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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스님과 제자들

혜월선사의 진영 성공스님이 만들어

작성자천장암|작성시간15.02.16|조회수129 목록 댓글 0
  
선사(禪師)와 묵적
승인 2015.02.16  (월)  12:26:31
박재현_동명대 불교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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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쯤에 또 다른 휘호 하나가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등등상속' 등 4건의 묵적을 문화재청이 그 문화유산적 가치를 인정하여 문화재 등재를 권유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가운데  일제강점기에 경허선사가 친필로 혜월선사에게 줬다고 알려져 있는 '전법계'와 '등등상속'이 있다.

  
▲ 수덕사 주최 경허 열반 100주년 기념 특별전에 전시된 등등상속. 사진출처: 금강신문

이 문건은 수덕사 덕숭총림에서 주최한 경허스님 열반 100주년을 맞아 특별전에서 전시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그림에서 보듯이 '등등상속'은 태고보우로부터 혜월혜명에 이르기까지의 법맥을 순서대로 나열한 문건이다. 이 문서는 현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있다. 기증자는 성공스님이다. 현재 혜월선사의 진영으로 알려진 것도 이 스님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공스님의 기억에 의하면, 혜월선사는 어린 시절에 스님이었던 삼촌에게 맡겨졌다. 절에서 지내던 중에 하루는 화엄경 가운데 한 구절인 “약인요지(약若人了知) ~ 비로자나(毘盧遮那)” 구절을 두고 그 절의 부전과 입씨름을 했다. 지켜보던 삼촌이 기특하게 여겨 그를 경허에게 데리고 갔고, 지혜가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으며, 그래서 혜명이라고 이름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성공스님은 혜월의 법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지금 제방에서는 혜월스님이 참선을 해서 견성 성불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완전히 안 맞는 말이야. 혜월스님은 바로 일구(一句) 하에 깨쳤지. …… 어떻게 보면 혜월스님은 은사가 없지. 있을 수 없지. 은사가 있다면, 삼촌이라고 볼 수 있지. 혜월스님을 데리고 경허스님에게 인가를 받았으니까.”(김광식‧석암문도회 편, 처처에 나툰 보살행: 석암스님의 수행과 가르침, 불광출판사, 2011 참조)

오래전에 지관스님은 <한국불교 소의경전 연구>(1969년 간행)에서, 혜월은 11살에 출가하여, 24살에 경허로부터 보조국사 '수심결'을 수학하여 심의(深意)를 깨닫고 41살 때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적었다. 혜월선사가 24세에 경허로부터 보조국사의 수심결을 배웠다는 얘기는 지관스님의 이 책을 제외하고 다른 근거는 없는 것 같다.

성공스님의 구술에 의하면, 혜월은 경허와의 만남 이전에, 경을 배우지도 않았고 특별히 공부한 것도 없었다. 성공스님은 혜월의 삼촌이 그를 경허에게 데리고 갔다고만 하고 당시 혜월의 나이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혜월이 40대의 중년이었다면 삼촌이 “데리고 갔다”고 했을 것 같지는 않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과 6형제의 삶을 재조명한 전시회 '난잎으로 칼을 얻다 – 우당 이회영과 6형제' 전(展)이 개관 두 달 만에 누적 관객 70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당대 조선 최고의 부자가 독립운동으로 가산을 모두 탕진하자, 난(蘭)을 쳐서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했다. 그의 묵적은 삿되지 않아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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