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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스크랩] 제4편 빠알리 대장경의 결집과 집대성-제3장3차결집

작성자천장암|작성시간12.01.13|조회수32 목록 댓글 0
 

제3장 3차 결집


3차 결집 Ⅰ

사만따빠사디까 54.55.62

자신들에 대한 명성이나 이득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 이교도들은 명성이나 이득을 얻고자 하는 열망에서 부처님 가르침의 승단에 허락을 얻어 들어와서는 각자 사신들의 교리가 담마이고 계율이라고 선언하면서 자신들의 교리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승단의 허락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 머리를 삭발하고, 노란 가사를 입고, 이 사찰 저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정식 비구인양]우뽀사타 예식과 빠와라나 예식, 그리고 승단의 공식적인 예식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그래서 비구들은 우뽀사타 예식을  행하지 않았다. 이교도들은 부처님 가르침과 계율에서 승단의 비구들에 의하여 책망의 대상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담마와 계율에 따른 정해진 원칙에 따르지 않음으로써 부처님 가르침을 헐고 다양한 형태의 난동을 일으켰다. 어떤 사람들은 불을 섬기고, 어떤 사람들은 태양을 경배하고, 어떤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부처님 가르침과 계율을 파괴하였다.

그래서 승단의 비구들은 우뽀사타와 빠와라나 예식을 하지 않았다.

아소까라마 승원에서는 7년 동안 우뽀사타 예식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소까왕에게 이런 사실을 보고하였다.

아소까왕은 목갈라뿟따 띳사 장로를 초청하여 7일동안 집중적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들은 후 이교도들의 추방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7일째 날, 아소까왕은 비구들을 아소까라마 승원에 모이도록 명하고 왕은 포장을 치고 그 뒤에 앉아서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그룹지어 따로 따로 질문을 하였다.

“어떤 가르침을 온전히 깨달은신 분은 제시하셨습니까?”

이렇게 질문하자 영원주의자들은 부처님은 영원주의자였다고 답하고, 유한주의자. 무한주의자, 궤변론자, 단멸론자, 회의론자. 유의식론자, 무의식론자등 이들은 모두 자기들의 교리대로 답하였다. 왕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미 공부하였기 때문에 이들은 비구들이 아니고 다른 교단에 속한 이교도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왕은 그들에게 흰옷을 입혀서 승단에서 추방하였다. 그 숫자는 6만명에 이르렀다. 왕은 남은 비구들에게 물었다.

“무슨 가르침을 온전히 깨달으신 분은 자세히 설명하셨습니까?”

“부처님은 분석적인 교리의 주창자셨습니다.”

비구들이 이렇게 답하자 왕은 장로 비구에게 물었다.

“온전히 깨달으신 분은 분석적인 교리를 자세히 설명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위대하신 왕이여,”

이에 왕은 말하였다.

“모든 존자님들, 이제 승단의 부처님 가르침은 깨끗해졌습니다. 이제 승단은 우뽀사타를 행하십시오.”

그래서 승단은 온전한 화합으로 모두 함께 모여 우뽀사타를 행하였다. 이 행사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비구들이 참석하였다. 이행사에서 목갈리뿟따 띠사 장로는 이교도의 교리를 반박하는 논장인 까타왓를 외웠다.

담마와 계율을 암송한 야사 장로와 마하깟사빠 장로처럼 그도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구들 중에서 삼장에 통달하고, 분석적인 통찰력이 깊고, 지혜가 뛰어난 훌륭한 천 명의 장로 비구들을 선별하여 경장 율장을 합송하였다. 묵갈라뿟따 띳사 장로는 오염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화하고 3차 결집을 개최하였다. 이와 같이 이 결집은 아소까왕의 보호 아래 1000명의 비구에 의하여 9개월 만에 마쳤다. 1000명의 비구에 의하여 결집되었기 때문에 “천 명에 관한 결집”이라고 불리고 앞서의 1차 결집과 2차 결집 때문에 이것은 ‘3차 결집’이라고 불린다.

