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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스크랩] Re: `초기불전연구원` 홈피에 비슷한 질문답변이 있어서 담아왔습니다. 각묵스님의 답변입니다.

작성자천장암|작성시간12.02.16|조회수37 목록 댓글 0

초기불전연구원 홈페이지에 비슷한 질문이 있어서 옮겨왔습니다.

답변해주신 각묵스님은 초기경인 니까야와 주석서를 한글로 번역하고 강연활동도 활발하게 하시는 등

이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받는 분입니다.

 

[질문] / 극락에서도 윤회를 하나요?

같이 공부하는 도반으로부터 극락에서도 윤회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읽은것 같기도 한데,
지금 생각하면 그건 방편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정토신앙에서 말하는 극락이 경전에도 분명히 나오니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하여 자세한것 알고 싶어서 스님께 여쭙니다.
자세하게 좀 알려주십시요.
봄날같은 겨울이지만 그래도 감기조심하십시요.

 

[답변]

질문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올려주신 질문은 저의 주관심사가 아니어서 뭐라고 정확한 답변을 올릴 수가 없겠습니다.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극락이 뭔가하는 것에 대한 정확한 용어정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극락은 Sukhaavatii의 역어인데 중국에서 극락으로도 옮기고 안락(국)으로도 옮겼습니다. 이것을 다룬 경이 아미타경과 이와 같은 계열의 경들입니다. 주로 대승불교 중기와 후기에 결집된 경이라고 합니다. 아미타경 등에 나타나는 극락과 극락세계(Sukhaavatii-ks*etra)에 대한 묘사는 너무 신화적이고 상징적이어서 이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극락세계를 서방정토라고 하는데 육조법보단경과 같은 선종의 어록에는 극락이나 정토를 타방에 있는 세계로 이해하지 않고 마음이 곧 극락세계라는 유심정토사상이 주종을 이루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극락에서도 윤회하는가하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하기가 쉽지 않다고 봅니다.
먼저 유심정토의 측면에서 보자면 깨달음을 완성한 경지이므로 윤회를 벗어난 것으로 봐야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겠습니다.
서방정토의 측면에서 보자면 극락세계에 태어나면 더 이상 다른 세계로 윤회하지 않고 그곳에서 성불한다는 사상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다른 윤회는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극락세계 혹은 정토사상은 초기불교의 정거천(suddhaavaasa)에서 발전된 개념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거천은 불환과를 얻은 성자들이 화현하여 나는 곳으로 초기경의 몇 군데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주석서와 아비담마에서는 욕계제4선천으로 설명이 됩니다. 자세한 것은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5장을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이곳에 태어난 자를 불환자(다시는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자)라하는 이유는 이곳에 태어나면 다시는 다른 세상으로 더이상 윤화하지 않고 이곳에서 구경열반을 증득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정거천 사상이 자연스럽게 후대에 극락 혹은 정토사상 혹은 신앙으로 발전했다고 봅니다.

저의 주관심분야가 아니라서 극락에 대해서는 상세한 답변을 드리지 못합니다. 네이버의 지식in에 들어가셔서 극락으로 검색을 해보시면 극락에 대한 글들이 올라와있을 것입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상 대충 답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각묵 합장

 

 [질문] / 아미타경을 읽다가 질문드립니다.

스님, 아미타경의 앞 부분에 이런 구절을 읽다가 질문 드립니다.
사리불 피토하고 명위극락 기국중생 무유중고 단수제락 고명극락
舍利弗 彼土何故 名爲極樂 其國衆生 無有衆苦 但受諸樂 故名極樂
사리불이여, 그 나라를 왜 극락이라고 부르는지 알고 있느냐? 그 나라 사람들은
끝없는 즐거움 속에서 살아갈 뿐, 아무런 고통이 없기 때문에 극락이라고 부르는 것이니라.
분명 여기서는 극락의 상,락, 아, 정 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무상, 고, 무아의 설법과는 상치되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상 락 아 정의 극락은? 단지 신심을 위한 가상의 실체요 이것 역시 '여래장'과 마찬가지로
산냐일 따름인지요?
제가 요즘 이런 생각의 소용돌이에 있습니다.
나무 상주 시방불.. 이렇게 천수경을 하다가도
'상주'라는 말을 자꾸 다시 생각하게 되니 말입니다.
이것은 전과 같은 담백하고 단순한 신행에서 멀어지는 길인 듯하면서
고민이 됩니다.

 

[답변]

질문 감사합니다.
몇몇 법우님들이 좋은 댓글을 달아주셨고 저도 대체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별달리 해야할 말이 없는 듯합니다. 그래도 질문을 하셨고 하니 제가 생각하는 몇 가지 관점을 간단하게 적어보겠습니다.

첫째, 분명히 초기경에는 극락세계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천상세계에는 괴로움 혹은 고통이 거의 없는 곳이고 특히 삼매 수행을 통해서 태어나게 되는 색계천상과 무색계천상에는 고통이 전혀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천상도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그 수명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 수명이 다하면 다른 곳에 태어나야합니다.

