부러워하고, 다시 출가전의 사치함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것이 수행자의 재난이다. 그는 악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것에 굴복했으며, 그것은 윤회를 가져오며, 괴로움과 고통을 가져오며, 생로병사를 가져온다. 이것이 청정한 삶을 사는 사람의 재난이다.”


누가 칭찬이나 비난을 하더라도

다가 니까야 브라흐마잘라 경 1:1-1: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500명의 제자들과 함께 라자가하와 날란다 사이의 큰길을 따라 가고 계셨다. 그때 방랑수행자 숩빠야도 그의 제자 브라흐마닷따와 함께 같은 길을 뒤따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숩삐야는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를 여러 가지로 헐뜯었고 브라흐마닷따는 그 반대로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를 칭찬하였다.

부처님과 비구들은 하룻밤을 묵기 위하여 왕의 휴게소인 암발랏티까 정원으로 갔다. 쑵빠야도 그의 제자와 함께 암발랏티까 정원으로 갔다. 그는 계속해서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를 비방하였고 그의 제작는 반대로 칭찬하였다.

이른 아침 많은 비구들이 둥그런 찬막 안에 모여 앉아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벗들이여, 부처님께서 각각 다른 성향을 가진 중생을 선명한 통찰력으로 이해하심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쑵빠야는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를 비방하고 그 제자는 반대로 칭찬하였습니다.”

부처님은 비구들의 이와 같은 이야기를 아시고 천막으로 가셔서 비구들의 이야기 내용을 들으신 후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만일 다른 사람이 나와 가르침과 승가를 헐뜯더라도 그대들은 화를 내거나 원망하거나 불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대들이 화를 내거나 불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대들이 화를 내거나 불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대들이 화를 내거나 불쾌하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직 그대들에게 장애가 될 뿐이다. 화가 나고 불쾌할 때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분간할 수 있는가?”

“ 분갈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

“만일 다른 사람이 나와 가르침과 승가를 헐뜯는다면 그대들은 그 사람에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즉, ‘그 말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만일 다른 사람이 나와 가르침과 승가를 칭찬한다면 그대들은 기뻐하거나 우쭐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대들이 그런 칭찬에 기뻐하거나 우쭐해한다면 그것은 오직 그대들에게 장애일 뿐이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방문해야 할 네 곳 : 4성지

디가 니까야 :16 마하빠리납바나 경5:7-8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께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 전에는 여러 다른 지역에 우기 안거를 마친 비구들이 여래를 뵙기 위하여 오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고무시키는 존경스런 비구들을 맞이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가시고 나면 우리는 이렇게 마음을 고무시키는 비구들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아난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신심을 가지고 방문해야 할  네 곳이 있다. 이곳들은 간절하게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곳이다.

- 여기는 여래가 태어나신 곳이다. 이곳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신심을 가지고 방문해야 할 곳이다.

- 여기는 여래가 위없는 깨달음을 얻으신 곳이다. 이곳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신심을 가지고 방문해야 할 곳이다.

- 여기는 여래가 진리의 바퀴를[처음] 굴리신 곳이다. 이곳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신심을 가지고 방문해야 할 곳이다.

-  여기는 여래가 열반하신 곳이다. 이곳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신심을 가지고 방문해야 할 곳이다.

아난다, 이 네 곳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신심을 가지고 방문해야 할 곳이다.”


앗굿따라 니까야 1부 4:1-10

길들여지지 않고, 간수되지 않고, 보호되지 않고, 절제되지 않은 마음만큼 많은 해로움을 가져오는 다른 어떤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이런 마음은 참으로 많은 해로움을 가져온다.

길들여지고, 간수되고, 보호되고, 절제된 마음만큼 많은 이익을 가져오는 다른 어떤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이런 마음은 참으로 많은 이익을 가져온다.


앙굿따라 니까야 1부 5:8

마음만큼 그렇게 재빨리 변하는 다른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얼마나 빨리 마음이 변하는지 비유를 든다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야 할 사람과 따르지 말아야 할 사람

앙굿따라 니까야 3부 27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세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 넌더리쳐야 할 사람으로 피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따르지 말고 섬기지 말고 공경하지 말아야 한다.