아소까왕 통치 17년에 72세의 지혜로운 장로는 성대한 빠와라나 예식으로 결집을 마쳤다.


3차 결집 Ⅱ

디빠왕사 6장 86-99  7장 34-41 53-58

아소까왕은 부처님 가르침의 분류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장로 비구들은 부처님 가르침의 여러 형태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리고 중생에 대한 자비심에서 전체 84,000가지 가르침이 태양의 후예[부처님]에 의하여 가르쳐졌다고 하였다. 부처님은 가장 최상의 진리를 가르치셨으며 윤회로부터 해방되는 가장 탁월한 가르침, 괴로움의 소명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셨다고 아소까왕에게 말하였다.

아소까왕은 이와 같은 가르침을 듣고 마음속에 지혜가 샘솟고 기쁨에 가득 차서 신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온전한 84,000가지의 가장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기 때문에 나는 매 가르침을 존경하여 한 가지의 가르침에 하나의 승원을 즉 84,000개의 승원을 제국에 새우겠다.”

그래서 각각의 마을마다 승원이 세워졌다. 왕은 3년 이내에 승원을 완성하고서 승원의 건축을 다 마쳤기 때문에 봉헌의 축제를 7일동안 개최하였다.

많은 왕족과 브라흐민들은 불교신도가 되어 부처님께 대한 믿음으로 인하여 그들은 많은 이득과 명성을 얻었다. 그래서 이교도들은 자연적 이득과 명성을 잃었다.

이런 이교도들이 7년 동안 불교 승원 속에 들어와서 살았기 때문에, 우뽀사타 예식은 불완전한 대중에 의하여 실시되었다. 그래서 성스럽고, 지혜롭고, 절도 있는 사람들은 이런 우뽀사타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지 236년이 되었을 때 아소까 라마 승원에는 6만명의 비구들이 살았다.

아지와까교와 다른 교단의 교설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헐었다. 그들은 모두 노란 가사를 입고 성인의 가르침을 손상시켰다.

교단의 수석으로서 목갈라뿟따 띳사 장로는 천 명의 비구들에 둘러싸여 결집을 소집하였다. 분열시키는 교리를 파괴한 지혜로운 목갈라뿟따 띳사 장로는 굳건하게 테라와다불교(상좌불교)를 세우고 3차 결집을 개최하였다. 그는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을 제압하고, 다른 이교 교리를 부순 후에 참된 믿음의 광채를 회복하였고 까타왓투라는 논장을 공표하였다.

아소까왕은 목갈리뿟따 띳사 장로에게 부처님 교리에 대한 설법을 들었다. 그리고 슬그머니 승가에 붙어살던 이교도 비구들의 상징들을 모두 파괴하여 버렸다. 분별없는 이교도들은 그들 자신의 교리에 따라서 그들의 출가 예식을 행하여 부처님께  대한 순수한 믿음을 손상시켰다. 이들은 승단에서 완전히 몰아내기 위하여, 그리고 그의 교리가 빛을 발하기 위하여 목갈리쁫따 띳따 장로는 아비담마에 속하는 까타왓투 논장을 지어 공포하였다. 이것과 버금가는 처벌, 이것과 버금가는 이교도의 교리의 파괴는 결코 없었다.

목갈라뿟따 띳사 장로는 까타왓투 존장을 공포한 후 교리를 정화하고 신심이 오래가도록 하기 위하여 가장 훌륭한 천 명의 아라한을 선택하여 결집을 개최하였다. 이 결집은 아소까왕이 건립한 아소까라마 승원에서 이루어졌으며 9개월 동안 계속된 결집이 끝났다.


