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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스님과 제자들

[스크랩] 수월스님 전기 - 호랑이도 "우리스님"

작성자천장암|작성시간14.08.22|조회수41 목록 댓글 0
    
    
    ▣  수월스님 전기  ▣ 
    
    
    호랑이도 "우리스님"
    
    
     
    
    당나라 태종 때의 일이다.
    어느 날 4조 도신 선사가 우두산을 지나가다가 
    산에서 솟아오르는 큰 빛줄기를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은 우두산에 뛰어난 수행자가 살고 있음을 드러내는 
    표시였기 때문이다.
    
    도신이 산속으로 깊이 들어가니 
    한 수행자가 바위위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는 도신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도신은 그 수행자에게 가까이 가서 물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마음을 보고 있습니다."
    "보는 이는 누구며 보이는 마음은 누구인가?"
    
    이렇게 묻는 도신의 말에 수행자는 깜짝 놀라 일어섰다. 
    그리고 공손하게 물었다.
    "스님께서 혹시 도신 선사가 아니신지요?"
    수행자는 도신을 움막으로안내했다.
    수행자 가까이 호랑이와 이리가 서성이고 있음을 본 도신은 
    겁을 집어먹었는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수행자가 말했다.
    
    "무서워 마십시요. 아직 `이것`이 있습니다."
    도신이 물었다.
    "그 `이것`이란 무엇인가?"
    수행자는 대답이 없었다. 
    도신은 수행자가 늘 앉아 있던 바위에 "불(佛)" 자를 썻다.
    그러자 수행자는 두려워 바위에 앉지 못했다. 
    이번에는 도신이 말했다.
    "무서워 말게 아직 `이것`이 있네."
    
    지월록에 나오는 도신과 우두에 관한 글을 간추린 것이다.
    우두는 위이야기에 나오는 수행자다.
    우두가 바위 위에 앉아 있으면 호랑이가 바람을 막아주고 
    새들이 온갓 꽃을 입에 물고 왔다고 한다.
    마치 성자에게 예배를 드리듯이 말이다.
    
    이 이야기는 한갓 전설이나 
    성자들의 세계를 나타내보이려고 꾸며낸 말이 아니다.
    기나긴 불교의 수행 전통에는 우두와 같은 삶을 산 성자들이 적지 않았다.
    성자들의 세계란 빛과 빛이 서로를 꿰뚤고 지나가듯 
    위아래 사방으로 걸림 없이 통하는 삶이라고 한다.
    
    수월의 삶의 핏줄은 저 법계 끝까지 이어지고 
    저 뭇 중생들이 사는 세계 밑바닥까지 퍼져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맑고 깨끗한 수월의 자비의 피가 흐르는 곳마다 
    온 세상 온 삶들은 자비의 꽃으로 피어났다.
    
    나자구와 수분하 가까이에 살고 있는 노인들의 말에 따르면 
    수월은 산짐승이며 날짐승, 심지어는 호랑이하고도 
    아주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산에 앉아 있으면 노루며 토끼며 꿩들이 모여들었고 
    들길을 걸으면 까치가 어깨 위에 내려 앉았으며
    밤이면 눈에 불을 켠 호랑이가 수월의 방문 앞에 엎드려 누워 있었다고 한다.
    
    나자구에 살고 있는 한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수월 대사사님께선 범을 타고 다니셨지 뭐. 
    그래글래 우리도 다 봤지.
    그때 저기 법당 솔낭기 앞에서야. 큽데. 
    정말 큽데. 대가리가 우쿨데린게야. 새끼도 있읍데.
    우린 그저 가지 못하고 이래 서서 올리 보다가 봤소. 
    무서봐서 우리 동세는 야, 에구 말도 못하고 아워아워 하는게....."
    
    수월은 가끔 화엄사에서 
    수분하까지 이백팔십리길을 걸어서 장보러 다녔는데
    부사의한 것은 하루 또는 한나절 만에 수분하를 다녀오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수월이 축지법을 하느니
    호랑이를 타고 다니느니 하는 소문이 쫙 퍼졌다고 한다.
    
    오 킬로미터가 십 리 길인 중국에서
    나자구에서 수분하까지의 거리는 백사십 킬로미터쯤 된다.
    수월이 오가는 데 걸린 시간을 대충 여덟 시간으로 잡아도 
    한 시간에 삼십오 킬로미터를 달려야 한다.
    일흔 살 노인이 안장도 얹지 않은 호랑이를 타고
    그것도 비탈진 언덕길을 어려움 없이 다닐 수 있었을까?
    아무튼 이 이야기는 적어도 수월과 호랑이가 아주 친한 사이였음을 
    짐작케 해준다.
    
    수월은 자신의 둘레를 맴도는 호랑이에게 가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야야 저쪽으로 가서 놀아라."
    그럴 때마다 호랑이는 법당 뒤에 서 있는 소나무 곁에 가서 
    입이 찢어져라 크게 하품을 하며 
    누워서 강아지처럼 뒹굴며 재롱을 부렸다는 것이다.
    나자구에 나타나는 호랑이들이 사람을 해치는 일이 없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수월이라는 너른 땅 위에서 큰 기쁨과 평화를 누린 것은 
    짐승들뿐만이 아니였다.
    온갓 나무와 꽃, 봄날의 풀과 여름날의 곡식들 ... ,
    목숨 잇는 모든 것들이 수월 속에서 태어났고 수월 속으로 사라졌다.
    
    "정말 깨어 있는 사람은 모든 것에 다 깨어 있다.
    그런 사람은 꽃 한 송이, 아니, 목숨 있는 것이라면 
    한낱 들풀 한 닢조차도 꺽을 수 없는 것이다.
    그대는 그런 꽃을, 그런 풀잎을 보는가? 정말 보는가?"
    
    크리슈 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의 말이다.
    
    출처 - 물 속을 걸어가는 달 - 김진태지음  
    
    
    
    
    
    
    
    
아미타불과 함께하는 마음의 고향 무주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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