- 무관심으로 대하여야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따르지 말고 섬기지 말고 공경하지 말아야 한다.

- 따라야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라은 따라야 하고 섬기고 공경해야 한다.

넌더리쳐야 할 사람으로 피해야 할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은 계행을 지키지 않고, 악행을 하고, 청정하지 않고, 의심쩍은 행동을 하고, 비밀스런 행동을 한다. 그는 사문인 체해도 사문이 아니다. 그는 바르게 사는 체해도 바르게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안으로 썩어있고 욕망과 오물 더미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사람은 넌더리쳐야 할 사람이며 피하여야 할 사람으로 따르지 말고 섬기지 말고 공경하지 말아야 한다.

무관심으로 대하여야 할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은 성미가 급하고 사납다. 어떤 것이라도 사소한 것이라도 그에게 말하면 그는 격분하고 성내고 시비를 건다. 그는 원망하여 성냄과 증오를 드러내고 심술을 부린다. 마치 곪은 종기가 꼬챙이에 찔렸을 때 피와 고름이 더욱 더 많은 나오는 것처럼 그는 성미가 급하고 사납다. 이런 사람은 무관심으로 대하여야 하는 사람으로 따르지 말고 섬기지 말고 공경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야 하고 섬겨야 하고 공경해야 할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은 계행을 지키고 훌륭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은 따라야 하고 섬겨야 하고 공경하여야 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와 같이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살아있는 동안 공덕을 짓자

앙굿따라 니까야 3부 51

어느 때 생의 마지막에 다다른 120세의 노쇠하고 연로한 두 사람의 브라흐민이 부처님께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고따마 존자님, 우리는 브라흐민입니다. 이제 노쇠하고 늙고 생의 마지막에 다다랐고 120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하고 좋은 일이라고 한 것이 없고 [내생의]두려움에 대한 공덕도 짓지 못하였습니다.

고따마 존자님, 오랫동안 저희들에게 행복과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저희들을 위하여 가르침을 주십시오.”

“ 참으로, 브라흐민이여, 이 세상은 늙음과 질병과 죽음에 의ㅏ여 횝쓸려 가버립니다. 이 세상이 늙음과 질병과 죽음에 의하여 휩쓸려 갈 때 생과 말과 행동으로 자기 자신을 제어하는 사람은, 이 세상을 떠 날때에 이런 자제하는 삶이 귀의처가 될 것입니다.”


삶은 휩쓸려가고 인생은 짧다

늙음에 다다른 이에게 피난처가 없네

죽음의 두려움을 알아차리고

행복으로 이끄는 선을 행하세.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자신을 절제하고

살이있는 동안 공덕을 지으면

죽을 때 행복을 가져온다네.


성내는 모양의 세 가지

앙굿따라 니까야 3부 130 (p510)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바위에 새기는 것과 같은 사람, 땅에 새기는 것과 같은 사람, 물에 새기는 것과 같은 사람이 있다.

바위에 새기는 것과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은 자주 와를 낸다. 그리고 그 성냄은 오래간다. 그것은 마치 바위에 새긴 각문이 바람이나 물이나 세월의 흐름으로도 쉽게 지워지지 않은 것처럼, 어떤 사람은 자주 화를 내고 그 성냄은 오래 간다.

땅에 색l는 것과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은 자주 화를 낸다. 그러나 그의 성냄은 오래가지 않는다.

물에 새기는것과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남이 심하게 말을 하거나 무례하게 말을 해도 그와 쉽게 화해하고 우호적으로 지낸다.

그것은 마치 물위의 자취가 즉시 없어지는 것처럼 그는 남의 무례하고 심한 말에도 성내지 않고 오히려 그와 화해하고 우호적으로 지낸다.


아침, 낮, 저녁이 행복한 이유

앙굿따라 니까야 3부

누구든지 아침 동안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르게 실천하면 행복한 아침이 찾아온다.

누구든지 낮 동안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르게 실천하면 행복한 낮이 찾아온다.

누구든지 저녁동안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르게 실천하면 행복한 저녁이 찾아온다.