3차 결집 후 담마 사절단의 파견으로 담마를 널리 전파함 :  아소까 바위칙령 13

..... 자비로운 왕은 담마에 의한 정복을 가장 훌륭한 정복이라고 생각한다. 자비로운 왕은 그의 영토에서뿐만 아니라600요자나의 거리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국경지방의 사람들에서도 이런 담마에 의한 승리를 성취해 왔다 그 나라들은 양띠요까[안띠오쿠스를 말함]라는 이름의 요나[그리스]왕이 통치하는 곳과 앙띠요까의 영토 그 너머땅에 사는  네 사람의 왕, 즉 뚜라마야[쁘똘레미], 앙띠끼니[안띠고너스], 마까[마가], 그리고 알릭까수다라[알렉산더]가 통치하는 곳이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쪼다. 빵다야 사람들이 사는 곳과 그리고 땅바빵니[스리랑카]나라만큼 멀리까지이다.

그리고 여기 왕의 영토에서는 요나 사람들, 깜보자, 나바까, 나바빵띠, 보자, 삐띠니까,안드라, 긜고 뿔리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자비로운 왕의 담마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 나의 아들들, 손자, 증손자들이 새로운 정복을 생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군대로 백성을 정복하였다 하더라도 가벼운 처벌과 관용의 정책을 채택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고 담마에 의한 정복만이 진정한 정복이라고 생각하게 하기 위하여, 이 담마칙령을 새기로록 하였다.


3차 결집 후 담마 사절단의 외국파견(아홉지역)

띠빠왕사 Ⅷ-1-13

[3차 결집이 끝난 후 ]예리한 통찰력으로 불법의 전파를 내다 본 목갈라뿟따 띳사 장로는 이웃하고 있는 나라들에 맛잔띠까 장로와 다른 장로들과 각 그룹에 각각 네 명의 동려를 보냈다. 이것은 외국에 믿음을 심기 위함이며 그리고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래들은 함께 중생을 위한 자비심에서 외국에 가장 훌륭한 불법을 힘차게 전하시오!”

훌륭한 성인 맛잔띠까 장로는 간다라국으로 갔다. 거기서 그는 많은 사람들을 번뇌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큰 영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마하데와 장로는 마하사 지방으로 가서 속박에서 벗어나는 길을 설법하였다. 락카따 장로는 아나마딱가야 경을 설법하였다. 지혜로운 요가까담마락카따 장로는 악긱칸도빠마 경을 가르쳐서 아빠란따까국을 개종시켰다. 마하담마락키따 장로는 나라다깟사빠자따까를 설법하여 마하랏타국을 개종시켰다. 마하락키따 장로는 깔라까라마 경을 설법하여 야와나 지방을 개종시켰다. 맛지마 장로, 두라비사라 장로, 사하데와 장로, 물라까데와 장로는 담마짝깝빠왓따나 경을 설법하여 히말라야 지방에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소나 장로와 웃따라 장로는 수완나부미로 가서 많은 사람들을 속박에서 해방시켰다. 마힌다 장로는 네 명의 동료와 함께 가장 훌륭한 섬 랑까[스리랑카]로 가서 그곳에 믿음을 굳건히 뿌리내리게 하고, 많은 사람들을 번뇌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이와 같이 아소까왕의 강력한 담마사절단의 외국 파견 정책으로 목갈라뿟따 띳사 장로는 3차 결집이 끝난 후 바로 아홉 개의 방향으로 각 그룹에 네 명씩의 담마사절단을 파견하였다. 이 역사서에 기록된 파견된 장로 비구의 이름이 사실이라는 것이 다음과 같이 고고학자들의 발굴로 산찌탑과 소나리탑의 사리함 각문에서 발견되었다.]