색계 천상 가운데 절정은 정거천입니다. 정거천은 불환과를 얻은 성자들만 태어날 수 있는 아주 수승한 천상입니다. 불환과를 얻은 성자들은 여기에 태어나서 머물다가 아라한이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정거천은 수승하고 행복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그러나 삼계에 속하는 한 그것은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불환과라는 수승한 경지를 얻은 성자들이 머무는 곳이지만 그것은 무상의 영역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극락도 삼계에 속하는 한 그것도 무상한 곳입니다.

 물론 극락이 삼계에 속하느냐 마느냐하는 것은 여러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만일 극락이 삼계에 속하지 않는 것이라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극락이 타방정토로 언급된다면 그것은 삼계에 속하는 것으로 봐야할 것이고 유심정토에 속하는 것이라면 열반과 동의어가 되겠지요. ...

물론 삼계에 속하든 안속하든 일단 극락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극락에 있는 동안은 분명히 행복만이 가득하겠지요. “극락에 머무는 동안은” 분명 행복뿐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상락아정입니까? 이 세상 어디에도 상락아정이 없다는 것이 불교의 상식중의 상식입니다.

둘째, 초기경과 후기경을 섞어서 이해하는 것은 지양해야합니다. 대승경을 초기경을 통해서 이해하려는 것은 좋은 태도이겠지만 둘이 조화되지 않는 경우에는 하나는 버려야합니다. 특히 여래장계열의 가르침과는 그런 면이 많습니다.

어떤 것을 버릴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법우님께 달린 것이겠지요. 형성된 것은 모두 상락아정이 아닙니다.

무상이요 고요 무아요 부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 특히 초기불교의 상식중의 상식입니다. 이 상식을 무시하고 자꾸 다른 것과 섞어서 이해하려는 것은 불교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합니다.

 

 확신이 있으면 단호하게 버려야합니다. 버리면 아까운 것이 아니라 버리면 자유로와집니다. 그렇지 못하면 제대로 된 수행 한번 못해보고 혼란스럽게 횡설수설하면서 귀중한 삶을 다 보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열반은 무상고무아부정의 영역에 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열반은 상락아정이라는 우리의 산냐로 사량복탁할 대상도 아닙니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형성된 유위적 삶에서 벗어나 이런 열반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열반은 탐진치의 소멸로 실현해야하는 것이지 무상한 우리의 사량복탁으로 계교해야할 대상이 아닙니다.

셋째, 물론 불교는 행복으로 가득한 선처 특히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으로 도덕적인 삶(지계)과 봉사하는 삶(보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천상세계든 극락세계든 혹은 선처든 그곳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보시와 지계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물론 색계와 무색계천상은 보시와 지계만으로는 안됩니다. 삼매를 닦아야합니다.

 

색계삼매를 닦아 본삼매를 성취하면 그 힘으로 색계천상에 태어날 수 있고 무색계 삼매를 닦으면 무색계 천상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천상들은 그 수명이 엄청나게 길고 그곳에서 죽으면 선처에 태어날 가능성이 아주 크지만 무상한 곳입니다. 무상이지만 고통이 많은 우리의 측면에서보자면 엄청난 수명과 엄청난 행복을 누리는 곳입니다.

이러한 천상이나 극락에 태어나고자 한다면 보시와 지계와 삼매를 닦으면 됩니다. 그러니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하십시오. 극락세계에 나고자하면 그렇게 발원하고 지극한 신심을 가지고 거기에 맞는 실천을 하면 됩니다. 극락이 삼계에 속한다면 그것은 무상한 것이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기준으로 보자면 영원에 가까운 시간에 해당하고 또 지극한 행복뿐인 곳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나고자한다면 그렇게 발원하고 지계와 보시와 삼매를 닦으면 될 것입니다. 말로만 염원으로만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해탈열반이라면 모든 것을 염오하고 탐욕이 빛바래도록 해야합니다. 자꾸 사량복탁을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은 초기불전연구원과는 별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초기불교의 입장에서 보자면 극락은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함을 법우님이 잘 알고계실 것입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논의를 하다보면 자칫 소설을 쓰게 되고 본의 아닌 비판도 하게 되니 저도 내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점을 분명히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진정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자신의 신념으로 가지신다면 상락아정은 버리십시오. 극락과 상락아정이라는 외도의 가르침을 연결짓지 마십시오.

 

그리고 만일 극락에 의미부여를 하신다면 그것을 확신하고 그곳에 태어나기 위한 실천을 하십시오. 문제는 간단명료합니다. 모든 것은 법우님이 어떻게 분명하고 명쾌하게 자신의 태도를 정리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초기불교든 극락이든 아니다 싶은 것은 버리십시오. 버리면 자유로와집니다. 버리기 싫으면? 짊어지고 가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그것뿐입니다. 이것이 제가 드리고 싶은 간곡한 말씀입니다.

적다보니 현문우답이 아닌가합니다. 잘 섭수해주십시오.

각묵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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