친척 그리고 나의 스승에 대한 명성이 두루 퍼지기를’하고 바랍니다.

재물과 명성을 얻은 후에 셋째는 ‘내가 오랫동안 살았으면, 그리고 장수함을 얻기를 ’하고 바랍니다. 재물, 명성, 장수함을 얻은 후에는 넷째는 ‘죽은 후 몸이 파괴되어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아나기를’ 하고 원합니다. 이 네 가지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원하지만 매우 얻기 어려운 것입니다.

장자여, 그런데 이런 재물, 명예, 장수, 좋은 곳에 태어남의 네 가지를 얻기 위해서 필요한 네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성취, 계행의 성취, 관용의 성취, 그리고 지혜의 성취’입니다.

무엇이 믿음의 성취입니까? 훌륭한 제자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는 여래의 깨달음에 이와 같이 믿음을 둡니다. 부처님은 ‘아라한이시며, 온전히 깨달으신 분, 지혜와 덕행을 갖춘 분, 바른 길로 잘 가신 분, 세상을 잘 아는 분, 견줄 바가 없는 분, 사람을 길들이는 분, 신과 인간의 스승, 깨달으신 분, 존귀하신 분,’이라는 믿음을 갖습니다.

무엇이 계행의 성취입니까? 훌륭한 제자는 생명을 파괴하지 않으며, 도둑질을 하지 않으며, 거짓말하지 않으며, 삿된 음행을 하지 않으며, 나태함의 근본인 술이나 취하게 하는 것을 금합니다. 이것이 계행의 성취입니다.

 무엇이 관용의 성취입니까? 훌륭한 제자는 인생함의 때가 없이 재가 살며 손이 커서 남에게 관대하고 주는 것을 기뻐하고 남의 요청에 응하고 베풂과 나눔을 기뻐합니다. 이것이 관용의 성취입니다.

무엇이 지혜의 성취입니까? 훌륭한 제자는 ‘탐욕, 욕망, 악의, 게으름과 나태함, 들떠있음과 혼동, 의심’ 이 마음의 더러움임을 알고 이것들을 버립니다. 이런 것들을 버린 사람은 큰 지혜의 훌륭한 제자, 통찰자를 가진 사람, 지혜를 성취한 사람이라고 불립니다. 이것이 지혜의 성취입니다.


훌륭한 사람과 저열한 사람의 특성

앙굿따라 니까야 4부 73

비구들이여, 네 가지 특질을 가진 사람은 저열한 사람이라고 알아야 한다. 무엇이 넷인가?

① 저열한 사람은 묻지도 않았는데 다른 사람의 결점을 들추어낸다.

하물며 물었을 때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만약 어떤 사람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는 그의 결점을 하나도 생략하지 않고 아주 자세하게 말한다.

② 저열한 사람은 어떤 사람에 대하여 질문을 받았는데도 그 사람의 칭찬은 말하지 않는다. 하물며 질문을 받지 않는다면 말해 무엇 하겠는가. 질문에 마지못해 대답해야 할 경우에는 좋은 칭찬거리는 생략하고 머뭇거리면서 대충대충 말해버린다.

③ 저열한 사람은 자신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는 자신의 잘못은 드러내지 않는다. 하물며 질문을 받지 않는다면 말해 무엇 하겠는가. 질문에 마지못해 대답해야 할 경우에는 자신의 잘못은 생략하고 머뭇거리면서 대충대충 말해 버린다.

④ 저열한 사람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자랑거리를 늘어놓는다.

하물며 물음을 받는다면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만약 질문을 받았을 때는 자신의 자랑거리는 하나도 생략하지 않고 머뭇거리지도 않고 아주 자세하게 말한다.

이런 네 가지 특질을 가진 사람은 저열한 사람이라고 알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네가지 특질을 가진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알아야 한다. 무엇이 넷인가?

① 훌륭한 사람은 어떤 사람에 대하여 질문을 받았을 때 그 사람의 결점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물며 질문을 받지 않았을 때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질문을 받았을 때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생략하고 머뭇거리면서 대충대충 말한다.