히말라야 지방에서 담마를 전하도록 파견된 맛지마 장로와 깟사빠고따 장로의 사리가 마다 뿌라데쉬의 산찌와 소나리에서 발견되었다. 10명의 성인의 사리가 산찌의 제2탑의 사암으로 된 사리함에서 1851년 커닝햄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사리함의 동쪽 면에 새기기를,

“savina vinayana aram Kasapagotam upadaya aram cha vachhi-suvijayitam vinayaka" :(아라한 까사빠고따와 아라한 와치- 수위 야이따 스승을 포함한 모든 스승의 사리들)

이 사리함의 속에는 네 개의 작은 얼룩진 사리함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10명의 성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 까사빠고따, 맛지마, 하리띠뿟따, 와챠-수위자야따, 마하와나야, 아빠기라, 꼬다니뿟따, 꼬시끼뿟따, 고띠뿟따, 목갈리뿟따

여기 신찌[사리함]각문에 언급된 성인의 사리들은 같은 지역에 위치한 소나리의 사리함 각문에서도 발견되었다. 예를 들면 고띠뿟따, 맛지마, 꼬시끼붓따의 이름이 소나리 사리함에 새겨져 있다.

소나리 제2탑의 세 개의 사리함의 각문은 맛자마, 까사빠곳따, 다다빗사라 장로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다. 까샤빠곳따는 전체 히말라야 지역의 스승이라고 새기고 있다.

[“맛지마 장로, 두라빗사라 장로가 히말라야 지방에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라고 한 다빠왕사의 이름과 이들 사리함에 있는 이름이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왜 스리랑카로 간 장로들의 이름은 없을까? 그런데 사리가 있다는 것은 인도에서 죽어서 화장을 했기 때문에 사리를 넣고 탑을 세웠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서 담마를 전하다가 다시 인도에 돌아가서 죽었기 때문이며 스리랑카에 간 사람들은 스리랑카에서 죽었기 때문에 여기에 사리가 없다.]


[마다 쁘라데쉬에 있는] 빌사 또쁘스의 이 담마사절단의 사리들은 스리랑카 초기 역사서의 또 하나의 정보를 증명하고 있다. 그것은 담마사절단들은 영구적으로 파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원래의 승원으로 돌아왔고 분명히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다빠왕사와 사만따 빠사디까는 기록하기를 마힌다. 장로와 동료들은 여러 개의 승원을 완성하고, 계를 주고, 56명의 스리랑카 비구에게 가르치고 수련을 시켰다. [이들은 모두 아라한이라고 기록됨]

그래서 장로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말하였다. 그런데 스리랑카 왕이 투빠라마(승원이름)건설을 시작했기 때문에 이들은 돌아갈 생각을 버리고 섬에 머물렀다.

......구족계를 받은 지 12년(32세)에 이곳에 와서 구족계 받은지 60년 말에 (80)세 마힌다 장로는 열반에 들었다.


경전이 이미 존재함을 알 수 있는 아소까왕의 각문 : 바이라트 바위칙령

마가다의 왕 삐야다시는 승가에 존경스런 인사를 드리며, 건강하심과 평안하심을 문안드립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드립니다.

내가 얼마나 붓다, 승가에 존경과 믿음을 드리는지 그대들은 잘 아십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것은 무엇이든지 훌륭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믿는 것을 그대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많은 비구와 비구니들이

다음의 담마의 경전을 끊임없이 듣고 되새기를 열망합니다.

“계율의 찬탄[Vinaya-samukase : 위나야 -사무까세]

삶의 거룩한 길 [ Aliya-vasami : 아리야 와사니

미래의 두려움 Anagata-bhayani 아나가따 바야니

성자의 게송 Muni- gatha : 모네야 -수떼

우빠띠사의 질문 Upatisa- pasine : 우빠띠시-빠시네

vade-musavadam adhigchya bhagavata Budhena bhasite :라굴로 -와데 무사와당 아디기차 바가와따 부데나 바시떼]”

마찬가지로 부처님을 따르는 재가 남녀 신도들도  이 성스러운 담마의 경전을 끊임없이 듣고 되새기를 나는 열망합니다.

이런 이유로, 존자들이여, 그대들이 나의 뜻을 알게 하기 위하여 이칙령을 새기도록 하였습니다.