② 훌륭한 사람은 묻지도 않았는데 다른 사람의 칭찬거리를 드러낸다. 하물며 누가 묻는다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질문에 대하여 대답해야 하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칭찬거리를 하나도 생략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자세히 말한다.

③ 훌륭한 사람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허물을 드러낸다. 하물며 누가 묻는다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때는 자신의 하물을 하나도 생략 없이 주저함 없이 자세히 말한다.

④ 훌륭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자신의 자랑거리를 드러내지 않는다. 하물며 질문을 받지 않는다면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마지못해 대답해야 할 경우에는 자신의 자랑거리를 생략하고 머뭇거리면서 대충 말한다.

이런 네 가지 특징을 가진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알아야 한다.


생각과 말과 행동을 바르게

앙굿따라 니까야 4부 116

비구들이여, 네 가지 경우에 부지런함을 실천해야 한다. 무엇이 네인가?

행동에 있어서 나쁜 행위는 버리고 좋은 행위는 연마해야 한다. 여기에 게을러서는 안된다.

말에 있어서 나쁜 말을 버리고 좋은 말은 연마해야 한다. 여기에 게을러서는 안된다.

생각에 있어서 나쁜 생각은 버리고 좋은 생각은 연마해야 한다. 여기에 게을러서는 안된다.

잘못된 견해는 버리고 바른 견해는 연마해야 한다. 여기에 게을러서는안된다.

이와 같이 생각과 말과 행동과 견해에서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연마할 때 미래의 존재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늙음, 병듦, 죽음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

앙굿따라 니까야 5부 48

여기에 이 세상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얻어질 수 없는 다섯 가지 상태가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①“늙기 마련인 것이 늙지 않기를!”이것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얻을 수 없다.

② “병들기 마련인 것이 병들지 않기를!”이것은 이 세상의 누구에 의해서도 얻을 수 없다.

③ “죽기 마련인 것이 죽지 않기를!” 이것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얻을 수 없다.

④ “허물어지기 마련인 것이 허물어지지 않기를!” 이것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얻을 수 없다.

⑤ “ 끝나기 마련인 것이 끝나지 않기를!” 이것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얻을 수 없다.

이 다섯 가지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얻을 수 없다.


가르침을 모르는 범부에게 늙기 마련인 늙음이, 병들기 마련인 병듦이, 죽기 마련인 죽음이, 허물어지기 마련인 허물어짐이, 끝나기 마련인 끝남ㅇl 온다. 그에게 늙음, 병듦, 죽음, 허물어짐, 끝남이 올 때 그는 이렇게 숙고하지 않는다. ‘나에게만 이런 것들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오고 감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든지 그리고 죽음과 탄생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든지 모든 사람에게 이런 것들은 온다. 만일 이런 것들이 올때 슬퍼하고 한탄하고 울부짖고 가슴을 치고 산란함에 빠져버리면, 밥맛도 없고, 몸은 추하게 되고 일에 게으르게 되고 적들은 기뻐할 것이고 친구들은 슬퍼할 것이다.’라고 숙고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올때 그는 슬퍼하고 초췌해지고 울부짖고 가슴을 치고 사람함에 빠진다.

이런 사람은 가르침을 모르는 범부라고 부르며 그는 슬픔의 독화살을 맞은 사람으로 자기 자신을 괴롭힐 뿐이다.


그러나 가르침을 아는 훌륭한 제자에게 늙기 마련인 늙음이, 병들기 마련인 병듦이, 죽기 마련인 죽음이, 허물어지기 마련인 허물어짐이, 끝나기 마련인 끝남이 온다. 그에게 늙음, 병듦, 죽음, 허물어짐, 끝남이 올 때 그는 이렇게 숙고한다.

‘나에게만 이런 것들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오고 감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 든지 그리고 죽음과 탄생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든지 모든 사람에게 이런 것들은 온다. 만일 이런 것들이 올 때 슬퍼하고 한탄하고 울부짖고 가슴을 치고 산란함에 빠져버리면, 밥맛도 없고 몸은 추하게 되고 일에 게으르게 되고 적들은 기뻐할 것이고 친구들은 슬퍼할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그는 이런 것들이 올 때 슬퍼하지 않고 한탄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가슴을 치지 않고 산란함에 빠지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가르침을 아는 훌륭한 제자라고 부르며 그는 슬픔의 독화살을 뽑아 버린 사람이다. 슬픔도 없고 독화살도 뽑아버린 훌륭한 제자는 번뇌를 완전히 소멸한 사람이다.

이와 같이 이 세상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얻어질 수 없는 다섯 가지 상태가 있다.


분명한 다섯 가지 명제

앙굿따라 니까야 5부 57

비구들이여, 그가 여자든 남자든, 재가자든 출가자든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자주 되새겨야 할 다섯 가지 사실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① 나는 분명히 늙어간다. 나는 늙음을 피할 수 없다.

② 나는 분명히 병이 생긴다. 나는 병듦을 피할 수 없다.

③ 나는 분명히 죽게 된다. 나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④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변하게 되고 나는 그들과 헤어져야 한다.

⑤ 나는 내 업의 주인이며 상속자다. 선업을 짓든 악업을 짓든 이것으로 나는 상속자가 될 것이다.

이것들을 여자든 남자든, 재가자든 출가자든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자주 되새겨야 한다.

그러면 ‘나는 분명히 늙어가고 늙음을 피할 수 없다.’고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젊은 시절에는 젊음에 대한 자만심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젊음에 대한 자만심에 도취되어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악을 짖게 된다. 그러나 분명히 늙는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사람은 젊음에 대한 자만심을 모두 버리게 되거나 자만심이 줄어들에 된다.

‘나는 분명히 병도 생기고 병듦을 피할 수 없다.’ 고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건강한 동안에는 건강에 대한 자만심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건강에 대한 자만심에 도취되어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악을 짓개 된다. 그러나 분명히 병도 생기고 병듦을 피할 수 없다고 되새기는 사람은 건강에 대한 자만심을 모두 버리게 되거나 자만심이 줄어들게 된다.

‘나는 분명히 죽게 되며 죽음을 벗어날 수는 없다.’고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살고 있는 동안에는 삶에 대한 중만감이 가득하다. 그래서 삶에 대한 충만감이 가득하다. 그래서 삶에 대한 충만감에 도취되어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악을 짓게 된다. 그러나 분명히 죽음이 오며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되새기는 사람은 삶에 대한 자만심을 모두 버리게 되거나 자만심이 줄어들게 된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변하게 되고 나는 그들과 헤어져야 한다.’고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은 자기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열정적인 욕망을 갖는다. 그래서 열정적인 욕망에 도취되어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악을 짓게 된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변하게 되고 나는 그들고 헤어져야 한다.’고 되새기는 사람은 열정적인 욕망을 모두 버리게 되거나 열정적인 욕망이 줄어들게 된다.

‘나는 내 업의 주인이며 상속자다. 선업을 짓든 이것으로 나는 상속자가 될 것이다.’ 고 되새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악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업의 주인이며 상속자다.’ 고 되새기는 사람은 악한 행동은 모두 버리게 되거나 악한 행동이 줄어들게 된다.

이와 같이 그가 여자든 남자든 재가자든 출가자든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이 다섯 가지를 자주 되새겨야 한다.


충고를 하는 마음자세

앙굿따라 니까야 5부 167

사라뿟따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존자들이여, 다른 사람에게 충고를 하려면 안으로 다섯 가지 가르침을 확립한 후에 충고를 하여야 합니다. 무엇이 다섯입니까?

나는 아무 때나 말하지 않고 알맞은 때에 말할 것이다.

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만 말할 것이지 있지도 않은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부드럽게 말하지 거칠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말만 할 것이지 이익이 없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애의 마음을 가지고 말할 것이지 성냄을 가지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 충고를 하려면 안으로 다섯 가지 가르침을 확립한 후에 충고를 하여야 합니다.”