삼장이 이미 성립되었음을 보이는 신찌 대탑의 기록

“....여기에서 취급하는 각문은 산찌의 난간, 울타리 문, 돌기둥 그리고 승가람들 등에서 발굴된 것들이다.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건축물의 여러 가지 다양한 부분 중에서 시주한 부분과 시주자의 이름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는 ‘봉헌'의 기록이다. 대부분 시주자들은 그들의 이름에 덧붙여진 특별한 명칭이 없다. 이들은 아마도 재가신도들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봉헌자들은 분명하게  그들 자신을 비구 그리고 비구니라고 호칭하는데 이들 숫자는 전체 200명이 넘는다 몇몇 경우는 시주자들이 어떤 특정한 스승들의 제자라고 언급하고 있다. 승가의 어떤 사람들은 뚜렷한 명칭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아야(거룩한 스승), 테라(Aya 장로), 바나까(Bhanaka 경전의 암송자), 담마까티까(Dhamakathika 담마 설법자), 위나야까(Vinayaka 스승), 수따띠까(Sutatika 경에 정통한 비구), 수따띠끼니(Sutatika 경에 정통한 비구), 빠짜네까이까(다섯 가지 니까야에 정통한 사람), 사뿌리사(성자)”


3차 결집의 요인과 결과를 보여주는 아소까왕의 각문


사르나트 돌기둥 칙령 1

[처음 세 줄은 마모가 심하여 읽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남은 몇몇 단어를 읽어 빠딸리뿟따의 마하마따 직원에게 말하고 있다고 추정된다.]

“어떤 누구에 의해서도 승가가 분열되어서는 안된다. 참으로 비구이든 비구니이든 승가를 분열하는 사람은 누구나 흰옷을 입혀서 승원이 아닌 곳에 살게 해야 한다. 이와 같은 명령은 비구 승가와 비구니승가에 잘 전달되어야 한다.


사르나트 돌기둥 칙령 2

[이 칙령은 사르나트 돌기둥칙령의 1의 계속이다.]

....이것과 같은 한 개의 복사본은 그대들이 이용하기 쉽도록 그대들의 사무소에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과 같은 또 하나의 복사본은 부처님을 따르는 신도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그대들은 보관하라.


재가신도들은 바로 이 칙령에 의하여 신심을 북돋우기 위하여 매 우 뽀사따날에 이 복사본이 있는 곳에 모여야 한다.

반드시 매 우뽀사따날에 모든 마하마따들은 우뽀사따 예식이 있는 곳에 참서갛여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 칙령에 의하여 그대들의 신심을 북돋우고 그리고 이 칙령을 그대들이 이행하기 위해서이다.


더욱이 그대들은 이 칙령의 명령대로 행하도록 그대들의 모든 관할구역을 순방하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그대들 아래서 일하는 다른 마하마따들도 이 칙령의 명령대로 행하도록 모든 요새 지역을 순방하여야 한다.


산찌 돌기둥 칙령

[마모된 시작 부분은 산찌의 마하마따들에게 말하고 있다고 추정됨]

.... 승가는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분영되어서는 안된다.

나의 아들과 증손자들이 통치하는 한, 저 해와 저 달이 빛나는 한, 그렇게 오래 지속되게 하기 위하여 나는 비구 승가와 비구니 승가가 화합을 이루도록 하였다.

승가를 분열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비구이든 흰옷을 입혀서 승원이 아닌 곳에 살게해야 한다. 이것은 승가가 일치하여 오래 오래 반영하도록 하려는 나의 염원이다.

꼬삼비 돌기둥칙령

자비로운 왕 삐야다시는 꼬삼비의 마하마따에게 명령한다.....

나는 비구 승가와 비구니 승가가 일치되도록 하였다. 이교도들을 승가에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승가를 분열시키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비구이든 비구니이든 흰옷을 입혀서 승원이 아닌 곳에 살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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