학승과 선승이 서로 비난하다

앙굿따라 니까야 6부 4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마하쭌다 존자가 시하자띠에서 쩨띠 사람들이 있는 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벗들이여, 담마[부처님 가르침]에 열성적인 비구[학승]들이 명상하는 비구[선승]들을 헐뜯어 말하기를,‘그들은 우리는 명상가다, 우리는 명상가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명상을 한다 그러나 ‘무엇을 명상하는가? 무엇 때문에 명상하는가? 어떻게 명상하는가?’라고 비난합니다. 그래서 담마에 열성적인 비구들도 명상하는 비구들도 모두 기쁘지 않게 됩니다 그들은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편 명상하는 비구들은 담마에 열성적인 비구들을 헐뜯어 말하기를, ‘그들은 우리는 담마의 열성가이다. 우리는 담마의 열성가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만심으로 우쭐거린다. 그들은 언변이 좋고 말이 많다. 마음챙김이 없고 마음집중이 부족하다. 생각은 안정성이 없이 여기저기 떠돌고 감각기관은 절제함이 없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담마에 열성적인가? 무슨 목적으로 담마에 열성적인가? 어떻게 담마에 열성적인가?’ 라고 비난합니다. 그래서 담마에 열성적인 비구들도 명상하는 비구들도 모두 기쁘지 않게 됩니다. 이들은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담마 열성가 비구들은 명상가 비구들을 칭찬하지 않고, 담마 설성가 비구들만 칭찬합니다. 또 어떤 명상가 비구들은 담마 열성가 비구들은 칭찬하지 않고, 명상하는 비구들만 칭찬합니다. 그래서 담마에 열성적인 비구들도 명상하는 비구들도 모두 기쁘지 않게 됩니다. 이들은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벗들이여, 그대들이 자신을 이와 같이 담마 열성가는, ‘위들은 담마 열성가이지만 명상하는 비구들을 칭찬하겠습니다.’라고 단련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열반의 체험을 얻는 이런 뛰어난 사람들은 이 세상에 드물기 때문입니다. 또한 명상한는 비구들은, ‘우리들은 명상가이지만 담마 열성가를 칭찬하겠습니다.' 라고 단련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심오한 뜻의 경지를 통찰지로 선명하게 꿰뚫어 보는 이런 뛰어난 사람들은 이 세상에 드물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릴 수 없는 재산

앙굿따라 니까야 7부7

그때[빠세나디]와의 총리대신 욱가는 부처님을 방문하여 인사를드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 미가라 로하네야가 얼마나 부유하고 재산이 많은지 정말 놀랄 정도입니다.”

“욱가여 그것이 정말로 재산일까요? 그것이 재물이 아니라고 말하는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불이 나면 타서 없어지고, 홍수에 휩쓸려가고 왕이 몰수하고, 도둑이 훔쳐가고, 적이 빼앗아 가고, 상속인이 가져갑니다. 그러나 이렇게 없어지지 않는 일곱가지 재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재산, 계행의 재산, 광용심의 재산, 그리고 지혜의 재산입니다. 이것들은 불에 타지 않고 물에 휩쓸려 가지 않고 왕이나 도둑, 적이나 상속인이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이런 친구라면 따라야 한다.

앙굿따라 니까야 7부 35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자질을 갖춘 친구는 사귀어야 한다. 무엇이 일곱인가?

그는 주기 어려운 것을 남에게 준다

그는 하기 어려운 것을 해낸다.

그는 참기 어려운 것을 참아낸다.

그는 자신의 비밀을 드러낸다.

그는 남의 비밀을 지켜준다.

그는 불행에 빠진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망했을 때 그는 얕보지 않는다.

이런 일곱 가지 자질을 갖춘 친구는 사귀어야 한다.


방심치 않음은 모든 것 중 으뜸

앙굿따라 니까야 10부 15

비구들이여, 어떤 훌륭한 것이라 하더라고 모두 방심치 않음을 그 뿌리로 하고, 방심치 않음에 집중되어진다. 그러므로 방심치 않음은 모든 좋은 것 중에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강가강, 야무나강, 아찌라와따강, 사라부강, 마히강과 같은 큰 강이 모두 다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바다로 기울어지는 것과 같아. 그리므로 바다는 모든 강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왕 마찬가지로 어떤 좋은 것이 있다 하더라고 이 모든 것들은 방심치 않음에 뿌리를 내리고 방심치 않음에 집중된다 그러므로 모든 좋은 것들 가운데 방심치 않음은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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